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판에도 없는 ‘200% 매짜’ 주문에 술렁

박수혁 기자 2024. 3. 8.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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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소문나면 곤란한데 춘천 중화요리전문점 대화관
100% 맵기의 대화관 매운 짜장면 모습. 박수혁 기자
관광객을 상대하는 북적이는 ‘TV 맛집’은 사절합니다. 지역의 특색있는 숨은 맛집, 누가 가장 잘 알까요? 한겨레 전국부 기자들이 미식가로 이름난 지역 공무원들에게 물었습니다. 대답을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합니다. 한두 군데 마지못해 추천하면서 꼭 한마디를 덧붙이네요. “여기, 소문나면 곤란한데.”

“새로운 한주가 시작됐는데 한번 가셔야죠.”

‘케이(K)-직장인’의 월요일이 또다시 시작됐다. 각종 스트레스와 주말까지 계속된 각종 술자리에 혹사당한 속을 깔끔하게 달래줄 음식 생각이 절실했다. “안 그래도 가려고 했어요.” 강원도청 대변인실에 근무하는 이명란 주무관이 활짝 웃으며 호응했다. 옆에 있던 국민일보 서승진 기자도 “마침 매운 게 당기는 날인데 같이 갑시다”라고 말하며 따라나섰다.

점심시간이 되자 강원도 춘천의 명동거리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인파를 헤치고 명동닭갈비골목에 도착하자 닭갈비 볶는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유명 닭갈비 맛집들의 유혹을 모두 물리치고 계속 걸었다. 골목 끝 닭갈빗집 2층에 ‘정통중화요리 대화관’이라고 적힌 낡은 간판이 일행을 반겼다.

춘천닭갈비골목의 한쪽 구석에 있는 매운 짜장면 전문 대화관 입구 모습. 대화관은 가운데 닭갈비집 오른쪽 계단으로 올라가면 2층에 있다. 박수혁 기자
2층에 올라가자마자 보이는 대화관 메뉴판 모습. 대화관에서 돈 주고 시킬 수 있는 메뉴는 ‘매운 짜장면’과 ‘공깃밥’이 전부다. 대신 탕수육과 깐풍기, 군만두가 서비스로 제공된다. 박수혁 기자

계단을 지나 2층에 올라서자 ‘매운 짜장면’이라고 적힌 선간판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밑에는 소(7000원)·중(8000원)·대(9000원), 공깃밥(1000원)이라고 적혀 있다. 돈 주고 시킬 수 있는 메뉴는 ‘매운 짜장면’과 ‘공깃밥’이 전부다. 분명 중국집인데 짬뽕이나 볶음밥 등과 같이 흔한 메뉴가 없다. 아래에 셀프서비스 메뉴 ‘탕수육·깐풍기·군만두·반찬’이라는 글이 보인다. 메뉴는 매운 짜장면밖에 없지만, 탕수육과 깐풍기, 군만두가 서비스인 ‘이상한’ 식당이다.

동네마다 하나쯤 남아있을 법한 노포집 분위기의 대화관 내부 모습. 박수혁 기자

문을 열고 들어서자 대화관 특유의 매콤한 냄새가 침샘을 자극했다. 식당 내부는 동네마다 하나쯤 남아있을 법한 노포집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대화관 김차숙(61) 사장이 반갑게 인사하며 자리를 안내했다. 하지만 일행들은 자리만 확인한 뒤 셀프서비스 메뉴가 있는 주방 앞에 집결했다. 저마다 접시를 꺼내 들고 탕수육과 깐풍기, 군만두 등을 수북이 담은 뒤에야 자리에 앉았다. 단무지와 양파, 춘장, 매운 짜장 소스, 공깃밥 등도 모두 손님들 몫이다.

“100% 소, 70% 중, 30% 소, 맞죠?” 주문을 받으러 온 김 사장은 웬만한 단골 취향은 훤히 꿰고 있다. 대화관 매운 짜장면은 맵기 정도를 퍼센트(%)로 표기한다. 100%가 가장 맵고 70%, 50%, 30%, 0% 등으로 점차 낮아진다. 맵기 조절은 매운 짜장 소스(100%)와 맵지 않은 짜장 소스(0%)를 손님이 원하는 비율에 따라 섞어 제공하는 방식이다.

