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꼬무 찐리뷰]'서울의 봄', 전부가 아니다…전두환 비밀조직 '하나회'의 모든 것

강선애 2024. 3. 8.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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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7일 방송된 '하나회의 시작 그리고 끝'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배우 최경모, 권혁수, 모델 이현이가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꾼 비밀조직

대한민국 역사를 바꾼 엄청난 모임 하나를 소개할게.

이거 본 적 있어? 이건 1979년 12월 12일에 일어난, 12.12 쿠데타 이후 파티 현장이야.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즐겁게 춤추는 사이, 노래를 부르는 전두환의 얼굴도 보여. 12.12 쿠데타 그 주역에 이 사람들, '하나회'가 있었어. 은밀히 감춰져 있던 군 내 비밀조직이야.

하나회는 어떻게 만들어져 12.12 쿠데타의 중심이 됐을까? 그리고 어떻게 사라진 걸까? 오늘, '꼬꼬무'는 하나회의 모든 걸 들려줄 거야.

'꼬꼬무'가 하나회와 관련한 방송을 준비하면서 엄청난 분을 찾았어. 바로, 하나회를 만든 사람. 정말 어렵게, 하나회의 산 증인을 만나 하나회를 어떻게 만들게 된 건지 직접 들어봤어.

"하나회에 대해 경위를 말할 테니까. 내가 왜 하나회를 우리가 생각했으며, 왜 하나회란 모임을 만들었는지. 그 취지를 지금 내가 이야기하는 거예요. 모임은 내가 했어. 내가 처음에 할 때는. 하나회라는 것이 '한마음 한뜻으로 하자'고 해서 하나회라고 했지. 우리가 점차 10명이 좀 돼도, 우리는 하나다, '한마음 한뜻으로 우리가 국가에 충성을 다하자', 이거였지. 뭐 다른 마음 가지지 말자는 거였어. 우리 모임의 회장을 전두환 시켰어. 나는 각하 부관인데 '어떻게 부관이 그거를 하겠니' 하면서."

-손영길, 육사 11기, 하나회 창단 멤버

육사 11기 손영길 장군은 하나회를 처음 조직한 분이야.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과는 막역한 사이였대. '한마음 한뜻으로 국가에 충성을 다하자'는 뜻을 가졌던 하나회가 어쩌다 권력 집단이 됐을까? 손영길 장군이 육사 생도였던, 70년 전으로 돌아가 볼게.

▲ 하나회의 시작

때는 1954년, 진해에 있는 육군 사관학교야. 이른 아침부터 육사 생도 스무 명 정도가 운동장을 뛰고 있어. 그 가운데, 스물셋 영길 씨도 있어. 지금 운동장에선 축구 연습이 한창이야. 곧 육사, 해사, 공사가 총출동하는 삼군 체육대회가 열려. 육사의 자존심을 걸고 질 수 없으니, 축구 연습을 한 거야. 골문을 지키는 골키퍼는 동기 두환이야. 네가 알고 있는 그 사람이 맞아.

"축구부에 있는 친구가 누군가 하면, 전두환이야. 전두환 대통령이 골키퍼 하고, 나는 풀백 해서. 전두환, 노태우, 김복동, 전부 다 내 동료들, 친한 친구들이었어."

-손영길, 前준장, 하나회 창단 멤버

이렇게 신나게 한 경기 뛰고 나면, 서로의 집을 오가며 밥도 먹고 술도 한잔 하고. 둘은 아주 절친한 친구가 됐어.

4년의 정규 교육을 마친 두 사람은 나란히 임관해. 두 사람의 군 생활은 어땠을까? 선배들은 이들을 좀 다르게 봐. 지금은 육사가 4년제잖아? 이땐 아니었어. 나라가 계속 전쟁 중이라, 정규교육받을 시간이 없는 거야. 그래서 이전 기수는 6개월, 그보다 더 적게 교육받고 임관하기도 했어. 근데 육사 11기가 처음으로 4년 정규 교육을 다 받은 거야. 그럼 11기생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일단 이들은 '육사 11기'라는 말부터 인정할 수가 없어. '육사 11기'가 아닌, '정규 육사 1기'라고 생각해. 실제 육사 내에서도 그렇게 불렸대. 4년 정규 교육을 받은 첫 기수라고, 자부심이 남달라. '우리가 진짜 육사다!' 이런 마음이었어. 우리가 잘돼야 한다는 야망도 커서. 그래서 뭔가 해보자며, 모임을 만들게 된 거야. 그게 하나회의 시작이야.

처음에는, 오직 나라에 대한 충성, 서로가 서로의 거울이 되어 잡아주자는 마음으로, 혼자보다 여럿이 낫다며 모임을 만들었어. 그런데 모이면 딱히 하는 건 없어. 그냥 가끔 만나서 밥 먹고, 힘든 일 털어놓고. 딱 그 정도였어. 그래도 모임인데 이름은 있어야 한다며, 이런저런 모임 이름 후보를 두고 고민했어. 그러다 '하나회'가 나왔어. "우리가 지키는 나라도 하나! 우리의 우정도 하나! 하나회, 좋다!"라며. 그렇게 하나회가 탄생했어. 그리고 이걸 나눠 가졌어.

단도야. 이걸 왜 나눠 가졌을까?

"우리 후배가 우리에게 단도를 준 게 있어. 만일 우리가 여기서 배반한다면, 스스로 자결하기 위해서 말이야. 그만큼 결심이 있었어. 부정과 타협한다든가 나쁜 짓을 하는 거 같으면 스스로 자결하기로 했어."

