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 저격’…쓰레기 던지는 패션쇼 사이버 명예훼손범죄, 5년간 증가 추세 “완전 근절 어려워…피해구제 실효성 높여야”
패션쇼가 시작되고 6번째 모델이 돌아서자 쓰레기가 하나둘 무대 위로 던져진다. 찌그러진 음료 캔, 플라스틱 생수병 등 날아드는 쓰레기 종류도 다양하다. 심지어 날달걀이나 바나나 껍질, 먹다 남은 커피 같은 음식물도 있다. 관객이 던진 쓰레기는 바닥에 떨어지기도 하고 모델의 얼굴이나 옷에 직격하기도 했다.
지난달 말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개최된 ‘2024-25 가을/겨울 시즌 밀라노 컬렉션’ 중 브랜드 에이브이에이브이에이브이(AVAVAV) 패션쇼의 한 장면이다. 브랜드 측은 사전에 관객에게 쓰레기가 든 양동이와 비닐장갑을 건넸다. 관객들이 무대나 모델에게 쓰레기를 던지라는 취지에서다. 디자이너는 악성 댓글에 대한 비판을 주제로 패션쇼를 구상했다. 온라인상에서 쏟아지는 악플이 쓰레기고, 쓰레기를 맞는 모델이 악플을 받는 피해자다.
유명인은 물론 범죄 피해자나 유가족 등 일반인을 향한 악플은 여전하다. 네이버, 다음 등 뉴스를 제공하는 포털 사이트는 연예와 스포츠 뉴스 댓글창을 폐쇄했다. 극단적 선택이나 참사 등 2차 가해와 혐오 댓글이 예상되는 기사는 언론사나 포털이 미리 댓글창을 닫기도 한다. 그럼에도 최근 5년간 사이버 명예훼손 범죄는 해마다 증가 추세다.
4일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사이버 명예훼손 모욕’ 범죄는 최근 5년간 11만193건이 발생했다. 2018년 1만5926건, 2019년 1만6633건, 2020년 1만9388건, 2021년 2만8988건, 2022년 2만9258건 등으로 매년 증가 추세다. 특히 발생 건수가 2만건을 넘긴 2021년에는 전년과 비교해 49.5%가 증가했다. 이 시기는 유명인들이 사망한 사건 이후 각종 포털에서 연예·스포츠 뉴스 댓글창을 닫은 이후기도 하다.
연예인, 스포츠 선수 등 유명인이 악플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강경 대응에 나선 사례는 꾸준히 나오고 있다. 최근엔 프랑스 출신 방송인 파비앙이 이강인(차리 생제르맹) 하극상 논란과 관련해 심경을 밝혔다. 그는 “이강인이 손흥민과 다퉜다는 기사가 나간 뒤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 등 댓글이 많았다”며 “이 상황이 사실 웃겼다. 저는 이강인 선수만 아니고 이강인과 파리생제르맹을 응원하는 사람인데 왜 나한테 욕을 하는지 놀랐다”고 전했다.
가수 설리와 구하라씨가 악플로 인해 잇따라 극단적 선택을 한 이후 2019년 10월과 2020년 3월 다음과 네이버가 각각 연예뉴스 댓글창을 폐쇄했다. 배구선수 고유민씨가 사망한 이후 2020년 8월엔 네이버와 다음이 스포츠뉴스 댓글창을 없앴다. 하지만 악플은 유명인만 겪는 고통이 아니다. 범죄 피해자나 참사 희생자, 유족 등 일반인을 향해 가해지기도 한다.
지금도 종종 정치·사회 일부 기사 댓글창이 닫힌다. 극단적 선택, 참사 등의 기사에서 2차 가해와 혐오 댓글이 예상되는 기사는 보도 시점부터 언론사나 포털이 미리 댓글창을 닫는 것이다. 이태원 참사 1주기였던 지난해 10월27일에도 다음과 네이버가 댓글을 막았다. 다음은 5일간 관련 보도에 대한 댓글 서비스를 중지했다. 언론사별 댓글 서비스 선택제를 시행 중인 네이버는 협조 요청 공문을 각 언론사에 보냈다. 참사 피해자와 유가족이 댓글로 입을 수 있는 상처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함이었다.
전문가는 2019년부터 꾸준히 증가한 SNS 이용률에 주목했다. 상윤모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매년 발표하는 ‘인터넷이용실태조사’에 따르면 2019년부터 SNS 이용률이 꾸준히 증가 추세를 보였다”고 강조했다.
상 교수는 “사이버 명예훼손 모욕 범죄가 주로 인터넷 신문 기사 댓글이나 온라인 커뮤니티, SNS 공간에 비난 글을 게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며 “그만큼 전반적으로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 이용률이 높아진 현실이 해당 범죄 건수 증가와 무관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상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유튜브 이용률이 상당히 높은 가운데 대략 2020년을 전후로 ‘사이버 렉카’ 이슈가 주목받고 그 폐해가 심각해지고 있다”면서 “이 역시 사이버 명예훼손 모욕 범죄가 최근 급증한 데 일정 부분 기여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상 교수는 “악플을 포함한 온라인 괴롭힘(사이버 불링)을 완전히 근절하는 것은 힘들 것”이라면서 “끊임없는 교육과 캠페인으로 온라인 공간에서 댓글을 작성하거나 글을 게시할 때 타인의 인격을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 나감과 동시에 침묵하는 ‘방관자’ 수를 줄여 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또 그는 “피해자가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홍보하고 피해구제 실효성을 높이려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고도 부연했다. 사이버 명예훼손 모욕 피해자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인터넷피해구제센터’, 경찰청 ‘사이버범죄 신고시스템’ 등을 활용할 수 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