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주도 안한다… 건설사들 ‘초비상’ 선언
국내 10대 건설사 중 하나인 A사는 내부 회의를 거쳐 올해 1년 동안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 사업과 자체 개발 사업을 수주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기존에 진행 중인 공사나 안정성이 확보된 물량을 단순 시공해 주는 것 위주로 최소한의 사업만 하기로 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금리가 언제 내릴지 알 수 없고, 국내 경기도 여전히 불확실하다”며 “회사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공사만 하면서 버티는 것이 올해 목표”라고 말했다.
건설사 수주 활동이 극도로 위축되고 있다. 새해 첫 달인 지난 1월 국내 건설업 신규 수주는 8조5639억원으로 전년 동월(18조4721억원)에 비해 53.6% 줄었다. 2010년 10월(58.9%) 이후 13년여 만에 가장 큰 감소 폭이다. 지난해 연간 건설 수주액도 176조1387억원으로 전년보다 18.5% 줄었다. 역시 1977년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이후 IMF 외환위기 시기인 1998년(-42.6%)을 제외하고는 가장 큰 폭의 감소세다. 이 같은 국내 건설업 위축은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연말 터진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사태 이후 금융회사들이 건설 관련 대출을 옥죄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건설업은 고용 유발 효과는 물론, 가구·전자제품 등 다른 소비 산업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며 “부실 PF 정리도 필요하지만, 건설업 전체 침체를 막는 방안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1월 건설 수주, 13년來 최대 폭 감소
2022년 하반기부터 급격한 부동산 경기 침체를 경험한 건설사들은 올해 들어 대부분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삼성물산, 현대건설, DL이앤씨, GS건설, 대우건설 등 증시에 상장된 대형 건설사들은 올해 수주 목표액을 작년 실적 대비 8% 낮춰 잡았다. 20위권 중견 건설사인 B사도 올해는 사업성이 확보된 공공택지 중심으로 수주 계획을 짰다. 업계 평균보다 부채비율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 C사는 올 상반기 신규 수주를 위한 영업 활동은 중단하고 기존 미분양 현장의 계약률을 높이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법정관리에 돌입하는 건설사도 속출하고 있다. 올해 들어 시공 능력 105위 새천년종합건설과 122위 선원건설 등 건설사 7곳이 법정관리를 신청했으며 5개 업체는 부도 처리됐다. 부동산 불황이었던 작년 1~2월 부도 업체가 2곳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올해 건설 경기가 더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박철한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부동산 경기나 금리, 공사비 등 모든 요소를 감안할 때 지금은 수익을 내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기업들이 판단하고 있다”며 “새해 들어 정부가 발표했던 각종 부동산 규제 완화 방안들도 후속 법 개정이나 행정 절차가 마무리되지 않고 있어 별 도움이 못 되고 있다”고 말했다.
◇“건설업 경착륙 막아야”
건설사들이 보수적 경영에 나서는 것은 앞으로 건설 경기를 그만큼 나쁘게 보기 때문이다. 건설산업연구원이 건설사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경기실사지수는 올해 1월 67, 2월 72로 기준선(100)에 크게 못 미친다. 이 숫자가 작을수록 경기 상황을 비관적으로 보는 기업이 많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건설업이 내수 경제에서 차지하는 중요도를 감안할 때, 건설 경기 경착륙을 막을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2022년 기준 건설업의 부가가치는 335조818억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15.5%를 차지한다. 건설업 취업자가 전체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4%(2023년)에 달한다. 무엇보다 건설업은 취업유발계수(생산액 10억원당 취업자 수)가 11.1명으로 반도체(2.1명), 자동차(7.4명), 선박(8.2명) 등 다른 주력 산업보다 월등히 높다. 건설 현장이 많으면 주변 식당 등 상권이 활성화되고 도배·인테리어 업체 등 소상공인들의 매출에도 도움이 된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건설업은 임금도 높은 편이어서 건설업 일자리가 늘어나면 국민의 구매력이 높아지고 서민 경제에 돈이 도는 효과가 크다”며 “내수 경제 회복을 기대한다면 건설 경기가 더 악화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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