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에 ‘이 소스’ 샀다면 찐부자?…전설의 머스터드 활용법 [퇴근 후 부엌-당근라페]

2024. 3. 9.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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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 라페 샌드위치. 신주희 기자

퇴근 후 부엌


술에 절어 해장국을 시켜만 먹다가 어느 날 집에서 소고기뭇국을 직접 끓여봤습니다. 그 맛에 반해 요리에 눈을 떴습니다. 산더미 같은 설거지가 기다리고 있지만 나를 위해 한 끼 제대로 차려먹으면 마음이 충만해집니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한 끼에 만원이 훌쩍 넘는 식대에 이왕이면 집밥을 해먹어야겠다 결심이 섰습니다. 퇴근 후 ‘집밥러’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풀었습니다.


요리와 재료에 담긴 인문학 이야기도 한술 떠 드립니다.

[헤럴드경제=신주희 기자] 우연히 미국의 민간경제연구기관 전미경제조사회(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에서 발표한 흥미로운 연구를 읽었습니다. 약 30년 전인 1992년 ‘이 상품’을 샀다면 고소득자가 될 가능성이 약 61%에 달한다고 하더군요. 바로 ‘그레이 푸폰 머스터드’입니다. 오늘날에는 아이패드와 아이폰이 머스터드를 대신해 부의 척도를 가르는 소비재가 됐다고 합니다. 2018년에 발표된 다소 올드한 논문 내용이었지만, 머스터드가 도대체 어떤 소비재였기에 부의 상징이 될 수 있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또 머스터드의 상큼한 맛을 살린 간단한 요리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재료 썰]
그레이 푸폰 머스터드 ‘Pardon’(1981) [유튜브]

한 대의 롤스로이스가 한적한 시골길을 달립니다. 뒷자석에는 한 남자가 앉아있습니다. 그의 앞에는 잘 구워진 스테이크가 놓인 은쟁반이 있습니다. 기사가 조수석 상자를 열자 그 안에는 ‘그레이 푸폰 병’이 들어있습니다. 기사는 그 병을 뒷자석으로 건넵니다. 이때 다른 롤스로이스가 옆에 섭니다. 옆 차에 탄 남자는 차창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는 “실례합니다, 혹시 그레이 푸폰 있으세요”라고 묻습니다.


‘로스로이스의 후광 효과’를 노린 이 그레이 푸폰 머스터드 광고는 미국에서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1981년 광고가 나가자마자 제품 판매량은 40~50% 급증하며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합니다. 1980년대 미국에서 소위 잘 산다는 집은 ‘머스터드’를 사먹게 된 것이죠.

포도밭에 겨자꽃이 만발한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사실 머스터드의 브랜드와 역사를 따지면 프랑스를 따라잡을 나라가 없습니다. 겨자씨와 와인을 만들 때 쓰는 포도는 떼어 놓을 수 없는 식재료였기 때문입니다. 머스터드는 으깬 겨자씨에 식초를 더해 만듭니다. 이때의 식초는 알코올, 즉 와인을 산화시켜 만들어집니다. 머스터드(mustard)라는 영어 단어는 ‘불타는 듯한 포도즙’을 의미하는 라틴어 ‘머스텀 알덴트(mustum ardens)’에서 기원했죠. 사실 머스터드의 씨앗 자체에는 매운 맛이나 향기가 없지만, 물을 섞으면 효소의 영향으로 분해 작용이 일어나 매운맛과 향이 납니다. 하지만 물을 넣은 머스터드는 시간이 지나면 향과 매운맛을 금세 잃어버리죠. 이에 사람들은 향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 효소 분해 작용을 억제하는 식초나 포도즙을 넣었다고 합니다.


또 프랑스는 드넓은 포도밭에서 겨자를 함께 키웠습니다. 프랑스 와인의 주생산지인 부르고뉴 지방에서 포도나무와 궁합이 좋아 겨자씨를 심은 게 시작이었습니다. 겨자는 생물훈증제(biofumigant)를 내뿜어 땅속 선충을 죽이기도 하고 땅의 양분과 질소를 골고루 섞어준다고 합니다. 부르고뉴 지역의 디종(Dijon)이 머스터드 특산지로 손꼽히는 이유입니다.