-손영길, 前준장, 하나회 창단 멤버

배신은 죽음이고, 목숨도 바칠 각오가 돼 있어. 근데 명색이 모임인데, 이왕이면 사람이 좀 더 있으면 좋겠지? 그래서 모임을 좀 키우기로 해. 인원은 기수당 10명. 어떻게 사람을 모았을까? 일단 후배 기수가 들어오고, 괜찮다 싶은 사람이 있으면 유심히 지켜봐. 대위쯤 될 때까지. 그때부터 본격적인 포섭이 시작돼. 뭐 어려운 건 없냐, 고민이 있으면 말하라, 하면서 밥도 사주고 술도 사줘. 용돈도 조금씩 줬어. 그렇게 후배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그리고 뒤에서는 뒷조사가 시작돼. 졸업 성적은 물론, 교우관계, 집안 환경, 건강 상태, 사생활까지 캐낼 수 있는 건 모조리 다 캐내는 거야. 애매하다 싶으면 조사를 더 해. 심하게는 2년까지 조사를 했대. 그 관문까지 다 통과하면, 가볍게 툭! "나랑 같이 나라에 충성할 각오 돼 있지? 그럼 내일 저녁 7시까지 여기로 와"라고 은밀히 시간과 장소를 전달해.

"약속한 시간에 11기 선배의 어느 집에 가면, 11기 전체 회원이 마루나 다다미방 같은 곳에서 일렬로 앉아 있습니다. 그 한가운데서 회장 전두환이 앉아있지요. 반드시 혼자 가서 무릎을 꿇고는 국가와 조직에 충성한다는 내용의 선서를 합니다. 선서가 끝나면 11기 중의 한 명이 붉은 포도주를 한 잔 따라줍니다. 두 손으로 그 잔을 받아 마시면 그걸로 하나회 회원이 되는 겁니다."

-논문 '한국 정치의 후견인-수혜자 관계' 서창녕

이렇게 서약하고, 포도주를 마시면, 비밀 조직의 일원이 되는 거야. 무슨 종교의식 같지? 한 기수에 10명씩 뽑는다 했던 하나회 회원 수는 금세 100명을 넘어섰어. 군내 사조직은 군법으로 금지된 일이야. 그렇다면 하나회는 어떻게 비밀을 유지했을까?

"뭘 그거를 단체라고 플래카드 걸어놓고 모집하나? 그건 아니잖아. 하나회라고 있다고 간판 걸고 할 수는 없잖아 군에서."

-손영길, 前준장, 하나회 창단 멤버

하나회 회원들은 일부러 감춘 건 아니고, 굳이 말을 안 했을 뿐이래. 비밀이 유지된 이유는 그게 다가 아니야. 든든한 빽이 있었어.

▲ 하나회의 성장과 위기

윤필용. 육사 8기야. 보직은 수경사령관. 영화 '서울의 봄'에서 정우성 배우가 수경사령관으로 나오잖아. 73년엔 윤필용이 수경사를 이끌었어. 청와대의 안위를 책임지는 중책이야. 하나회에서는 '큰형님'으로 통해. 오래전부터 영길 씨, 전두환과는 잘 알고 지내던 사이야. 하나회의 존재도 초기에 알게 됐어. 그래서 용돈도 주고, 힘들 일도 도와주고 하면서 후견인 역할을 한 거야.

그게 다가 아냐. 윤필용은 '청와대 밖 대통령'이라 불렸어.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윤필용 말이라면 무조건 오케이였거든. 윤필용 사무실 앞에는 늘 그에게 잘 보이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였어. 심지어 자신보다 군내 서열이 높은 상사도 윤필용한테 선물을 들고 찾아왔어.

"현역군인 6명을 고용인처럼 부려 집 안 청소까지 이들에게 시켰으며, 자동차는 두 대의 세단 이외에도 군용 지프차 세 대를 자가용처럼 집에 두어 세 명의 자녀에게 한 대씩 통학용으로 쓰게 하는 등 가족 일인당 한 대씩의 차를 굴렸고. 가구들도 모두 최고급품들이었으며 포장을 풀지도 않은 외국산 고급 텔레비전 냉장고 등이 창고에 여러 개 쌓여있었다. 재산은 어림잡아 수억은 될 것이다."

-당시 윤필용에 관한 기사 내용 中

윤필용이라는 커다란 우산 아래, 하나회는 쭉쭉 성장했어. 1973년 1월 1일, 11기 중 영광의 첫 장성 진급자가 나와. 영길 씨와 전두환, 그리고 김복동, 최성택까지. 모두 하나회 창단 멤버들이야. 육사 한 기수에 200명이 넘는데, 하나회가 별을 싹쓸이한 거야.

군인에게 '별'이란 엄청난 영광이야. 대위로 6년, 소령 5년, 중령 4년, 대령 3년, 최소 이걸 견뎌야 별을 달 자격이 주어져. 자격만 주어지는 거고, 거기서 별을 달려면 남다른 성과까지 있어야 해.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야. 그리고 별을 달면, 명예도 명예인데, 인생이 달라져. 대통령이 직접 백금으로 만든 별을 어깨에 달아주는 순간, '내가 출세했구나'라는 느낌이 온대.

그러던 어느 날,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져.

"전 수도경비사령관 윤필용 소장에 징역 15년 선고"

맨 오른쪽에 선 사람이 윤필용 사령관이야. 최고 실세 윤필용이 갑자기 법정에 섰어. 업무상 횡령,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 근무이탈 방조 및 비호, 직무 유기 교사, 경제안정과 성장에 관한 긴급명령 위반, 기부금품모집금지법 위반, 총포 화약류 단속법 위반 등 혐의가 수두룩이야. 대체 어떻게 된 걸까?

