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이 테크노클럽 DJ가 된다면? [여기 힙해]

이혜운 기자 2024. 3. 11.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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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HAK에서 열린 hi(s)tory. /이혜운 기자

백남준이 직접 DJ를 한다면 이런 느낌일까요?

지난달 29일 밤 10시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있는 갤러리 BHAK 지하 1층은 테크노 클럽으로 변신했습니다. DJ 안성일이 서 있는 턴테이블 무대 앞을 장식하고 있는 건 백남준이 겪은 히피 세대를 담아낸 ‘플라워 칠드런’, 말에 올라탄 장수왕을 TV 모니터로 표현한 ‘장수왕’, 유년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나는 ‘노스탤지어는 피드백의 제곱’, 그리고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테크노 열풍에 맞춰 제작된 ‘테크노 보이’입니다.

BHAK에서 열린 hi(s)tory. /이혜운 기자

백남준은 현대 미술의 거장이지만, 처음에는 미술가보다는 음악가 타이틀을 달고 시작했습니다. 도쿄 대학 졸업 논문으로 쇤베르크 연구를 쓴, 현대음악에 푹 빠진 음악학도였고, 일본을 떠나 독일에서 공부한 것도 음악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1980년대 미국과 독일에서 고학력 뮤지션들을 중심으로 탄생한 전자 음악 ‘테크노’. 이 열풍에 맞춰 ‘테크노보이 로봇 시리즈’를 제작하게 됩니다.

kunstash 테크노바의 벽에 걸린 백남준 작품. /kunstash

이날 갤러리 BHAK(대표 박종혁)에서 열린 행사 ‘히스토리(hi(s)tory)’는 백남준과 테크노 음악을 모두 좋아하는 이기찬 디렉터가 ‘테크노 보이’에서 영감을 받아 연 행사입니다. 갤러리 1층에서는 백남준의 또 다른 대표작인 ‘TV부처’와 각종 디바이스를 조립해 ‘재조합 음향기기’ 작품을 만드는 연누리 작가의 스피커를 통한 음악을 들으며 명상을 하고, 지하로 내려가 테크노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구성이 새롭습니다.

갤러리 BHAK의 백남준의 'TV부처'(왼쪽)과 연누리 작가의 스피커. /이혜운 기자

그는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에 있는 테크노바 ‘쿤스타쉬(Kunstash)’도 공간 디렉팅을 했는데요. 그곳 역시 벽에는 백남준의 ‘88올림픽 기념판화세트’가 걸려 있습니다. 그 앞에 있는 턴테이블에서 DJ는 음악을 틀고, 그 앞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 그 모습을 갤러리에서 쓰는 미술품 나무 상자로 만든(그대로 사용한) 테이블 앞에 앉아 데킬라와 피자를 먹으며 보고 있자니, 백남준과 그의 부인 구보타 시게코가 미국 뉴욕에서 플렉서스 멤버들과 먹던 저녁 풍경이 이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젊음과 에너지, 예술적 영감으로 가득 찬 느낌요.

독일의 현대미술 작가 크리스토프 루크헤베를레 전시장 작품 앞에서 음악을 트는 디제이. /이혜운 기자

이렇듯 최근 전시 트렌드는 미술과 음악의 결합입니다. 작품이 걸린 전시장에 음악이 빠질 수 없습니다. 그전에는 이런 음악이 ‘배경음악’으로만 작용했다면, 최근엔 더욱 적극적으로 관여합니다. 음악 역시 전시의 한 축이 됩니다.

