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시작에 엿보는 어느 노인의 죽는 날…<아침 그리고 저녁> [책GPT]

심가현 2024. 3. 9.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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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GPT>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명작 · 주목할 만한 신간을 소개합니다. 치명적인 스포일러는 지양하겠지만 예민한 분은 독서 후 읽기를 권장드립니다.

◇ 프롤로그

언젠가부터 대중교통 등에서 낯선 노인들을 오래 마주할 때면 가끔 무례하게도 그들의 젊은 시절을 몰래 상상해 봅니다. 자글자글한 주름은 지우고, 표정은 더 밝고 천진하게…지금의 나이가 처음일 그들도 언젠간 갓 태어난 아기였다가, 신인류 취급을 받는 사회 초년생이었다가. 어느 순간 거울을 보고 ‘아차, 내가 이렇게 됐구나’ 했겠지요. 그러면서 곱씹습니다. 그것이 피할 수 없는 미래의 제 모습임을. 반대로도 상상합니다. 노인의 탄생과 젊음을 상상하듯, 아직은 팽팽한 얼굴에 낯선 주름기를 덧입히다 보면 생각은 제 죽음에까지 미칩니다. 때론 지겹기만 한 이 생도 언젠간 끝날 것입니다. 우리 모두 늙고, 죽을 것입니다.

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욘 포세는 2000년 대표작 <아침 그리고 저녁>을 통해 노인이건 오늘 태어난 아기건 어느 인간도 피할 수 없는 생의 두 가지 사건을 다룹니다. 하루의 시작이 아침이라면 삶의 아침은 '탄생', 저녁은 '죽음'입니다. 작품에는 이 두 가지 새삼스럽고도 중대한 생의 원형이 간결하고도 몽환적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장편 소설 치고는 길지 않은 130페이지 남짓 분량이라 '노벨 문학'의 부담감 없이도 가볍게 읽어 내려갈 수 있습니다.

수상자를 선정한 스웨덴 한림원은 그를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목소리를 부여한 작가”라고 표현했는데요. 사회적 문제보다는 개인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주로 담는 게 그의 작품 특징입니다. 1983년 첫 소설 출간 이후 삶과 죽음, 사랑과 이별, 자유, 외로움 등 분명히 존재하지만 쉽게 답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꾸준히 다뤄오고 있습니다.

◇ 우리 모두의 탄생과 죽음의 연대기

작품은 두 장의 단순한 구성으로 ① 한 아이의 탄생과 ② 한 노인의 기이한 하루를 담습니다. 이 둘은 사실 같은 인물, 평범하기 그지없는 노인 '요한네스'입니다. 저자는 그에게 일어난 심각한 사건을 담지도, 캐릭터를 구체화해 표현하지도 않았습니다. 대신 그를 장과 장 사이, 한 페이지 만에 갓난아기에서 노인으로 늙게 합니다.


첫 장에는 탄생의 순간이 담겼습니다. 요한네스의 아버지 올라이가 산파의 도움을 받아 그를 아내 마르타의 몸밖으로 내보냅니다. 장면 내내 ‘태어났다’ 네 글자에 담길 수 없는 모체의 고난, 지켜보는 아버지의 초조함과 함께 한 인간이 또다른 독립적 인간을 탄생시키는 일의 경이가 드러납니다.

어머니에게서 분리되어 추운 세상으로 나와 언제나 혼자일 그에 대해 저자는 "언제나 혼자일 것이다, 그리고 나서, 모든 것이 지나가, 그의 때가 되면, 스러져 다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왔던 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무에서 무로, 그것이 살아가는 과정이다,"라고 표현합니다. 무에서 무로,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과정. 죽음입니다.


둘째 장에서 어부 요한네스는 어느 아침 노인으로 잠에서 깨어납니다. 젊음은 이미 먼 옛날 이야기가 되었고, 아내 에르나도 먼저 세상을 떠난 집에는 그 혼자뿐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온몸이 쑤시고 뻐근하던 평소와 달리 몸도, 머릿속도 날아갈 듯 가볍다고 느낍니다. 날씨도 평소와 달리 기분 좋게 따뜻하다고 생각하며 늘 그랬듯 커피를 끓이고 빵을 먹고, 담배를 피웁니다. 문득 창고 속 물건들도 왠지 평소와 달라 보입니다. 훨씬 무게가 많이 나가는 것 같으면서 전혀 무게가 없는 것처럼도 보입니다. 노를 저어 바다로 좀 나가볼까, 서쪽 만으로 산책을 가면서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 페테르를 생각합니다.

그 순간 페테르가 눈 앞에 나타납니다. 페테르는 곧 구두장이 야코프를 보러 가야겠다고 하는가 하면, 동네 처녀 안나 페테르센이 꽃게를 사러 올 것이라며 기다립니다. 요한네스는 의아합니다. 둘은 이미 모두 죽었는데…. 독자들도 어리둥절합니다. '요한네스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아랑곳 않고 어제 통통한 꽃게를 많이 잡았다고 자랑하는 페테르. 그는 요한네스에게 이제 빨리 결정을 내리라고 말합니다.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수 없어하며 그에게 돌멩이를 던지니, 돌멩이는 페테르의 등을 통과해 물속으로 가라앉습니다. 하지만 어부였던 그가 여느 때처럼 낚시를 하려고 바닷속으로 던진 미끼는 더이상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페테르는 눈물이 고인 채 말합니다. "정말 고약한 일이야, 바다가 더이상 자네를 원하지 않는구먼,"