문제는 한 술자리에서 시작됐어. 윤필용과 당시 실세 중 하나인 중정부장 이후락, 절친한 한 신문사 사장까지, 셋이 술을 마신 거야. 그러다 술이 오른 윤필용은 "요즘 각하가 노쇠하셔서 건강이 걱정된다. 이제 슬슬 물러날 준비를 하시는 게 좋을 거 같다"며 이후락이 그 뒤를 이으라는 농담을 했어. 근데 이 술자리 대화 내용을 신문사 사장이 각하한테 전한 거야. 각하는 참지 않았어. 말 한 번 잘못했다가 윤필용은 최측근에서 반역자가 된 거야.

당시 분위기는 충격 그 자체였어. 천하의 윤필용이 경질됐다니. 윤필용 측근들도 줄줄이 법정에 섰어. 여긴 우리가 잘 아는 사람도 있어. 위에 법정 사진 속 윤필용 옆에 선 사람, 바로 손영길 장군이야.

당시 윤 사령관을 모시는 수경사 참모장이었는데, 그 이유로 사건에 휘말리게 된 거야.

"보안사령관인 강창성이 나하고 면회할 게 있다고 해서 전방에 찾아온 거야. 부름을 받아서 서울로 나왔어. 나오자마자 강창성한테 가지 않고 바로 서빙고로 데려가더라고. 반혁명해서 육군 준장 손영길 반혁명자 조사를 시작하겠다면서. 그날 밤새도록 조사당했어. 난 고문도 당하고 했는데…"

-손영길, 前준장, 하나회 창단 멤버

이게 별을 단지 딱 100일 되던 날이었대. 영길 씨 입장에선 그야말로 날벼락이지. 아니라고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었대. 사진 속 사람들 모두 징역형을 받고 군복도 벗게 돼. 그럼, 영길 씨와 막역했던 그 친구, 전두환은 뭘 하고 있었을까?

▲ 전두환과 각하

수사의 칼날은, 전두환을 향하고 있었어. 윤필용 조사 때 들켜서는 안 될 걸 들켰거든. 바로 하나회야. 윤필용 뒤에 조직이 있다는 게 드러난 거야.

당시 수사를 맡은 건 강창성 보안사령관. 강 사령관은 하나회를 집요하게 추궁했어. 누가 조직을 만들고 가담한 자가 누구인지. 강 사령관은 조사한 걸 각하에게 모두 보고했고, 전두환을 비롯해 조직원들 이름이 들어간 하나회 명단까지 제출했어. 쿠데타 혐의에 비밀조직까지 만들었으니, 각하는 크게 분노해야지. 그런데 오히려 각하는 수사를 거기까지만 하라고 지시했어. 사실, 각하와 전두환, 인연이 꽤 깊거든.

박정희 전 대통령은 5.16 군사정변으로 대통령이 됐어. 이승만 정권이 물러서고 혼란한 틈을 타, 소장이던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킨 거야. 이게 하루아침에 달라져서, 어떤 상황인지 국민들은 제대로 알 수가 없었는데, 이틀 후 이런 일이 벌어져.

"5월 18일 오전 태릉의 별 육군사관학교 생도들과 장교단은 군사혁명을 지지하는 힘찬 구호를 외치며 서울 거리에서 시위행진을 했습니다."

-당시 뉴스 보도 中

정변을 지지한다는 시가행진을, 나라의 미래이자 엘리트들인 육사생도들이 주도했어. 이때 전두환이 큰 역할을 했어. 생도들의 행진을 설득했거든. 전두환은 그렇게 박정희의 눈에 탁 들게 돼.

5.16이 잘 마무리되고, 전두환은 박정희의 제안을 하나 받아. 국회의원에 한 번 출마해보지 않겠냐고. 그러자 전두환은 "군에도 각하를 위한 충성스러운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며 군에 남겠다고 해. 각하 입장에선 마음에 쏙 드는 대답이지. 그 뒤로 각하는 전두환을 옆에 꼭 붙여뒀어.

전두환은 국가재건최고회의 비서관에 중정 인사과장 자리까지 꿰찼어. 전두환은 충성을 맹세하고, 각하는 보직과 진급을 책임졌어. 하나회의 존재도 자연스럽게 알게 돼. "각하 뒤엔 각하를 따를 후배들이 쫙 서 있습니다. 언제든 필요하면 부르십시오"라며. 하나회를 각하를 위한 조직이라고 포장했어.

그런 하나회가 외부에 드러났잖아. 각하는 수사를 중단시키고, 수사하던 강창성 사령관을 좌천시켜서 수사에서 손을 떼게 했어. 이 일로 강 사령관은 군복까지 벗게 돼.

게다가 놀라운 진실이 있었어. 윤필용이 아무리 말실수를 했대도, 그거 하나로 잡아넣을 수 있었을까? 이때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전두환이야. 각하를 위한 충심? 그랬을 수도 있지. 근데 동기인 영길 씨도 조사를 받았잖아. 친구가 잡혀가는 걸 왜 보고만 있었을까?