군만두 하나를 집어 매운 짜장 소스에 찍은 모습. 박수혁 기자

주문을 마치고 이명란 주무관이 군만두 하나를 집어 매운 짜장 소스에 푹 찍은 뒤 곧장 입으로 가져갔다. 이 주무관은 “한 입 베어 물면 겉은 바삭바삭한데, 하나도 딱딱하거나 느끼하지 않다. 분명 여느 중국집에서 만날 수 있는 평범한 군만두인데도 불구하고 계속 손이 간다. 특히 군만두를 매운 짜장 소스에 찍어 먹으면 ‘찰떡궁합’이다”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드디어 메인 메뉴인 매운 짜장면이 나왔다. 금방 삶은 흰색 면 위에 검붉은 짜장 소스가 듬뿍 올라가 있는 형태다. 젓가락으로 짜장 소스와 면을 잘 섞어 한입 가득 먹었다. 면은 일반 중식면보다 살짝 더 두꺼워 칼국수면에 가까운 식감이다. 매운 정도가 30%밖에 되지 않지만 입안 가득 매콤한 감칠맛이 퍼졌다.

평소 50%를 먹다가 요즘 70% 맵기를 즐기고 있는 서승진 기자는 젓가락질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랐다. 서 기자는 “처음엔 30%만 먹었는데 지금은 70%를 맛있게 먹고 있다. 처음 50%로 올릴 때는 오후에 배가 아파서 온종일 화장실을 들락날락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70%를 먹어도 배가 아프지 않을 만큼 적응했다. 맛도 맛이지만 매운 정도에 도전하는 재미가 있다. 다른 중국집에서 맛볼 수 없는 마성의 매운맛”이라고 극찬했다.

반면 100%만 고집하는 이명란 주무관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짜장면을 다 먹은 뒤 남은 소스에 밥까지 비벼 먹었다. 이 주무관은 “대화관은 먹고 남은 매운 짜장 소스에 밥까지 비벼 먹는 게 ‘국룰’이다. 물 대용으로 함께 나오는 시원한 재스민차와 단무지는 매운 입안을 달래주는 소화기 같은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대화관 매운 짜장면 200%의 모습. 100% 맵기의 짜장면 위에 매운 고춧가루를 기름에 볶아서 맛을 낸 매운장 소스를 추가해서 먹는다. 박수혁 기자

그때 옆 테이블에서 “주문하신 200% 나왔습니다”라고 말하는 사장님 목소리가 들렸다. 주위의 이목이 쏠렸다. “200%를 먹는 사람이 있다고?, 200%는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네.” 메뉴판에도 없는 200% 등장에 주위가 술렁거렸다. 200%를 시킨 정준국(52)씨는 “보통 100% 먹는데 스트레스가 극심할 때면 가끔 200%에 도전한다”며 머쓱한 듯 웃었다.

정씨와 함께 온 백승만(54)씨도 ‘대화관 골수팬’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백씨는 “대화관 개업 초기부터 다니기 시작해서 일주일에 많게는 3번까지 대화관에서 점심을 먹는데, 점심때면 항상 스트레스 많이 받는 직장인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술 많이 먹은 다음 날 해장으로도 인기다.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대화관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라고 귀띔했다.

김차숙 대화관 사장이 셀프서비스 메뉴인 탕수육·깐풍기·군만두 등을 살펴보고 있다. 박수혁 기자

김 사장 부부가 명동닭갈비 골목에서 대화관을 개업한 것은 1998년 3월이다. 원래는 시아버지인 화교 출신 이장륭(2022년 별세)씨가 1970년 강원도청 앞 요선동에 개업한 대화관에서 함께 일을 했다. 그러다 명동에 같은 이름의 중화요릿집을 개업하면서 분가를 했다. 지금도 요선동 대화관은 막내아들이 가게를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고, 김 사장의 남편이 첫째다.

