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따박따박’과 이재명 ‘사이다’의 악순환

황준범 기자 2024. 3. 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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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이재명 민주당 대표. 연합뉴스

[뉴스룸에서] 황준범│정치부장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모두 말 잘하고 토론에 능하기로 유명하다. 지난 연말 한 위원장이 정치에 뛰어든 이후 두 사람이 여야 대표로서 말 대결을 해본 적은 없다. 그러던 두 사람이 연일 장외에서 티격태격하며 설전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각각의 공천 작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이제 4·10 총선 본선 모드로 전환하면서 화력을 상대방에게 집중하는 양상이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물론이고 두 사람 개인의 정치생명까지 걸려 있기에, 상대방을 향한 입은 더욱 거칠어질 가능성이 높다.

한 위원장 화법은 ‘따박따박’으로 알려져 있다. 법무부 장관 시절 국회에서 야당 의원들에게 한마디도 지지 않고 반격하는 영상이 인터넷에 무수하게 돌아다닌다. 이 대표는 ‘사이다’ 화법으로 이름을 알렸다. 발언에 신중한 문재인 전 대통령과 대비되며 더욱 유명세를 탔다. 하지만 최근 두 사람이 하는 말에는 적대와 증오, 조롱이 더 짙어지고 있다. 누가 더 짜릿하고 통쾌하게 상대를 찌르는지 경쟁하는 듯하다. 안타깝게도 언어는 물론 정치의 품격마저 하향 평준화하는 행태다.

공천을 놓고 겨루는 모습을 보자. 한 위원장은 민주당 공천을 “대장동식 공천”이라고 했고, 최근에는 “새 물이 아닌 더 더러운 물로 채워넣는 구정물 공천”이라고 했다. 그러자 이 대표는 국민의힘 공천을 “썩은 물 공천, 고인 물 공천, 입틀막 공천”이라고 맞받았다. 한 위원장은 공천을 위한 경선 투표 결과 집계 과정을 경선 참여 후보에게 공개하기로 결정했다고 알리면서 “이재명 대표의 더불어민주당은 이렇게 할 수 있을까요?”라는 입장문을 냈다. 이 대표의 불공정 공천, 사천 논란을 파고든 것이다.

이 대표는 한 카페 사장에게서 돈봉투를 받는 장면이 공개된 정우택 의원이 국민의힘 총선 후보로 공천된 것을 두고 “우리 민주당 같으면 돈봉투 주고받은 거 확인되면 절대로 공천하지 않는다”고 공격했다. 기자들이 이에 대해 묻자, 한 위원장은 “일방적인 주장이 있다 해서 그 주장이 있단 것만으로 어떤 후보를 배제하는 건 다른 문제”라며 “이 대표는 기소된 게 몇개인가”라고 되물었다. 피장파장이다.

상대방을 공격하는 데 집중한 나머지 정치 도의도 망각한 모습이다. 이 대표는 탈당한 김영주 의원의 “윤리점수 빵점”을 연일 언급하더니, 페이스북에 “권성동과 김영주의 공통점은?”이라는 글을 올려 두 사람을 동시에 조롱했다. 김 의원과 권 의원의 채용비리 의혹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한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 고용노동부 장관을 지내고 민주당 몫으로 국회부의장까지 오른 김영주 의원을 “큰 정치인”이라며 주저 없이 국민의힘으로 받아들였다. ‘의석 한 석 추가’라는 목표 말고는 설명이 안 된다.

두 사람은 자신이나 소속 정당에 비판적인 언론에 대해서도 악의를 여과 없이 드러낸다. 한 위원장은 이 대표에게 ‘대부분 방송사의 요청’이라며 ‘일대일 토론’을 하자고 압박했다. 말끝에 “엠비시(MBC)조차 요청하고 있지 않냐”고 했다. 그 말이 꼭 필요했을까? 문화방송이 일기예보 화면에 파란색 숫자 ‘1’을 노출한 것을 비꼰 것으로, 한 위원장은 이를 두고 “엠비시에서 민주당 선거운동성 방송을 했다”고도 했다. 한 위원장은 정당과 언론에 대한 ‘피아’ 인식이 머릿속에 뚜렷하고, 이를 숨길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이 대표도 거칠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의 전국 순회 민생토론을 관권 선거라고 비판하면서 “대통령부터 집권 여당, 중립을 지켜야 할 일부 언론까지 협잡하고 있다”고 했다. 또 민주당 공천을 다룬 일부 언론의 보도를 비난하면서 “선거에 부당하게 개입하는 허위사실 공표를 통한 낙선 목적 불법 선거행위다. 민주공화정 선거를 망치는 반헌정행위”라고 했다.

올 초 이 대표가 피습당하고, 배현진 의원이 공격당했을 때 정치인들은 일제히 폭력을 규탄하고, 혐오를 부추기는 정치권의 자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흉기를 들어야만 폭력인 게 아니다. 정치인, 그것도 가장 큰 스피커를 지닌 여야 대표가 하는 말은 사람들에게 치유와 위로, 감동을 줄 수 있지만 정치 혐오와 국민들의 피로감을 키우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유튜브 쇼츠거리 만들기 경쟁하듯 선거 치르지 마시길 바란다. 월급, 세금, 학비, 집값, 의료 부담부터 일자리, 저출생, 기후변화에 이르기까지, 묵직하게 할 얘기가 너무 많지 않나.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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