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폭력, 처벌 안 해서 함부로 떠드는 거다”
최정규 변호사가 가장 보람을 느낀 세 가지 사건
1. 신안 염전 노예 국가배상소송 사건
“염전주 책임뿐만 아니라 인권침해 사실을 알고도 묵인한 경찰청 공무원, 노동청 근로감독관, 사회복지공무원의 잘못을 밝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을 물었기 때문.”
2. 상급검사 갑질, 고 김홍영 검사 사건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 등 유족들의 적극적인 행보를 통해 상습폭행과 폭언을 일삼은 김대현 부장검사에 대한 처벌(실형)을 이끌었고, 국가배상소송 조정을 통해 재발방지대책 마련 및 대검찰청 부지에 고 김홍영 검사 등 순직 검찰 공무원을 추모하는 공간을 마련함.”
3. 비닐하우스 기숙사 산재 사망 이주노동자(캄보디아인 속헹) 사건
“2021년 12월20일 사망소식을 접하자마자 시민단체와 함께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여 사망원인이 비닐하우스 기숙사에 있음을 밝혀 산재승인을 이끌었으며, 더 나아가 농어업 이주노동자 기숙사 개선 등 제도개선을 이끌었기 때문.”
변상철 소장이 가장 보람을 느낀 세 가지 사건(자세한 내용은 상편 인터뷰 참조)
1. 박순애 조작 간첩 사건
“1970년대 조작 간첩 사건. 진실화해위에서 두 번이나 진실규명 불능된 사건이었으나 위원회를 나와 7년여 만에 증거를 찾아 해결. 서울고법에서 재심마저 기각, 대법원에 상고 중 일본에서 증인을 찾아 파기환송되어 재심 무죄를 받은 사건.”
2. 동해안 납북귀환 어부 유족 김창권 사건
“1970년대 창동호 선장 김봉호씨 사건으로 아들 김창권씨가 5년간의 재심 끝에 무죄를 받아냈고, 동해안 납북귀환 어부 사건의 시초가 됨.”
3. 박상은 적진 도주 미수 사건
“1969년 5월 선임의 구타를 못 이겨 부대를 이탈했다가 다른 부대로 잘못 찾아간 것이 적진 도주 미수 사건으로 둔갑. 무기징역을 받고 20년형을 복역한 뒤 나와 10여년간의 재심 끝에 증인을 찾아 무죄를 끌어냄.”
최정규 변호사가 가장 속상했던 두 가지 사건
1. ‘염전노예 피해자 처벌불원서 조작’ 미확인 법관 불법행위 국가배상소송
“가해 염전주 측에서 피해자에게 접근하여 처벌불원서를 받아냈고, 피해자는 심한 지적 장애로 처벌불원서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형사 재판부는 그 진위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그대로 처벌불원서의 효력을 인정하여 공소기각 및 집행유예 판결을 선고함. 법관의 불법행위 책임을 묻기 위해 국가배상소송을 제기하였으나 기각.”
2. 고양 저유소 풍등 화재사건
“풍등 하나 날렸을 뿐인데 저유소 폭발의 피해에 대해 저유소 관리주체보다 더 엄격한 책임을 물으려는 경찰의 무리한 수사, 검찰의 기소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였으나 결국 벌금 1000만원의 선고를 막아내지 못함.”
변상철 소장이 가장 속상했던 두 가지 사건
1. 스웨터 공장 사장 김현재 살인 사건
“1998년 화성 연쇄살인 사건 수사팀의 수사를 받고 똑같은 수법으로 살인누명을 쓴 사건임에도 진실화해위 조사대상이 되지 못하고 재심도 얻어내지 못하고 있음.”
2. 조재윤 하사 ‘군대판 계곡 살인사건’
“2021년 9월 가평의 부대에서 군 복무 중 고참과 물놀이하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라는 강요를 이기지 못함. 이로 인해 사망했음에도 고참들의 책임을 끌어내지 못함.”
<상편에 이어 계속>
위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인터뷰 전 질문지를 통해 미리 받은 내용이다.
두 사람이 그동안 해온 사건은 100건을 넘을 정도로 많아 정리가 필요했다. 납북귀환 어부 사건이 숫자로는 으뜸이고, 그 밖의 간첩사건과 군 사망사건 또는 억울하게 누명을 쓴 형사사건도 있다. 최근에는 한신대에서 강제 출국당한 우즈베키스탄 유학생들 사건도 맡았다. 인터뷰를 진행한 2월28일 오후, 두 사람은 재심을 성공적으로 마친 군산 선유도 납북귀환 어부 사건과 조작사건임에도 2명이나 실제 사형이 집행된 통혁당 재건위 사건에 대해서도 길게 설명했으나 기사에 다 담지 못했다.