‘매짜’ 혹은 ‘사천’으로 불리는 대화관 매운 짜장면의 비결은 매운장에 있다. 청양고추와 베트남 고추 등 매운 고추를 말려서 가루를 낸 뒤 기름에 볶아서 맛을 냈다. 김 사장은 “매운 짜장 소스는 1975년 당시 남편이 시아버지와 함께 요선동 대화관에서 일할 때 자신이 먹으려고 만들었다가, 우연히 식당을 찾은 강원도청의 한 과장이 맛을 보게 되면서 주요 고객인 도청 직원들에게 입소문이 났다. 캡사이신 등으로 매운맛을 낸 음식과는 맛 자체가 다르다”고 설명했다.

춘천닭갈비골목의 한쪽 구석에 있는 매운 짜장면 전문 대화관 건물을 앞에서 바라본 모습. 박수혁 기자
대화관 매운 짜장면을 다 먹은 뒤 남은 소스에 밥을 비빈 모습. 박수혁 기자

대화관은 특유의 매운맛으로 오랜 기간 춘천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그 흔한 맛집 프로그램 등에 출연한 적이 거의 없다는 점도 특색이다. 김 사장은 “손님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은 한정돼 있는데, 방송에 나가서 유명해지면 대기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러면 점심 때 짬 내서 방문한 직장인 단골들이 먹지 못하고 돌아가야 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돈도 좋지만, 대화관을 좋아해 주는 지역 직장인들에게 매운맛으로 위안을 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다. 단골인 박 기자 부탁이니 어쩔 수 없이 들어줬지, 앞으로도 방송에는 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정준국씨가 웃으며 김 사장을 달랬다. “사장님 유명해져도 괜찮아요. 소문나도 관광객들이 몰려 단골들이 피해를 볼 일은 없어요. 관광객은 절대로 맛보지 못할 음식이잖아요.” 그렇다. 대화관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30분까지 평일에만 딱 3시간30분 영업한다. 저녁 장사도 하지 않는다. 토요일과 일요일뿐 아니라 공휴일에도 무조건 쉰다. 주로 주말이나 공휴일에 춘천을 찾을 수밖에 없는 관광객 입장에서는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찐’ 현지인만의 맛집인 셈이다.

기자도 수습 시절인 2005년부터 선배들을 따라 대화관을 드나들기 시작했으니 벌써 20년 가까이 됐다. 나이가 들면서 잦은 음주에 속이 상한 터라 100%에서 시작한 맵부심은 점점 추락해 30%까지 후퇴했지만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그 맛을 잊지 못해 대화관을 찾는다. 손님이 오면 막국수나 닭갈비보다 대화관을 소개할 정도다.

지난달 25일에도 레고랜드코리아리조트의 김영옥 상무에게 대화관을 소개했다. 식사 후 그가 보낸 장문의 문자가 기억에 남는다. “그 흔한 양파와 고기 등도 잘 보이지 않는 투박한 검붉은 소스와 수타면처럼 일관성 없는 면발이 시각적으로 호기심을 끌었습니다. 슴슴한 첫맛은 달콤 짭짤한 다른 짜장면과 비교할 때 실망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세 번째 젓가락질을 할 때쯤 깊은 짜장의 맛과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는 매콤함에 내 미각을 의심했습니다. 과하지 않게, 뒤에 치고 오는 매콤함이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함께 제공되는 후한 셀프서비스 메뉴는 무뚝뚝하지만 따뜻함이 깊은 춘천사람들을 닮았네요.” 최근 김 상무와의 통화에서 또 감사의 인사를 받았다. “박 기자님과 대화관에서 만난 뒤 2번이나 더 다녀왔습니다. 계속 생각나는 매운맛입니다. 너무 맛있어요. 딱 제 스타일입니다.” 속담처럼 재주는 대화관이 넘고 감사 인사는 기자가 받고 있다.

박수혁 기자 p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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