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공백 메우는 ‘제도 밖’ PA간호사들… “필수의료 맡게 합법화해야”[Who, What, Why]

권도경 기자 2024. 3. 6.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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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at - 양성화 목소리 커지는 PA간호사
대형병원, 20여년 암묵적 고용
수술보조·처치 등 전공의 대행
공식 면허규정 없어 현행 ‘불법’
2010년부터 제도화 시도에도
의사단체 반대에 번번이 무산
“PA간호사 없인 업무 감당못해
의료붕괴 대비해 구조 개선을”

의대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 8000여 명이 병원을 이탈한 가운데 정부가 의료 공백을 줄이기 위해 꺼낸 대책 중 하나는 ‘진료보조(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다. 정부는 지난달 27일부터 ‘진료지원인력 시범사업’을 시행해 PA 간호사에게 의사 업무 중 일부를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업무 범위는 병원장 등이 정한다. 현재 불법인 PA 간호사가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한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내린 조치다. 이는 대형병원에서 암묵적으로 이뤄진 PA 업무를 양성화한 것이다. PA 간호사는 지난 2020년 전공의 총파업 당시에도 정부 지시대로 대체 인력으로 일한 바 있다. 당시 이들은 의사들에게 “불법 의료행위를 했다”면서 고발당했다. 의료 파행 탓에 고질적인 병원 인력의 구조적 문제가 불거지자 PA 간호사를 합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20여 년간 의사 역할을 일부 대체한 이들을 이제는 제도권에 편입시켜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PA 없으면 수술실 마비…이미 전국에 1만 명 = PA 간호사는 의사 지시에 따라 수술 보조, 검체 의뢰, 처방 대행, 봉합, 시술 등을 담당한다. 의사 업무를 일부 수행한다는 점에서 진료보조 업무만을 수행하는 일반 간호사와는 다르다. 각 병원은 수요에 따라 간호사, 응급구조사, 간호조무사 중에서 PA 간호사를 뽑는다. 이들은 간호부가 아닌 의국 소속이다. 수간호사가 아닌 의사 지시를 받는다. 일반 간호사들과 명칭이나 유니폼도 다르다.

현행 의료법상 PA 간호사는 불법이다. PA 면허는 별도로 규정돼 있지 않다. 미국과 캐나다 등에서 명칭을 따왔지만 법적 근거가 없어서다. 의료법 제2조에 따르면 간호사의 업무는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로 제한되기 때문에 PA 간호사는 늘 법적 사각지대에 있다.

PA 간호사가 급증한 것은 2000년대 초반부터다. 2006년부터 의대 정원이 동결돼 의사 수는 부족한데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에는 전공의가 지원하지 않는 현상이 맞물린 결과다. PA 간호사는 외과, 산부인과, 심장혈관흉부외과처럼 전공의가 기피하는 과에 주로 많다. 심장혈관흉부외과에서는 PA 간호사가 없으면 수술방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들이 수술 보조나 봉합, 수술 후 처치(드레싱) 등 전공의가 해야 하는 일을 대신 맡아서다. 각 병원이 필수의료 인력 공백을 전공의가 아닌 PA 간호사들로 메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에 따르면 전국 의료기관에서 활동하는 PA 간호사는 1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보건의료노조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의대 정원, 지역의사제, 공공의대 설립 등 국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PA는 서울아산병원(387명)이 가장 많았다. 이어 충남대병원(284명), 이화의료원(249명), 경상국립대병원(235명), 아주대의료원(137명) 등 순이다.

전국 국립대병원 PA 간호사도 급증하는 추세다. 의료계에 따르면 전국 16개 국립대병원 내 PA 간호사는 지난해 7월 말 기준 총 1259명이다. 이는 지난 2019년 895명에 견줘 40.7% 급증한 수치다. 서울대병원이 166명으로 가장 많다. PA 간호사는 불법 영역인 만큼 대다수 국립대병원은 별도 규정을 마련해 적용 중이다. 서울대병원은 PA 간호사를 임상전담간호사(CPN)라는 명칭으로 분류하고 있다. 사실상 전공의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지침을 두고 있다.

◇의료 현장 현실 인정하고 PA 간호사 양성화해야 = 이미 대형병원에서 PA 간호사의 존재감은 크다. 정부는 2010년부터 PA 제도화를 시도했지만 의사단체의 반대에 밀려 번번이 무산됐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PA 간호사는 불법 의료인력”이라면서 “젊은 의사들의 일자리는 물론 의료체계 전반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의료계는 진료지원인력 시범사업에만 머물 게 아니라 PA 간호사가 법적으로 제도화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PA가 필수의료 분야에서 반드시 필요한 직역이 된 만큼 현실을 인정하고, 양성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에서 필수의료 분야를 맡고 있는 한 교수는 “PA 간호사가 없다면 전공의가 부족한 진료과에서는 현재 인원으로 모든 업무를 감당 못 하는 게 현실”이라며 “의사처럼 지시 권한을 가진 PA를 2∼3년간 임상수련을 거쳐 필수의료 현장에 투입할 수 있도록 합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를 계기로 의료체계 붕괴를 막을 만한 인력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의사가 독점한 권한을 외국처럼 독립 직역에 분산시켜 의사 부재 시에도 국민 생명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권도경 기자 kwon@munhwa.com

美·英 등선 ‘국가 면허’ 내주고 직접 관리… 의료인력 부족·지역간 불균형 해소 차원

■ 합법 ‘PA 면허’ 운영사례

의사 감독하에 진찰·약처방까지

미국, 영국, 캐나다 등 해외에선 진료보조(PA)가 국가 면허로 관리되면서 합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6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국제사회보장리뷰에 게재된 ‘진료지원인력의 정의와 범위에 대한 국제 동향 고찰 및 시사점’에 따르면 미국, 영국, 캐나다 같은 주요 선진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별도의 진료지원인력 양성 과정을 운영해 왔다.

미국은 PA를 의사의 감독하에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 계획을 기획해 약물 처방을 포함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일정 시간의 교육과 인증을 토대로 다양한 분야에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미국 PA의 등장은 1960년대 일차진료 의사 부족에 따른 지역적 불균형 문제가 그 출발로 알려져 있다. 미국 PA 국가시험원(NCCPA)에 따르면 2020년 기준 14만8560명의 PA가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 공인 PA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ARC-PA 및 PA 교육협회(Physician Assistant Education Association·PAEA)가 인증한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NCCPA 국가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영국의 경우 전공의 근무시간을 줄이면서 발생한 진료 공백과 지방의 의사 부족 사태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진료지원인력으로서 PA가 도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 PA는 농촌 지역 등 의사인력이 부족한 지역 일차의료기관에서 주로 활동해 왔다. 2006년 PA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한 뒤 2007년부터 공식 PA 자격을 부여했다.

캐나다의 경우 광활한 국토에 인구가 산재한 특성 등에 따라 1900년대 초부터 군의관과 유사한 형태로 PA가 시작됐다. 본격적으로는 1991년 PA라는 명칭이 부여돼 공식화된 것으로 분석된다. 2003년 캐나다의사협회는 PA를 고유한 의료 전문가로 인정한 바 있으며 2005년 공식 PA 자격시험이 시작되면서 구체화됐다. 미국과 유사하게 거의 모든 임상 환경에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군 의료인력으로도 활용돼 해외 활동도 수행하고 있다.

이용권 기자 freeus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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