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받아 마땅하구나, 이런 일을 할지언정”

최유경 2024. 3. 8.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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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12년째 '유리천장지수' 최하위(영국 이코노미스트지 조사, OECD 회원국 대상), 26년째 '성별 임금 격차' 1위(OECD 통계)라는 부끄러운 기록. 그 숫자 속엔 오랜 시간을 견디고 버텨온 수많은 여성의 이야기가 있다. KBS는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한평생 청소 노동자로 일해온 70대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76살 이백순 씨(가명)는 30년째 청소 일을 하고 있다. 젊은 시절엔 다른 일을 했었다.

"모르실 거야, 공타. 공타 했었어요." 백순 씨는 그렇게 표현했다. '공판타자기'를 줄인 말, 타자기를 쳤다는 뜻이다. 상업계 고등학교를 나온 뒤 영화사와 전매청(현 한국담배인삼공사)에서 타자를 쳤다. 좋은 직장이었고, 재미있게 다녔다.

청소 일을 시작한 건 1995년, 백순 씨가 47살 때였다. 27살에 딸을 낳고 딱 20년 만에, 다시 바깥 일을 하기 시작한 셈이다. 세브란스 치과병원에서의 첫 석 달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석 달이 지나니까 '이것도 별거 아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정직하게 몸을 움직여 하는 일이라 좋았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그러더라고요. 아, 왜 그런 걸 하느냐고. 왜 험한 일을 하느냐, 대우도 못 받는데. 근데 저는 하나도 그렇지 않더라고요. 다른 것보다 정직하게 내가 움직여서 일하는 게 훨씬 낫다. 직업에 귀천이 있다지만, 전 그렇게 생각 안 하기로 했어요."


76살 하점순 씨도 38살에 청소 일을 시작했다. 19살에 결혼해 아이들을 어느 정도 키우고 나서다. 남편이 버는 돈으론 아이들 학교 보내기 힘들겠다는 생각에, 친구 소개로 직장을 구했다. 그때만 해도 창피한 마음이 있었다. 청소 일을 한다는 걸 숨기기도 했다.

첫 직장인 삼성 본관은 유난히 힘들었다. 새벽 첫 차를 타고 출근해, 오후 4시에 퇴근했다. 일요일엔 '대청소'를 해야 했다. 주말 근무 수당 같은 건 없었고, 보수도 적었다. 엘리베이터 문짝에 광을 내려고 독한 세제를 많이 썼다. 그 후유증으로, 점순 씨는 요즘도 자주 눈이 시려 눈물을 흘리곤 한다.

"옛날엔 요새보다 더 많이 어려웠어. 그때는 뭐 처음엔 형편도 없었지. 담배꽁초도 아무 데나 버려, 가래침도 아무 데나 버려, 엉망진창이고. 요새는 그래도 화장실 가면 다 화장실에서 물로 내려버리잖아. 담배 재떨이도 없고. 그땐 담배 재떨이가 다 있었어요."


늘 떳떳했던 백순 씨도 가끔은 부당한 일을 겪었다. 청소노동자들을 무시하는 관리자를 만나는 건 부지기수였고, 소장으로부터 이유 모를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그때마다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백순 씨는 원래 '노동조합'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다. 결혼 전 종로 바닥을 지날 때 깃발을 들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그저 민폐고, 불편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런데 세브란스병원과 연세대에서 일하며 직접 겪어보니 알게 됐다. 함께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아무도 백순 씨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지 않았다.

"김 부장이란 분이 있는데 그분이 아줌마들을 좀 무시하는 편이었죠. 노조가 활성화되고 나니까 아주머니들한테 대하는 태도도 굉장히 공손해졌어요. 그래서 아, 진짜로 목소리를 내는 게 당연하고, 이런 대우를 받아야 마땅하구나, 이런 일을 할지언정,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점순 씨에게도 함께 한 기억은 소중하다.

마지막 일터인 연세대에서 관리자가 청소 노동자들에게 개인적인 일을 시키고서는 보상을 해주지 않는 일이 있었다. 학생들에게 이런 부당한 일을 겪었다고 말하니, 대신 발 벗고 나서줬다. 회사로부터 몇천만 원의 돈을 받아냈다. "그때는 진짜 학생들이 우리 우상이었어. 학생들 때문에 우리가 자존심이 좀 살았어", 점순 씨는 그렇게 말했다.

"연세대 오니까 학생들이 우리 편이 돼서 우리를 많이 도와줬어. 학생들 아니면 그렇게 노동 운동도 못 해. 우리가 장구도 쳤거든? 연대 학생들이 그것도 가르쳐주고, 같이 치고, 같이 집회 다니고. 그때는 학생들 군대 갈 때도 우리가 다 조금씩 걷어서 주고, 학생들이 결혼할 때도 가고 그랬거든. 친하게 지냈지."


백순 씨와 점순 씨도,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2022년, 연세대 학생들은 청소·경비 노동자들의 집회 소음이 수업권을 침해한다며 법원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지난달 1심에서 패소한 학생들은,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백순 씨는 요즘도 연세대 동료들과 한두 달에 한 번씩 만난다. 학생들이 예전과 달리 많이 협조를 안 해줘서 힘들다는 얘기를 듣곤 한다. 그래도, 원망보단 이해가 앞선다.

"아쉽다는 건 아니고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어. 학생들 공부해야지. 우리는 좋았지만, 그 부모님들은 어땠겠어. 공부도 안 하고 그러고 다니는 걸 알았을 때는 좀 안 좋지. 내 자식이, 내 손주가 그러고 다닌다면 안 좋았겠지", 점순 씨가 말했다.


점순 씨는 이제 청소 일을 그만뒀다. 어깨도, 허리도, 무릎도 성한 곳이 없다. 그래도 지금이 참 좋다. 35년 내내 새벽 4시 반, 5시에 일어나다가, 마음대로 늦잠을 잘 수 있으니 행복하단다. 후회는 없냐고 물었다. "처녀 때 많이 못 놀아보고 결혼 일찍한 거, 그게 후회돼", 점순 씨가 웃는다. "열심히 일했으니까 지금 내가 놀고 있잖아. 그때 어영부영하고 일 안 했으면 지금 놀고 있겠어? 일해야지. 이 나이에도 일해야지."

백순 씨는 지금도 청소 일을 한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빌딩으로 새벽에 출근해, 오후 4시에 퇴근한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힘에 부친다. 조만간 하루 3~4시간만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다시 구해보려 한다. 하고 싶은 일은 아직도 많다. 어릴 땐 미술을 좋아했고 커서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었지만, 집안 사정이 안 좋아지면서 대학을 못 갔다. 이젠 노인이나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 관심이 간다.

"대우를 받고 싶어요, 어딜 가도. 앞으로 뭐 3시간을 하든 4시간을 하는 데를 구하더라도 좀 그런 쪽으로 구해졌으면 좋겠어요. 기도하고 있어요, 지금."

■ '세계 여성의 날'은?
1908년 열악한 작업장에서 화재로 숨진 여성들을 기리며 미국 노동자들이 궐기한 것을 기념하는 날. 생존권을 뜻하는 '빵'과 참정권을 뜻하는 '장미'를 상징으로 한다. UN은 1975년을 '세계 여성의 해'로 지정하고,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기념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8년부터 3월 8일이 법정기념일인 '여성의 날'로 공식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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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경 기자 (60@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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