"전두환이 욕심이겠지. 자기가 항상 내 뒤에 따라오고 그러니까. 자기도 빨리 이제 앞서고 싶은 생각도 있었고 또 각하한테 인정도 받고 싶고. 내가 전두환을 많이 잘못 봤어. 내가 교도소에 있는데 잠이 오나. 분노해 있으니까 어떻게 잠이 와. 11시 이런 시간에 10시면 불을 다 끄는데. 화가 나지. 젊을 때 위관장교 때는 서로 뜻이 맞고 아주 정의감으로 하지만은 또 사람이 점점 올라가고 좁아질 거 같으면 경쟁심이 생기는가 봐. 그것도 모르고 다 같이 가겠다고 서로 노력하고…"

-손영길, 前준장, 하나회 창단 멤버

동상이몽. 친구사이였지만 둘의 마음은 좀 달랐던 거 같아.

이건 손 장군이 가지고 있던, 박정희 부부와 함께 찍은 사진이야. 각하에게 전두환을 소개하던 날 찍은 거래. 손 장군이 5.16 이전부터 각하 부관으로 오래 근무했거든. 믿음직한 친구라며, 각하에게 전두환을 소개시켜 준 거야. 근데 평생 군인으로 살려던 손 장군만 허무하게 군을 떠나게 됐어. 이때부터였을까. 전두환의 진짜 모습이 나타난 게. 하나회의 중심이던 윤필용과 손 장군이 사라졌어. 이제 남은 건, 전두환. 하나회의 절대적인 제왕이 됐어.

▲ 하나회 회장 전두환

전두환은 본격적으로 하나회 회원들을 챙기기 시작해. 일면, '군맥 관리'. 워낙 넉살 좋고, 리더십 넘치는 스타일이라, 늘 주변에 사람이 따르긴 했대. 그게 다가 아냐.

"100원이 생기면 70원은 후배들을 위해 쓰고 20원은 가정을 위해. 10원은 자신을 위해 쓰는 베풂과 나눔의 생활 철학이 초급 장교 때부터 몸에 배어 있었다."

"후배들이 공사 간에 어려운 상황에 부딪히면 자신의 일처럼 열심히 뛰어다니며 해결해 주었다. 그의 후배나 동료 관리엔 천부적인 정성이 배어있다."

-당시 기사 내용 中

실제 후배들의 이야기를 옮긴 거야. 제 사람이라 생각하면 계산 없이 베풀었대. 후배가 여자 문제로 골치 아파하면, 시원하게 담판을 지어줘. 후배가 집을 처음 장만하면, 제 집 냉장고를 비워서 보낸 적도 있대. 게다가 '한번 형제는 영원한 형제'라며 혹시 문제가 생겨 군을 떠나게 돼도, 끝까지 뒤를 봐줘.

"막상 옷을 벗고 난 뒤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해 1년 동안 집에서 놀고 있었는데 전두환 회장이 매월 10만원씩 집사람을 통해 보내왔습니다.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어요."

이런 리더니까, 전두환 말이라면 무조건 충성이야. 특히, 가장 큰 기술이 있어. 군에서 절대 놓칠 수 없는 당근, '진급과 보직'. 군은 철저한 계급 사회이고, 피라미드형 구조야. 한 해에 진급할 수 있는 인원은 정해져 있어. 어떻게 진급자를 고를까?

"어떤 지시가 떨어지냐 하면 육군에 한 800명 정도 돼. 대령급하고 장군급 하면. 800명에 대한 옐로카드를 작성하라는 지시를 받아. 8절지 노란색에 앞뒤로 쓰는데 거기 뭐라고 되어 있냐면, 신상명세서의 모든 거 다 기록하게 되어 있고. 돈관계, 여자관계, 자식관계, 가족관계, 근무관계, 모든 걸 이 한 장에다가 요약을 하는데. 한 장에다가 요약을 하면 이걸 박 대통령이 보고 인사에 활용을 해. 대통령을 앞뒤 뒤집어 보면 내가 장관 시킬지 안 시킬지 진급시킬지 안 시킬지 다 아는 거야."

-김충립, 당시 보안부대 근무

보안사에 개인 신상을 기록한 카드가 있는데, 일명 옐로카드, '존안카드'라고 해. 진급 심사 때가 되면 각하가 카드를 봐. 카드에 품행이 안 좋다, 술버릇이 나쁘다, 이런 이야기가 쓰여 있으면 진급이 어려워. 여기에 쓱~ 한마디를 보태. "그 친구, 동기생들한테 평판이 아주 안 좋던데요?"라며. 그럼 승진에서 제대로 물 먹는 거야. 군에선 소위 이 블랙리스트 때문에 피해를 보는 장교들이 꽤 많았대. 주로 비 하나회 장교들이야. 비 하나회가 진급에서 밀리면, 그 자리는 차순위였던 하나회 차지가 되는 거지. 전두환은 인맥을 총 동원해서 제 식구 챙기기에 열성을 다 했대. 그렇게 한 번 자리를 꿰차면, 하나회로 대물림했어.

"이름은 몰랐지. 하나회라는 이름이 있는지는. 그러나 비밀조직이 있고 전두환 씨가 두목이다 한 건 안 거야. 누구하고 친하고 진급은 누구누구 시키고. 훑어보면 이 사람 이 자리로 보직을 인계하고, 이건 이렇게 진급하고. 눈에 다 보이잖아."

-김충립, 당시 보안부대 근무

이렇게 하나회 회원이 된다는 건, 탄탄대로. 진급 수직 상승의 지름길이야.

▲ 하나회와 12.12

1979년, 마침내 전두환은 보안사령관 자리에 올라. 보안사는 군 내 중정(중앙정보부)으로 불리는 곳이야. '존안카드'를 관리하는 것도 보안사야. 군 내 모든 정보를 쥐락펴락할 수 있는 자리야. 아주 파격적인 인사였어.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 해, 1979년 10월 16일. 박정희 대통령이 중정 부장, 김재규의 총을 맞고 서거했어. 16년 만에 권력에 공백기가 생긴 거야.

