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묵의 디톡스] 소규모사업장 중처법, 투약 중단이 필요한가?

강동묵 부산대 의대 교수 2024. 3. 8.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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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묵 부산대 의대 교수

중독(toxification)의 정의에는 ‘독성’과 ‘용량’이라는 두가지 주요 키워드가 존재한다. 독성은 일반인이 잘 이해하지만, 용량의 측면에서는 중세인 16세기 화학자(당시 개념으로 연금술사)였던 파라셀수스(Philippus Paracelsus, 파라켈수스라고 읽기도 한다)는 “모든 물질은 독성물질이며 다만 용량이 문제”라고 할 만큼 용량에 강조점을 두었다.

이렇게 독성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파라셀수스의 언명을 소개하면 ‘물도 독이 되는가’라는 질문을 흔히 받는다. 물도 독이 되며, 다만 용량의 문제다.

수분 섭취가 모자랄 경우는 일반인이 잘 알터이지만, 단시간에 많은 양의 물을 섭취하면 저 나트륨 혈증이 생기고 체액의 삼투압이 낮아지는 ‘수분 중독’이 구토 근육경련 혼수를 일으키며 심한 경우에는 사망까지 초래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는 않다.

따라서 사회적 현상에 대해 디톡스(detox: detoxification, 해독)적 접근을 하려 한다면, 이러한 현상이 독성인지, 해독을 해야 할 만큼 심각한지, 어떠한 기전을 통해 독성을 발휘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방법을 통해서 디톡스할 것인지를 종합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오늘의 주제인 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에 대해 고민해보자.

우리나라의 중처법은 2022년 1월 27일 시행되었으나 상시 노동자 50인 미만(건설업 공사금액 50억 원 미만) 사업장은 2년의 유예기간을 두어 올해인 2024년 1월 27일 전면 시행됐다. 건설업을 포함한 소규모 사업장의 준비부족을 이유로, 여야 국회와 고용노동부 등을 중심으로 법 유예 기간을 연장하자는 정치적 협상이 시도되었으나 합의 불발로 이 법은 예외없이 적용되게 되었다.

그러면 우선 소규모 사업장의 중대재해가 ‘독성’이라고 불릴 정도로 심각한지부터 보자. 우리나라가 OECD에서 1등을 하는 불명예스러운 몇 가지가 있는데, 노동시간과 산재사망률이 대표적인 것들이다. 특히 산재사망율은 매우 큰 문제로, 소규모 사업장의 산재사망률은 심각하다. 2022년 우리나라 전체 산재 사망자 2223명 중 1327명(61.7%)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그렇다면 그 다음 단계로, 중처법이 맞는 디톡스 방법인가를 고민해보자. 우리나라에서는 중처법 이전에도 산재사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가지 시도가 존재했다. 특히 2018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김용균씨의 사망사건이 계기가 되어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이 전면 개정되었고 법정의 양형기준이 강화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소된 사건에 실형이 선고되는 경우는 극히 낮고(2.1% 정도) 산재사망률은 감소되지 않았다. 말하자면, 강력한 해독제를 썼음에도 독성이 줄어들지 않았고, 더 강력한 해독제를 써야만 환자를 살릴 수 있게 된 상황이었다. 환자가 병균에 감염이 되면 의사는 항생제를 사용하게 되는데, 항생제를 충분한 용량 또는 기간동안 사용하지 않게 되면 이 균은 항생제 내성이 생기게 되고, 부적절한 여러 가지 항생제를 불충분하게 사용하게 되면 어떠한 항생제에도 듣지 않는 다제내성 균에 의한 감염이 발생하게 되어 치료가 불가능한 경우가 생기게 된다.

우리나라는 중대재해에 대한 여러 항생제 처방에도 불구하고, 효과가 미미해 반코마이신(vancomycin)과 같은 강력한 최종적인 항생체 처방이 내려진 상태다. 중대재해에 중독된 우리나라를 살리기 위해서는 강력하면서도 가장 마지막 보루인 중처법이 처방된 상태다. 충분한 용량으로 충분한 기간동안 실시하지 않고 중간에 용량을 줄이거나 중단하는 경우, 중대재해는 다제내성 세균처럼 백약이 무효한 상태가 될 것이 명약관화하다.

그럼 2년 정도 시행한 중처법은 디톡스 효과를 보이는가를 한번 살펴보자.

50인 이상 사업장에 대해 중처법이 시행된 첫해인 2022년, 산재사망자는 2021년 대비 5.7%(39명), 중대재해 건수는 8.1%(54건) 감소했고, 2023년 1~3분기 사망자는 10%(51명) 줄었다. 산재사고는 추락 끼임 부딛힘 등 재래형 원인에 기인한 3대 기본 안전수칙 미준수 사고가 가장 많은데, 법 시행 이후 이러한 사고도 2021년 67.8%에서 2022년 65.4%로, 2023년 1~3분기 61.2%로 낮아지는 추세를 보인다.


이러한 산재 사망건수의 감소와 재래형 재해 감소의 원인이 중처법의 결과라고 해석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다만, 우리사회는 산재사망이라는 독성에 중독되어있고, 이를 디톡스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법을 시작한 이상 장기간 강력하게 처방을 유지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을 시도하는 것은 환자를 포기하는 길이 될 수 있다. 물론, 이 디톡스에 더해서 환자의 영양상태를 좋게 하고, 운동을 통한 기초체력을 향상하며, 이 요법이 필요함을 설명해 복약 지도를 잘 따르게 하는 등 보조적인 방법을 같이 쓰는 것은 도움이 될 것이다.

소규모 사업장 중대재해, 처벌이 능사는 아닐 수도 있지만, 중처법이 시행된 이상 이제는 다른 방법은 상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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