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이 ‘빨리빨리’ 원해” 디지털교과서 급히 도입한다고요? [뉴스 물음표]

김원진 기자 2024. 3. 1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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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오전 서울 강남구 영희초등학교 앞에서 서울시, 강남구청, 경찰 등 관계자들이 교통지도를 하고 있다.

“우리 국민들이 기다려주지 않고 참지 못하셨을 겁니다.”

지난달 28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입법조사처에서 열린 ‘디지털 시대 교육기회 균등’ 토론회. 전문가들이 “안전 장치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 도입을 서두르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하자 교육부 관계자가 한 말이다. AI 기술 발전 속도는 빠른데 학교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 학부모들의 불만이 나올 수 있다는 취지가 담겼다.

교육부 측은 경쟁을 이야기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늘 저희도 원하는 건 핀란드처럼 (숙의해서) 하는 것”이라면서도 “저희는 인구가 작은 도시국가가 아닌 데다 논의가 길어지면 (다른 나라와) 격차가 벌어지게 된다. 우리가 표준을 만든 뒤 거듭 수정하면서 발전해나갈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 [교육 돌아보기] 국회의장, 교육부 장관에게 쌈짓돈 챙겨주다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312272224015#c2b

교육부는 2025학년도 1학기부터 초등학교 3·4학년, 중학교 1학년·고등학교 1학년 수학·영어 등 과목에 AI 디지털교과서를 도입한다. 지난해 국회는 AI 디지털교과서 추진 명목으로 5333억원 규모의 특별교부금을 교육부에 배정했다. 특별교부금은 국회 견제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예산으로 ‘쌈짓돈’이라 불린다.

AI 디지털교과서는 학생 개인의 능력과 수준에 맞는 학습이 가능하도록 AI 등의 기술을 이용해 다양한 학습자료와 지원 기능을 탑재한 교과서를 뜻한다. 이를테면 학생별로 결과를 분석해 속도가 느린 학생에겐 보충학습을, 빠른 학생에겐 심화학습을 맞춤제공할 수 있게 되는 식이다.

지난달 28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입법조사처에서 열린 ‘디지털 시대 교육기회 균등’ 토론회. | 국회입법조사처 제공

우리 아이 ‘데이터’는 안전한가

‘맞춤형 지원’을 내세운 만큼 AI 디지털교과서를 둘러싼 가장 큰 우려는 ‘데이터’ 수집에 대한 문제다. 정현선 경인교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어떤 데이터를 어떻게 수집하고, 기록에 남겨 어느 범위까지 부모에 알릴 것인지 등 중요한 쟁점이 상당히 생략된 채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우선 AI 디지털교과서를 통해 아이들의 민감정보가 수집될 수 있다. 지난달 5일 또 다른 국회 토론회에서 교육부 고위 관계자는 “AI 디지털교과서를 통해 아이들의 습관, 태도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같은 발언은 아이의 움직임이나 시선을 AI 디지털교과서가 추적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어떤 국가나 기업도 가치편향적 데이터 해석을 일부러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지만, 문제는 기술은 ‘나도 모르게’ 가치편향을 반영할 수 있다는 것”
- 정현선 경인교대 국어교육과 교수

정 교수는 “아이들의 생활문 같은 민감한 개인정보도 디지털교과서에 담길 수 있는데 이같은 데이터를 어떻게 다룰지 걱정된다”고 했다. 그는 또 “민간 디지털교과서 발행사들이 학생들의 데이터를 자체 서비스 개발에 사용하지 않도록 권고했으나, 구체적인 관리·감독 가이드라인이 안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나 기업이 의도하지 않더라도 AI가 학생들의 데이터를 분석한 뒤 편향된 시각이 담긴 학습법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AI의 알고리즘 설계 또한 개발자(혹은 정부)의 관점이 ‘무의식적으로’ 반영되기 때문이다. 이어 AI 디지털교과서 제작사가 설계하는 알고리즘을 공개하고, 각사 교과서의 강점과 약점을 밝혀 교사·학생·학부모가 이름 참고하게 해야한다는 의견으로 이어졌다.

