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가 미나리했다”…전국 각지서 촌동네 달려온 ‘오픈런 사건’ 있다고? [푸디人]

안병준 기자(anbuju@mk.co.kr) 2024. 3. 10.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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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디인-18] 미나리&삼겹살 (feat. 청도 한재미나리 )

경북 청도의 한재 미나리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시기인 경칩(驚蟄)을 코 앞에 둔 지난 1일. 봄기운이 완연히 느껴지며 생명력이 감돌아야 할 시기이건만 몸은 천근만근 무겁다.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와 각종 술자리로 지친 내 간은 이미 쉬어달라고 몸서리를 친지 오래다. 푹 쉬고 싶지만 생계가 달린 터라 차마 그러지는 못하고 내 불쌍한 간에게 특식을 주기로 했다.

바로 해독 능력이 탁월하다고 알려진 미나리이다.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 대표 미나리로 유명한 ‘한재 미나리’를 내 자신에게 선물하기 위해 경북 청도로 향했다.

“이게 뭐라꼬 이렇게 줄서서 먹나”
경북 청도 한재골에 위치한 미나리삼겹살집인 초현농장. 주말 오후 1시30분에도 대기 인원이 상당했다. 안병준 기자
청도와 밀양을 잇는 25번 국도에서 빠져나오면 ‘한재로’로 들어서게 된다. 길 옆에는 삼겹살과 미나리를 판매하는 가게 수십 곳이 줄지어 서 있고, 그 주위는 일명 ‘봄나리’인 미나리를 먹기 위해 전국 팔도에서 몰려든 인파로 북새통이었다. 3·1절 공휴일이 붙은 주말이라 어느 정도 예상을 하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여러 가게 중 애초 마음먹고 가기로 한 초현농장은 오후 1시 30분에도 아직 대기 줄이 꽤 있었다. 서둘러 대기표를 받았는데 18번…. 앞서 11번이 막 들어간 터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다른데도 마찬가지겠지’라는 생각에 기다리기로 했다.

가게 옆에는 미나리를 씻어 판매하는 공간이 자리잡고 있었다. 아주머니 3분은 벽을 보고 앉아 미나리를 가지런히 정리하고 있었고 외국인 근로자는 흐르는 물에 미나리 다발을 붙잡고 연신 흔들었다. 한재미나리는 진흙뻘 같은 곳에서 재배해 거머리가 있을 수 있다.

미나리를 퍼올린 지하수로 씻는 모습. 안병준 기자
식당 바로 뒤편에는 한재천이 흐르고 거대한 암벽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냈다. 한재천을 따라 비닐하우스가 빼곡이 서 있는데 모두 미나리를 재배하는 곳이었다. 이 동네에서 미나리는 현금 돈다발이나 다름없어 철조망으로 비닐하우스 입구를 막아 둔 곳도 있었는데, 비닐하우스의 구멍 난 틈으로 슬며시 보니 새파란 미나리들이 빽빽이 자라고 있었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자라고 있는 한재미나리. 안병준 기자
서비스 엉망이지만… ‘어떻게 너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어’
왁자지껄한 식당 내부 모습. 안병준 기자
대기번호 18번이 불려 들어갔지만 시작은 지금부터였다. 수십 개의 테이블에서 대환장 삼겹살 파티가 벌어지고 있었는데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였다.

아르바이트생들은 이미 폭풍처럼 지나가는 점심 손님에 지쳐 감당을 못하는 모습이었다. 기다리다 못해 직접 불판과 가스버너를 세팅하고 간신히 삼겹살과 미나리를 주문했다. 두 번 다시 올 곳은 못 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꽉 채웠다.