이때 군 최고 권력자는, 당시 육군참모총장 정승화 장군. 정 총장은 이미 하나회에 대해 알고 있었어. 그래서 이참에 새 판을 짜기로 해. 하나회를 몰아내고 군 체계를 바로 세우려고 한 거야. 그럼 가장 먼저 바꿔야 할 사람은? 회장 전두환이지.

전두환을 핵심 보직인 보안사령관에서 동해로 좌천시킨다는 소문이 났어. 이걸 들은 전두환은 가만있지 않았어.

1979년 12월 12일, 저녁 6시 30분. 수경사 30경비단. 요직 곳곳에 포진해 있던 하나회 회원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 계획은 이랬어. 연행조가 정승화 총장을 체포하고, 동시에 최규하 대통령에게 체포에 대한 결재를 받는다, 그다음 육군본부와 국방부, 중앙청을 점령. 그러면 성공이야.

7시 27분, 총격전 끝에 정 총장이 연행됐어. 뒤늦게 상황을 안 장태완 수경사령관이 반격에 나섰어. 당시 긴박한 상황을 담은 실제 육성이 남아있어. 장태완 수경사령관과 이건영 3군 사령관의 통화 내용이야.

"전두환하고 모두 장난인 거 같아요. 그리고 여기도 보니까 단장들이 몇 놈들이 자취를 감추고 없는데요. 전부 사전에 다 공작을 한 모양인데, 완전히 장악하고 전차고 뭐고 다 장악하고 있습니다. 안에선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말입니다. 사령관님은 바깥에서 잘해주십시오. 저는 안에서 다 죽이든지 해버릴 테니요."

-장태완 당시 수도경비사령관

하지만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상태야. 당시 군 내 하나회 청정 부대는 9공수여단, 단 하나뿐이야. 그마저도 반란군이 한발 빨랐어. '도청' 때문에.

장태완 사령관에게 남은 병력은 전차 4대가 전부야. 막기엔 역부족이지. 반란군은 육본과 중앙청을 모두 점령했어. 12월 13일 새벽 5시 10분. 최규하 대통령은 정 총장 체포 서류에 서명을 했어. 그렇게 상황 종료.

단 10시간 만에 반란군이 승리한 거야. 그리고 반란군은 파티와 기념 촬영을 하면서 자축했어. 아까 우리가 처음에 봤던 그 파티 사진이 그때 모습을 찍은 거야.

"불행하게도 지난 12월 12일 전 정승화 총장 연행 조사 과정에서 정승화 총장의 예기치 않은 발포와 부하들의 난동으로 인해서 본의 아니게 다소의 오해도 불러일으키고 했지만. 이러한 사건 역시 우리가 원하는 대로 잘 수습이 돼서, 오늘 이와 같은 자리를 만들 수 있는 그런 여유를 가진 데 대해서. 본인으로서는 대단히 만족스럽게 생각하고…"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

이 사진, 다시 한번 볼래?

12.12 직후에 촬영된 걸로 잘 알려져 있잖아? 그런데 이거랑 비교해 봐.

이 사진은, 사진 촬영 당시의 모습을 찍은 영상을 캡처한 거야. 앞에 단체사진과 달라. 좌측과 우측 가장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자세히 보면, 인물 몇 명이 합성돼 있어. 촬영할 때 각자의 사정으로 자리에 없던 사람을 나중에 합성까지 해서 넣어준 거야. 영광의 날에 한 명도 빠지면 안 되니까.

▲ 하나회 전성시대

사진 속 사람들에 대한 보상은 아주 후했어. 군인에게 가장 큰 보상은 뭐다? '진급과 보직'. 12.12에 얼마나 기여했냐는 게 진급 심사 기준이야. 12.12의 주역들은 모두 별을 달았어. 전두환은 6개월 사이에 별을 두 개나 달고 4성 장군이 됐어. 전무후무한 진급 속도야.

육군참모총장, 특전사령관, 수경사령관까지 진압군이 잡혀간 빈자리를 모두 하나회가 차지했어. 인사 발표는, 바로 다음 날인 12월 13일에 했어. 마치 다 준비됐던 것처럼.

전두환은 하나회 회원들을 쭉 한 번 살피고, 보안사령관 자리를 내려놨어. 노태우한테 자리를 물려줬어. 전두환은 이후 군복을 벗었어.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고. 1980년 전두환이 대통령에 취임했어.

"제12대 전두환 대통령 각하의 취임식이 서울 잠실체육관에서 거행됨으로써 대한민국 제5공화국이 화려한 출범을 했습니다."

'땡전 뉴스'라고 들어봤어? 시보가 '3, 2, 1 땡!' 하고 뉴스가 시작되면, "전두환 대통령은~"이라고 전두환 소식으로 방송이 도배가 돼.

또 전두환은, 야구장에 자주 나타났어. 프로야구를 창설하고 스포츠 대통령이 되려고 부단히 애썼어. 왜? 공포스러운 군사정권 이미지를 지우려고. 통금도 해제되고, 학생들의 두발과 복장 규정도 사라졌어. 그 곁엔 5공의 개국공신으로 불리는 하나회 회원들이 항상 함께였어.

