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도 내가 노래를 안 했다곤 못 할걸요”

한겨레 2024. 3. 8.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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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란의 마음극장 #플로렌스
이수 C&E 제공
동그란의 마음극장은?

어떤 영화는 좀처럼 끝나지 않습니다. 내 이야기가 왜 저기 들어 있나 싶은, 나보다 내 마음을 더 잘 드러낸 것 같은, 친구에게 꼭 보라고 얘기해주고 싶은 그런 장면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영화 칼럼니스트 ‘동그란’이 격주로 마음속에서 재편집되는 대사, 기억의 영사기에서 반복되는 장면을 이야기합니다.

중학생 때였을 거예요. 겨울방학 때 우리 집에 놀러 온 이모가 며칠 내 생활을 지켜보더니 정말 궁금하다는 듯이 말했어요. “나중에 뭐가 되려고 그러누?” 심심하면 스케치북을 열어 그림을 그리고, 일기장을 색색 사인펜으로 꾸미고, 친구들에게 끝도 없이 편지를 쓰는 나를 보면서 그랬어요. 나중에 뭐가 되려느냐고. 나중에 뭔가 되겠다는 생각이 없던 때라 이모의 질문에 아무 답도 못했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그림도 그리지 않고 일기도 쓰지 않는 어른이 되고 말았지요. 하지만 그 비슷한 방향으로 드문드문 어설프게 걸어온 나의 흔적들이 어렴풋이 보이긴 합니다. (그림책 구매왕임)

예술의 세계에서 성공하기란 어려운 일이지요. 우선 재능이 있어야 하고, 어려서부터 잘 훈련받아야 하고, 주변 환경의 뒷받침도 필요해요. 어쩌면, 남들이 아니라고 말해도 포기하지 않는 뚝심까지도 재능의 영역일지 몰라요. 명확한 지도가 없어서 지속하기 힘든 것이 예술가의 길이지요. 마음속의 별을 따라가라는 말만큼이나 막막한 얘기도 없다 싶지만 한번 그 별을 마음에 품은 사람들은 나중에라도 ‘애호가’로서 빛나는 기여를 하기도 하지요.

77살에 음악을 시작해 성악가가 된 플로렌스 포스터 젱킨스

그런데 애호나 취미로는 성에 차지 않아 노년에 전문 예술가의 영역에 도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중에 가장 무모한 케이스로 회자되는 사람 중의 하나가 플로렌스 포스터 젱킨스(1868~1944)라는 여인일 거예요. 음악 애호가였던 그녀는 77살에 성악을 시작해 세계적인 음악가들도 연주 기회를 잡기 어렵다는 카네기홀에서 공연하는 놀라운 역사를 썼지요. 언젠가 라디오에서 그녀의 이야기와 함께 공연 실황을 들려준 걸 들은 적이 있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는지 의아하기만 했어요. 그런데 그녀의 끔찍한 도전을 멋진 선물로 탈바꿈시킨 영화가 있더라고요. 영화 ‘플로렌스’(스티븐 프리어스 감독·2016년)입니다 .

영화의 배경은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시절의 뉴욕입니다. 그곳에 베르디클럽이라는 음악 애호가 모임을 만들고 회원들에게 조그만 무대를 선보이며 살아가는 부부가 있었지요. 남편 싱클레어(휴 그랜트)는 배우가 꿈이었는데(독백이 전문이라고 함) 그쪽으로 성공하지 못했고,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플로렌스(메릴 스트립)의 남편으로 뉴욕 사교계에서 화려한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들 부부가 뉴욕의 음악 발전을 위해 오케스트라와 오페라를 후원하고 음악애호단체인 베르디클럽을 운영하는 것까지는 괜찮았어요. 물려받은 막대한 재산이 있었고, 물려줄 자식은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플로렌스가 릴리 폰즈와 토스카니니가 함께한 무대에 감동을 받고는 자기도 그 노래를 부르겠다고 하는 겁니다. 남편 싱클레어에게 이건 차원이 다른 도전이었죠. 놀랍게도 그는 플로렌스가 끔찍한 음치라는 결정적인 문제를 문제 삼지 않는 것으로 시작했어요. 어차피 하루아침에 될 일도 아니고요.