독일의 현대미술 작가 크리스토프 루크헤베를레 전시를 작가가 직접 추천한 음악과 함께 감상하고 있다. /이혜운 기자

지난 1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 더서울라이티움에서 열린 독일의 현대미술 작가 크리스토프 루크헤베를레 전시는 매주 금·토 밤 8시면 ‘사일런트 디스코장’으로 변신했습니다. 매일 단 100명만 받는 이 행사는 입장과 동시에 무선 헤드폰을 받습니다. 처음에는 1시간 동안 이정한 도슨트와 함께 전시 해설을 듣습니다. 이때도 작품마다 작가 크리스토프 쿠크헤베를레가 추천한 음악을 함께 감상합니다. 춤을 주제로 한 작품에서는 마이클 잭슨의 ‘빌리진’과 비지스의 ‘스테잉 얼라이브’, 독일 라이프치히의 삶을 주제로 한 작품에서는 리하르트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흑백 작품에서는 유리스믹스의 ‘스윗 드림스’가 나옵니다. 평범한 전시 공간이 음악이 나올 때마다 작품과 결합해 바뀌는 분위기는 다른 차원을 경험하게 합니다.

독일의 현대미술 작가 크리스토프 루크헤베를레 전시를 DJ음악과 함께 자유롭게 감상하는 사람들. /이혜운 기자

오후 9시부터는 DJ가 플레이하는 라이브 음악을 들으면서 자유롭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무알콜 맥주도 1병씩 제공됩니다. 크리스토프 루크헤베를레의 전시는 오는 28일부터 고양시립 아람미술관에서 이어서 열리지만, 미술관 운영 시간 이슈로 ‘사일런트 디스코 프로그램’은 열리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위 음악들을 플레이리스트에 넣어놓고 들으면서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이 어떠실까 추천드립니다.

‘반고흐 더 이머시브’ 미디어아트 전시장에서 오는 3월 10일 ‘캔들라이트’ 특별 공연이 펼쳐진다. /피알원

미디어아트 전시에서 클래식 라이브 연주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도 있습니다. 광명 일직동 ‘GIDC 광명역’에서 열리는 ‘캔들라이트 x 반고흐 더 이머시브: 비발디의 사계’입니다. 지난 10일 오후 3시부터 미디어 아트로 구현된 고흐의 작품을 배경으로 비발디의 ‘사계’가 현악 사중주 라이브 연주가 펼져졌습니다. 연주를 맡은 건 국내 현악 사중주단 ‘앙상블 톤즈’. 사계의 봄이 나오는 동안은 반 고흐의 벚꽃나무와 해바라기 작품이 펼쳐지고, 사계의 가을에는 반 고흐의 ‘수확하는 사람’이 펼쳐집니다.

반고흐와 비발디. /이혜운 기자

이 결합은 글로벌 라이브 엔터테인먼트 디스커버리 플랫폼 피버와 세계적 전시 제작·유통사인 엑시비션 허브 아시아(Exhibition Hub Asia)의 협업으로 탄생했습니다. 엑시비션 허브 아시아가 개최하는 ‘반고흐: 더 이머시브’ 미디어아트 전시는 약 300여 점의 반 고흐 작품을 선보이는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입니다. 뉴욕, 런던, 밀라노 등 전 세계 30여 개 주요 도시에 이어 지난해 9월 한국에 상륙했습니다. 초대형 규모의 전시장에서 최첨단 360도 비디오 맵핑 기술을 적용한 디지털 아트, 가상현실(VR),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기법을 활용하여 관람객들에게 생생한 감동과 경험을 선사합니다.

반고흐 더 이머시브. /이혜운 기자

피버의 ‘캔들라이트 콘서트’는 특정한 공간을 수천 개의 촛불로 밝히며 이색적인 음악을 연주하는 행사입니다. 클래식뿐 아니라 현대 음악, 재즈, 영화 OST, 팝, 발레 등 다양한 장르와 테마를 확장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번 공연은 ‘캔들라이트’와 ‘반고흐: 더 이머시브’ 두 글로벌 문화 콘텐츠 IP의 첫 합작 사례인데요. 반 고흐와 비발디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예술가이기도 합니다. 수 천 개의 캔들라이트가 비추고 있는 가운데 열린 비발디의 사계 연주. 환상적인 것을 뛰어넘어 성스러운 기분까지 들었습니다.

반고흐 더 이머시브. /이혜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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