가야, 백두대간 넘어 운봉·장수 장악…고분에 역동적 자취

박창희 경성대 교수 2024. 3. 1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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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사…세계속으로 <9> 가야의 역동성, 전북 가야

- 전북 남원·장수에 가야유적 즐비
- 백제·중국, 가야 각국과 교류활동
- 남원 유곡·두락리 고분 원형 간직
- 장수군, 세계유산 추가등재 야심

호남가야 혹은 전북 동부 가야. 이 개념은 5~6세기 중엽 후기 가야연맹의 최대 영역을 말해주는 가야 역동성의 표현이다. 그곳에 잠자던 가야가 깨어난 것은 2000년대 이후 집요한 고고학 연구의 성과다. 뒤늦게 발굴된 고분마다 가야의 수장층 유물이 나와 전라도의 가야 이야기를 풀어낸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았던 경상도 중심의 가야 영역을 넘어선다. 가야는 5세기 초반 지리산 자락의 운봉고원을 넘어 전북 남원과 장수에 거점을 형성했고, 더 나아가 섬진강과 영산강 일대, 순천만 주변까지 세력을 뻗쳤다. 이 시기, 가야의 힘이 막강했음을 말해준다.

5~6세기 후기 가야가 전북 동부에 세력 거점을 형성한 곳은 크게 두 곳이다. 남원의 운봉고원 일대와 장수 일원이다. 해발 500m의 운봉고원은 전라도인데도 남강-낙동강 수계이고, 장수는 금강 수계로서 백두대간 서쪽의 진안고원에 자리한다.

운봉고원은 가야의 새로운 판도를 읽는 키워드다. 이곳은 역사적으로 백제와 마한, 대가야, 아라가야 등 여러 세력이 각축을 벌인 요충지였다.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은 “운봉이 없으면 호남도 없다”고 했고,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은 “남도의 관방은 운봉이 으뜸이고 추풍령이 그다음이다. 운봉을 잃으면 적이 호남을 차지할 것이다”며 운봉의 전략적 중요성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한 운봉을 한때 가야가 차지했다고 하니 획기적인 사건이다.

전북 장수군 장계면 삼봉리 가야고분군 전경. 뒤로 장계면 소재지를 내려다보는 깃대봉이 우뚝 솟아 있다.


▮유곡리·두락리, 가야고분 원형 보존

전북 가야가 세상에 알려진 계기는 1982년 광주대구고속도로(옛 88올림픽고속도로) 건설에 따른 구제 발굴 때문이었다. 백제 권역으로 여겼던 남원 월산리에서 가야계 구덩식 돌덧널무덤과 대가야 토기, 금공품, 마구 등이 출토됐다. 원광대 발굴팀은 이곳을 5세기 가야 수장의 무덤으로 봤다.

월산리 M5호분에서는 특이한 쇠자루솥과 닭머리 모양 청자(계수호)가 나와 학계의 이목을 모았다. 쇠자루솥은 핸드드립용 커피 주전자처럼 손잡이가 아주 긴 철제 솥이다. 닭머리 모양 청자는 중국 남조에서 만든 것으로 백제 지배층 무덤에서 발견된 적이 있는 희귀 유물이다. 월산리 세력이 백제나 중국과 교류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월산리 고분은 예고편이었다. 월산리에서 동쪽으로 1.5㎞ 떨어진 남원시 유곡리와 두락리에서는 월산리를 압도하는 가야계통 고분이 발견됐다. 여기서 나온 수대경(동물 문양의 청동거울)과 금동 장식 신발 파편 등은 여러 가지 해석을 가능하게 했다. 발굴팀은 유곡리 두락리 세력이 영호남의 길목인 운봉고원을 차지하고 접경지의 대가야 백제 신라 중국 왜 등 다양한 세력과 교류하고 교섭한 흔적으로 판단했다.

학자들은 수대경과 금동신발에 주목하고, 백제가 가야의 지원을 얻기 위해 선물한 위세품이 아닐까 추정했다. 또 월산리에서는 소가야 계통의 토기가 많았고, 두락리에서는 대가야 스타일의 토기가 주를 이룬 것으로 미루어 남원 가야 세력의 주도권이 처음에는 월산리였다가 두락리로 이동한 것으로 보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전북 남원시 인월면의 유곡리·두락리 가야고분군. 고분 발굴과 정비가 진행 중이다. 왼쪽 하얀 건물은 가야고분군 홍보관이다.


남원 유곡리(인월면)와 두락리(아영면)는 행정구역이 다르지만 두 마을이 거의 붙어 있다. 고분군은 인월면 성내마을의 연비산 능선을 따라 늘어서 있으며 주변은 논밭이다. 지금까지 확인된 고분은 40여 기지만 발굴이 진행되고 있어 숫자는 더 늘어날 수 있다. 고분군 언덕 너머에 지리산의 연봉이 가물거린다.

이 유적은 2018년 가야고분군의 유네스코 등재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전라권 가야 유적 최초로 사적으로 지정됐다. 서둘러 등재가 추진되다 보니 고분 정비는 물론 산책로조차 없어 “여기 진짜 세계유산이 맞나?”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세계유산 안내판이 없었다면 일반 토목공사장으로 착각할 판이다.