최정규(47), 변상철(52) 두 사람은 안산 원곡동에 위치한 법무법인 원곡에서 함께 일한다. 한 사람은 대표변호사이고, 또 한 사람은 법인 내 파이팅 챈스 공익법률지원센터 소장이다. ‘파이팅 챈스’는 어려움에 처했으나 혼자 힘으로 싸울 수 없는 사람들을 발굴하고 돕는 일을 한다.
최정규 변호사는 2006년 대한법률구조공단 시절부터 시작해 안산의 이주민과 장애인 대상 공익 변론활동을 해왔고, 변상철 소장은 1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조사관 출신으로 간첩조작 사건 등 과거사 사건을 주로 해왔다. 2017년 처음 만나 6년여간 변호사 대 활동가의 관계로 신뢰를 쌓으며 협업해왔으며, 최 변호사의 제안으로 지난해 1월 법률사무소에서 법무법인으로 전환하던 시점에 한 식구가 됐다.
정의롭고 올곧은 이미지의 최정규 변호사와 미친 듯이 사건을 파고드는 변상철 소장의 ‘케미’는 인권운동의 흥미로운 새 모델을 만들어나가는 느낌이다. 지난 상편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하편에 이어간다.
염전주와의 싸움이 끝이 아니었다
― 최정규 변호사님은 가장 첫손에 꼽는 사건이 신안 염전 노예 국가배상소송이에요.
변상철 : “제가 그 사건 진행하는 것 보고 이 사람 괜찮겠다 싶어 찾아간 거죠. 한번 같이 해보자고요. 어떤 기자가 그런 말을 들려줬거든요. 직접 장화 신고 염전에도 들어간다고요. 현장을 직접 발로 찾아가는 변호인이라면 어떤 사건이라도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최정규 : “장화 신고 염전 들어갈 일은 없었어요.(웃음) 그 말은 와전된 거고요. 2014년 2월 박근혜 대통령도 ‘21세기에 있을 수 없는 충격적인 일’이라고 한마디 했잖아요. 경찰이 당시 섬에 들어가서 피해자들을 탈출시키고 또 여러 변호사로 대리인단이 꾸려졌어요. 그런데 무연고자 20명이 전남 무안에 있는 노숙인 쉼터에 넣어진 상황인데 지원이 필요하다는 요청을 받고 응한 거죠. 사무실 개업한 지 2년밖에 안 된 때라 그렇게 바쁘지 않았어요. 우리 사무실 3명의 변호사가 20명을 맡겠다 하고 목포에 자주 내려갔어요.
그렇게 피해자들을 지원하면서 ‘경찰과 사회복지공무원과 노동청 근로감독관들도 다 알면서 묵인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예요. 이걸 그냥 가만히 놔둘 수 있냐 해서 저희가 2015년 국가배상 소송을 하게 된 거고요. 그게 2019년까지 가게 되었는데, 저는 이 작업을 통해서 ‘아 국가가 이렇게 소송에서는 책임회피식 답변을 할 수 있다’는 걸 경험했어요. 염전주와의 싸움이 끝이 아니고, 국가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만드는 데까지의 과정은 지난하다는 걸 학습했어요. 이게 모든 사건에 다 대입되는 것 같아요.”
아쉬움 투성이, 풍등 사건과 김홍영 검사 사건
― 최정규 변호사님은 변상철 소장님을 보던 순간 어땠나요?
최정규 : “2017년 겨울 어느 날 변상철 활동가가 불쑥 찾아와 국가폭력 피해자 사건을 함께 하자고 제안했어요. 진실화해위 1기 활동가로 자신이 해결하지 못했던 사건을 끝까지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백방으로 뛰어다닌다고 말했어요. 이야기를 나눠보면서 ‘아 이 사람과 함께 일하면 좋겠다’고 느꼈어요. 한편으로는 ‘이 사람과 함께 일하면 힘들겠다’는 느낌도 있었고요.(웃음) 그래서 처음으로 선유도 납북귀환 어부사건의 피해자 남정기씨 등 6명을 만나러 군산에 같이 내려가게 되었죠. 이 사건은 결국 재심에서 무죄를 받고 배상소송도 다 끝났어요. 그 뒤 군산에 있는 납북귀환 어부 사건이 계속 들어오고 있어요.”
― 최정규 변호사님한테는 가장 보람 있으면서도 동시에 속상한 사건이 신안 염전 노예 배상소송이랑 고양 저유소 풍등 사건이에요.
