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 속박…나이듦의 공포 키우는 요양원, ‘효율’만 따져야 하나

양선아 기자 2024. 3. 7.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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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인간 중심 노인요양시설’
‘요리아이의 숲’ 무라세 다카오 소장
‘돌봄, 동기화, 자유’ 한국서 출간
돌봄과 늙음 고정관념 깨부숴
‘요리아이의 숲’ 입소자들이 야외에서 식사를 하는 모습. 무라세 다카오 제공

기저귀 3개를 동시에 채우고 신체 억제대에 노인을 결박하고, 다른 입소자가 보는 데서 옷을 벗기며 노인 인권을 유린하는가 하면, 수면제와 진정제 투약을 남발하는 곳…. 국내 뉴스에 드러난 요양원의 모습이다. 한국 노인요양시설에 대한 이런 뉴스를 접하면 누구나 ‘나이듦’을 공포스럽게 여기게 된다. 그 공포는 ‘늙음=기능저하와 무쓸모=사회적 고립 또는 학대’라는 통념을 만들어내고 노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까지 이어진다. 그런데 여기 “늙음의 세계에 있는 자유에 매료됐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돌봄은 힘든 것’ ‘늙음은 기능저하’라는 기존 관념을 전복시켜버린 주인공은 바로 일본 노인요양시설 ‘요리아이의 숲’의 무라세 다카오(60) 소장이다.

‘돌봄, 동기화, 자유’를 펴낸 일본 노인요양시설 소장 무라세 다카오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본인 제공

그가 37년 동안 노인들을 돌보면서 겪은 다양한 에피소드와 ‘돌봄과 나이듦’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담은 책 ‘돌봄, 동기화, 자유’(다다서재)가 국내에 출간됐다. 서면 인터뷰를 통해 무라세 소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인생의 시작과 마지막 시기, 사람은 몸의 세계에서 살아갑니다. 몸은 항상 ‘지금’을 원합니다. 지금, 먹고 싶다, 지금, 오줌 누고 싶다, 지금, 자고 싶다.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고, 지금인 것입니다. 그런 욕구를 들어줄 때 중요한 것은 ‘타이밍’입니다. 항상 ‘지금’ 원하는 어르신들의 몸에 부응하기 위해 저는 일정표를 짜지 않고, 직원에게 임무도 부여하지 않아요.”

일본 후쿠오카의 작은 목조 건물에 자리잡은 ‘요리아이의 숲’은 ‘인간 중심 노인요양시설’의 표본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인지저하가 있는 노인이라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고, 약물 투여도 없으며, 식판이 아닌 그릇에 음식을 담아 입소자들이 둥그렇게 모여 앉아 밥을 먹는다. 요양원에는 입소자들과 ‘동기화’되어 입소자들의 몸이 원하는 일을 함께하기 위해 애쓰는 돌봄자들이 있다. 또 바깥에는 노인을 사회 구성원으로 수용하는 지역 사회가 있다. 입소자가 이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인간답게 살 수 있을 것 같은 이 요양원은 일본 엔에이치케이(NHK) 다큐멘터리 방영 뒤 일본 사회에서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다.

‘돌봄, 동기화, 자유’ 책 표지

이처럼 기존 요양원과 다른 시스템은 ‘늙음과 돌봄’에 대한 다른 관점에서 만들어졌다. 무라세 소장은 “갓 태어난 아기가 말하지 못하고 걷지 못하는 것은 기능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런 존재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노인이 말을 잃고 걷지 못하는 것 역시 그런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라며 “우리 모두는 늙은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를 인식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노인=부자유’라는 생각도 착각이라고 말한다. 많은 노인들은 시간과 공간을 가늠하지 못하고 기억이 모호해진다. 기능(능력)을 기준으로 인간 존재 가치를 평가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부정적으로 여긴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 노인들을 바라보는 그는 노인들이 시간이나 공간, 각종 규율, 규범에서 자유롭다고 말한다. ‘나라면 이래야 한다’는 믿음이 해체되면서 노인들에겐 새로운 자유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무라세 소장은 “노인들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무당과도 같은 말솜씨, 독창성 넘치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창의력 등 약동적인 그 무엇을 지니고 있다”며 “나이듦이란 ‘기능저하’가 아니라 ‘내가 변화하여 새로운 나로 바뀌는 과정’”이라고 정의했다.