이수 C&E 제공

영화가 그려내는 플로렌스 젱킨스의 남편 싱클레어는 집사이자 남편 역할을 하나의 직업이자 연기 활동으로 해내는 것으로 보여요. 그에게는 젊은 애인이 따로 있었지요. 플로렌스를 보살피는 일과를 마치고 애인이 있는 집으로 퇴근하면 거기에 진짜 자신의 얼굴이, 원래의 자기 삶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플로렌스의 공연을 위해 못할 게 없는 자신을 보면서 차츰 깨닫게 되지요. 플로렌스를 보살피고 그녀의 꿈을 지켜주는 건, 곧 자신을 보살피고 자기 꿈을 돌아보는 일이었어요. 내 곁에 있는 사람의 취약한 데를 살피는 건 곧 내 상처를 돌보는 일이고, 그건 각박한 세상에서 다치고 상처받은 모든 영혼을 생각하는 일과도 연결된 일이 아닐까요? 무대에서 노래하느라 지칠대로 지친 플로렌스에게 싱클레어가 (존 키츠)를 자장가처럼 읊어줄 때 생각했어요. 독백이 전문인 배우로서, 그는 결코 실패하지 않았다고. 아름다운 암송이었어요. 그 순간 그는 가장 빛나는 배우였어요.

그녀가 세상에 들려주고자 한 건 자신의 삶 그 자체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피아니스를 꿈꿨지만 아버지의 반대와 왼손의 신경마비로 좌절됐고, 전 남편에 의해 감염된 매독으로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했죠. 그럼에도 목숨을 걸고 노래했어요. (실제로 매독은 뇌와 청각에 문제를 일으킨다고 하죠. 그녀의 노래가 끔찍한 건 듣는 사람들 귀에나 그렇지 그녀 자신은 머릿속으로 가장 이상적인 노래를 연주하고 있었을 게 틀림없어요) 이 복잡하고 불가해한 세상을 사는 현대인의 단 한 번 주어진 인생에서는 꿈을 마음에 간직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아요. 별을 바라만 보다가 죽을 수는 없어요. 스스로 빛나는 별로 존재한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어야 해요.

이수 C&E 제공

어쩌면 이 영화의 주인공은 플로렌스가 아니라 싱클레어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플로렌스 곁에 서 플로렌스의 무대에 잠깐씩 막간 배우로 서는 것에 만족하기로 타협한 듯 보이던 그의 삶 말이죠. 집사 역할, 남편 역할을 충실한 배우가 연기를 하듯이 행한 그대로가 그의 진실한 인생이 된 것 같아요. 백조는 죽기 직전에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노래한다고 하죠. 그래서 예술가의 마지막 작품을 일컬어 ‘백조의 노래’라고 하는데요. 플로렌스는 눈을 감기 전에 싱클레어에게 백조의 노래를 들려주죠. “모두가 나더러 노래 못한다고 해도, 누구도 나더러 노래 안 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거예요.” 이 말에 싱클레어는 진심으로 “브라보”라고 화답해주죠. 플로렌스의 남편이자 집사로 살았던 그의 삶에 대해 모두가 ‘연기 한번 잘했다’고 말할지라도 누구도 그가 나쁜 남편이었다고 말할 수 없을 거예요. 설령 연기일지라도 그런 지극한 보살핌은 모두가 원하는 거 아닐까요. 그런 사람이 곁에 있다면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온 세상을 향해 매일매일 노래하며 살아갈 수 있을 거 같아요.

우리 고모는 20년 전, 퇴직한 남편과 함께 도시를 떠나 귀촌했어요. 얼마전 방문한 고모의 조그마한 작업실에서 끝도 없이 나오는 그림들과 노트 한 권에 빼곡이 정리해놓은 시들을 보고 놀랐어요. 20년 시간이 하나의 예술 세계로 펼쳐져 있었어요. 고모에게는 나중에 무언가가 되겠다는 목표 같은 건 없었어요. 무언가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것을 하는 삶을 사신 거예요. “나중에 뭐가 되려고 그러누?” 하던 이모의 질문도 그때 떠오른 거예요. 무언가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자기 자신의 열정이 일어나는 자리를 놓치지 않고 살아온 모습 그 자체로 소중했어요. “브라보!” 이제라도 내가 그녀의 싱클레어가 되어드려야 할 것 같아요.

영화 칼럼니스트 동그란 ha028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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