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곡(161)] 유심초 '사랑이여', 못다 이룬 서글픈 사랑

강일홍 2024. 3. 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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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에는 저마다 사연이 있다.

유심초가 부른 불멸의 명곡 '사랑이여'는 최용식 작사·작곡이다.

작곡가 최용식은 군 복무 중에 서세건 작사·작곡인 유심초의 데뷔곡 '너와의 석별'을 듣고 감명받아, 유심초에게 주고 싶은 노래로 '사랑이여'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 곡은 부드럽게 번지며 감동을 극대화하는 유심초의 멋들어진 화음도 압권이지만, 감미로운 리듬에 실린 '별처럼 아름다운 사랑이여 꿈처럼 행복했던 사랑이여'로 시작하는 서정적인 가사가 심금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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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미로운 리듬에 실린 듀엣 하모니와 서정적 가사로 심금
75년 정규 앨범 '너와 나의 석별' 발표 가요계에 정식 데뷔

유심초가 부른 불멸의 명곡 '사랑이여'는 작곡가 최용식의 곡이다. 그는 군 복무 중 유심초의 데뷔곡 '너와의 석별'을 듣고 감명받고 가수 맞춤형으로 '사랑이여'를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KBS

[더팩트ㅣ강일홍 기자] 노래에는 저마다 사연이 있다. 가사에는 누군가 어떤 의미로든 가슴 깊이 새겨진 속마음을 토해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무리 비유나 은유적으로 표현해도 그 의미를 알고 사연을 들으면 가슴이 찡해진다.

[어릴때 교통사고로 몸이 불편한 대학생이 있었다. 매일 학교 가는 시내 버스안에서 만나는 안내양(여차장)이 친절하게 자신을 부축해주고 자리도 잡아줘 고마웠다. 장애를 가진 청년과 가난 때문에 배우지 못하고 시내버스 차장을 하는 처녀는 서로 연민의 정을 느꼈다.

차츰 낯이 익으면서 사랑이 싹텄고 휴일이면 데이트도 하고 서로의 감정을 키워갔다. 청년은 장애가 있었지만 부잣집 외동아들이었는데, 이를 안 부모가 버스회사로 찾아가 난리를 치고 처녀에게 돌이킬 수 없는 모욕을 안겼다. '어디 가난하고 무식한 촌년이 감히 남의 집 귀한 아들을 넘보느냐.'

처녀는 종적을 감췄고 집에 갇혔던 청년은 몇 달 뒤 그녀를 수소문하기 위해 일하던 버스회사로 찾아갔다. 겨우 알아낸 시골집 주소로 달려갔지만, 그녀는 이미 없었다. 고향으로 내려가 1주일을 몸져 누워 앓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오빠 집에 얹혀 살다 객지로 나가 시내버스 차장을 했다는 사연도 알게 됐다.

처녀의 오빠가 말없이 가리키는 뒷산 중턱에 그녀의 무덤이 있었다. 청년은 무덤가에 엎드려 '자신 때문에 죽었다'며 통곡하고 절규하다 며칠 뒤 그녀 뒤를 따라갔다. 죽기전 그가 쓴 유시(遺詩)가 점퍼 주머니에서 나왔다.]

유심초는 오래 활동하지 않았어도 굵직한 궤적을 남겼다. 85년 공식 해체됐지만 현재도 가끔씩 활동하고 있다. /KBS '가요무대'

국문학과 대학생이었던 이 청년이 남긴 유시에 곡을 붙여 만든 노래가 바로 80년대 대히트를 친 유심초의 '사랑이여'다.

'별처럼 아름다운 사랑이여 꿈처럼 행복했던 사랑이여/ 머물고간 바람처럼 기약없이 멀어져간 내 사랑아/ 한송이 꽃으로 피어나라 지지않은 사랑의 꽃으로/ 다시 한 번 내 가슴에 돌아오라 사랑이여 내사랑아/ 아 사랑은 타버린 불꽃 아 사랑은 한 줄기 바람인 것을/ 아 까맣게 잊으려해도 왜 나는 너를 잊지 못하나 오 내사랑'(유심초 '사랑이여' 가사)

유심초가 부른 불멸의 명곡 '사랑이여'는 최용식 작사·작곡이다. 작곡가 최용식은 군 복무 중에 서세건 작사·작곡인 유심초의 데뷔곡 '너와의 석별'을 듣고 감명받아, 유심초에게 주고 싶은 노래로 '사랑이여'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 곡은 부드럽게 번지며 감동을 극대화하는 유심초의 멋들어진 화음도 압권이지만, 감미로운 리듬에 실린 '별처럼 아름다운 사랑이여 꿈처럼 행복했던 사랑이여'로 시작하는 서정적인 가사가 심금을 울린다.

유심초는 유시형 유의형 형제 듀엣으로 결성돼 75년 정규 앨범 '너와 나의 석별'을 발표하며 가요계에 정식 데뷔했다. /온라인커뮤니티

유심초는 유시형 유의형 형제 듀엣으로 결성돼 75년 정규 앨범 '너와 나의 석별'을 발표하며 가요계에 정식 데뷔했다. '사랑이여' 외에도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사랑하는 그대에게' 등의 주옥같은 곡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80년도에 발표된 이세문 작곡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역시 사연이 깃들어 있다. 시인 김광섭의 1969년 시 '저녁에', 그리고 이 시의 한 대목을 제목으로 삼은 김환기 화백의 작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70년)가 모태가 됐다.

미국 뉴욕에서 '전면 점화(點畵)'를 창조하던 김 화백은 서울에서 가까이 지냈던 시인이 별세했다는 잘못된 소식을 듣고, 두고 온 것들에 대한 그리움을 짙푸른 색의 작은 점을 무수히 찍어서 담아냈다고 한다.

유심초는 오래 활동하지 않았어도 굵직한 궤적을 남겼다. 85년 공식 해체됐지만 현재도 가끔씩 활동하고 있다. 활동 당시 유심초 작명 이유에 대해 "음악으로 평화롭게 사는 '유심초'라는 마을이 이탈리아 전설 속에 있다는 이야기를 동화에서 읽고 지었다"고 밝힌 바 있다.

eel@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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