최정규 : “신안 염전 노예 사건 국가배상 소송하면서 판사가 지적장애인 피해자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처벌불원서의 효력을 인정한 부분을 포착해냈어요. 그래서 법원이 책임져야 한다고 했는데 결국 인정을 못 받은 거죠. 너무 억울해요. 당시 피고인의 변호인이 목포 지원장 출신이었거든요. 누가 봐도 전관예우의 느낌이 확 들었고요. 그 사건에서 최초로 재판부 기피 신청도 해봤어요. 고양 저유소 풍등 사건은 5명의 변호사가 뭉쳐 변론했는데, 무죄라고 정말 확신하고 들어갔지만 못 받았죠. 김홍영 검사 사건도 아쉬운 점이 많아요. 후배들 있는 데서 공개 망신을 준 부분에 관해 모욕이랑 명예훼손으로 걸었거든요. 결국 폭행을 제외하고는 기소가 안 됐어요.”
― 변상철 소장님은 김현재 사건을 가장 안타깝고 화나는 사건으로 꼽으셨어요.
변상철 : “1998년 스웨터 공장에서 일하던 여성이 살해됐는데 사장이 범인으로 지목돼 징역 17년을 선고받고 출소한 사건이에요. 당시 수사관들은 화성 연쇄살인 사건 수사팀과 정확히 일치해요. 혈액형을 조작하는 수법도 되게 비슷한데, 진실화해위가 이 사건이 조사 기간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기각을 해버렸어요. 진실화해위 기본법상의 ‘1945년 8월 15일부터 권위주의 통치 시까지’라는 조항을 갖고 1998년 사건은 배제를 한 거죠. 이 사건은 살인을 입증할 만한 직접 증거가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어요. 피고인의 자백밖에 없어요. 재심했는데 실패를 했죠.”
화성 연쇄살인 수사팀이 남긴 김현재 사건
최정규 : “대법원까지 갔는데, 혈액형에 약간 오류가 있다는 것만으로는 유무죄를 흔드는 신규 명백 증거가 될 수 없다는 거죠. 대한민국에서 과거사 사건은 모르겠지만 이런 형사사건에서는 진짜 진범이 나타나서 자백하지 않는 한 재심 개시를 받는다는 게 정말 어려워요. 혈액형의 오류만 갖고는 안되고 더 큰 한 방이 있어야 하는데 못 찾고 있는 거죠. 우리가 손을 놓지 않는 이상 언젠가는 증거를 찾는 날이 올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계속 지금 잽을 날리고 있어요.”
변상철 : “다시 재심 청구하기 위해 여러 고민을 하는데요. 최초 1998년 9월15일 화성경찰서 의뢰로 국과수에서 실시한 부검에서 피해자의 모발, 음모 혈액형 검사에서 O형으로 반응하였으나 11월16일 피해자를 덮어 씌었던 비닐봉지와 바지에서는 A형 반응이 나왔습니다. 혈액형이 다르게 나온 것이지요. 이에 대해 1998년 12월4일 화성경찰서가 검찰에 보낸 추송에 따르면, '혈액형이 다르게 나온 것으로 되어 있어 그 이유를 국과수에 물어본 바 피해자가 부패된 상태에서 채취한 모발 등인 관계로 그와 같이 잘못 나온 것이고, 나중에 확보된 감정 결과인 피해자의 혈액형이 A형이 정확하다'고 공문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이는 국과수의 공문 등 절차를 밟아 확인한 것이 아닌 전화상으로 확인했다는 보고뿐이고, 실제 국과수에서 회신 온 공문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피해자의 혈액형이 조작되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을 하는 것이죠.
김현재 씨의 공장 수돗가에서 발견된 각목 일부에서 A형 혈액반응이 나왔거든요. 공장에서 죽이고 공장 수돗가에서 증거를 인멸하는 과정에서 그 증거가 남았다는 거거든요. 그래서 피해자와 각목의 혈액형이 일치해야 하죠. 이렇게 된 경위를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검사 과정이 부실했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해요. 국과수 전 원장님들 만나 조언도 받고 있어요. 저는 이 사건을 꼭 해결하고 싶습니다.”
― 최정규 변호사님은 꼭 해결하고 싶은 사건이….
최정규 : “2019년 롯데칠성음료의 영업사원이 탈세제보를 한 이후 회사의 고발로 수사가 진행되어 공갈, 업무상 횡령죄로 징역 2년 실형을 받은 사건이에요. 현행 법제상 탈세제보는 공익신고에 포함되지 않기에 형사처벌 등에 탈세제보라는 공익적 요소가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이 더 아쉬운 건 여러 위험을 무릅쓰고 탈세제보를 했음에도 관련 포상금마저 단 한푼도 받지 못했다는 점이에요.