12.12 때 보안사 비서실장이던 허화평과, 정승화 총장을 직접 연행했던 허삼수가 청와대 비서실로 함께 입성해. 허화평은 5공의 브레인, 허삼수는 해결사로 전두환의 앞길을 닦았어. 30경비단장이던 장세동은 경호실장을 맡아. 그야말로 하나회의 전성시대가 열렸어. 하나회가 군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갖고 청와대까지 진출해 요직을 모두 차지한 거야.

역대 육군참모총장과 보안사령관을 지낸 사람들의 명단이야. 전부 하나회야. 군의 요직은 하나회 전용 코스야. 하나회가 아니면, 아예 발을 들일 수 없을 정도야. 이러니까 어떻게든 하나회에 들어가려 하지.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집권한 게 7년. 다음 정권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 이어받았어. 합쳐서 12년이야. 도합 12년의 군부 정치가 마침내 끝나고, 그다음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야.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했어. 군인이 아닌 일반인 출신 대통령이 취임한 거야. 그것도 스물여섯에 정치에 입문한 9선, 찐 정치인이야.

신군부 세력과는 악연이 깊어도 한참 깊어. 1979년 국회의원직 제명과 "아무리 닭의 목을 비틀지라도 새벽이 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발언, 1983년 23일간의 단식 투쟁, 1985년 가택 연금 당시 "날 감금할 수는 있어. 힘으로 막을 순 있어. 그러나 내가 가려고 하는 민주주의의 길은 말이야. 내 양심을, 마음을, 전두환이가 뺏지는 못해"라 했던 김영삼의 말들… 영원할 것 같던 하나회, 김영삼 대통령으로 인해 이제 긴장을 좀 했을까?

'3당 합당' 들어봤어? 선거를 앞두고 당시 대통령이던 노태우가 김영삼, 김종필 세 사람과 합당을 한 거야. 김영삼은 그 당에서 당선됐어. 그럼, 하나회 쪽 분위기는 어땠을까? 아무리 김영삼이라도, 같은 당이니까 괜찮을 거라 안심했어. 그런데 이건, 김영삼을 잘못 봐도 한참 잘못 본거야.

▲ YS의 3.8 대첩

1993년 2월 25일, 김영삼 대통령 취임식.

"끊을 것은 끊고 도려낼 것은 도려내야만 합니다."

며칠 후엔 육사 졸업식에 참석했어.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국군의 명예와 영광을 되찾아 주는 일에 앞장설 것을 여러분에게 다짐합니다."

이땐 다들 몰랐어. 이게 군 개혁의 신호탄인 줄은. 하지만 이 분은 이미 느낌이 딱 왔대. 드디어 때가 오고 있구나, 하고.

"그때 (김영삼 전 대통령) 지지율이 90%에 육박했습니다. 사실 90% 지지율이라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죠. 취임식에 전두환 전 대통령, 노태우 전 대통령도 참석을 했는데, 그 앞에서 당당하게 '우리 국민은 오늘 위해서 30여 년의 기간을 참고 지냈습니다. 다시는 이 나라에 정치적 밤이 없는 그런 시대가 올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한 것이 일종의 '3월 8일 그런 인사 조치'의 예고편을 미리 말씀하신 게 아닌가…"

-김덕룡, 前 국회의원

취임식이 끝나고 열흘 정도 지난 3월 8일, 오전 7시 30분. 국방부 권영해 장관이 청와대로 와. 김 대통령과 조찬 약속이 있었거든. 테이블에 앉았더니, 김 대통령이 "기무사령관을 언제 바꿀 수 있냐" 물어. 통수권을 행사하면 언제든 바꿀 수 있다 했더니, 김 대통령은 "그럼 기무사령관이랑 육군참모총장, 오늘 자로 바꿉시다"라고 말해.

'기무사'의 전신이 보안사야. 군 최고 실세인 육참총장, 기무사령관 모두 하나회 핵심 멤버였어. 김영삼은 취임한 지 보름도 안 돼서 칼을 들었어.

"정부는 오늘 육군참모총장과 기무사령관, 군 수뇌부를 전격 교체했습니다."

"김진영 전 육군참모총장과 서완수 전 기무사령관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주도하는 하나회의 핵심 멤버로 정치색을 강하게 띤 군인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1993년 3월 8일 뉴스

단 4시간 만에 별 7개가 떨어졌어. 이날을 일명 '3.8 대첩'이라고 불러. 이때 김영삼 대통령의 유명한 어록도 나와.

"'봤지? 깜짝 놀랐지?'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하나회 멤버들이 거부라든가 저항을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는 전광석화식으로 그런 일을 단행한 거죠."

-김덕룡, 前국회의원, 당시 정무제1장관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한 기습 인사였어.

"오래전부터 생각이었거든요. 당선되기 전부터 생각한 거였죠. '저 모가지 치겠다' 그래서 나는 대통령이 되면 바로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회 척결을. 그런데 그 말을 미리 하면 하나회 사람들이 그냥 안 있거든요. 그 사람들도 감히 내가 그렇게 할 거라고 생각을 못 했죠. 급소를 당한 거죠."

-김영삼 전 대통령, 2009년 현대사 증언

김영삼 대통령은 거침없었어. 한 달도 안 돼서 특전사령관, 수방사령관까지 바꿔. 이때 떨어진 별이 6개. 며칠 후에는 실 병력 지휘관과 국방부 인사국장, 육본 인사참모부장까지. 다섯 번에 걸쳐서 군 핵심 요직에 있던 하나회 멤버들을 쳐냈어.

근데, 핵심 요직만 정리하면 끝일까? 하나회를 정리해야지. 이건, 30년 가까이 권력을 쥔 조직이야. 하나회는 아주 깊숙하게 뻗어있었어. 아직 끝난 게 아니야.

