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로 풀어낸 자본주의의 역사…신간 '세상을 묻는 너에게'

이세원 2024. 3. 1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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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 다수의 삶은 자본주의와 정치 질서에 의해 규정되지만 이에 관한 학교 교육은 때로는 현실과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사회복지, 노동정치, 시민운동 등을 연구해온 유범상 방송통신대 교수는 신간 '세상을 묻는 너에게'(마북)에서 자본주의의 역사를 시민의 시각으로 재구성한다.

자본주의의 역사를 우화라는 특이한 방식으로 굳이 다시 쓴 의도는 책에 덧붙인 저자의 해설에서 명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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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 이미지 [마북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현대인 다수의 삶은 자본주의와 정치 질서에 의해 규정되지만 이에 관한 학교 교육은 때로는 현실과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시민들이 권리를 얻기 위해 어떻게 행동했고 사회 질서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우화로 알기 쉽게 보여주면 어떨까. 사회복지, 노동정치, 시민운동 등을 연구해온 유범상 방송통신대 교수는 신간 '세상을 묻는 너에게'(마북)에서 자본주의의 역사를 시민의 시각으로 재구성한다.

책은 쥐, 고양이, 여우, 호랑이, 양, 소, 돼지 등 다양한 동물을 등장시키고 두더지 '로즈'와 그의 아버지를 화자로 삼아 딱딱한 역사를 흥미로운 이야기로 각색해서 들려준다.

인클로저 운동에서부터 프랑스 대혁명, 러다이트운동(기계파괴운동), 제3의 길, 신자유주의 등 자본주의 역사의 주요 흐름은 물론 코로나19가 유행한 2020년대의 상황까지 여러 주제를 다룬다.

책은 자본주의 질서가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비판적 사고의 실마리를 제기한다.

예를 들어 '베드타운'이라는 마을에 사는 소들의 이야기는 대량 생산과 효율을 추구하는 가운데 노동자가 상품과 자본에 지배당하고 고통을 겪는 상황을 투영했다.

소들은 침대에서 자면 벌레를 피할 수 있다는 얘기에 혹해 호랑이에게 사들인 침대를 사용하면서 처음에는 편안한 수면을 누렸다. 하지만 이내 침대를 둘러싼 호기심과 욕망이 커진다. 더 좋은 침대를 사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하지만 나중에는 규격화된 침대에 몸을 맞춰야 하고 발이 삐져나오면 잘라야 하는 두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영화 모던 타임스의 찰리 채플린 [ⓒ Roy Export S.A.S.]

컨베이어벨트의 속도에 맞춰 일을 하다 정신이 이상해지는 공장 노동자의 모습을 담은 찰리 채플린 주연 영화 '모던 타임스'를 떠올리게 한다.

책은 '마우스랜드'라는 쥐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서 고양이가 통치자로 선출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통해 시민의 권리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제공한다.

쥐들은 자신들보다 똑똑하고 힘도 센 고양이가 통치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대표로 뽑지만, 고양이는 쥐들에게 불리한 법을 추진한다.

'시속 10km 이상 달리는 쥐는 징역 6개월에 처한다', '쥐구멍을 직경 30㎝ 이하로 파면 징역 1년에 처한다'는 법안이 대표적이다.

이들 법안은 고양이가 쥐를 잘 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고안된 것들이었다.

쥐들의 삶은 팍팍했다. 주기적으로 열리는 선거에는 새로운 후보가 나왔다. 누런 고양이, 얼룩 고양이,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 털 색깔은 달랐지만, 고양이라는 점은 마찬가지였고 쥐들은 선거가 끝나면 배신감을 느꼈다.

어느 날 머리에 띠를 두른 쥐 부부가 "왜 우리는 쥐를 대표로 뽑지 않느냐"고 문제를 제기하고 쥐 사회는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세상을 묻는 너에게'의 삽화 [마북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변화의 조짐을 감지한 고양이 정부는 비밀 창고에 감춰둔 식량을 풀어 여론을 다독이고 이내 '역시 고양이 정부는 다르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고양이들은 순종하지 않는 쥐들을 제압하기 위해 위협을 가하기도 하며 진정한 주인이 되고자 하는 쥐들의 바람은 결국 실현되지 못한다.

자본주의의 역사를 우화라는 특이한 방식으로 굳이 다시 쓴 의도는 책에 덧붙인 저자의 해설에서 명확해진다.

"이 책은 역사를 의미의 덩어리로, 정치적 산물로, 비판적 독해로 이해하려고 한다. (중략)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누구나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향한 인정투쟁이 역사의 의미를 만드는 것이다."

유기훈 그림. 272쪽.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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