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텀이여, 영원하라!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김태훈 2024. 3. 9.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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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4 전투기의 별칭은 '팬텀'이다.

유명한 뮤지컬 제목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에서 알 수 있듯 팬텀은 유령이란 뜻이다.

다만 지상에서 쏘는 대공포는 팬텀도 속수무책이었다.

한국은 1969년 미국에서 팬텀 4대를 인수하며 처음 인연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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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4 전투기의 별칭은 ‘팬텀’이다. 유명한 뮤지컬 제목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에서 알 수 있듯 팬텀은 유령이란 뜻이다. 국내에선 한때 ‘도깨비 전투기’로 불렸다고 하는데 그 뜻이 유령과 일맥상통한다. 1997년 미국 보잉에 합병되며 사라진 맥도넬 더글러스가 만들었다. 1958년 첫 비행 이후 생산이 중단된 1981년까지 총 5195대가 만들어진 베스트셀러다. 1960∼1970년대 세계 최강의 전투기로 통하며 미국은 물론 영국, 독일, 일본, 이스라엘 등에서 주력 전투기로 쓰였다. 동서 냉전이 첨예하던 시절 소련(현 러시아)의 위협으로부터 서방 상공을 지켜낸 존재가 바로 팬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공군이 운용하는 F-4 팬텀 전투기 모습. 공군본부 홈페이지
팬텀이 가장 맹활약을 펼친 것은 1960∼1970년대 베트남전쟁이었다. 미군 조종사들은 팬텀을 타고 소련이 월맹에 제공한 미그(MiG) 전투기와 혈투를 벌였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미 합참의장 유력 후보로 거명됐던 데이비드 골드파인 전 공군참모총장(2016∼2020년 재임)은 대(代)를 이은 조종사 출신이다. 2019년 8월 베트남을 방문한 그는 “전쟁 당시 아버지가 팬텀을 몰고 이곳 전장에서 싸웠다”고 회상했다. 공중전에선 팬텀이 미그기를 압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지상에서 쏘는 대공포는 팬텀도 속수무책이었다. 미그기와의 교전 도중 격추된 팬텀보다 대공포에 맞아 추락한 팬텀이 훨씬 많았다고 한다.

한국은 1969년 미국에서 팬텀 4대를 인수하며 처음 인연을 맺었다. 한 해 전인 1968년 북한 특수부대가 청와대 기습을 시도한 1·21 사태가 결정적 계기였다. 북한의 도발에 대비해 한국군의 방위 역량을 강화시켜야 한다는 미국의 정책적 판단이 중대한 역할을 했다. 한국이 베트남에 전투 병력을 보내 미국의 전쟁 수행을 도운 데 따른 보은(報恩) 차원의 성격도 있었을 것이다. 1975년 월남이 패망하고 베트남 전체가 공산화하며 국내에서도 안보 위기감이 고조됐다. 불안에 사로잡힌 국민들은 앞다퉈 방위성금을 냈다. 그 돈으로 팬텀 5대를 추가 구매했다. 해당 전투기들에는 특별히 ‘방위성금 헌납기’라는 이름이 붙었다.

8일 공군수원기지에서 ‘엘리펀트 워크’ 훈련을 하는 모습. 오는 6월 퇴역하는 F-4 팬텀 전투기의 노고를 기리는 뜻에서 팬텀 8대가 대열의 선두에 서고 이어 F-15, F-16, FA-50, F-35 등 ‘후배’ 전투기들이 뒤따랐다. 공군 제공
55년간 한국 영공을 지켜 온 팬텀이 오는 6월 임무를 마치고 퇴역한다. 이를 기념해 8일 공군수원기지에선 ‘엘리펀트 워크’(Elephant Walk) 훈련이 실시됐다. 수많은 군용기들이 활주로 위에 정열해 밀집 대형으로 전진하는 모습이 코끼리 무리의 이동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대열의 선두에는 퇴역을 앞둔 팬텀 8대가 섰다. 이어 F-15, F-16, FA-50, F-35 등 ‘후배’ 전투기들이 뒤따랐다. 훈련 현장을 찾은 이영수 공군참모총장은 “55년간 대한민국을 수호해온 팬텀, 그리고 팬텀과 고락을 같이해 온 ‘팬텀맨’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고 말했다. 문득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란 말이 떠오른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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