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파병' 곤욕 치른 마크롱, 낙태 개헌으로 '활짝'
주도권 확보 후 지지부진하던 개헌 작업 완수
국내외 비판 속 지지율·존재감 끌어올릴 기회
(파리=연합뉴스) 송진원 특파원 = 프랑스 의회가 4일(현지시간) 세계 최초로 여성의 낙태 자유를 헌법에 명문화하면서 개헌을 주도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역사에 남을 또 하나의 업적을 남기게 됐다.
농민 시위와 우크라이나 파병 가능성 발언으로 국내외서 궁지에 몰렸던 마크롱 대통령에게 이번 개헌은 여성 인권 수호에 앞장서는 지도자로 다시 세계의 관심을 받게 되는 반전 카드이기도 하다.
낙태할 자유를 헌법에 명시하겠다는 것은 애초 마크롱이 대통령직에 도전하면서 계획한 일은 아니다. 2017년과 2022년 대통령 선거 당시 마크롱 대통령의 공약 어디에도 이런 내용은 담기지 않았다.
그러나 마크롱 대통령은 2022년 6월 미국 연방대법원이 낙태권을 인정한 판결을 폐기하고 프랑스 사회에서 낙태권 후퇴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자, 이 사안을 자신의 중점 추진 과제로 설정한다.
특히 2022년 11월 하원과 2023년 2월 상원에서 서로 다른 문구를 내세우는 개헌안을 처리하면서 헌법 개정이 무산되자 개헌의 주도권까지 가져왔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해 3월8일 세계 여성의 날에 프랑스 대표 인권 변호사이자 낙태 합법화에 공을 세운 지젤 알리미의 추모식에서 "헌법에 낙태를 선택할 수 있는 여성의 자유를 명기하고 돌이킬 수 없게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경찰의 총격에 10대 소년이 사망한 사건과 우크라이나 전쟁, 가자지구 전쟁 발발 등 국내외 다른 이슈들에 밀려 낙태권을 헌법에 명문화하는 작업은 작년 연말까지 지지부진했다.
해가 바뀌고 지난 1월 중순 프랑스 정부가 헌법 개정안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제출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법사위의 법안 심사를 거친 뒤 1월 말 하원에서 개정안이 통과된 데 이어, 개헌의 최대 고비로 꼽힌 상원에서도 지난달 말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마크롱 대통령은 기다렸다는 듯이 엑스(X·옛 트위터)에 "저는 여성의 낙태 자유를 헌법에 명시해 되돌릴 수 없는 권리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고 자신의 공을 부각하며 곧바로 양원 합동회의를 소집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서둘러 개헌의 최종 절차인 양원 합동회의를 소집한 것은 오는 8일 세계 여성의 날에 맞춰 낙태권 헌법 보장을 마무리하는 기념비를 세우기 위해서다.
마크롱 대통령은 삼권 분립의 원칙상 양원 합동회의에 참석하지 않지만, 8일 개정 헌법의 역사적인 국새 날인식을 직접 주재한다. 마크롱 대통령은 개헌 직후 엑스(X·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헌법에 보장된 새로운 자유의 시작을 역사상 최초로 대중에게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는 국새 보관인 자격을 가진 에리크 뒤퐁 모레티 법무부 장관이 개정 헌법에 국새를 날인한다.
이를 통해 마크롱 대통령은 2008년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에 이어 헌법 개정을 성사한 또 한명의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된다.
특히 낙태할 자유를 못 박은 헌법 개정은 마크롱 대통령이 떨어진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최근 피가로 매거진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마크롱 대통령의 지지율은 27%에 그쳤다.
마크롱 정부는 지난해 연말 이민 절차를 강화하고 불법 이민자의 추방 요건은 완화하는 등 보수 색채가 강한 이민법 개정안을 처리하며 우경화 성향을 보였다.
극우 성향 국민연합(RN)의 마린 르펜 의원을 거부하기 위해 마크롱 대통령을 찍은 중도·진보 유권자들이 등을 돌린 건 당연하다.
이에 더해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해 연말 프랑스5 방송에 출연, 당시 성 추문으로 지탄받던 국민배우 제라르 드파르디외를 두고 "매우 존경한다. 그는 프랑스를 자랑스럽게 만든다"고 발언해 여성계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다.
헌법 개정으로 이런 국내 비판을 어느 정도 잠재우고, 지지율 반등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 파병 발언 등으로 자초했던 국제사회에서의 논란도 일부 희석할 수 있게 됐다.
마크롱 대통령은 최근 전쟁 3년 차에 접어든 우크라이나에 유럽 등 서방 동맹국이 직접 파병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폭탄 발언을 했다가 미국, 독일, 영국 등 주요국이 모두 부인하는 바람에 혼자 고립되는 신세에 놓였었다. 유럽 방위 프로젝트의 리더로 자신을 내세우려다 헛발질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국제적으로 면을 구긴 마크롱 대통령은 이번 개헌을 기회 삼아 다른 선진국들에 앞서 여성 인권을 수호하는 세계적 리더로 자신을 새로 포장할 수 있게 됐다.
s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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