성내마을 입구에서 30m 정도 오르면 소박한, 아니 초라한 고분 홍보관이 있다. 가건물이다. 주민에 따르면 예전에는 고분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그냥 산으로 생각하고, 나무도 심고 밭농사를 짓기도 했다고 한다.

홍보관에서 만난 김종효 문화유산해설사는 “보기엔 어수선하지만 인위적 손길이 덜 가해지고 고분의 원형이 잘 보존된 점을 유네스코에서 높이 평가한 것 같다. 저 아래 성내마을에 새 홍보관을 지으려고 터를 닦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북 동부 지역의 가야유적 분포 지도.


▮운봉·진안고원 호령한 가야

5~6세기 운봉고원 일대를 호령한 세력은 누구였을까? 학계에선 고구려 남정 이후 금관가야가 쇠퇴하고 대가야가 세력을 넓히던 시기, 가야 유민이 백제 마한 세력의 상대적 공백 지대를 150~200년 차지했을 것으로 본다. 학자마다 미묘한 입장 차이는 있다. 운봉 지역을 대가야 권역으로 보고 대가야 정치세력의 하나로 해석하는 시각이 있는 반면 백제나 중국과 직접 교류한 흔적이 있는 만큼 대가야계지만 어느 정도 독자성을 가진 정치세력으로 보는 학자도 있다.

호남 지역 가야사를 연구해 온 군산대 곽장근 교수에 따르면, 운봉 지역은 5세기에 가야문화, 6세기 전반 백제문화, 6세기 중반 이후엔 신라 문화적 요소가 나타나는 ‘다국적’ 통섭 문화의 모습을 보인다. 곽 교수는 이곳의 가야는 대가야의 영향권이 아니라 독자적 소국으로서 문헌에 나오는 ‘기문국(己汶國)’일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기문(기물)’은 우리나라 ‘삼국사기’와 함께 중국의 ‘양직공도’, 일본의 ‘일본서기’에 기록된 소국이다. 우륵이 가야의 통합을 위해 만든 가야금 12곡에 기물(기문)이란 명칭이 등장한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다른 가야 지역에서 진출한 집단으로 보기보다는 마한에 뿌리를 둔 토착 집단일 것으로 생각하는 견해가 우세하다.

한편 6세기가 되면 호남 동부 일대의 세력 판도 변화가 생긴다. 고구려에 밀려 남쪽으로 내려온 백제가 지리산 방면으로 진출하고, 554년 충북 옥천의 관산성 전투에서 신라가 백제에 완승하면서 운봉고원은 신라가 차지한다. 백제의 압박과 신라의 기세에 짓눌려 신음하는 가야 세력의 아우성 속에 가야 멸망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장수군 가야 철산지 70여곳

전북 가야는 남원에서 시작해 진안 장수, 나아가 섬진강, 영산강 권역으로 세력을 뻗친다. 5세기 대가야는 중국 남제에 사신을 보낼 정도로 전성기를 구가했다.

남원 운봉고원 못지않게 최근 ‘고고학적으로’ 주목되는 지역이 장수의 진안고원이다. 장수에는 최근 몇 년 동안 동촌리를 위시해 삼봉리 장계리 백화리 등지에서 5세기에서 6세기 것으로 보이는 250여 기의 가야계 중대형 고분이 발견됐다. 여기서 나온 토기 마구 철기는 장수 가야의 존재감을 높여주고 있다.

이 가운데 동촌리 고분군은 80여 기의 무덤이 확인돼 2019년 전라권 가야 유적 가운데 두 번째로 국가 사적으로 지정됐다. 이곳에선 가야계 고분으로는 최초로 말 편자가 말뼈, 금은 귀걸이와 고리자루큰칼 등과 함께 출토됐다. 쇠로 만든 말 편자는 장수의 가야 세력이 철의 생산과 가공에 필요한 첨단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장수군에 산재한 제철 유적은 확인된 것만 70곳이 넘는다고 한다. ‘철의 왕국 가야’라는 브랜드를 장수가 가져야 할 판이다.

남원-운봉 일대의 삼국시대 봉수 운영도 주목거리. 전북 지역의 봉수 유적은 충남 금산군과 전북 완주 무주 진안 임실 순창 장수 남원 등 8개 지역에서 모두 230곳 정도가 발견됐다. 이렇게 편제된 봉수들의 종착지는 장수군 장계분지다. 당대 최고 수준의 밀집도를 자랑하는 통신망이 진안고원에서 구현된 것. 이를 운영한 정치체를 두고 어떤 이는 ‘반파(伴跛)’라고 주장하고, 어떤 이는 ‘기문’, 또 어떤 이는 토착 세력이라고 보기도 한다.

장수 가야는 현재진행형 고대사의 한 부분이다. 장수군은 2019년 전북 최초로 가야 홍보관을 개관했으며, 지난해 세계유산에 포함되지 못한 동촌리, 삼봉리 고분군 등 장수 지역의 가야고분군을 세계유산에 추가하려고 애쓰고 있다. 가야가 백두대간을 넘어 존재감을 드러내는 역동성만큼이나 지자체들의 고대사 찾기도 역동적이다.

글·사진 (‘살아있는 가야사 이야기’ 저자)

※ 공동기획: 상지건축, 국제신문,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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