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찬 의원은 이제 민주당을 탈당할 것인가 [노원명 에세이]

노원명 기자(wmnoh@mk.co.kr) 2024. 3. 10.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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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윤영찬 의원
지난 6일밤 더불어민주당 공천경선의 하이라이트는 전북 군산에서 ‘친명’ 김의겸 의원이 ‘비명’ 신영대 의원에 패한 것이었다. 그에 못지않게 내 눈길을 끈 것은 성남 수정에서 ‘비명’ 윤영찬 의원이 ‘친명’ 전국구의원 이수진에게 진 것이다. 김의겸이 진 것은 약간 의외였고 윤영찬은 처음부터 질 것 같았다. 그런데도 윤영찬에 눈길이 간 것은 이런 궁금증 때문이었다. ‘윤영찬이 이번에는 탈당할까.’

윤영찬은 민주당 내 비주류 그룹이었던 ‘원칙과상식’ 4인방 중 한명이었으나 지난 1월 조응천·이원욱·김종민 의원 등이 탈당할 때 함께 하지 않았다. 나머지 3명의 탈당회견 30분 전 그는 페이스북에 “민주당을 버리기에는 그 역사가, 김대중 노무현의 흔적이 너무 귀하다. 그 흔적을 지키고 더 선명하게 닦는 것이 제 소임”이라고 썼다. 언론의 해석은 좀 달랐다. 윤영찬은 성남 중원 공천을 놓고 ‘친명’ 현근택 민주연구원 부원장과 경쟁하고 있었다. 때마침 현근택의 성희롱 발언 논란이 있었고 당 지도부가 윤리감찰을 지시했다. 이를 ‘공천 줄 테니 당에 남으라’는 신호로 윤영찬이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언론은 썼다. 그러나 서울 서대문갑 출마를 노리던 전국구 이수진 의원이 느닷없이 성남 중원으로 방향을 틀면서 윤영찬의 뒤통수를 치고 말았다. 마침내 윤영찬은 졌다.

윤영찬에게 두 달 전과 지금이 다른 것은 그때는 공천 가능성이 있었고 지금은 도로 아미타불이라는 것이다. 그때는 ‘김대중 노무현의 흔적이 너무 귀해서’ 탈당할 수 없었지만 지금 그 흔적은 그야말로 ‘흔적도 없이’ 증발하지 않았을까. 그러면 탈당해도 되는 것 아닌가. 윤 의원이 내 의견을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하겠다. ‘와이 낫? 왜 안 되겠나.’ 지금 탈당하면 지난 1월의 ‘배신’에 이어 그야말로 ‘막장’으로 내려가는 것 아니냐고? 내 대답은 이렇다. ‘아직 막장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이오?’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서울 동작을)
윤영찬과 더불어 근래 내 눈길을 사로잡는 또 한명의 정치인은 서울 동작을의 이수진 의원(성남 중원에서 윤영찬을 이긴 이수진이 아니다)이다. 그는 공천 탈락이 확정된 그 시간부터 ‘반명 투사’로 눈부신 활약을 전개해 오고 있다. 나는 그를 보며 ‘군자표변(君子豹變)’을 생각한다. 요사이는 ‘표변’이라면 느닷없는 변신이라는 부정적 뉘앙스로 주로 쓰이지만 원래 군자표변은 좋은 의미이다. 가을이 되어 표범이 가죽색을 바꾸듯 군자가 자신의 과오를 신속히 교정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나는 이수진 의원을 군자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그녀의 표변은 세상 어느 군자도 따를 수 없을 만큼 신속하다. 그가 이재명 대표를 향해 따발총처럼 쏟아내는 공격을 보노라면 ‘아니 저런 생각을 갖고 그동안 어떻게 참고 지냈누’하는 경외심이 인다. 군자보구 십년불만(君子報仇 十年不晩·군자는 복수를 위해 10년을 기다린다)이라더니 오랜 기다림 끝에 휘두르는 복수의 칼날이란 말인가.

윤영찬 의원은 큰 신문사 기자 출신이다. 나는 짧게 그와 한 출입처에 나간 적이 있는데 그는 평판이 좋은 기자였다. 후배들에게 싹싹하던 기억이 있다. 이수진은 법관 시절 그의 실력과 태도에 대한 이런저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윤 의원이나 이 의원이나 문과형 엘리트의 일반적인 범주에 속한다 할 것이다. 그들은 학창 시절 모범생이었을 것이고, 직장에서도 잘 나갔고(거듭 말하지만 이의원의 법관생활에 대해서는 이론이 존재한다), 크게 나쁜 짓을 할 사람 같아 보이지도 않는다. 다만 그들에게 결여된 것은 인격의 일관성 혹은 자존심이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몰라보게 달라졌다면 그에 어울리는 명분이나 계기가 있어야 한다. 군자표변은 좋은 것 아니냐고? 그것은 허물을 바로잡을 때 얘기다. 누가 봐도 뻔히 잇속과 결부된 표변은 군자표변이 아니라 소인의 표변이다. 윤 의원은 지난 1월의 당 잔류 때, 이 의원은 공천탈락후 표변하였는데 이것을 군자표변이라 하면 민망하다. 소인은 이해에 따라 표변하고 그 표변은 거듭되는 경향이 있다. 두 의원의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다.

한국의 문과 엘리트는 출세의 정점을 국회에서 찍는다. 그런데 국회에선 윤·이 같은 인물이 차고 넘친다. ‘윤영찬과 이수진이 22대 국회의원 평균에 미달하는가’라고 물었을 때 ‘확실히 그렇다’고 답할 근거가 별로 없다. 그들보다 나은 처신을 할 인격체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한국 문과 엘리트의 수준을 말해주는 것이라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국의 최상위 이과 엘리트는 근래 모두 의대로만 몰린다. 내가 전공의 파업에서 주목하는 것은 파업 그 자체가 아니라 거의 모든 전공의가 일사불란하게 파업하고 파업 수주가 넘도록 거의 이탈자가 없다는 것이다. 직업에 대한 자존심과 양심이 작동하는 집단이라면 저런 일사불란함이 있을 수 없다. 그것은 우리 교육이 최상위 엘리트들에게조차 자존심과 양심을 가르치지 못하고 있다는 기막힌 현실의 방증이다.

윤영찬·이수진을 보며 문과 엘리트를 생각하고 전공의 파업을 보며 이과 엘리트를 생각하는 일요일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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