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국 작가가 만든 ‘아트 벤치’… 카타르 국립박물관에 놓였다

허윤희 기자 2024. 3. 6.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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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훈 작가의 작품 10점 중앙 광장에 영구 설치 돼
카타르 국립박물관 중앙 광장에 최병훈의 '아트 벤치'가 놓여 있다. 5t짜리 현무암을 일부는 갈고 일부는 그대로 둔 작품이 건물 외관과 멋스럽게 어울린다. /최병훈 작가 제공

세계적인 건축물의 보고인 카타르 도하에서도 가장 유명한 건물이 일명 ‘사막의 장미’라 불리는 카타르 국립박물관이다.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이 장미 모양을 가진 사막의 모래 덩어리에서 영감을 얻어 설계했다. 대형 원형판 316개가 장미 꽃잎처럼 뒤섞이고 맞물리며 빚어낸 빼어난 외관 덕분에 많은 이가 ‘여행 버킷리스트’로 꼽는다.

이곳에 꼭 가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카타르 국립박물관 중앙 광장에 ‘아트 퍼니처(Art Furniture)’를 창시한 최병훈(72·홍익대 미대 명예교수) 작가의 작품 10점이 지난달 영구 설치됐기 때문이다. 관람객들이 가장 많이 오가고, 주요 행사가 열리는 광장 한복판에 길이 5m 육중한 돌이 뚝뚝 놓였다. 바라보기만 하는 조각이 아니다. 사람이 앉고 쉴 수 있는 돌 벤치와 테이블이다. 지난달 24일 오프닝 행사 참석 후 귀국한 작가는 들뜬 목소리로 “장 누벨이 설계한 이 근사한 박물관에 언젠가 꼭 가보리라 마음먹었는데, 내 작품을 설치하러 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박물관에 그냥 소장되는 게 아니라 광장에 영구 설치돼 언제든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게 영광”이라고 했다.

카타르 국립박물관 중앙 광장에 최병훈의 '아트 벤치'가 뚝뚝 놓여 있다. 5t짜리 현무암을 일부는 갈고 일부는 그대로 둔 작품이 건물 외관과 멋스럽게 어울린다. /최병훈 작가 제공

최병훈은 돌이나 나무, 철 같은 자연 소재로 ‘아트 퍼니처’를 만들어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린 작가다. 아트 퍼니처란 가구 본연의 기능성에 예술성을 입혀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를 넘나드는 장르. 미술 애호가인 프랑수아 앙리 피노 구찌 그룹 회장이 팬을 자처할 만큼 해외에서 유명하다. 한국 가구 디자이너 최초로 1996년 파리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독일 비트라 디자인 미술관, 프랑스 파리 장식 미술관, 홍콩 M플러스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그래픽=김성규

시작은 지난 2022년 9월. 박물관 측에서 이메일이 왔다. “2024년 2월 카타르에서 새로운 디자인 비엔날레가 열립니다. 축제를 계기로 박물관 외곽에 야외 작품을 영구 설치하려고 합니다.” 세계 유력 작가들이 설계안을 냈고, 지난해 2월 심사를 통과해 최종 작가로 선정됐다. 그는 “원래 박물관 외곽에 설치 제안을 받았는데, 국왕의 여동생이자 국립 박물관청 이사회 의장인 셰이카 알 마야사 공주가 제 설계안을 보더니 관람객들이 가장 많이 오가는 중앙 광장이 좋겠다고 했다”며 “카타르 국립박물관에 한국 작가의 작품이 소장되는 것도 처음”이라고 했다.

오프닝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최병훈의 '아트 벤치'에 앉아 있다. 앞줄 왼쪽부터 셰이카 알 마야사 공주, 최병훈 작가, 이준호 주카타르 대사.

작품은 거친 현무암으로 만든 벤치와 테이블 등 10점이다. 알 마야사 공주는 “세월의 흔적을 머금은 동양적 느낌의 작품, 특히 돌의 질감이 건물 외관과 멋스럽게 어울린다”며 극찬했다. 공주가 주도해 최병훈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도 곧 제작에 돌입한다. 알 마야사 공주는 세계 미술시장을 들었다 놨다 하는 오일머니 ‘큰손’. 연 미술품 구매액이 10억달러를 넘는다고 블룸버그가 보도한 컬렉터인 데다 한국 작가와 작품에 관심이 많다고 알려졌다.

최병훈은 “전북 고창에 가면 청동기 시대 고인돌이 아무렇지도 않게 뚝뚝 놓여 있는데, 그곳을 답사하면서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제가 원래 폐사지(廢寺址)나 유적지를 좋아합니다. 건물은 허물어졌는데 드넓은 절터에 돌이 그냥 널부러져 있잖아요. 그 돌이 품고 있는 에너지가 엄청납니다.”

카타르 국립박물관 중앙 광장에 놓인 최병훈의 '아트 벤치'. /최병훈 작가 제공

억겁의 세월을 간직한 원시의 돌덩이가 그의 손을 거쳐 새 생명으로 탄생했다. 그래서 제목도 ‘태초의 잔상’이다. “5t짜리 현무암을 인도네시아에서 직접 구해서 갈았다”고 했다. “몇 년 전 우연히 이 현무암을 발견하고 한 덩어리 사다가 파주 작업실에 갖다 놓았어요. 겉은 황토색인데 속살이 까만 돌. 오랫동안 묵히면서 들여다만 보다가 아이디어를 얻었지요.”

일부만 갈고 일부는 그대로 뒀다. 원석 그대로인 황토색 거친 부분과 매끈한 검은 부분이 대조를 이루면서 묘한 울림을 준다. 그는 “거친 것과 부드러움, 과거와 현재, 무거움과 가벼움이 만난 상태”라며 “누가 이 작품 만드는 데 시간이 얼마 걸리냐고 물어보면 저는 수억년이라고 답해요. 돌덩이 자체가 어마어마한 세월을 갖고 있잖아요. 저는 거기에 일부만 손을 댄 거니까요.”

지난달 24일 카타르 국립박물관 중앙 광장에서 열린 오프닝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최병훈의 '아트 벤치'에 앉아있는 모습. /최병훈 작가 제공

오프닝 행사에는 알 마야사 공주를 비롯해 모하마드 알 루마이히 카타르박물관청 CEO, 압둘아지즈 빈 하마드 알 타니 카타르 국립박물관장, 이준호 주카타르 대사 등 한국·카타르 관계자 60여 명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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