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와 우려 속 출범 ‘늘봄학교’…아이들은 웃음꽃, 인력·공간 문제는 풀어야 [밀착취재]
2741개교 운영 속 ‘기대 반 혼란 반’
부산 초교선 실무자 등 300명 배치
맞벌이 가정 학부모들 대체로 반겨
“구체적 안내 못 받아 아쉬워” 반응도
학교 내 유휴공간·예산 부족 지적
강원선 교사들 “업무 늘어” 시위도
교육부 “한 달간 집중점검 후 보완”
“학교에서 이런 놀이를 하는 게 재밌어요. 앞으로 친구도 많이 사귈 생각이에요.”
5일 오전 서울 마포구 아현초등학교. 이 학교 신입생 15명은 오전 7시30분부터 ‘늘봄교실’에서 축구연습, 종이접기, 아프리카 노래 부르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었다. 아프리카어로 ‘안녕하세요’를 뜻하는 ‘살리보나니’ 노래를 부르던 아이들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 취재진이 교실에 들어서자 “갑자기 왜 이렇게 사람이 많아요”라며 호기심을 보였다. 이곳에선 정규 수업 이후 오후 7시까지 오후 돌봄도 이어지는데, 올해 신입생 103명 가운데 48명이 오전·오후 돌봄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 “교실 없고 강사도 부족”…조희연 교육감 “꼴찌 탈출 프로젝트 시작”
전날 오후 경기 수원시 권선구 능실초등학교의 늘봄교실에서도 살가운 모습이 펼쳐졌다. 1층 ‘초1맞춤형 프로그램’ 교실에선 방과후수업 강사와 신입생 1명이 탁자에 앉아 다정하게 책놀이를 이어갔다. 학생이 책을 읽고 떠오르는 이미지를 그림으로 표현하면 선생님이 호응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 학생은 오전에 치러진 입학식 직후 귀가한 다른 학생들과 달리 학교에 남아 늘봄학교의 첫날 맞춤형 프로그램을 이용했다. 돌봄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는 늘봄학교의 취지를 반영한 셈이다.
능실초의 경우 1학년 신입생 183명 가운데 56명이 △초1맞춤형 프로그램 △방과후학교 프로그램 △초등돌봄교실 △지역거점형 돌봄교실의 4개 늘봄교실에 참여하고 있다. 책놀이, 창의인성놀이, 전래놀이, 보드게임, 토탈공예 등을 진행하는데 기존 프로그램에 신규 프로그램을 추가해 대기수요를 없앴다.
이 학교 최병현 교감은 “지난해 2학기에는 학교가 수용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학원을 찾아가는 등 늘 대기자가 있었지만 올해에는 지역 돌봄과 에듀케어 등으로 모두 해소했다”고 전했다.
맞벌이 부부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초등학교 1학년 자녀를 맡길 수 있는 늘봄학교가 4일부터 전국 2741개 학교에서 시작된 가운데 곳곳에서 기대와 혼선이 엇갈리고 있다. 정부는 모든 초등학교, 모든 학년으로 대상을 늘린다는 계획이지만, 학생을 돌봐줄 교사를 늘리고 교육 공간을 확보하는 게 과제로 남았다.
각 시·도교육청 등에 따르면 늘봄학교 시행 이틀째인 이날 학부모들은 대체로 반기는 모습을 보였으나 일부 지역에선 공간이나 인력 부족으로 적잖은 마찰이 빚어졌다. 2학기부터 전국 6000여개 초등학교로 전면 시행을 앞두고 보완할 점이 상당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304개 초등학교에서 늘봄학교를 본격 운영하는 부산지역에선 만족도가 대체로 높았다. 이날 부산 연제구의 한 초등학교에선 신입생들이 책읽기와 보드게임 등 놀이를 접목한 학습프로그램으로 시간을 보냈다. 다문화가정 학생을 위한 한국어 교실도 마련됐다.
부산지역 늘봄학교는 방과후 강사가 진행하는 방과후 학교와 별도로 강사가 진행하는 ‘1학년을 위한 방과후 학교’, 돌봄전담 교사가 진행하는 ‘돌봄교실’의 세 가지 유형으로 운영된다. 기존 전담 교사뿐만 아니라 실무를 담당하는 업무자(154명)와 기간제 교사(150명)들이 지원한다. 부산시교육청 관계자는 “3월 한 달간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경기도에선 도내 초등학교 1332곳 중 975곳(73.2%)이 늘봄학교 프로그램 운영 집중 지원교로 운영된다. 초1맞춤형 프로그램에 대한 수요조사에선 5만7718명이 신청을 마쳤다.