교사용 학습 분석 프로그램 예시. | 국회입법조사처

교육부는 올해 1월23일 낸 설명자료에서 “트레이닝용 데이터는 AI 디지털교과서 서비스 고도화를 위해 개발사에 제공된다” “정보 주체가 동의한 범위 내에선 학습데이터 활용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여한 연구자들은 “AI 디지털교과서 사용을 위해 학부모나 교사가 개인정보 제공에 동의하지 않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AI는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을까

교육부가 구상하는 AI 디지털교과서는 학생의 학습 결과물을 분석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학생이 푼 수학 문제에서 틀린 유형을 분석해 도움을 주거나, 분석내용을 바탕으로 생활기록부 내용을 작성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재 수준에서 나온 결과물을 보면 분석 내용이 추상적 수준에 그친다는 평가가 나온다.

주정흔 서울시교육청 교육정책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이 공개한 기존 AI 생활기록부 분석 내용을 보면 “풀지 않은 문제’도 원인을 파악해 올바른 풀이 습관을 기를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매일매일 교육 프로그램에 접속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꾸준히 학습하는 습관을 기를 수 있어요” 등의 표현이 제시됐다.

기존 AI 기반 학습 분석 프로그램이 내놓는 학습 가이드라인. | 국회입법조사처 제공

주 연구위원은 “데이터 기반의 기존 교육 프로그램들이 내놓은 분석결과는 극소수를 제외하면 교사들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며 “과연 추상적인 피드백을 보고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을 해봐야 한다”고 했다.

주 연구위원은 AI 디지털교과서를 두고 교사와 교과서 제작사의 역할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주 연구위원은 “디지털교과서는 기존 교과서와 달리 수업의 다양성, 역동성을 모르고 만들면 안 되는 형태인데 이해가 많이 부족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학습과정 통제권이 교사나 학생이 아니라 개발자에게 주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때 교사는 일종의 큐레이터가 될 수 있고, 진도에 맞춰 학습기기에 데이터를 넣어주는 새로운 노동에도 동원된다”
- 주정흔 서울시교육청 교육정책연구소 선임연구위원

AI 디지털교과서가 어떻게 제작되느냐에 따라 교사의 수업 주도권이 축소될 가능성도 있다. 주 연구위원은 “학습과정 통제권이 교사나 학생이 아니라 개발자에게 주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교사는 일종의 큐레이터가 될 수 있고, 진도에 맞춰 학습기기에 데이터를 넣어주는 새로운 노동에도 동원된다”고 했다.

AI 디지털교과서를 원치 않을 때 다른 방법으로 학습할 권리가 주어질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종이 교과서를 원하는 학생과 학부모에게는 선택권을 줄지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아직 논의 중인 사안”이라고 답했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달 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서 늘봄학교 전국 확산을 위한 교육청과의 협력 방안을 논의를 위해 마련된 시도교육감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디지털기기 활용, 학습격차 우려도

교육부가 AI 디지털교과서를 추진하는 가장 큰 명분은 개별화·맞춤형 교육이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2021년 공저자로 참여한 <AI 교육혁명>에서 일관되게 강조한 대목도 개별화·맞춤형 교육이다.

이날 발제자·토론자들은 사회경제적 배경에 따라 디지털 도구의 활용이 학업성취도에 미치는 영향이 다르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가정 배경이 좋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높게 나온 선행 연구들이 있다”며 “부모의 조력 등을 통해 자기주도 학습이 가능한 학생들이 디지털 도구의 효과도 보게 되는데, 이를 두고 과연 맞춤형 교육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교육부 관계자도 “맞는 말씀이고 학습 주도성에 따라 (디지털교과서) 학습효과의 격차도 있을 것”이라며 “학생 주도성, 교사 주도성을 살릴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교육부는 지난 8일 내년에 도입할 AI 디지털교과서로 학생들의 생체 추적 등을 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교육부 관계자는 기자와 통화에서 “개인정보보호법이 있기 때문에 학생들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등의 장치를 도입할 계획은 전혀 없다”며 “AI 디지털교과서의 최종 검정 시점인 11월까지 우려점에 대해 기술 검정을 철저하게 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내년에 공교육 전반에 개혁을 하기 때문에 이에 맞춰 AI 디지털교과서 도입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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