인지저하가 있는 노인이라도 돌아다닐 수 있는 일본 노인요양시설 ‘요리아이의 숲’. 노인들이 둥그렇게 모여앉아 식판이 아닌 그릇에 담긴 음식을 먹고 있다. 무라세 다카오 제공

그는 돌봄 운영 원칙도 남다르게 제시한다. 효율이나 성장이라는 목표 따윈 잊고 ‘지금, 여기’에만 몰두하는 ‘돌봄 시스템’, 어려움을 겪는 한 인간이라는 존재를 시작점으로 시스템을 세우는 돌봄 구조에 기반한 원칙이다.

“가령 레크리에이션이 오후 2시부터 시작한다고 해보죠. 그런데 15분 전에 한 어르신이 ‘오줌 마려워’라고 호소하면, 담당 직원은 자신의 임무를 팽개치고 배설 보조를 할까요? 임무를 맡은 직원은 예정에서 벗어난 어르신의 요구보다 조직의 목표를 우선하는 경향이 있어요. 저희는 그와 같은 본말전도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고 있어요.”

“성과를 추구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돌봄”이라고 말하는 그는 이처럼 “눈앞을 중시하는 태도가 ‘요리아이의 숲’의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기존 경제와 산업계에서 말하는 효율화를 돌봄에 끌어들였을 때 노인 학대가 발생한다고 경고하고, 우리 모두 ‘늙음의 세계’에서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령화 사회의 모든 문제는 쓸데없는 것을 배제하고 효율화를 꾀하는 근대적 시스템과 본래 인간이 겪는 자연스러운 과정인 노화가 대립하면서 생겨난 것입니다. 이 대립을 완화하려면 늙음에서 배우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늙어서 ‘하지 못하는 것’이 늘어난 몸을 부정적으로만 여기기보다 오랫동안 애쓴 몸의 노고를 더욱 치하하고, 육신의 한계를 고려하여 살아가는 방식과 일하는 방식을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은 경제와 생산의 양산 방식을 완전히 재검토하는 커다란 사회 개혁입니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무라세 다카오 소장 인터뷰 전문

-노인요양시설 ‘요리아이의 숲’이 처음 어떻게 만들어졌고, 소장님이 언제부터 이 일을 시작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요리아이의 숲’에 대한 자세한 소개 먼저 부탁드립니다.

“23살에 요양과 관련한 일을 시작해 20대에는 특별요양노인홈에서 생활지도원으로 근무했습니다. 30대에서 50대 전반에는 주간돌봄센터의 소장을 맡으며 재택 지원을 해왔습니다. ‘요리아이의 숲’이 문을 연 것은 자신의 집에서 생활할 수 없는 어르신이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희가 그저 입주할 뿐인 시설을 만들려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 어르신들이 오랫동안 살아 익숙한 집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지역의 거점이 되려고 했지요. 현재 ‘요리아이의 숲’은 26명의 어르신이 살아가는 ‘특별양호노인홈’입니다.

‘특별양호노인홈’이란 중증 질환 등으로 가정에서 생활이 불가능해진 고령자가 입주해 생활하는 요양시설로 입주 자격이 까다롭지만 비교적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공적개호보험(公的介護保険) 제도의 시설입니다. (참고로 한국의 노인장기요양보험은 일본의 공적개호보험을 기초로 만들어졌다.) 시설 이용료는 이용자에게 얼마나 돌봄이 필요한지 이용자의 연 수입은 얼마인지에 따라 결정됩니다. 수입이 적어 비과세 세대에 속하는 이용자라면 매월 9~10만엔 정도입니다. 저희가 임종까지 지켜볼 수 있기 때문에 어르신이 원하면 마지막까지 머무를 수 있습니다.”

