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훈, ‘농심배 기적’은 영광과 함께 숙제도 남겼다[기고]

기자 2024. 3. 9.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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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훈 한국기원 운영이사



최근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대회에서 신진서 9단이 우승했다. 14억 명의 대표기사 5명을 5000만 명의 대표기사 1명이 홀로 분투하며 단 한 번의 패배도 없이 모두 물리친 것이다. 2005년의 이창호 9단은 5연승을 해 내며 우승했지만, 신진서 9단은 1승을 더한 6연승까지 해 내며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우승으로 한국에는 더 없는 영광을, ‘적국’에는 그만큼 뼈아픈 결과를 안겼다. 소수의 자국 병력과 뛰어난 명장 한 명이 탁월한 지략으로 적국의 대병력을 물리친 살수대첩이나 명량대첩과 가히 비교할 만하다.

신진서 9단의 우승을 놓고 다소 상투적이지만,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모두 부대변인의 논평으로 치하했다. 언론들 역시 비중 있게 우승 기사를 다뤘다. 하지만 700만 바둑인의 한 사람이자, 400여 프로기사를 대표하는 한국기원 운영이사인 필자로서는 후배기사 신진서 9단의 개선을 지켜보면서 우려되는 바가 두 가지 있다.

먼저 신진서 9단의 뒤를 이어갈 바둑영재가 계속 나와 한국바둑의 미래를 책임져 줄 것이냐 하는 점이다. 매해 프로 바둑기사의 선발 인원은 늘어나고 있지만, 바둑인구와 저변이 줄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한·중·일의 바둑패권을 이어갈 바둑영웅이 나올지 장담하기 어렵다.

1000만 바둑인구를 논할 때 이창호 9단이 출현했고, 700만 바둑인이 활동하는 지금은 신진서 9단이 있지만, 국가 지원예산까지 줄어든 지금의 현실에서는 미래가 걱정이다.

다음으로 이번 ‘상하이대첩’을 바라보는 국민의 관심지수다. 명량대첩을 다룬 영화 ‘명량’은 관객 수 1700만을 이뤄내며 온 국민의 관심을 이끌었다. 그런데 아무리 바둑이 스포츠 혹은 게임이라고 할지라도, 이번 신진서 9단의 업적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는 실망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패한 중국이 오히려 그 결과에 더 분개하며, 더 절치부심하고 와신상담하려는 모습이다.

이강인의 손흥민 폭행의 건이나 류현진의 국내 복귀에 연일 언론의 보도가 잇따르고, 이로 인해 댓글들이 떠들썩한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승부의 의미와 그 승리에 걸맞은 값이 매겨지지 않는 것은 가치와 가격의 왜곡처럼 불공정한 일이며, 불공정의 만연은 그 사회의 품격을 떨어뜨린다.

위 두 가지 현상의 원인과 해법은 당연히 바둑 안팎에 존재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바둑인들은 자성하고 노력하고 있노라 대변하고 싶다. 다만 바둑 외적 관심을 높이는 공공의 역할에 대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리라 본다.

그런데 갑자기 바둑이 특별히 취급돼야 할 이유가 있을까? 물론이다. 일본의 버블경제가 무너지고, 중국의 기술·경제 패권이 급상승한 흐름이 양국의 바둑 수준과 실력의 변화 추세와 일치한다. 종합적인 지략 대결의 최고봉이 바둑이고, 경제와 기술의 성장을 위해서는 철저하고 장기적인 현실 분석과 계획이라는 지략이 필요하다. 이번 농심신라면배에서 만약 중국이 극적으로 우승했다면 틀림없이 시진핑 주석이 중국 바둑계에 직접 축하 메시지를 보냈을 것이다.

바둑을 지금처럼 일개 스포츠 혹은 게임으로 치부하다가 뒤늦게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중국의 적극적 바둑정책을 조금이라도 본받아야 한다. 나아가 승부와 지략의 대가들인 바둑기사를 국가 공공 분야의 전략적 인재로 활용할 줄 아는 선도적 지혜가 발휘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최명훈(한국기원 운영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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