굽기전 세팅된 삼겹살과 미나리. 안병준 기자
식탁 세팅은 삼겹살과 미나리, 그리고 반찬으로 나온 김치가 전부였다. 고기집에서 가짓 수를 채우는 불필요한 반찬을 평소 싫어하는 터라 이런 단촐함이 싫지는 않았다. 아무 생각 없이 입에 넣은 김치 한 조각으로 이 집의 숨겨진 내공에 화들짝 놀랐다. 쟁반에 가지런히 나온 미나리에서는 비닐하우스에서 갓 수확한 듯한 싱싱함이 그대로 묻어났다.
미나리와 삼겹살, 그리고 볶음밥과 된장찌개까지. 안병준 기자
총평부터 하자면, 삼겹살이 삼겹살 했고 미나리가 미나리 했다.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어떻게 너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라는 노래가 떠오를 뿐이다. 파릇파릇한 미나리를 생으로 먹으면 기분이 상쾌해지고 삼겹살과 같이 구워 먹으면 돼지기름의 느끼함을 잡아준다. 여기서는 삼겹살에 곁들일 채소로 고사리보다 미나리를 한 수 더 높게 쳐줄 수밖에 없다.

아쉬운 점은 서비스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식당 직원들이 감당 못할 고객들이 몰리다 보니 패닉상태다. 시골에서 직원 한 명 더 쓰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테지만 식당 크기를 줄이든가 직원을 더 채용하든가 둘 중 하나는 해야 한다. 물론 한재골에서는 고객보다 식당 주인이 갑인 듯 해보였지만.

식사 후 미나리를 사러 갔다가 품절돼 살 수가 없었다. 식당 손님 99%는 미나리를 사가는 듯 했다. 안병준 기자
현대인의 자연 건기식 미나리
청도에서 사온 한재미나리로 만들어 먹은 미나리전. 안병준 기자
청도는 예로부터 산도 물도 사람도 맑다고 하여 ‘3청의 고장’이라 불리었다. 그 중에서 경북 청도군 초현리, 평양리, 음지리, 상리 등 4개 마을이 모여있는 ‘한재’는 땅이 비탈지고 배수성이 높으며, 차가운 물 등으로 논·밭농사를 짓기 어려웠다.

그래서 이 곳 주민들은 1960년대부터 미나리 농사를 지었는데 본격적으로 미나리의 성지로 발걸음을 뗀 것은 1990년 쯤이었다.

처음에는 약 10여곳의 농가가 하우스 시설을 갖추고 무농약 친환경 농업으로 미나리를 선보였다. 이후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미나리 생산이 궤도에 올랐고 2009년 한재미나리 영농조합 법인을 설립해 철저한 품질관리에 들어갔다.

그 결과 2010년 ‘청도 한재 미나리’가 지리적 표시인증(농산물 제 69호)를 획득했다. 이 제도는 우수한 지리적 특성을 가진 농림산물과 가공품을 등록해 보호하는 제도다. 지금은 한재미나리 통합브랜드를 만들어 포장디자인을 통일하고 온라인 판매도 하고 있다.

한재 미나리 특징은 진한 자줏빛 줄기가 발달해 있으며 줄기가 길고 잘라보면 대나무처럼 속이 비어있지 않고 꽉 차 있다.

이런 특성은 한재미나리가 미나리를 흔히 분류하는 물미나리와 돌미나리의 경계선에 있기 때문인 듯하다. 물미나리는 논에서 재배되어 논미나리라고도 하는데, 줄기가 길고 잎이 연하며 성장이 빨라 속이 비어 있다. 반면 돌미나리는 밭에서 자라는 야생 미나리로 길이가 짧고 속이 꽉 차 있다.

한재 미나리는 수확 때까지 계속 물에 잠겨 키우는 일반 미나리와 달리 물을 넣었다 빼는 작업을 반복한다고 한다. 비닐하우스 지붕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해 밤에는 물을 주고 낮에는 물을 빼는 식이다.

미나리는 비타민과 무기질이 풍부하게 함유된 알칼리성 식품으로 고지방 식단으로 인해 산성으로 변한 체질을 중화하는 데 효과가 있다. 또한 칼륨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체내의 중금속과 나트륨 등의 해로운 성분을 배출하는 데 도움을 준다. 미나리의 성분 중 하나인 이소람네틴과 페르시카린은 염증을 억제하고 알코올을 분해해 숙취 해소에도 효능이 있다.

각종 가공식품과 환경 오염물질, 스트레스에 쉽게 노출된 현대인들에게 꼭 먹어야할 식재료를 하나 꼽으라면 미나리가 아닐까. 이런 미나리를 먹기 위해 오염물질 배출 덩어리인 자동차를 끌고 오지 않고 집 근처서 손쉽게 구할 수 있다면 자주 먹을 텐데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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