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죽음 이후에야 알게 되는 것들

2024. 3. 8.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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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겪었던 갈등과 마찰
개인보다 시대의 억압이 원인
떠난 아버지를 뒤늦게 용서해
서운함은 점차 그리움이 된다

아버지라는 존재를 통해 내 글쓰기의 연원을 더듬어가는 책을 쓰고 있다. 아버지의 사진과 남기신 글들, 성경 필사노트 등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그 무렵의 한 인간을 떠올려보려고 애쓴다. 평안도 용강에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6·25전쟁 때 혼자 월남한 아버지는 남한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평생을 주변인으로 살았다. 자식에게만은 가난과 소외를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특히 맏딸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간섭 때문에 나는 고통스러운 사춘기를 보내야 했다. 아버지는 나를 공부벌레로 만들려고 했고, 나는 공부벌레가 되지 않으려고 교과서가 아닌 문학작품을 몰래 읽으며 시를 쓰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사랑과 억압, 존재와 부재 모두가 나에게는 글쓰기의 중요한 원천이었다.

엘렌 식수는 ‘글쓰기 사다리 세 칸’에서 자신의 첫 책이 “아버지의 무덤에서 솟아났다”고 썼다. 아버지는 “저를 살게 했고, 저를 살았고, 저를 시험에 들게 했고, 저를 완전히 무너뜨렸기 때문에 제가 느낄 수 있었던 유일한 것”이자 “이상하고 기괴한 저의 보물”이었다고 그녀는 고백했다. 엘렌 식수는 “시작에는 죽은 남성(또는 여성)이 필요하다”고도 썼다. “망자들은 한쪽을 닫고 다른 쪽 길을 ‘열어주는’ 문지기”이기 때문이다. 글쓰기든 삶이든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누군가의 죽음에 기대어, 또는 그 죽음을 딛으며 나아갈 수밖에 없다.
나희덕 시인·서울과학기술대 교수
프랑스의 사회학자 디디에 에리봉이 쓴 ‘랭스로 되돌아가다’ 역시 아버지의 죽음에서 시작되는 책이다. 일찍이 고향 랭스를 떠난 에리봉은 30년 이상 가족과 연락을 끊고 지냈으며 아버지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그는 생물학적이고 법적인 연관성 외에는 다른 어떤 것에서도 아버지와 연결고리를 찾을 수 없다고 확신했다. 이렇게 아버지와 의도적으로 단절하려고 했던 그는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귀향하면서 어머니를 다시 만난다.

그에게 랭스로 돌아간다는 것은 애써 눌러두었던 질문들과 대면해야 하는 시간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 정신적 귀향을 통해 에리봉은 부모와의 화해를 넘어 자기 자신을 재발명한다. 그토록 증오했던 아버지의 모든 것이 사회세계의 폭력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 아버지의 삶과 인격이 개인의 성정이 아니라 그것을 만들어낸 역사의 무게와 계급적 한계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이러한 생각에 이르면서 그는 비로소 아버지를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었다.

에리봉의 아버지는 의무교육도 채 마치지 못한 어린 노동자였다. 열네 살부터 쉰여섯 살이 될 때까지 공장에서 일했던 아버지는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야간 강의를 들으며 산업디자이너를 꿈꾸었지만, 결국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꿈을 포기하고 두 개의 공장에 다녀야 했다. 에리봉은 이 책에서 자신의 계급성을 더듬어 올라가면서 아버지의 삶을 통해 한 시대를 읽어냈다. 그러면서 아버지라는 한 개인이 아니라 그 안에 축적된 “압도적인 역사의 무게”를 헤아리게 된 것이다.

내가 아버지와 화해하게 된 것 역시 전쟁과 분단의 역사 속에서 한 인간이 겪어내야 했던 고통과 무기력을 이해할 수 있게 되면서였다. 그리고 스물다섯 살에 첫아이를 낳고 부모의 입장이 되고 보니, 늙고 쇠약해져가는 아버지를 원망하는 일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버지에 대한 깊은 연민이 여러 편의 시를 쓰게 하기도 했다. 디디에 에리봉보다는 아버지와의 화해가 빨랐던 셈이다.

얼마 전 아버지의 기일이 지났다. 돌아가신 지 벌써 칠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가족들과 둘러앉아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나누었다. 서운함은 점차 그리움으로 바뀌었고, 이제 애증을 내려놓고 아버지를 한 인간으로서 좀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듯하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책이 부디 아버지의 사라짐에 대한 일종의 응답이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는 일이 되기를 바란다.

나희덕 시인·서울과학기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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