그런데, 하나회를 눈여겨보던 사람이 또 한 명 있었어. 당시 3년 차, 유용원 기자야. 지금은 국방부를 30년째 출입하고 있는 군사전문기자야. 그 당시 파보면 뭔가 나오지 않을까 하던 찰나에, 특종을 잡았어.

"하나회에 대해서 좀 더 알아봐야, 파 봐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갖고 취재를 하던 차에 정말 럭키하게 명단까지 입수를 하게 된 겁니다. 그래서 36기까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접하고, 깜짝 놀랐었죠."

-유용원, 조선일보 군사전문기자

당시 하나회는 육사 20기에서 맥이 끊겼단 게 중론이었어. 그런데 무려 36기까지 명단을 입수한 거야. 명단을 보니까 장성뿐만 아니라 그 밑의 요직도 다 하나회 차지였대.

"군은 진급을 굉장히 중요시합니다. 계급장을 붙이고 다니지 않습니까? 진급철이 되면 '동작동 국립묘지에 묻혀 있는 분도 자기가 진급자 명단에 있는지 확인해 보려고 일어나신다' 이런 웃지 못할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진급에 민감합니다. 그런데 제가 파악한 하나회는 군의 요직을 그 당시에도 점하고 있다는 것이 의미가 있었다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유용원, 조선일보 군사전문기자

이대로라면, 자리가 또 대물림되는 거야. 그래서 유 기자는 하나회 명단을 보도했어. 김영삼 대통령도 이 기사를 봤대. 세세한 명단을 이미 파악하고 있던 거야.

"흔히들 우연히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렇게 큰일이 즉흥적으로, 깜짝 쇼로 이루어진 게 아닙니다. 우리가 관심 있게 자료를 수집하고 대책을 사전에 준비하고 있었죠."

-김덕룡, 前국회의원, 당시 정무제1장관

거기다가 쐐기를 박는 기묘한 사건까지 벌어져. 1993년 4월 2일, 서울 동빙고동의 한 군인아파트야. 출근하려고 집을 나선 군인들이 웬 종이가 떨어진 걸 펼쳐보고, 깜짝 놀라. 집 앞, 우편함, 차 유리에 수상한 전단이 뿌려져 있었어.

하나회 명단이었어. 누가 하나회인지, 기수별로 이름이 낱낱이 다 쓰여 있어. 이걸 뿌린 사람은 누구일까? 살포자는 육사 31기, 비 하나회 대령이었어. 하나회 척결은, 한 사람의 뜻이 아니었던 거지.

▲ 하나회의 끝

두어 달간 김영삼 대통령이 떨어뜨린 별만 무려 60개. 그리고 그 바통은 국방부가 이어받았어.

"일반 대다수 장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현저한 특혜를 향유해 왔던 하나회 소속 장교는 강력한 인사 조치를 할 것이며…"

-이충무, 당시 육군 공보실장

위에부터 아래까지, 하나회의 뿌리도 완전히 뽑힌 거야. 김영삼 대통령은 이때를 이렇게 표현했어.

"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릴 수밖에 없다."

기차는 멈추지 않았어. 국회 국정조사에서 이 질문이 쏟아져. 하나회를 잡았으니, 12.12 사태도 다시 조사하란 목소리가 나와. 이때 하나회를 끝까지 물고 늘어진 사람이 있어.

"제가 보안사령관으로 근무할 때 처음 하나회를 발견했습니다. 전두환 장군과 노태우 대령을 처리하려다 해임된 사람입니다."

당시 국회의원인 강창성. 전 보안사령관이었던 그 강창성. 하나회와는 원수나 다름없어. 군복을 벗고도 끝이 아니었대. 조용히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교도소까지 가게 됐대. 외환관리법 위반 혐의로. 명분을 만든 거지. 하필 그때가 전두환 전 대통령이 정권을 잡던 1980년이야. 전두환의 보복이란 의견이 다분했어.

"깜짝 놀랐죠. '아 보안사령관 했던 분이 들어왔구나' 당시 교도소에 재소자 특별 순화 교육이 법무부에서 지침이 내려와서 순화 교육을 시켰죠 교관들이. 봉체조, 봉 상당히 무겁거든요. 긴 봉을 계속 올렸다 내렸다 하다가 이쪽으로 옮겨서 또 하고. 모래가마니 지고 오리걸음으로 걷고, 낮은 포복으로 이렇게 하고. 그때 54세인가 53세인가 그러셨는데, 젊은 애들도 그걸 하고 나면 막 쭉쭉 뻗었었거든요. '저분이 연세도 있고 그런데 저걸 이겨내는구나' 하고…"

-황용희, 당시 교도관

고된 옥살이를 견디고 강창성이 국회의원으로 돌아온 거야. 이때 강창성의 별명은 '하나회 저격수'였어.

"제가 오늘 준비한 것은 50가지를 준비했는데 12.12사태에 가담했던 주요 지휘관들 참모들에 대한 통계를 내보니까 97%가 하나회인데…."

"'그날 모든 하나회 회원들은 사조직 명령을 받아서 일절 이탈돼 있었다' 이렇게 얘기를 했는데 사실입니까?"

"상관을 쏘고 상관을 체포한 일에 대해서 여기서 변명하고 싶습니까?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싶습니까?"

-강창성, 당시 국회의원

여기에 정승화 전 총장과 장태완 전 수경사령관까지 나서면서 12.12에 대한 조사는 제대로 탄력을 받았어.