-‘돌봄, 동기화, 자유’를 보고 ‘노인의 삶에 대한 탐구보고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나이 들면 고집 세지고, 노인 특유의 냄새가 나고, 느려지고, 기억력이 감퇴하고, 근육이 감소한다 등 부정적인 것에 초점을 맞춰 나이듦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노인 되는 것을 거부하고 청춘을 찬양하지요. 그런데 작가님은 어르신들을 돌보며 어른의 자제성에 대해 보고 느끼고 깨달은 것 같아요. 우리가 사회가 갖고 있는 ‘늙음’ ‘나이듦’에 대한 통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또 새롭게 알게 된 ‘늙음’과 ‘나이듦’에 대해 설명해주신다면요?

“현대 사회에서는 ‘성장’이라는 개념이 매우 폭넓게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 오늘날 성장이란 ‘능력 향상’과 ‘기능 확대’라고 정의되고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사람’은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데 비해 ‘하지 못하는 사람’은 부정적인 취급을 받습니다. 이런 기준은 단지 나이 든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대 사회에는 기능(능력)을 기준으로 인간의 존재 가치를 평가하는 버릇이 생겨버렸으니까요. 그래서 늙음을 ‘할 수 있느냐/할 수 없느냐’ 혹은 ‘정상/이상’이라는 대단히 좁은 틀에 가둬둔 채 바라보고 있습니다. 저는 ‘늙은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를 인식하려고 합니다. 갓 태어난 아기가 말하지 못하고 걷지 못하는 것은 기능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런 존재인 것이죠. 마찬가지로 노인이 말을 잃고 걷지 못하는 것 역시 그런 존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항상 변화합니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지는 감각도 노화라는 몸의 변화에 맞춰 변하게 마련이죠. 늙음이란 기성관념과 말 같은 머릿속 세계에서 해방된, 개개인의 생생한 체감으로 가득한 ‘몸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소장님과 ‘요리아이의 숲’ 보호사분들은 어르신들의 감정, 생각, 느낌을 존중하고,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어르신들과 자신을 ‘동기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태도가 돋보입니다. ‘동기화’를 잘 하기 위해 요리아이에서는 어떤 노력들을 하고 있고, 또 어르신들의 감각에 좀 더 닿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요?

“인생의 시작과 마지막 시기, 사람은 몸의 세계에서 살아갑니다. 몸은 항상 ‘지금’을 원합니다. 지금, 먹고 싶다. 지금, 오줌 누고 싶다, 지금, 자고 싶다.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고, 지금인 것입니다. 그런 욕구를 들어주는 데 중요한 것은 바로 ‘타이밍’입니다. 특히 배설은 ‘기다려!’가 통하는 일이 아니죠. 항상 ‘지금’ 원하는 어르신들의 몸에 부응하기 위해 저는 일정표를 짜지 않고, 직원에게 임무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가령 레크리에이션이 오후 2시부터 시작한다고 해보죠. 담당 직원은 레크리에이션이 시간표대로 이루어지도록 역산해서 지금 해야 하는 일을 결정합니다. 레크리에이션이 시작되기 15분 전에 한 어르신이 “오줌 마려워”라고 호소하면, 담당 직원은 자신의 임무를 팽개치고 배설 보조를 할까요? 임무를 맡은 직원은 예정에서 벗어난 어르신의 요구보다 조직의 목표를 우선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희는 그와 같은 본말전도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성관념과 규범을 지키기 위해 평소부터 몸이 느끼는 체감을 억압하며 살아갑니다. 고정관념을 놓아버리고 더욱 자신의 몸에서 생겨나는 체감을 소중히 한다면, 어르신에게 가닿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에서 ‘동기화’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이 개념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을까요?

“저는 돌봄이란 두 몸이 하나의 행위를 해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특히 인지저하증(치매)이 있는 분은 몸이 소변을 보고 싶다고 느껴도 마음이 화장실을 가기 싫어하는 경우가 있죠. 돌보는 사람은 상대방의 리듬과 속도에 맞추거나 적절한 타이밍을 가늠하여 화장실에서 소변을 본다는 행위를 완수합니다. 그렇게 이루어지는 돌봄은 말이나 의식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몸끼리 마음을 맞추는 느낌에 가깝습니다. 제가 책에 쓴 ‘동기화’란 두 몸이 하나의 행위를 해내기 위한 합의, 혹은 그 행위를 해내는 과정을 뜻합니다. 그 과정을 공유하면 소변을 시원하게 보았을 때의 상쾌함을 돌보는 사람도 느끼는 경우가 있습니다. 행위뿐 아니라 감각도 동기화하는 것이죠.”

