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선거 문턱 낮추니…“소중한 한표에 다가갑니다”

손현수 기자 2024. 3. 8.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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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공동기획
4일 오전 충남 천안 남서울대학교 지식정보관에서 열린 충남선관위 주최로 발달장애인 대상 투표체험 행사가 열려 참석자들이 체험을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손힘이 약한 분들을 위해 ‘레일 버튼형 특수 기표용구’를 마련했습니다. 하얀 동그라미 부분을 내가 투표하고 싶은 사람의 위치까지 옮긴 다음, 하얀 버튼을 꾹 누르시면 이렇게 투표가 됩니다. (투표용지에는) 한 칸에 하나만 찍어야 해요.”

“우와! 우와!” “저거 뭐예요? 신기하다.”

지난 4일 충남 천안시 남서울대학교 지식정보관 봉사홀. 노은지 충남선거관리위원회 주무관이 ‘레일 버튼형 특수 기표용구’를 들어 60여명의 발달장애인 유권자들 앞에서 시연하자, 호기심과 신기함이 섞인 반응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충남선관위의 ‘선거동행’ 모의투표 체험 프로그램은 발달장애인 유권자들을 위해 마련됐다. 2022년 통계청 자료를 기준으로 만 18살 이상 발달장애인(지적·자폐성 장애인) 유권자는 20만5949명이었다.

‘레일 버튼형’ 기표용구로 투표 편의성 높여

발달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선거는 ‘난관’의 연속이다. 이날 모의투표 체험장을 찾은 한 발달장애인은 “(투표할 때) 그냥 다 어렵다”고 말했다. 그의 곁에서 함께한 사회복지사는 기자에게 “이분들에겐 후보자의 선거 공약이 담긴 홍보물을 읽는 일부터, 투표소에 가는 일, 신분증을 확인하는 일, (기표용구를 들고) 도장을 찍는 일,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넣는 일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어렵다는 뜻”이라고 귀띔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번 총선에서 처음으로 ‘레일 버튼형 특수 기표용구’를 도입했다. 이 기표용구는 손 근력이 약하거나 떨림이 있는 유권자가 사용하기 편리하도록 맞춤 제작한 것이다. 투표용지를 ‘레일 버튼형 기표용구’에 넣은 뒤, 흰색 동그라미 버튼을 위아래로 움직여 자신이 원하는 후보자 위치로 옮기고, 버튼을 누르면 도장이 찍히는 방식이다. 기표를 마치면 투표용지를 꺼내 반으로 접어 투표함에 넣으면 된다.

선관위는 이 기표용구를 지체·뇌병변·척수 장애인 등 350명을 대상으로 수요 조사와 사용 편의성 조사를 거친 뒤 제작했다. 이 용구를 써본 이들의 82%는 사용 편의성과 사표 방지가 개선됐다고 했다. 한 발달장애인은 “도장이 밀리지 않아 편한 거 같다”고 말했다.

쉬운 말 선거용어집도 제작

이날 체험장에서 만난 발달장애인 유권자들은 선거 홍보물이 좀 더 쉬웠으면 좋겠다고 했다. 선관위는 지적·인지·학습 장애 등 발달장애가 있는 유권자들이 선거 홍보물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이해하기 쉬운 선거공보’ 제작 가이드와 용어집도 새로 만들어 각 정당에 나눠 줬다. 후보자들이 공보물을 만들 때부터, 용어 이해가 어려운 발달장애인을 배려해달라는 취지다.

선관위는 ‘우리는 당신에게 지원금을 줍니다’라는 표현을 ‘우리는 당신에게 생활비를 줍니다’로, ‘우리는 반대하지 않습니다’를 ‘우리는 동의합니다’로, ‘잘못을 명명백백히 밝히겠습니다’를 ‘잘못을 모두 찾아내겠습니다’로, ‘19시’는 ‘저녁 7시’로 바꿔 쓰도록 권고했다.

또 ‘4차 산업’ ‘에이아이’(AI·인공지능) ‘역세권’ ‘진상 규명’ 등 지난 21대 총선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공약 용어 200개를 추리고 용례를 담은 ‘쉬운 용어집’도 만들었다. 선관위는 “전문분야 용어와 어려운 용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일상적이고 알기 쉬운 말로 풀어서 사전 형식으로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관위는 발달장애인 유권자가 투표 방법과 절차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애니메이션’도 만들었다. 애니메이션은 투표일과 투표 시간, 준비물, 기표 방법 등을 두루 담았다.

투표소 이동 지원, 기표대는 비장애인보다 크게 제작

“선거 자체도 어렵지만, 사실 투표소까지 가는 게 더 일이에요. 누가 도와주거나 오늘처럼 단체로 인솔하는 게 아니면, 투표소를 찾긴 어렵죠. 실제 투표장에선 기표대도 좀 더 컸으면 좋겠어요.” 이날 발달장애인 10여명과 함께 모의투표 체험장을 찾은 한 복지사는 발달장애인이 참정권을 행사하기가 어려운 현실을 여러 방면에서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발달장애인 유권자들은 투표소까지 가는 과정 자체가 어려움이다.

선관위는 이들의 불편함을 해소하려고 중증장애인 등 이동 지원이 필요한 유권자들에게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차량과 활동보조인을 지원하고 있다. 선관위는 교통 지원이 필요한 유권자는 관할 구·시·군 선관위에 전화로 신청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각 시군구 선관위 전화번호는 총선 전 발송되는 투표 안내문과 전단형 선거공보 우편물에 적혀 있다.

선관위는 또 어르신·장애인·임신부 등 이동 약자가 쉽게 투표소에 접근할 수 있도록 1층 투표소나 승강기가 설비된 투표소를 전국에 걸쳐 1만4088곳 확보했다. 휠체어나 목발 이용자, 유아차 등이 출입할 수 있게 투표소에 임시 경사로를 설치하고, 휠체어 출입이 가능한 대형 기표대도 각 투표소에 모두 설치할 예정이다. 1층이 아니거나 승강기가 없는 투표소는 1층에 임시 기표소를 설치할 예정이다. 투표 과정에서 청각장애인과 현장 안내원의 의사소통을 위한 영상통화 수어통역 역시 전국 모든 투표소에서 지원한다.

선거일 도움이 필요한 유권자는 투표소에 도착해 안내요원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되고, 특수형 기표용구, 확대경, 점자형 투표보조용구 등 투표 편의 물품도 요청할 수 있다.

천안/손현수 기자 boys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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