머스터드로 가장 유명한 브랜드는 ‘마이유(maille)’입니다. 1747년 탄생한 브랜드로 거의 3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식품기업입니다. 프랑스의 역대 왕들과 러시아의 여황제까지 즐겼다는 이 마이유는 생뚱맞게도 프랑스 마르세유 지방을 휩쓸었던 흑사병 치료제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프랑스 화가 미셀 세르가 그린 1720년 투레트(마르세유)의 대역병(Scène de la peste de 1720 à la Tourette)

마이유의 창업자 앙투완 클로드 마이유(Antoine Claude Maille)는 파리에서 식초를 만들던 사람이었습니다. 1720년 프랑스 남부에서는 ‘마르세유 대역병’이라고 불릴 만큼 지독했던 페스트가 창궐했습니다. 그는 흑사병 치료제로 ‘4명의 도둑 식초’를 개발했습니다. 당시 식초는 흑사병을 막아주는 민간 예방법으로 알려졌습니다. 4인조 도둑들이 페스트가 창궐하던 집을 털고도 멀쩡했던 이유가 식초였기 때문입니다.


1628년 툴루즈 국회 고문서에 따르면 4명의 도둑이 페스트 시기에 병에 걸린 사람들의 집에 들어가 침대에서 병으로 죽어가고 있던 사람들을 목 졸라 죽인 뒤 그들의 집을 털어 도둑질 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이 때문에 도둑들은 화형 선고를 받았는데 그 형을 면하는 조건으로 페스트에 감염되지 않는 비법을 털어 놓게 했던 것입니다.


창업자 마이유는 마르세유 주민들을 위해 식초 소독법을 직접 개발했습니다. 물 한 잔에 식초 한 티스푼을 삼키고 관자놀이와 손바닥에 문지르는 게(?) 비법이었죠. 그렇게 ‘식초 제조 명인’으로 등극한 그는 1747년 파리 생 안드레 데 자르(Saint-Andre des Arts)거리에 첫 부티크를 열고 겨자에 식초를 섞은 머스터드(Moutard)와 여러 식초 제품을 판매했습니다.

마담 퐁파두르. [마이유 홈페이지 캡처]

마침 부티크 근처에는 루이 15세의 총애를 받던 정부 마담 퐁파두르 부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퐁파두르 부인은 마이유의 식초와 머스터드의 단골이 됐습니다. 그렇게 마이유 머스터드는 궁정 공식 납품까지 시작하게 됩니다.

1800년대 마이유 머스터드 병. [마이유 홈페이지 캡처]

프랑스 왕정에서 명성을 쌓던 마이유는 이제 영국과 유럽, 러시아까지 진출합니다. 1830년에는 영국 왕실까지 머스터드와 식초를 공급했습니다. 1771년에는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 황후에게도 식초 제조 허가를 받으면서 명실상부한 ‘유럽 왕실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생각보다 머스터드의 스토리가 길었습니다. 홀그레인 머스터드를 이용한 간단한 프랑스 요리를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프랑스식 샐러드 당근 라페(Carottes râpées)입니다. 라페는 프랑스어로 ‘갈다(rapper)’라는 뜻입니다.

당근의 달콤함과 톡톡 씹히는 겨자, 상큼한 레몬즙이 조화를 이루는 음식이죠. 특히 느끼하고 무거운 음식이랑 궁합이 맞습니다. 또 다이어트 식단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개그맨 신봉선 씨가 3주간 당근라페만 먹고 11㎏를 빼 화제가 된 레시피이기도 하죠. 제가 프랑스로 교환학생을 간 시절 까르푸 샐러드 코너에서 당근라페를 팔았는데 저렴한 가격에 한 끼를 때울 수 있어 자주 사먹곤 했습니다.

신주희 기자.

재료 홀그레인 머스터드 1티스푼, 당근 3분의 2조각, 소금 1티스푼, 레몬즙 또는 식초(꿀 또는 알룰로스), 올리브오일

1. 깨끗이 씻은 당근을 채칼로 썹니다.

2. 채 썬 당근을 소금에 10분간 절여둡니다.

3. 절여둔 당근에 물을 빼고 준비한 재료들을 섞습니다.

4. 하루 정도 숙성시키면 더 맛있는 당근 라페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당근 라페는 보통 전채 요리, 샐러드로 먹지만 샌드위치랑 같이 즐기면 든든한 한끼가 될 수 있습니다. 불을 이용하지 않는 요리라 정말 간편합니다.

신주희 기자.

당근을 썰 때 채칼만 주의하면 됩니다. 포크를 당근 뒤꽁무니에 꽂아 채칼로 썰면 보다 손쉽고 안전하게 요리할 수 있습니다.

샌드위치 레시피는 더 간단합니다. 식빵에 마요네즈를 바르고 상추, 스크램블드 에그, 당근 라페를 올려주면 끝입니다. 샌드위치를 만들 때는 재료에 수분이 많으면 빵이 쉽게 찢어지기 때문에 상추를 깔아주었습니다.

〈참고 문헌〉

1. 당신이 무언가에 끌리는 이유(말콤 글래드웰)

2. COMING APART? CULTURAL DISTANCES IN THE UNITED STATES OVER TIME (NBER, 2018)

3. 처음 읽는 맛의 세계사 (미야자키 마사카츠)

joo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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