-‘요리아이의 숲’은 일본에서도 꽤 드문 사례라고 알고 있습니다. ‘요리아이의 숲’이 여느 돌봄시설과 다른 방향을 추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그런 방향을 실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요리아이의 숲’이 만들어진 계기는 혼자 살던 92살 할머니의 “익숙한 집에서 죽고 싶다”라는 바람을 들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의 지원은 한 사람이라는 존재에서 비롯됩니다. 지역에서 하는 활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할머니, 어느 할아버지가 곤란을 겪을 때 지원을 시작하죠. 즉, ‘요리아이의 숲’의 운영체제는 어려움을 겪는 한 인간이라는 존재를 시작점으로 시스템을 세우고, 또 다른 인간의 어려움에 따라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회사에 있을 법한 조직 발전을 위한 목표와 계획 등이 저희에게는 없습니다. 저희는 어려움을 겪는 한 인간에게 필요한 일을 해주는 것을 거듭해왔습니다. 그와 같은 실천을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를 걱정하지 않으며,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는 것에만 몰두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눈앞을 중시하는 태도’가 ‘요리아이의 숲’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치매에 대한 사람들의 공포가 있고, 부모가 치매에 걸리면 자식들에겐 재앙이라고 여겨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지저하증이 있는 노인들을 돌볼 때 가장 힘들었던 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내게 주었던 기쁜 일, 행복한 일을 소개해주신다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어르신과 그 어르신이 작가님께 끼친 영향을 설명해주신다면요?

“제게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는 불면을 겪는 어르신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수면 부족은 몸에도 악영향을 미치죠. 특히 저는 잠을 충분히 자야 하는 체질이라 잠자지 않는 어르신과 함께하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어느 할머니는 당직을 하는 제게 “얼른 자라”고 했습니다. 저는 일을 해야 하니 잠잘 수는 없는 노릇이었죠. 저는 옆에 누워서 할머니를 재우려 했지만, 할머니도 저를 재우려 했습니다. 그러다 저도 모르게 깜박 졸았는데, 할머니는 저에게 담요를 덮어주었습니다. “필요 없어요”라는 저에게 할머니는 “안 돼, 안 돼, 감기에 걸리면 여자 책임이야”라고 말씀하셨죠. 하지만 그날은 한여름이었습니다. 인지저하증이 있는 어르신은 시간과 장소에 적합한 언동을 하지 못하기 십상입니다. 그처럼 어긋난 언동에 저희는 물론이고 어르신 자신도 휘둘립니다. 그렇지만 앞서 이야기한 할머니처럼 인지저하증이라고 해서 사람다운 행동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말을 잃어도 표정이나 몸과 몸의 접촉으로 서로 감정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저는 어르신들과 함께하며 사람은 마지막까지 서로 협력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책을 쓰시면서 독자들에게 가장 강조해서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책을 읽고 독자들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나면 좋겠다고 기대하시나요? 이 책을 쓸 때 어떤 독자들을 생각하며 쓰셨나요?

“특정한 독자를 상상하며 쓰지는 않았습니다. 그 동안 제가 만진 것, 들은 것, 냄새 맡은 것, 맛본 것, 본 것, 그렇게 제 감각들로 느낀 ‘체감’을 글로 표현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저는 우리가 ‘목소리’를 잃은 채, 혹은 빼앗긴 채 이 사회에서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데이터를 근거로 삼는 말에 맞서지 못해 침묵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말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목적 달성을 위해서만 말을 계속 사용하면, 결국 사람까지 수단으로 삼아버리게 됩니다. 인지저하증이 있는 어르신의 말은 설령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어도 체감으로 가득합니다.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목소리인 것이죠. 저는 사람들이 자신의 몸에서 생겨난 ‘체감’을 더욱 자유롭게 말로 표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중간에 돌봄 일을 그만두시고 싶었던 경우는 없는지요? 위기는 없었나요? 그 위기는 어떻게 넘기셨나요?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없습니다. 늙음의 세계에 있는 자유에 매료되었으니까요.”

