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화된 성차별 없다'는 윤 정부, 여성 차별 가속화하고 있다"

이명선 기자 2024. 3. 8.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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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3.8 세계여성의날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

"용균이 사고가 있기 전에 전자PCB(인쇄회로기판) 검사를 하는 여성 노동자로 8년을 일했다. 일할 때도 느꼈지만, 여성은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오늘 3.8 여성의 날 노동자대회가 동력이 돼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 의지를 알렸으면 좋겠다."

8일 여성의 날 전국 노동자대회에서 만난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29개국의 직장 내 여성차별 수준을 평가하는 '유리천장 지수'에서 한국이 12년째 꼴찌라는 뉴스를 보고 "깜 놀랐다. 여성 스스로가 권리 쟁취를 위해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닌가 하는 자각이 들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이사장은 "여성들이 직접 여성해방에 나섰으면 좋겠다. 유리천장을 깨고 사회 고위층에 올라가는 여성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60대 어머니와 함께 노동자대회에 참한 30대 전 모 씨(서울 중랑구, 프리랜서)는 "대학생활이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차별을 경험했다"며 "여성이 여성 자체로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그래야 안전사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 씨는 또 "5년간 유학생활을 한 프랑스 사회와 비교해 한국 사회 전반에는 '여성 혐오'가 깔려 있다"며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세계 최초로 '임신중지(낙태)' 자유가 헌법에 명시된 뒤 에펠탑 앞에서 축제를 벌인 프랑스 시민들을 보며 한국의 여성의 날도 모두가 함께하는 축제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3.8 세계여성의날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가 이날 서울 종로 마로니에 공원 앞에서 진행됐다. 노동자들은 보라색 반다라와 수건을 흔들며 "여성이 멈추면 세상이 멈춘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세계여성의 날인 8일 오후 민주노총 세계여성의날 정신 계승 전국노동자대회 참가자들이 서울 종로에서 대학로 방면으로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계여성의 날인 3월 8일 오후 민주노총 세계여성의날 정신 계승 전국노동자대회 참가자들이 서울 종로에서 대학로 방면으로 거리 행진을 마친 뒤 마무리 집회에 앞서 손수건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구조화된 성차별 없다' 윤석열 정부, 여성 차별 가속화하고 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대회사를 통해 "윤석열 정권은 '구조화된 성차별은 없다'며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고 한다. 인사청문회 도중 뛰쳐나간 장관 후보는 오늘까지도 새롭게 임명되지 않고 있다"며 "이는 심각한 직무유기이며, 여성 차별을 가속화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어 "한국은 12년째 유리천장이 가장 낮은 나라로 조사되었다. 여성들의 사회진출 기회가 가장 어렵다는 의미이다. 기업의 임원 비율, 국회의원 비중 모두 OECD 평균의 절반 수준"이라며 "그런데도 구조화된 차별이 없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이런 결과의 원인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 위원장은 "여성에 대한 차별을 확대하는 윤석열 정권과 모든 걸림돌에 맞서 함께 투쟁하자"며 "가정에서, 일터에서, 사회에서 곳곳에서 화석처럼 뿌리내린 성차별의 고리를 끊어내는 투쟁은 여성들만의 몫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과제다. 성차별은 비정규직차별, 인종차별, 장애인차별을 용인하고 정당화하는 수단이 된다. 이것은 또다른 차별을 인정하고 합리화하여 불평등이 만연한 불행한 사회를 만들어왔고, 더욱 심화될 위기"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모두가 함께하는 투쟁으로 성차별을 넘어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차별없는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힘차게 투쟁하자"고 덧붙였다.

▲ 3.8 세계여성의날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에 참가자들이 행진 도중 세운상가 앞에서 3.8 여성의 날을 기념하며 38초간 '다잉 퍼포먼스(눕기)'를 펼쳤다.ⓒ연합뉴스

이날 노동자대회에서는 4.10 총선을 한 달 앞둔 만큼 여성 노동자들의 총선 요구안이 제시됐다.

건설산업연맹 여성노동자들은 "건설현장에는 21만 명이 넘는 여성건설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으며 "매년 증가하고 있"지만, 화장실이 있어도 사용하기 힘든 열악한 노동환경과 남성이 85%가 넘는 건설현장에서 겪는 "일상적인 성희롱/성폭력"에 대한 예방교육을 요구했다.

공무원노조 여성노동자들은 "국가직 여성 공무원은 소위 여성의 영역이라 여겨지는 교육(73%), 일반직39.1%에 거의 대부분 쏠려 있고, 남성의 영역이라 여겨지는 국방, 경찰(14.5%), 소방(10.3%), 검사(33.6%), 별정직36.3%, 정무직은 11.5%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임금과 승진에서 차별을 겪고 있다며 '성별근로공시제'의 내실 있는 운영을 강조했다.

금속노조 여성노동자들은 유해한 노동환경에 따른 '태아 산재' 및 남성 노동자들에 비해 30%밖에 되지 않는 산재 신청 통계를 언급하며 "△산업안전보건 영역의 성별영향평가 실시하라, △임신기 노동자에 대한 보호조치 강화하라, △유·사산, 자녀손상의 업무 연관성을 기업주가 증명하라"고 외쳤다.

