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발목 거의 절단된 환자도 ‘뺑뺑이’… 사실상 마비된 민간병원 [의료대란 '비상']

윤솔 2024. 3. 5.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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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부족” 이유로 치료 거부에
軍 외상센터 옮겨 ‘안도의 한숨’
서울 빅5병원 응급실 진료 축소
비수도권도 병상 가동률 낮춰
교수들 “제자 처벌 땐 좌시 안해”
전공의 이어 병원 이탈 가능성
경북대 교수, 정부 비판 사직도
정부의 전공의 복귀 데드라인을 넘긴 4일, 서울 주요 병원은 의료공백이 장기화하며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환자들이 주요 병원 대신 군 병원 등 공공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치명적인 의료사고를 막고 있지만, 이마저도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사태가 장기화하며 환자들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에서 구급대원이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연합뉴스
◆군 병원서 응급수술, ‘빅5’는 마비

이날 군 병원에는 민간병원에서 치료받지 못한 환자들의 긴급 수술이 잇따라 진행됐다. 국방부 등에 따르면 최근 낙상사고로 양쪽 발목이 거의 절단된 50대 환자가 경기 성남 국군수도병원 외상센터에서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환자는 민간의 종합병원 2곳에서 의료진 부족 등으로 수술을 받지 못하자 수도병원으로 옮겨졌다. 10시간이 넘는 수술 끝에 현재는 중환자실에서 회복 중이며, 발가락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호전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고관절 골절상을 입은 80대 남성과 대퇴골과 팔꿈치 골절상을 입은 70대 여성도 군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국방부는 의료공백이 더욱 커질 것을 대비해 외래진료 확대, 군의관 파견 등에 관해 관련 부처와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공의 이탈 이후 이날까지 총 123명의 민간인 환자가 군 병원 응급실을 찾은 것으로 집계됐다.

서울의 ‘빅5’ 병원 응급실은 의료공백 장기화로 진료 범위를 축소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은 이날 오후 6시부터 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응급투석이 필요한 환자와 위장관·안과 응급수술이 필요한 신규 환자를 받지 않겠다고 공지했다. 서울아산병원도 내과중환자실(MICU) 응급진료를 볼 수 없다고 안내했다.
주요 병원 전공의들이 의과대학 증원 정책에 반발하며 집단행동이 이어지고 있는 4일 서울 강남구 수서역 앞에서 시민들이 종합병원 셔틀 버스를 타기 위해 줄을 서 있다. 뉴스1
비수도권 지역에서도 주요 병원들이 병상 가동률을 낮추고 신규 외래환자를 절반 이상 줄이는 등 비상진료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대전의 주요 거점병원인 충남대병원은 응급 중환자실이 ‘풀 베드’ 상태여서 간호가 필요한 환자는 수용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현재 입원 병상 가동률이 40대까지 떨어진 충북대병원은 전문의들이 3∼4일에 한 번꼴로 응급실 당직을 서 가면서 전공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강원 지역의 한림대춘천성심병원도 교수 100여명 중 절반이 지난달 말부터 당직에 투입돼 근무 중이다. 강원대병원의 한 관계자는 “전공의 부재로 당장 큰 의료 차질이 발생하고 있지는 않다”면서도 “전문의 피로도가 한계에 도달해 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환자들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에서 유방암 수술을 앞둔 40대 환자는 “다행히 수술 일정이 잡혔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불안하게 기다렸다”며 “같은 환자 중에는 수술이 어려워서 용인까지 간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 관계자는 “현재 병원에 돌아온 전공의는 손에 꼽을 정도”라며 “파업이 끝나도 돌아오지 않겠다는 말도 들린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당직 업무에 시달리는 교수들이 계약이 끝난 전임의(펠로)들을 붙잡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 옆으로 의료진들이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교수들 “제자 처벌하면 행동 나설 것”

전공의 공백을 메우고 있는 교수들마저 병원을 이탈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교수 단체들은 정부에 “제자(전공의)를 처벌하면 행동에 나서겠다”고 경고했다. 의대 교수이자 대학병원 의사를 겸하는 이들은 겸직을 해제하고 병원 진료를 중단하는 방식을 고려 중이다. 정부는 이날부터 전공의에 대한 행정처분을 시작할 방침인데, 교수들이 실제 업무 중단에 나설 경우 진료 차질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윤우성 경북대 교수(이식혈관외과)는 이날 번아웃(탈진) 등을 이유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지난달 20일부터 시작된 전공의들의 줄사퇴 이후 비수도권 상급종합병원 현직 교수가 사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윤 교수는 이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현 의료현실에 책임져야 할 정부, 기성세대 의사들인 우리가 욕먹어야 할 것을 의사 생활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전공의가 다 짊어지고 있다”면서 “의료문제에 대해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토론이 이뤄지지 않고 정부는 여론몰이에만 몰두해 있는 상황에서 합리적 결론과 합의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윤우성 외과 교수. 경북대학교 제공
경희의대 교수회는 전날 성명서를 내고 “의대 학생 및 수련병원 전공의들에게 조금이라도 피해가 가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같은 날 서울아산병원, 울산대병원, 강릉아산병원 교수들이 모인 울산의대 비상대책위원회도 성명서를 통해 “그들(전공의)을 겁박하는 정부의 사법적 처리가 현실화한다면 스승으로서 제자들을 지키기 위한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윤동섭(63) 연세대 신임 총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세브란스병원 인턴 티오(TO·정원)가 150명 규모인데 3월1일부로 계약서를 작성한 인원이 3명 정도”라며 “의대 교수들도 현 진료 상황을 어떻게 버텨나갈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윤솔·이예림·구현모·조희연 기자, 대전=강은선 기자, 전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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