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값 떨어지면 안돼" 지역이기주의 이용된 GTX

정영희 기자 2024. 3. 5.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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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S리포트-공공성 상실한 '공공개발'(3)] '감탄고토' 비난 여론 들썩
[편집자주] 정부와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 등이 주도한 개발사업에서 민간 사업자와 개인이 특혜를 받아 이익을 올린다는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공공주도 개발사업의 메리트는 수익 대비 높은 안정성이다. 사업자의 입장에서 공공사업은 공사비 미지급 리스크가 없고 에스컬레이션(물가 변동에 따른 사업비 조정)이 쉽다. 고금리 여파로 글로벌 불황이 장기화됨에 따라 기업들은 공공개발로 눈을 돌려 수익 안정화를 꾀하고 있다. 다만 '공공성 규제'에 발목을 잡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문제는 공공성을 위장한 사업계획이나 개인 재산권을 명분으로 내세운 보상 요구가 지나친 규제 완화를 불러온 반면 지역민 등에겐 혜택이 돌아가지 않고 있다.

지난달 국토교통부는 민간투자사업심위위원회를 열고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B 노선 민간투자사업 사업시행자로 대우건설을 지정, 실시협약안에 대한 심의 통과 사실을 밝히며 B 노선의 착공이 눈앞에 왔음을 알렸다./사진=임한별 머니S 기자


◆기사 게재 순서
(1) 민간 시행사 먹잇감 전락한 '그린벨트 해제'
(2) "LH 토지보상, 개인 토지주와 건설업체 이익 늘려"
(3) "내 집값 떨어지면 안돼" 지역이기주의 이용 GTX


정부가 지난달 시행한 교통 분야 민생토론회에서 '출·퇴근 30분 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한 가운데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B·C 노선 전 구간 착공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GTX 개통 시 서울 중심부로의 이동 시간이 줄어든다는 기쁨도 잠시 일부 지역 주민들은 역사 신설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역이 새로 뚫리면 유동인구가 늘어 상권이 발달하고 인근 주택 가격도 급등할 수 있다는 기대에서다. 전국의 광역교통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놓겠다는 목표로 추진된 GTX가 지역 이기주의의 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단 평가다.


"노선 원안" vs "경제성" 구민 다툼에 시청 '진땀'


인천 연수구는 GTX-B 노선 정차역을 두고 옥련동과 청학동 주민들이 갈등을 빚어왔다. GTX-B 노선은 인천대입구역부터 마석역까지 14개역을 정차하며 총 82.8㎞를 운행한다.

국토교통부는 2022년 B 노선 시설사업기본계획(RFP) 고시 당시 사업신청자로 하여금 신설구간과 기존선 공용구간에 한해 추가 역 설치를 제안할 수 있도록 했다. 제반 비용은 해당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고 공사 기간이 늘어나지 않는다는 조건이 붙었다.

인천시는 지난해 B 노선 수인분당선 환승 정차역 신설을 추진하며 연수역과 청학역을 후보로 거론했다. B 노선이 개통해도 송도 구도심과 인천대입구역은 도보로 가기에 멀다는 이유다. 수인분당선이 지나는 연수역이나 인천 도시철도 12호선 환승역인 인천시청역도 마찬가지다.
GTX-B 노선 사업 노선도 /자료 제공=국토교통부
청학동 주민들은 사업시행자가 설계한 노선이 지나가는 곳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청학역을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0월 발표된 B 노선 민간투자사업 환경영향평가(초안)상 인천대입구-인천시청 기본설계에 청학사거리를 지나는 내용이 명시된 것. 이미 노선에 포함된 내용인 만큼 원안대로 착공한다면 공사 속도가 빨라진다는 장점이 있다.

청학역과 함께 거론된 송도역은 현재 수인분당선이 통과하는 곳으로 신규 역사 공사 없이 효율적인 운영이 가능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인천발 KTX 정차도 예정돼 있다. 2025년부터 경강선 KTX가 송도역을 지날 예정이라 환승 편의성도 제고된다는 것이 옥련동 주민의 입장이다.

두 자치구 주민들은 그동안 열린 B 노선 관련 주민 설명회와 공청회 등에서 수차례 충돌했다. 한 청학동 주민은 부동산 커뮤니티에서 "B 환경영향평가 초안을 보면 청학역도 추후 신설이 가능하다고 명시됐고 이대로 착공하면 되는데 노선을 송도역으로 틀면 몇 년이 더 걸릴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반면 자신을 옥련동 주민이라고 소개한 누리꾼은 "송도역에 KTX가 들어오고 인근 개발 계획도 많은데 GTX까지 들어오는 것이 경제성 측면에서 좋다"고 반박했다.

현재 B 노선은 청학역 신설이 사실상 확정됐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지난 27일 B 노선 민간투자사업 실시협약안이 국토부 민간투자사업심의위원회 심의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인천시 측은 "심의 통과로 인해 노선이 확정되며 신설되는 추가 정차역은 청학역일 가능성이 사실상 가장 높"는 입장이다.
올해 착공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GTX-C 노선은 최종 정차역을 결정하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었다. 청량리역과 왕십리역 인근 주민들이 집값을 문제로 갈등을 빚었음은 물론 의왕시와 동두천시도 당초 계획엔 포함되지 않았으나 지방자치단체의 반발과 민원이 이어지며 추후 확정됐다./사진=뉴시스


청량리 '집값 하락' 우려돼


올 초 착공식을 완료한 C 노선도 추가 정차역을 두고 몸살을 겪었다. C 노선은 양주 덕정역을 출발해 청량리, 삼성역 등을 지나 수원역까지 86.46㎞를 연결한다. 2018년 예비타당성조사에서 의정부와 창동, 청량리, 삼성, 양재, 과천을 지나는 계획에 왕십리가 포함되지 않았다.