-일본에서는 이 책이 나오고 난 뒤 어떤 반응들이 있었고,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노인요양 관계자 외에도 관심을 주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독자들에게서 부정적으로 여겨왔던 ‘늙음’과 ‘노망’에 대한 이미지가 바뀌었다는 감상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육아하는 어머니나 장애가 있는 아이의 부모들은 자신들도 저와 같은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많이 말해주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요양원에서의 노인 학대 등이 사회문제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요양원에 가면 약물 투입이나 자유롭게 이동을 금지하는 등 관리, 통제되기 때문에 요양원 입소를 두려워하는 어르신들도 많습니다. 일본에서는 이런 문제는 없는지, 또 요양원에서의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나 지자체, 시민들이 어떤 노력들을 해야한다고 보시는지요?

“일본에서도 똑같은 문제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해야 하는 일은 당사자를 위한 제도를 설계하는 것입니다. 돌봄이라는 일은 노동집약적입니다. 일단 국가가 책임지고 돌봄에 필요한 충분한 인원과 인건비를 마련하는 것이 문제 해결을 위한 기본 조건입니다. 그리고 경제와 산업계에서 유행하는 효율화를 돌봄에 끌어들이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효율화가 돌봄 현장에서 ‘여유’를 없애버리기 때문입니다. 돌봄은 일상생활에서 이뤄지는데, 우리의 일상이란 본래 계획적인 것이 아니라 무척 대충대충 진행되며 기분에 따라 휙휙 달라지게 마련입니다. 게다가 돌봄 현장에는 제어하기 어려운 신체의 문제가 있지요. 그 때문에 돌봄에는 ‘제자리에 멈추고’ ‘다시 하고’ ‘몇 번이고 반복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제가 돌봄 현장에 필요하다고 말한 여유란 바로 ‘기다림’의 시간입니다. 지나친 효율화는 그런 기다림의 시간이 돌봄이 실패한 결과라고 판단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 판단은 당사자뿐 아니라 돌보는 사람도 궁지로 몰아넣을 것입니다. 그리고 학대가 일어나는 원인이 되겠죠.

좀 사회평론 같은 이야기입니다만,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는 고령화 문제는 쓸데없는 것을 배제하고 효율화를 꾀하는 근대적 시스템과 본래 인간이 겪는 자연스러운 과정인 노화가 대립하면서 생겨난 것입니다. 이 대립을 완화하려면 늙음에서 배우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사람의 몸은 유한하며 자연의 섭리를 따르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우리는 늙어서 하지 못하는 것이 늘어난 몸을 부정적으로만 여기기보다 오랫동안 애쓴 몸의 노고를 더욱 치하하고, 육신의 한계를 고려하여 살아가는 방식과 일하는 방식을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은 경제와 생산의 양상을 완전히 재검토하는 커다란 사회 개혁입니다.”

-소장님에게 `돌봄‘이라는 무엇인가요? 딱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뭐라고 말씀하시겠어요? 그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성과를 추구하지 않고 하는 것’이 돌봄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살아가는 것과 직결되는 행위는 그저 ‘하다’와 ‘하지 않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지 않아도 된다’ 혹은 ‘해야만 한다’ 같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들이죠. 훨씬 무의식적인 행위들인데, 식사, 배설, 수면이 대표적입니다. 그런데 당사자에게 그저 하거나 하지 않을 뿐인 행위에서 돌보는 사람은 의미와 가치를 찾으려 합니다. 특히 저 같은 전문가는 자신이 하는 돌봄이 당사자에게 의미를 충족하고 있는지, 가치를 달성하고 있는지 같은 판정을 내리기 십상입니다. 그런 판정은 상대방에게 자신이 한 돌봄의 성과를 원하는 것으로도 이어집니다. 돌보는 사람은 그런 태도를 자각하지 못하지만, 돌봄을 받는 사람은 무척 섬세하게 감지합니다. 그러면 당사자는 돌보는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생활하게 되어버립니다. 그런 걸 당사자가 자신의 인생을 살아간다고 할 수는 없겠죠.”

