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오가 '패스트 라이브즈'로 얻은 것[TF인터뷰]

박지윤 2024. 3. 8.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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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해성 役 맡아 열연
"철학적으로 접근한 인연…연기 대하는 방식 달라졌어요"

배우 유태오가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개봉을 기념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CJ ENM
[더팩트|박지윤 기자] 배우로서 소화할 수 있는 캐릭터의 폭을 넓혔고 커리어적으로 유의미한 기록을 남겼다. 더 나아가 앞으로 연기를 대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그렇게 '패스트 라이브즈'는 유태오에게 여러모로 뜻깊은 작품이 됐다.

유태오는 6일 스크린에 걸린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감독 셀린 송)에서 주인공 해성 역을 맡아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그는 개봉을 앞둔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작품은 서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첫사랑 나영(그레타 리 분)과 해성이 24년 만에 뉴욕에서 다시 만나 끊어질 듯 이어져 온 그들의 인연을 돌아보는 이틀간의 운명적인 이야기를 그린다.

유태오(위쪽)는 어린 시절 첫사랑 나영과의 인연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뉴욕에 온 해성 역을 맡아 극을 이끈다. /CJ ENM
먼저 유태오는 '패스트 라이브즈'에 끌린 이유를 밝혔다. 작품 전반적으로 녹아든 인연이라는 철학과 마지막 장면이 남긴 깊은 여운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는 그는 "제가 느꼈던 감정을 잘 전달하면 누구라도 영화를 잘 봐줄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이 있었어요. 설레고 기대됐어요"라고 회상했다.

'패스트 라이브즈'에 합류하기 위해 오디션을 본 유태오다. 약 3~4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시나리오와 캐릭터를 분석하고 영상 촬영을 끝낸 그는 그로부터 2주 뒤 2차 오디션을 보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렇게 셀린 송 감독과 만나게 된 유태오는 "해성의 신을 다 연기하니까 3시간 30분이 걸렸어요. 하면 할수록 자신감이 붙었고 그쪽에서도 제 소울을 탐구하기 시작했죠. 기운이 좋았어요. 그리고 2주 후에 캐스팅 소식을 들었죠"라고 설명했다.

극 중 해성은 어린 시절 첫사랑인 나영과의 인연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뉴욕에 온 인물이다. 유태오는 24년에 걸쳐 첫사랑을 마주하는 인물의 복잡다단한 내면을 그려내며 멜로 연기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특히 독일에서 태어나 다국적 문화에서 자라와 그동안 한국 작품에서 주로 교포 역을 맡았던 그가 이번 작품을 통해 평생을 한국에서만 살아온 캐릭터를 연기해 더욱 흥미를 안긴다.

늘 자신의 언어와 어휘력을 걱정하는 유태오이기에 '평범한 한국 남자'를 자신에게 준 셀린 송 감독의 생각이 궁금했다. 하지만 그는 이를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다. 어떠한 포인트를 객관화시키면 연기를 주관적으로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유태오는 궁금증을 잠시 묻어두고 연기 코치와 함께 대사 연습을 하고 자신과 해성의 공통 분모를 찾으며 캐릭터에 몰두했다.

유태오(위쪽 사진의 오른쪽)는 " 작품 전반적으로 녹아든 인연이라는 철학과 마지막 장면이 남긴 깊은 여운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작품에 끌린 이유를 밝혔다. /CJ ENM
"저는 다문화 배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소속감을 느끼고 싶고 결핍을 없애려고 노력해요. 소통할 때 정확한 말을 선택하려고 하지만 의지대로 되지 않는 제 운명을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하죠. 이런 슬픔과 아픔을 아름다움으로 표현하자면 멜랑꼴리인 것 같아요. 누구나 멜랑꼴리함을 느끼지만 스크린을 통해 전달되느냐 안 되느냐의 차이거든요. 제 멜랑꼴리함에 자신있었어요. 제 안에서 너무 크게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믿고 갔죠."

2018년 주연작 '레토'가 그해 제81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하면서 주목받았던 유태오는 이번 작품으로 제77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BAFTA)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아쉽게도 수상은 불발됐지만 한국 배우 최초로 노미네이트됐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기록을 남겼다. 또 '패스트 라이브즈'는 해외 유수 영화제를 휩쓸었고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각본상 부문 후보에 오르며 최초와 최고 기록을 써 내려가고 있다.

이날 유태오는 "저는 인생을 기대 없이 사는 사람이에요. 희망은 있지만 기대는 하지 않아요. 기대하면 상처받을 수 있는 여지가 생기니까요"라며 "20년 동안 연기했지만 미국에서는 신인 배우거든요. 그렇기에 앞으로 5년 동안은 그 커뮤니티의 가족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시간 동안 시상식 후보에 올라도 기대하지 않고 제 실력을 보여주면서 인정받는 게 우선이에요"라고 시상식 레이스를 펼치고 있는 소감을 전했다.

유태오는 "진솔하고 용감하게 자기 표현을 하는 게 깡을 갖고 표현하자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CJ ENM

'패스트 라이브즈'는 한국적 정서인 '인연'을 깊이 있게 담아낸 작품이다. 이를 위해 철학적으로 인연을 바라봤다는 유태오는 연기를 대하는 방식이 달라졌다고.

"제가 앞으로 연기해야될 캐릭터를 인연이라는 철학으로 바라보면 다 제가 살았던 영혼이 돼요. 기술적인 면으로 접근할 필요가 없고 믿음의 문제가 되는 거죠. 제가 무교인데 일에 관해서 '이 세상의 이치는 무엇인가'라는 생각에 깊게 빠졌어요. 연기를 접근하는 방식이 달라졌죠."

긴 무명 생활을 버티고 전 세계로부터 주목받는 배우가 된 유태오다. 다문화적인 배경으로 인한 부족한 부분은 거듭되는 연습으로 극복하고 있고 다양한 색을 표현할 수 있는 팔레트는 강점으로 내세우며 입지를 공고히 다지고 있다. '나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고민했던 그는 의외의 지점에서 명쾌한 답을 찾았고 '패스트 라이브즈'로 글로벌 시장에서 인지도를 쌓았다. 혼란스러웠던 정체성에 휘둘리지 않고 끊임없는 노력과 탐구를 거듭한 끝에 얻은 값진 성과다.

"한국어로 연기할 때 제 목소리를 찾아야 하잖아요. 언제까지 누군가를 흉내낼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서열로 눈치를 보고 사무적인 문화에서 주변을 살피는데 제대로 자기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존재할까 싶었어요. 저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자기 목소리를 시원하게 내지 못한다는 결론이 나왔죠. 그렇다면 한석규 이병헌 최민식 송강호 선배들은 어떻게 그걸 뚫었을까요. 단순하게 생각하면 깡인 것 같아요. 진솔하고 용감하게 자기 표현을 하는 게 깡이잖아요. 저도 깡을 갖고 표현하자는 자신감을 갖게 됐죠."

"저는 어디를 가도 외로울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아내가 저에게 그건 아티스트가 느낄 수 있는 축복이라고 하더라고요. 더 많은 걸 표현할 수 있는 저만의 팔레트인 거죠. 감정의 범위가 넓어지는 건 저의 무기죠. 그렇기에 이를 잘 감싸고 극복하고 싶고 칼 가는 마음은 늘 있어요. 좋으면서도 외롭다고 할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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