사무금융노조 여성노동자들은 허울뿐인 육아휴직과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을 지적하며 "제도 개선은 물론, 12세 미만 아동양육자에 대한 노동시간 단축 제도가 조속히 시행되기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전교조 여성노동자들은 "성인지적 노동환경 개선, 성별임금격차 해소, 안전과 재생산에 미치는 노동환경의 성별 영향 점검, 12세 미만 아동 양육자에 대한 노동시간 단축 우선적용 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강력한 근거가 필요하다"며 "성평등단협체결 법제화를 요구"했다.

한편, 이날 노동자대회에서는 성평등모범 조합원상 및 조직원상 시상식이 진행됐다. 이 가운데 금속노조 대구지부 무티아라 차흐얀다(Mutiara Cahyanda) 씨와 디아나 알리파흐 엘리(Diana Alifah Ely) 씨는 새부산식품 입사 후 당한 성추행 및 취저임금 위반을 용기 내 폭로하고 사장의 사과와 재발방지약속의 노사합의서를 작성하는 승리를 쟁취해 성평등모범 조합원상을 수상했다.

그 외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LG화학사내하청지회 황금예 씨,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김지연 씨가 성평등모범 조합원상을, 전국민주여성노동조합 서울메트로지부,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서비스연맹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노동안전보건위원회, 건설산업연맹 전국건설노동조합 타워크레인분과위원회, 보건의료노조 서울시정신보건지부가 성평등모범 조직상을 각각 받았다.

▲3.8 세계여성의날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 참가자가 성별임금 격차 해소가 적힌 피켓을 든 모습. ⓒ연합뉴스

"여성 노동자의 이름으로 우리의 노동을 중단한다"

"오늘 우리는 엄마도, 딸도, 며느리도, 아줌마도, 아가씨도 아닌 여성 노동자의 이름으로 우리의 노동을 중단한다"며 "윤석열 정부의 여성 삭제와 노동개악에 맞서, 이름만 다를 뿐 모두 여성을 짓밟은 채 이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를 떠받치고 있는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그리고 그들과 손잡은 정치세력에 맞서, 이 세상을 생산하고 재생산해 온 여성 노동자의 이름으로 3.8 국제여성의날, 우리의 노동을 중단한다."

이날 노동자대회에 앞서 보신각에서는 금속노조 KEC지회와 공공운수노조 건강보험 고객센터지부가 단체행동권(쟁의권)에 따른 '하루 파업'에 나섰다. 고속도로 톨게이트 노동자, 대학 청소노동자, 요양보호사, 가사노동자 등도 연차나 휴가, 조퇴 등을 통해 파업에 동참했다.

이날 파업에 동참한 노동자 단체는 총 41개로,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여성 파업이 조직됐다. 지난해 11월 결성된 '2024 3.8여성파업조직위원회'는 "여성파업을 통해 여성 노동자들의 낮은 사회적 지위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여성노동과 파업의 사회적 가치를 드러내고자" 꾸려졌다.

여성파업조직위는 "'여성의 노동'은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어디에도 없는 것처럼 여겨진다"며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그늘 속에서 무시도 차별도 감수해야 하는 줄 알았다. 삶 전체를 희생해 아이를 양육하는 '엄마', 혹은 폭력과 학대도 견디는 순종적인 '아내'가, 사회가 우리에게 부여한 '여성성'이었기에 그랬다"고 밝혔다.

여성파업조직위는 한국 여성 노동자의 불완전 노동 현실을 하나하나 나열했다. 이에 따르면, 여성 노동자 2명 중 1명은 비정규직으로 최저임금을 받고 있으며, 남성의 3배에 달하는 가사돌봄 노동을 떠맡고 있다. 또 정규직 노동자 3명 중 1명이, 비정규직 노동자는 5명 중 2명이 직장에서 성희롱을 당한다. 매년 수만 건의 성폭력과 가정폭력, 교제폭력에, 매일 1명의 여성이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게 살해되거나 살해 위협을 받고 있다.

여성파업조직위는 "우리는 다른 세상을 원한다. 더 이상은 이대로 살 수 없다"며 "우리는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기계가 아니라 인간"이자 "부단히 이 세상을 생산하고 재생산해 온 노동자들"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의 촘촘한 노동이 일터를, 가정을, 이 사회를 지탱해 왔다"며 "그런 우리를 당신들은 2개월마다, 6개월마다, 2년마다 쓰고 버렸지만, 우리는 단 한 명도 포기할 수 없다. 우리는 단 한 명도 포기하지 않는 세상을 원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성파업조직위는 1) 성별임금격차 해소, 2) 돌봄 공공성 강화, 3) 일하는 모두의 노동권 보장, -고용안정과 비정규직 철폐, 4) 임신중지에 건강보험 적용, 유산유도제 도입, 5) 최저임금 인상 등을 요구했다.

[이명선 기자(overvie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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