-한국 사회에는 돌봄이란 일방적인 관계라는 통념이 있습니다. 돌보는 사람과 돌봄을 받는 사람이 뚜렷하게 나뉜다는 것이죠. 최근 들어 돌봄이란 ‘상호의존’에 기초한 관계라는 말들이 조금씩 나오고 있지만, 현실에서 그런 관계를 목격하기란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소장님은 ‘상호의존에 기초한 돌봄’을 직접 경험하셨다고 생각합니다만, 돌봄이란 일방향적인 관계라는 통념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돌보는 사람과 돌봄을 받는 사람이 분명히 나뉘고 그런 관계가 고정되어버리는 일은 일본에서도 비일비재합니다. 저는 그런 관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일방적인 관계는 폭력적이기 때문입니다. 바람직한 관계는 양방향적이면서 대등한 것입니다. 바람직한 관계를 맺기 위해 중요한 것은 합의의 과정입니다. 말로 하는 합의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길러온 습관이나 그 사람의 몸에 깃든 고유의 속도 및 리듬과 맞추는 시간적 합의입니다. 매일 반복되는 행위를 함께하며 합의를 거듭하다 보면, 돌보는 사람이 이 관계에서 나도 돌봄을 받고 있구나 깨닫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때가 바로 돌보는 사람 대 돌봄을 받는 사람이라는 관계에서 벗어나는 순간입니다. 대등한 관계란 서로 노력하며 매순간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코 완성되는 것은 아니죠.”

-최근 ‘축소되는 세계’라는 책을 읽었는데 전세계적으로 인구가 줄고 있고 이렇게 인구가 감소하는 시기에는 ‘노인 친화적인 인프라’가 중요하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교통 체계 등 모든 사회적 체계가 노인 친화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요. 작가님은 지역 커뮤니티와 함께 돌보는 체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셨는데요. 노인 친화적 사회 인프라를 만들기 위해 어떤 것들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요? 또 지역 커뮤니티와 함께 돌보는 체계를 만들고자 할 때 장애요소는 무엇이었는지, 그런 장애요소를 어떻게 극복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노인의 특징이란 무엇일까요? 시간과 공간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 기억이 흐릿해진다 등이 있겠습니다. 그런 특징을 고려하면 노인 친화적인 인프라에는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공간, 그리고 기명력, 즉 새로운 것을 머리에 새기는 능력이 부족해도 괜찮은 구조가 필요할 것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거리와 자연의 풍경을 급격하게 바꾸지 않는 것입니다. 이 말을 달리 표현하면 쓰고 버리는 것이 없는, 사람에도 물건에도 돌봄의 손길이 미치는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늙으면 타인의 손길 없이는 생활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뭐든 해내던 생활 습관에서 타인의 손을 빌려 생활하는 습관으로 전환할 필요가 생기죠. 그러기 위해서는 가족을 비롯해 이웃 사람까지 늙어가는 사람의 새로운 습관을 만들어내는 과정에 다 함께 관여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관여해 새로운 습관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방해하는 것은 시장에 의존하는 자기완결적인(스스로 해내야 하고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생활양식입니다. 시장에 의존하기만 해서는 일상생활의 문제를 타인과 협력해 해결한다는 태도가 싹틀 수 없습니다. 시장에 기대어 돈으로 해결하는 데에만 에너지를 할애할 뿐이죠. 어떻게 극복했느냐고 물어보셨지만, 이 문제는 아직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또다른 집필 계획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나이듦과 돌봄 관련해 더 나누시고 싶은 이야기 있다면 자유롭게 말씀해주세요.

“현재 저는 연로한 어머니를 돌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 관한 책을 쓰고 있습니다. 오늘날, 일본을 비롯해 한국, 중국 등 동아시아는 일찍이 인류가 경험해본 적 없는 고령화 사회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노인을 어떻게 돌볼 것인가’ 이 의문에 답하는 수많은 사례가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각자의 경험에서 얻은 지혜와 식견을 공유하여 나이 든 사람은 물론, 한 사람 한 사람이 태어나길 잘했다고, 오래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H6s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번역 김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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