현대자동차 엔진결함 공익제보자 김광호씨가 그런 말을 했거든요. 재벌이 아니면 공익 신고하지 마라, 패가망신 당한다고요. 공익신고자보호법이 개정되는 등 여러 입법적 보완이 있었지만 김광호씨의 말대로 대한민국 공익신고자의 스토리가 아직도 이렇게 비극적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불이익을 감수한 공익신고자가 경제적 보상을 받아야 공익신고가 활성화 될 수 있을텐데요. 서울지방국세청 상대로 제기한 행정소송 1심에서 패소하고 2심 진행 중인데 영업사원의 탈세제보의 결말이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되기 위해, 더 나아가 이게 롯데칠성 영업사원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공익신고를 계획하고 있는 많은 시민들에게 큰 의미가 있는 소송이라 더 애써보고 있어요.”
‘군대판 계곡 살인사건’의 결말
― 조재윤 하사 사건도 설명 부탁드려요.
최정규 : “조재윤 하사 사건은 군대판 계곡 살인사건으로 불립니다. 2021년 9월 조재윤 하사 생일에 선임하사가 물놀이하러 가자고 했던 거예요. 그날이 전투 휴무일이었대요. 조재윤 하사는 물 근처에도 가기 싫어하는 사람이었는데, 선임하사가 가자고 하니까 이제 약간 끌려가듯이 간 거예요. 그런데 높은 데서 물에 뛰어내리라고 강요를 했다고 합니다. ‘남자라면 뛰어내려야지. 무서워하는구나’라고 말하면서. 결국 뛰어내리다가 사망했어요. 물론 이은혜 사건처럼 죽이려고 했던 의혹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냥 단순 사고사로 끝난 거예요. 데리고 간 선임 하사가 가벼운 징계만 받았죠. 결국 1심 군사법원에서 위력행사 강요죄는 무죄로 나오고 업무상 과실치사로만 처벌됐어요. 위력행사 강요죄까지 항소심에서 인정받자 했는데 민간 고등법원에서는 오히려 과실치사까지 무죄가 됐어요. 저희가 군 피해치유센터 ‘함께’에 갔다가 유족들과 연결된 거라 이건 위임계약서도 안 쓰고 도와드린 거였는데 결과가 이 모양이 되니 마음이 너무 무거운 거예요. 최근에서야 순직 결정이 나와서 다행이긴 합니다.”
― 정말 센 사건은 어떤 게 있었나요?
최정규 : “1968년 박정희 정권 때 중앙정보부(현 국정원)가 발표한 통일혁명당(통혁당) 재건위 사건이 있죠. 줄줄이 사형선고를 받으신 분들입니다. 저희가 지금 재심 진행하고 있는 분들은 진두현, 박석주, 김태열, 강을성 네 분입니다. 세상에 계신 분들은 없어요. 조작 간첩 사건이 확실한데 김태열 강을성 두 분은 사형이 집행까지 됐어요. 박석주라는 분은 감옥에서 의문사를 당했고요. 김태열이라는 분은 저희가 유족을 찾아서 재심하고, 나머지는 유족들 요청을 받았어요.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할 의무 주체인 국가가 단지 권력의 안위를 위해 국민의 생명권을 침해한 사건인데요. 많이 늦었지만 무죄가 선고되고 국가가 피해유족들에게 사죄를 해야 하는 사건이죠. 그럼에도 검찰은 그 당시 공판정에서 피고인의 진술을 트집잡아 계속 유죄 취지로 공소를 유지하고 있어요. 검찰이 과거 자신들의 흑역사를 덮으려고 애쓸 것이 아니라 공익의 대표자로 과오를 인정하고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어떤 분들이 원곡에 찾아오시는 건가요?
변상철 :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나 진실화해위 등 인권에 대한 억울함을 해결해주겠다 또는 보살피겠다고 하는 기관들이 있잖아요. 여기서 다 배척당해서 갈 곳 없는 분들이 저희한테 와요. 근데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내 억울함을 풀어주고 인권을 되찾아주겠다고 하는 인권위나 진실화해위에 신청하더라도 그 기관의 벽을 넘는 게 너무 어려워요. 필요한 증빙 요건을 제출해야 하는데 그걸 다 국가가 갖고 있잖아요. 국가가 가진 자료와 증거를 수집한다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거든요. 진입 장벽을 치고 어려움을 계속 만들어가는 건 국가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반인도적 국가범죄엔 시효 없어야
― 인권문제에서 가장 거대한 방해꾼은 국가인가요?