"(12.12를) 주동한 사람은 역시 전두환 당시 합수본부장 내지 보안사령관이 아니었겠습니까?"

"명분이 있을 수가 없죠. 그게 사리사욕이지 뭡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일개 소장들이 자기 명분 찾는다고 할 것 같으면 이 군대가 나라가 남아나겠습니까?"

-장태완, 전 수경사령관

"나를 체포한 것은 저 말대로 다른 이유가 있었다고 합시다. 그렇다면 육군본부와 국방부 점령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거 아니겠소. 반란이라는 것은 틀림없으니까 이것은 기소가 돼서 마땅히 재판에서 가려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승화, 전 육군참모총장

전두환과 노태우를 포함해 신군부 세력 38명에 대한 고소장이 접수됐어. 그럼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기소유예'. 이때 그 유명한 말이 나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라는 말이.

조사 자체가 거절된 거야. 하지만 이때, 김영삼 대통령이 '역사 바로 세우기에 돌입한다'라고 선언해.

"난 그게 옳지 않다고 생각했죠. '12.12는 군사 쿠데타다' 이렇게 생각했거든요. 성공하고 실패하고 쿠데타는 쿠데타죠. 어떻게 해서 성공한 쿠데타는 쿠데타로 인정 안 한다는 그런 말이 어디가 있느냐고 말이야."

-김영삼 전 대통령

첫걸음이 5.18과 12.12 사태에 대한 재조사였어. 이번엔 결과가 달랐어.

"전 씨는 오늘 새벽 검찰 수사관들에 의해 압송됐습니다. 12.12와 5.18에 대해 전면 재수사에 나선 지 3일 만입니다."

-1995년 12월 3일 뉴스

하나회 회장이자 전 대통령인 전두환과 노태우가 나란히 법정에 섰어. 하나회 핵심 멤버들도 함께 했어. 전두환은 여전히 당당했어.

"내가 하나회 회장입니다. 자꾸 사조직이라고 매도하는데, 그냥 친목 모임이었습니다. 하나회 때문이 아니라 상관의 신임으로 각자 보직을 받은 겁니다."

-전두환

공판은 28번이나 열렸어. 최종 판결은 전두환 무기징역, 노태우 징역 17년. 12.12의 주역들도 많게는 8년까지 징역이 부과됐어. 반란 혐의가 인정된 거야. 법의 심판을 받게 된 사람들, 늦게나마 반성하고 사죄했을까? 아니지. 그렇지 않다는 걸, 우린 너무 잘 알고 있지.

▲ 영원한 하나회 보스 전두환

유죄 판결을 받은 9명은 모두 약 8개월 만에 사면됐어.

"(이번 사면에 대해 하시고 싶은 말 없습니까?) 없습니다."

-최세창, 12.12당시 제4공수특전여단장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허화평, 12.12당시 국군보안사령관 비서실장

"(소감이 어떠십니까?) 감사할 뿐입니다."

-허삼수, 12.12당시 국군보안사령부 인사처장

"할 만했어. 오히려 바깥보다 복잡하지 않으니까 이 안이."

-정호용, 12.12당시 50사단 사단장

그리고 대통령까지 지낸 두 사람, 전두환과 노태우.

"정부의 특별사면이 오늘 이루어져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과 사건 관련 인사들이 모두 풀려났습니다."

-1997년 12월 22일 뉴스

모두 특별사면 됐어. '국민대화합'이라는 명분으로. 대한민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정치군인집단은 그 후론 어떻게 지냈을까?

"전두환 전 대통령 측은 전 재산이 29만원밖에 안 된다며 추징금 1600억 원을 내지 않고 있습니다."

-2011년 6월 16일 뉴스

"마당에 숨겨 놓은 거 있으면, 마당 가서 파보면 되잖아."

전두환은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도, 하나회의 영원한 보스였어.

2021년 11월 전두환 빈소. 이곳에도 하나회 회원들이 속속 도착했어.

고명승, 하나회 회원. 12.12당시 대통령 경호실 작전담당관

장세동, 하나회 회원. 12.12당시 30경비단장

허화평, 하나회 회원. 12.12당시 국군보안사령관 비서실장

하나회엔 전두환이 유일한 충성의 대상이었던 거 같아. 그럼, 하나회를 같이 만들었던 손영길 장군에겐 어떤 기억으로 남았을까?

"나쁜 하나의 대상으로서 말하고 있는데, 그걸 들을 때마다 나는 마음의 가책을 느껴. 하나회가 절대 소위 어떤 자기 이익을 목적으로 해서 말이야. 만들어진 단체는 아니야. 아니 하나회 때문에 호강한 놈도 있어. 사람이 올라가면서 늙어가면서 마음의 때가 꼈겠지. 우리가 하는 한마음 뜻을 그대로 말이야 올바르게 했다면 왜 욕들을 먹고 왜 존경 못 받아…"

-손영길, 하나회 창단 멤버

이후 손 장군은 억울한 옥살이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고, 2011년 마침내 무죄 판결을 받아. 그게, 38년 만이었어. 그리고 이때 받은 보상금이 5억원 있어. 하지만 인생을 되돌릴 순 없는 돈이야. 손 장군은 한참 고민한 끝에, 이 돈을 기부했어. 기부 장소는 육군사관학교였어. 후배들이 초심을 잃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었대.

하나회는 애초에 있어서는 안 될 조직이었을까? 아님, 변질된 게 나쁜 걸까? 또 하나회 회원들에겐, 탄탄대로를 열어 준 로또였을까? 엮이지 말았어야 할, 오점이었을까?

'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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