(※스포주의) 이쯤 되면 눈치챈 분들이 많겠지만, 요한네스는 이날 아침 침대에서 이미 숨을 거둔 상태입니다. 먼저 죽은 페테르가 가장 친한 친구의 자격으로 그를 저승으로 데리러 온 겁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마주친 걱정스러운 표정의 막내딸 싱네는 요한네스가 보이지 않는 듯 그의 몸을 관통해 그의 집으로 향합니다. 요한네스도 이내 자신이 죽었음을 깨닫습니다. 그가 죽음을 받아들이기까지의 과정은 서늘하고 허무한 동시에, 따뜻합니다. 사랑하는 아내 에르나와의 첫 만남의 순간을 오늘인 듯 생생하게 다시 경험하고, 자신을 마중 나온 그녀의 환상을 보고는 "행복의 느낌이 그의 온몸을 훑고 지나갑니다." 이승에서 빈 집에 홀로 남겨졌던 요한네스는 페테르와 함께 배를 타고 외로움도, 외로움이라는 말도 없는 세상으로 떠납니다.

"하지만 에르나, 에르나도 거기 있나? 요한네스가 묻는다
자네가 사랑하는 건 거기 다 있다네, 사랑하지 않는 건 없고 말이야, 페테르가 말한다
(중략)
어디로 가는데? 요한네스가 묻는다
아니 자네는 아직 살아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하는구먼, 페테르가 말한다
목적지가 없나? 요한네스가 말한다
없네, 우리가 가는 곳은 어떤 장소가 아니야 그래서 이름도 없지, 페테르가 말한다
위험한가? 요한네스가 묻는다
위험하지는 않아, 페테르가 말한다
위험하다는 것도 말 아닌가, 우리가 가는 곳에는 말이란게 없다네, 페테르가 말한다
아픈가? 요한네스가 묻는다
우리가 가는 곳엔 몸이란 게 없다네, 그러니 아플 것도 없지, 페테르가 말한다
하지만 영혼은, 영혼은 아프지 않단 말인가? 요한네스가 묻는다
우리가 가는 그곳에는 너도 나도 없다네, 페테르가 말한다
좋은가, 그곳은? 요한네스가 묻는다"

욘 포세는 우리로 하여금 그의 하루를 따라 북유럽 해안가 마을의 노인으로 늙고 죽으며 살아서는 모를 순간들을 미리 마주하게 합니다.
◇ 마침표도, 두려움도 없이

재밌는 건 소설을 관통하는 욘 포세 문학 특유의 음악적 기법입니다. 그는 탄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장에서 마침표를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쉼표(,)만으로 끊어질 듯 이어지는 문장들은 누군가의 한숨 같기도, 밀려오는 파도 같기도 합니다. 반복되는 리듬감에 어디가 시작이고 끝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어떤 노래를 듣고 있는 것도 같습니다. 하루의 시작인 아침에 삶의 끝을 맞는 요한네스. 뒤돌아보면 1장에 언급되는 그의 할아버지 이름 역시 요한네스입니다. 개별적 비극 같던 '요한네스의 죽음'은 이미 두 세대 전에도 일어났던 셈입니다. 이 같은 구성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대한 저자의 인식을 담고 있는 듯 합니다. 막내딸 싱네에게도, 독자들에게도 같은 일이 반복될 것입니다.

그가 죽기 전까지 보낸 생은 페테르와의 대화 혹은 스스로의 회상을 통해서만 간접적으로 전해지는 점도 특징적입니다. 이런 흐름에 몰입하다 보면 탄생과 죽음 사이의 삶은 찰나처럼 느껴집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죽음의 관점에서 지나간 삶을 돌아볼 때 남아있을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사랑하지 않는 건 없고 사랑하는 건 다 있는 곳으로의 편도행 티켓이 죽음이고, 가장 친한 친구가 마중 나와 함께 배를 타고 가는 곳이 저승이라는 이야기를 마침표 없이 따라가다 보면 죽음이 거대한 비극이라기보다는 언젠가 반드시 닥칠 일상의 일부처럼 느껴집니다. 해가 지는 방향, 서쪽 만으로 페테르와 함께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는 묻고 싶어집니다. "요한네스, 편안함에 이르렀나."

◇ 마치며

서울대 김영민 교수는 자신의 저서에서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고 외쳤습니다. 어려운 시절마다 한적한 곳에 가 문을 닫아걸고 죽음에 대해 생각할 때, 불안하던 삶이 오히려 견고해지는 경험을 했다는 겁니다. 이 작품은 '어떨 땐 어떻게 하는 것이 좋다'라고 외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보다는 <아침에 죽음이 찾아오다>, 너에게도 그럴 것이다, 그런 풍경을 넌지시 보여주며 마칩니다.

그럼에도 김 교수님의 말처럼 제안해 보고 싶습니다. 만물이 생동하는 봄의 시작 3월은 사계절의 아침이자 우리의 죽음을 생각하기 좋은 시기라고. 봄의 시작은 겨울의 끝, 그 끝은 여름의 시작입니다. 어떤 꽃이 피는 동안 다른 꽃은 지고, 새로 피어난 꽃도 이내 질 것입니다. 탄생과 죽음의 원형을 반복하는 건 생도 자연도 마찬가지입니다. 삶과의 이별을 다룬 탁월한 소설, 욘 포세의 <아침 그리고 저녁>을 읽으며 더욱 선명해지는 생의 감각과 함께 언젠가 담담히 받아들이게 될 죽음의 순간을 상상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심가현 기자 gohyun@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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