변상철 : “외국에서는 비인도적 반인권적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두지 않거든요. 국가가 진실화해위 등 과거사 관련 위원회를 만들지만, 정부가 바뀔 때마다 과거사에 대한 입장도 계속 바뀌잖아요. 어느 순간에는 사과했다가 어느 순간에는 폭도나 부역자라고 바뀌는 것들이 있어요. 이렇게 바뀌는 것은 처벌이 명확하게 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국가가 범죄를 저지른 기관이나 개인 당사자에게 책임을 묻지 못한다는 거죠. 처벌하지 않으니까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함부로 떠들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죠. 저희가 과거사 사건을 100건 넘게 했는데, 가해자가 처벌을 받은 사건은 하나도 없어요. 누군가가 고문을 해서 죽고 그래서 국가가 사과했는데, 인권유린을 한 당사자들은 처벌받지 않는 선례들을 계속 남기는 거예요. 적어도 반인권유린행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두지 말고 가해자를 처벌하도록 해야 합니다. 적어도 상훈이나 서훈은 취소해야 되는 거죠. 간첩을 잡았다고 받은 훈장, 그 과정이 잘못됐으면 반환을 해야 하는 거죠. 그러니까 인권이 한 발짝도 앞으로 못 나가는 느낌입니다.”
― 100건 넘는 사건을 하셨다고 했는데 그 많은 사건을 언제 다 하세요?
변상철 : “틈틈이요.(웃음) 오늘 말 안 한 사건이 더 많지요. 요즘은 저희가 1980년대 프락치 강요 사건 맡은 거 보고 연락 주시는 분들 굉장히 많이 계세요. 부담스러운 부분도 있습니다. 너무 기대를 가지고 연락을 주시니까요. 언론엔 성공한 이야기들 위주로 보도가 나가잖아요.”
최정규 : “염전 노예 사건이나 고 김호영 검사님 사건이나 디무드(고양 저유소 풍화사건의 스리랑카인 이름) 사건도 막 그렇게 언론에서 조명해줬지만, 앞에서 말씀드렸다시피 그 내막을 보면 해결이 안 된 안타까운 지점이 많거든요.”
― 인권 문제에서 최약자는 누구라고 생각하시나요?
최정규 : “제가 대한법률구조공단 소속 변호사라는 안정적인 철밥통을(웃음) 박차고 안산 원곡동에 터를 잡은 건 이주민이 한국 인권문제에서 최약자라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학대피해 장애인, 북한 이탈 주민, 국가폭력 피해자, 군 피해 사망유족, 공익 신고자를 만나다 보니 세상 억울한 사람 천지였어요. 병원 응급실에 왔지만 의료진의 진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람, 억울함을 풀기 위해 법원과 검찰 등 사법기관에 문을 두드렸지만 그 문턱을 넘지 못하는 사람들이 모두 인권문제의 최약자라고 생각합니다.”
공익의 의로움을 구하면 다 곁들여 온다는 신념
최정규 변호사는 그 문턱을 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해 두 권의 책을 냈다. 변상철 소장도 ‘지금 여기에’라는 단체의 활동가 시절 조작 간첩 이야기를 담은 은유 작가의 책 ‘폭력과 존엄 사이’를 기획했고, 국가폭력 사건을 음식 이야기로 버무린 ‘인권을 먹다’를 썼다.
과거 국가폭력 사건을 조사하고 진실을 규명하는 진실화해위가 1기에 이어 2기째 활동 중이지만, 국가폭력 미제 사건은 더 늘어날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아직 한 번도 나서지 않은 피해자가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뒤늦게 인권의식에 눈뜬 이들이 계속 생겨나기 때문이다. 앞으로 두 사람이 힘을 모아 해결해야 할 사건은 훨씬 늘어날지도 모른다.
최정규 변호사는 ‘수익과 공익의 경계에서 가끔 고민이 되지 않냐’는 질문을 던지자 젊은 시절 교회에 열심히 다닐 때 읽은 성경 구절 하나를 인용했다.
“여러분은 무엇을 먹을까 혹은 무엇을 마실까 혹은 무엇을 입을까 하면서 걱정하지 마시오. 여러분은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으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이런 것들도 다 곁들여 받게 될 것입니다.”(신약성서 마태오복음 6장 31절, 33절)
공익의 의로움을 구하면 나머지 구하는 것들은 곁들여 다 따라온다는 뜻이다. 두 사람은 인권옹호의 최전선에서 연대해 열심히 활동하면 계속 성장할 것이라는 ‘겨자씨 한 알’ 같은 믿음을 붙잡고 있다고 했다. 너무 숭고해, 옷깃을 여미게 하는 말이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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