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녀→식모→가사도우미… 하층 여성노동자의 ‘끝없는 변주’[북리뷰]

장상민 기자 2024. 3. 8.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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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도우미' '아줌마' '파출부' 따위로 불리는 사람들.

"오늘날 우리들 상당수가 하녀의 삶을 살고 있다고 표현해도 결코 언어적 과장이 아니다. 21세기 하녀라는 말을 두고, 시대착오적 발상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지치지 않고 계속되는 '갑질 논란'이나 '특권 논란'도 따지자면 우리가 돈을 중심으로 재편된 사회를 살아가기에 벌어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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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녀 : 빈곤과 낙인의 사회사
소영현 지음│문학동네

‘가사도우미’ ‘아줌마’ ‘파출부’ 따위로 불리는 사람들. 21세기에도 개개인의 이름은 가려진다. 20년 동안 문학 작품을 가로지르는 비평으로 주변부에 위치한 ‘하위자’(subaltern)들에 집중해 온 소영현 한국문학번역원 교수가 ‘하녀’의 역사를 다시 읽는다.

“오늘날 우리들 상당수가 하녀의 삶을 살고 있다고 표현해도 결코 언어적 과장이 아니다. 21세기 하녀라는 말을 두고, 시대착오적 발상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지치지 않고 계속되는 ‘갑질 논란’이나 ‘특권 논란’도 따지자면 우리가 돈을 중심으로 재편된 사회를 살아가기에 벌어지는 일이다.”

저자는 1920년대 근대적 하녀의 등장부터 일제강점기와 해방, 산업화를 건너 연속되는 경제위기 속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변치 않는 하녀들의 삶을 끈질기게 찾아낸다.

책은 각종 기사와 황석영·황정은·공지영 등의 작품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며 다각도에서 재현된 하녀를 발견한다. 황석영의 소설 ‘잡초’ 속 식모 ‘태금’은 도시화되지 않은 채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순수한 인물이며, 황정은의 소설 ‘무명’ 속 수양딸 ‘순자’는 식모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착취당한다. 김기영의 영화 ‘하녀’에서는 주인집 남자에게 성적 매력을 호소하는 역할로 그려지며 1930년대 기사에서는 간통으로 태어난 영아를 살해하는 모습으로 보도된다. 저자는 여종과 노동자 사이에서 부유하는 각기 다른 모습의 하녀들이 공통적으로 헌신적 노동을 요구받는 동시에 무한히 의심받는 객체라고 분석한다.

저자는 끝없이 반복되는 변주의 근본적 원인을 끊이지 않는 빈곤과 여성에 대한 차별에서 찾는다. 그는 대다수 여성의 노동이 ‘싼 맛에 쓰는 것’이며 반찬값을 위한 ‘덤’이기에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불안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하층 계급 여성의 노동이 임금으로 환산될 수 있는 영역”은 “중산층 이상의 여성에게 직분으로 부여된 가사와 돌봄 활동”이라고 이야기한다. 하녀로 인해 돌봄을 비롯한 가사노동은 영원히 여성만의 영역에 남겨지는 동시에 그림자로 존재하는 것이다.

결말에 이르면 하녀는 시공간을 교차하며 확장된다. 저자에 따르면 여성의 노동은 언제나 자본의 최대 효율을 위해 사용됐다. 시간을 확장하여 하녀는 필요에 따라 공장의 노동자와 가정의 현모양처 사이를 넘나든다. 공간을 확장하면 미국과 캐나다 여성의 안정적 경제활동은 필리핀 여성에 의해 가능하고, 홍콩과 싱가포르 가정의 가사 노동은 인도네시아 메이드에게 맡겨진다. 한국에서는 최저임금을 적용받지 않는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도입하자는 법이 발의되기도 했다.

“근대 이후의 삶에 대해 우리가 하는 커다란 오해 가운데 하나는 우리 삶이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고 착각하는 일일 것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근대란 이전의 물질적 일상의 폐기가 아니라 삶의 가치와 의미가 재배치된 일상에 가깝다”는 저자의 말은 하녀의 변주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276쪽, 1만8000원.

장상민 기자 joseph032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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