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온라인에서, 창작물에서···“끊이지 않는 페미니즘 사상검증 OUT”
A씨는 지난해 11월 서울 구로구의 한 게임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채용 면접을 기다리고 있었다. 면접 전날 이 회사는 대외적으로 입장문을 발표했다. 서비스 중인 게임 일러스트의 집게손가락을 수정하고, 일부 유저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보고 ‘페미 같다’라고 지목한 여성 패널을 회사 주최 행사에서 제외하겠다고 한 것이다. A씨는 게임 업계 일원으로서 분노했지만 면접을 하루 앞둔 구직자로서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다음날 면접에서 A씨는 ‘이번 스튜디오 뿌리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받았다. 지난해 11월 넥슨은 일부 남성 이용자들이 게임 일러스트의 집게손가락 포즈를 두고 ‘남혐’이라는 음모론을 펼치자 하청업체 스튜디오 뿌리에 사과를 종용하며 작업물을 수정했다. 음모론과 달리 해당 콘티를 남성 애니메이터가 그린 것이 확인됐지만 넥슨은 하청업체에 사과하지 않았다. A씨는 “면접위원이 일종의 마녀사냥이자 원청인 넥슨의 갑질 피해자인 하청업체와 여성 직원의 잘못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라면서 “지원한 파트의 업무와 관련 없는 질문일뿐더러 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에 안일한 태도를 보이는 게임 업계의 현실이 피부에 와닿았다”라고 했다. A씨는 결국 채용되지 않았다.
이처럼 페미니스트라는 낙인이 찍혀 사이버 따돌림을 당하고 업계에서 밀려난 게임·콘텐츠 업계 노동자들의 피해 실태가 6일 공개됐다. 페미니즘사상검증공동대응위원회(공대위)는 이날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페미니즘 사상검증’ 피해 실태를 발표했다. 전국여성노동조합이 지난해 8~12월 진행한 실태조사에서는 피해자 56명이 피해 사례 77건을 제보했다. 유형별로 작업물 교체 및 고지 없이 무단수정 19건이 가장 많았다. 이어 직장 내 괴롭힘(17건), 채용 성차별 및 입사 취소(14건), 사이버폭력(9건), SNS 검열 및 관리(9건), 계약서상 불이익 조항(2건) 순이었다.
피해자들은 SNS에 상식적인 수준의 의견을 개진했음에도 공격의 대상이 됐다고 했다. 여성 방송인을 옹호하는 글이나 2022년 대선 직전 윤석열 대통령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비판하는 게시물을 올렸다는 이유로 익명의 유저들로부터 공격을 당했다고 했다. 사이버불링(괴롭힘)을 당한 한 피해자는 “더 이상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어 유서를 쓰고 극단적 시도를 했을 때도 유서가 커뮤니티 여기저기를 떠돌았다”라며 “그걸 비웃기 위해 SNS와 유튜브 채널에 찾아와 불링을 이어가는 일이 계속됐다”라고 했다.
작업물에 대한 간섭뿐 아니라 회사 활동 전반에서 사상검증과 해고 위협이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피해자는 “회사 대표가 ‘내가 대학생 때는 좋아하는 여학생을 밤에 따라다니는 것이 국룰이었다’며 동조하기를 종용했다”라고 했다. 이에 “그분이 좀 놀라셨을 수도 있겠다”라고 답변했더니, 대표로부터 “사상과 가치관이 맞지 않으니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는 해고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김유리 전국여성노조 조직국장은 “응답자들은 숨 쉬듯이, 일상적으로 피해를 경험하고 있었다”라며 “2016년, 2018년에 있던 사건이 또다시 반복되는 것을 멈추기 위한 조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모여 공대위를 꾸리게 됐다”라고 했다. 김 국장은 공대위가 “피해자 보호와 지원을 위한 신고 채널을 운영하며 법·제도가 작동할 수 있도록 정부와 회사를 압박하는 활동을 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312051853001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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