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만석이래' 한국손님도 받는 북한식당…공산당 찬양도[르포]

상하이(중국)=박수현 2024. 3. 10. 10: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중국 상하이시 푸동신구에 위치한 북한식당 '평양고려관' 입구. /사진=박수현 기자

주말 저녁인 지난 3일 오후 6시40분쯤. 중국 상하이시 푸둥신구에 위치한 북한식당은 이미 만석이었다. 홀에 있는 10여개 테이블은 대부분 가족 단위 손님으로 가득 찼다. 군청색 원피스를 맞춰 입은 북한 종업원이 바쁘게 음식을 날랐다. 안쪽 방도 손님으로 가득 찼는지 이야기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식당 종업원은 모두 20대로 보이는 여성으로 중국어를 능숙하게 사용했다.

이곳은 공연을 진행하는 저녁 시간에는 전화로 예약한 손님만 받고 있었다. 기자가 식당에 들어서자 예약자명과 전화번호 뒷자리를 확인한 뒤 자리로 안내했다. 이어서 건넨 메뉴판에는 '평양랭면', '소고기 종합전골', '송이버섯 은지구이' 등 여러 음식이 있었다. 10위안(약 1850원)대 김치부터 400위안(약 7만4000원)대 구이 요리까지 다양했다. 가격은 인근 현지 식당의 2배가량이었다.

상하이에 위치한 두 곳의 북한식당은 '중국 내 북한식당이 한국인 손님을 받지 않는다'는 일부 언론 보도와 달리 한국인 이용이 가능했다. 이날 북한식당을 찾은 손님 대부분은 중국인이었지만 간혹 한국인도 눈에 띄었다. 북한의 체제 선전과 함께 외화벌이와 정보 수집의 창구 역할을 하는 식당의 특성상 한국인 손님을 받는 것으로 보였다.

이날은 한미의 정례 연합훈련 '자유의 방패'(FS:Freedom Shield) 연습이 시작되기 하루 전이었다. 하지만 북한식당 내부에서는 별다른 긴장감을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중국인과 한국인 손님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는 있었다. 종업원들은 중국인 손님에게는 웃으면서 말을 건네는 반면 한국인 손님에게는 굳은 표정으로 짧은 말만을 건네는 모습이었다.

중국 상하이시 푸동신구에 위치한 북한식당 '평양고려관'에 공연을 위한 무대가 마련돼 있다. /사진=따중디엔핑

북한식당의 홀 앞쪽에는 매일 저녁 진행되는 공연에 쓰이는 무대가 있었다. 무대 위로는 드럼, 일렉 기타, 전자 키보드가 나란히 놓였다. 이날도 공연 시간이 다가오자 종업원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하나둘 화려한 색감의 한복이나 공연용 원피스 등으로 의상을 바꿔입고 꽃다발과 화관, 바이올린 등 공연에 쓰는 악기와 소품을 옮겼다.

북한식당의 공연은 중국어 인사말로 시작됐다. 식당을 찾아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북한 노래, 중국 노래, 악기 연주와 탭댄스 등 잠시도 눈 돌릴 틈 없이 현란한 공연이 이어졌다. 노래의 주제는 대부분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내용이었다. 중국 공산당을 찬양하는 노래로 유명한 '공산당이 없으면 신중국도 없다' 등의 곡을 부르면서 북중 관계를 강조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공연이 한 시간 넘도록 이어지는 동안에도 종업원들은 홀 내부를 바쁘게 돌아다녔다. 손님들에게 조화로 만든 화관을 씌워주거나 꽃다발을 건넸다. 공연 중간 생일이나 기념일을 축하한다면서 무대로 손님을 데리고 나와서 노래를 불러주거나 아이들과 함께 율동을 하기도 했다. 공연 말미에는 테이블마다 찾아가 기념 사진 촬영을 권했다.

북한식당에서 진행되는 공연은 대부분 체제 선전과 북중 관계를 강조하는 내용이었지만 중국인 손님의 반응이 마냥 긍정적이지만은 않았다. 몇몇 중국인 손님은 북한 특유의 과장된 말씨의 중국어에 고개를 갸웃거렸고 중국 공산당을 풍자하는 데에 쓰이기도 하는 '공산당이 없으면 신중국도 없다'는 노래가 나올 때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헛웃음을 짓기도 했다.

중국 상하이시 푸동신구에 위치한 북한식당 '평양고려관'에서 종업원들이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따중디엔핑

북한의 민간외교 창구 역할을 하는 북한식당에서는 달라진 북중관계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었다. 중국이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에 동참한 2017년 하반기에 식당을 방문했을 때는 중국인 손님의 발길이 뚝 끊기면서 상하이 내 북한식당이 대체로 썰렁한 풍경이었다. 그러나 올해 북중수교 75주년을 맞은 영향인지 이날은 중국의 경기 침체 우려에도 불구하고 손님이 끊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한국인 손님을 대하는 태도에서 달라진 남북관계의 분위기도 읽을 수 있었다. 중국인 손님과 별반 다를 바 없이 대하던 이전과 달리 북한식당에서는 한국인 손님들을 굳은 표정으로 대했다. 중국인 손님에게 권하던 기념 사진 촬영을 한국인 손님이 요청하자 거절하기도 했다. 식당을 떠나는 한국인들에게 종업원들은 으레 하는 인삿말도 붙이지 않고 입을 굳게 다물었다.

상하이(중국)=박수현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