2021년 C 노선 우선협상대상자로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선정되며 청량리역 주민들의 반발이 시작됐다. 기존 10개 역 외에 왕십리역과 인덕원역을 추가하는 방안을 입찰제안서에 포함한 데 이어 국토부도 긍정 검토한단 사실이 알려져서다.

당초 C 노선은 청량리역에서 성동구 성수동을 지나 삼성역으로 연결될 계획이었으나 성수동 노후 주거지 통과시 보상비를 둘러싼 잡음이 커질 것이란 예측이 제기됐다. 사업 지연을 막기 위해 국토부가 기존 신분당선 노선을 타고 왕십리역 지하를 거쳐 삼성역에 도달하는 방안을 제기함에 따라 노선이 일부 변경됐다.

당시 청량리역 인근 주민들은 정차역이 늘어날수록 GTX 속도가 느려져 '완행열차' 수준이 될 것을 우려했다. 청량리역에서 불과 2.3㎞ 떨어진 왕십리역에 다시 한 번 정차하면 그만큼 공사 기간이 늘고 개통이 지연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청량리역 역세권 신축 아파트 입주민들의 반발이 거셌다. GTX 후광을 등에 업은 청량리동 일대 집값은 2020년 6월 3.3㎡당 2475만원 수준에서 2021년 6월 2986만원대로 20% 이상 상승했다. 서울 지하철 2·5호선과 경의중앙·수인분당선이 통과하는 왕십리역에 C 노선이 들어서면 청량리역 집값이 하락한다는 우려가 팽배했다.
GTX 착공과 관련된 주민 민원은 극히 드문 사례가 아니다. 지역 복지증진이나 재정 수입의 증대 등이 예상되는 개발이나 시설의 입지를 둘러싼 지역 간 집단적 경쟁을 뜻하는 '핌피'(Please In My Front Yard·PIMFY) 현상이 눈에 띄곤 한다./사진=뉴시스


GTX 연장 추진… "기준 바로 세워야"


GTX를 둘러싼 잡음은 수도권 곳곳에서 발생해 A 노선의 경우 주택가 지하로 땅을 파는 것에 반대하는 청담동 주민들과 강남구청 사이 갈등이 3년 넘게 이어졌다. 구리시는 B 노선 공사로 인한 소음 등 환경문제와 교통난 해소를 위해 갈매역 신설을 요구했다. 인근 역과 거리가 가깝다는 이유로 갈매역 정차를 지속해서 고사해온 국토부와 사업시행자도 백기를 들고 국토부 공고에 해당 내용을 포함했다.

당초 C 노선 입찰제안서에 언급되지 않은 의왕시도 의왕역 추가 신설을 추진하겠다며 배수진을 쳤다. 국토부는 2021년 경기 의왕·군포·안산 지구 신설과 동시에 마련한 교통대책의 일환으로 의왕역 정차를 사실상 확정했다.

노선 연장을 요구했던 동두천시도 시민 서명운동에 나서는 등 적극 행정에 나섰다. 지난 1월 국토부가 '전국 GTX 시대' 발표와 함께 C 노선을 동두천시까지 연결하겠다고 선언한 데 이어 경기도와 상생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며 이 또한 확실시됐다.

GTX 추진과 역사 신설을 사이에 둔 주민 반발의 이면에는 집값이 있다. 지하철역이 집 근처에 신설되는 것을 큰 호재로 여기는 인식이 강하다 보니 '핌피'(지역 이기주의)가 수면 위에 드러나는 셈이다.

2020년 경기연구원은 향후 GTX 개통에 따라 경기 아파트 가격이 3.3㎡당 약 165만원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국민평형'으로 불리는 전용면적 84㎡ 기준 하면 최소 4200만원 이상 인상이 가능하단 얘기다.

지난 1월 정부가 GTX 연장 발표를 한 이후 해당 지역들의 집값도 상승세를 나타냈다. 1월 한 달 동안 강원 아파트 평균 가격은 0.70% 하락했고 춘천과 원주만 오름세를 보였다. 평택 아파트 가격도 1월 넷째 주부터 2주 동안 0.04% 상승했다. 같은 기간 경기 평균 집값은 0.77%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대규모 국책사업에서 정부의 명확한 판단 기준이 수립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자체의 주장대로 의견을 다 수렴할 수 없고 예산 낭비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

김인만 김인만경제연구소 소장은 "현재 GTX 예상 사업비는 38조6000억원으로 이미 막대한 비용이지만 최근 물가상승과 경기침체를 감안해 실질 사업비는 예상을 넘길 것"이라며 "신설노선 개통은 목표보다 훨씬 더 늦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성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지하철은 지역과 종류를 가리지 않고 주택가격을 올리는 선호시설이라는 점은 맞다"면서 "GTX 역세권으로 기대되는 지역의 아파트값은 일반 주택가격 상승의 수준을 넘어선 곳이 대다수"라고 지적했다.

정영희 기자 chulsoofrien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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