수원시의 학부모 최모(39)씨는 “맞벌이 부부 입장에선 좀 더 편안하고 효율적으로 사교육비 부담에서 벗어나 돌봄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이날 경기 파주시 동패초등학교를 찾아 늘봄학교 운영 현황을 살펴본 임태희 교육감도 “늘봄 정책이 성공하려면 학원 가는 아이들이 안심하고 늘봄학교에 오도록 프로그램의 질이 좋아야 한다”고 말했다. 임 교육감은 공간 부족과 강사 등 인력 확보의 어려움을 토로한 교직원들에게 “늘봄학교를 운영할 공간이 부족하다는 문제가 있는데 교육청과 지역사회가 협력해 지역자원을 공유하는 등 학교 밖 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며 “학교가 확보하지 못하는 공간, 강사 등 필요한 부분은 교육청에서 최대한 지원하겠다”고했다.
동패초등학교에선 현재 초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한 맞춤형 프로그램 5개, 방과후 프로그램 29개, 돌봄교실 8개 반을 운영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선 전담인력부터 교실까지 제대로 갖추지 못하면서 삐걱거리는 모습도 드러났다. 강원도의 일부 초등학교 교사들은 프로그램 운영에 필요한 강사 채용이 거의 되지 않았다고 반발하며 시행 첫날 집회에 나섰다. 기존 교사 업무가 늘지 않을 거라는 교육 당국의 약속과 달리 늘봄학교 교사를 구하지 못해 일선 교사가 늘봄학교에 투입됐기 때문이다.
수도권의 한 교사도 “늘봄 프로그램을 운영할 연간 교구·재료비가 100만원 정도 배정됐다”며 “학생 1인당 4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부산과 전남에선 지역 내 모든 초등학교가 늘봄학교의 문을 열었지만, 서울은 전체 608개 초등학교 가운데 38개 학교(6.3%)만 운영해 전국 평균 44.3%에 크게 못 미치는 꼴찌를 기록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서울에는) 학교 유휴공간이 거의 없어 공간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다”며 “강사가 없어 부실하게 운영될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전북의 경우 도내에서 늘봄학교를 운영하는 초등학교는 전체 420곳 가운데 75곳(17.9%)에 그쳐, 두 번째로 낮은 참여율을 보였다. 이곳에선 농어촌의 ‘작은 학교’가 많아 수요가 상대적으로 적고, 교원단체들이 업무량 증가를 우려해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북교육청 관계자는 “오전 9시 이전에는 늘봄학교 참여 인원이 적어 각 초등학교 운동 프로그램에 참여시키는 게 효율적이라고 판단했고, 오후 6시 이후 돌봄은 조사 결과 수요가 많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이 밖에 세종(47%), 대전(30%), 충남(28%) 등 충청지역 초등학교들의 늘봄학교 참여율도 낮게 나타났다. 일부 학부모들도 “구체적인 안내를 못 받았고 (내용을) 잘 모르니 아쉽다”는 반응을 내비쳤다. 누구는 혜택을 받고 누구는 받지 못하는 공교육 불평등 문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일각에선 늘봄학교가 비효율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부산의 한 초등학교 학부모 오모(42·여)씨는 “공부하는 습관을 키우기 위해 유치원 때부터 아들을 사설학원에 보냈다”며 “늘봄학교의 취지는 좋지만 놀이 위주 프로그램이라 우리 아들한테는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교육계 관계자도 “교육 활동에만 매진하는 선생님들 입장에선 교육에 돌봄까지 도맡아야 하는 상황에 위축되지 않을까 걱정”이라며 “아이들도 아침부터 저녁 7∼8시까지 온종일 학교에만 갇혀있다 보면 심리적, 정서적으로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교육 현장에서는 시행 초기의 혼란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라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지난달 급작스럽게 정책이 확정되면서 준비 기간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에 교육부는 한 달 동안 진행 실태를 집중적으로 점검해 문제점을 보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수원·부산=오상도·오성택 기자, 이지민 기자·전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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