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로 식욕억제제 먹었을 뿐인데… 그녀는 왜 마약이 검출됐나 [양성관의 마약 파는 사회]

양성관 의정부백병원 가정의학과 과장 2024. 3. 5.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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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약’으로 불리는 다이어트 약
향정신성약물인 중추신경 흥분제
일명 나비약. 성분명: 펜타민. 잘 쓰면 살이 빠지고, 잘못 쓰면 중독이 된다. /게티이미지뱅크

“혹시 마약 하세요?”

나는 20대 초반의 여성에게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의료인을 포함한 특수 직종에게 마약류 검사를 하는데, 미용사 자격증에 필요한 신체검사를 하기 위해 온 정윤아(가명)씨에게서 양성, 즉 마약이 검출되었다. “아뇨, 전혀요.” 검사는 사람과 달리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녀는 다이어트약을 먹고 있었다. 약이 나비처럼 생겨 일명 나비약이라고 하는 펜타민이었다. 펜타민(나비약)은 향정신성약물로 중추신경계 흥분제다. 사람을 마치 시험을 앞둔 상태로 만든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잠이 오지 않으며 식욕마저 사라진다. 이 나비약은 다른 다이어트약에 비해 비용이 저렴하고, 효과가 좋아 가장 많이 사용된다. 다만 화학적으로 필로폰(히로뽕)과 유사한 구조로, 필로폰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온다.

최근 ‘좀비 마약’으로 미국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인 펜타닐은 말기 암으로 고통받는 환자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약이다. 그 외에도 마약류로 분류되는 무수히 많은 약들이 병원에서 환자들에게 처방된다. 오늘도 우리 병원에서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속칭 우유주사라는 프로포폴을 맞으며 위·대장 내시경을 받는다. ‘버닝썬 마약’이나 ‘클럽 마약’으로 알려진 케타민은 앞서 말한 프로포폴, 그리고 미다졸람과 함께 시술이나 수술을 위해 가장 많이 사용되는 마취제이다.

그래픽=김하경

그럼 도대체 뭐가 약이고 마약일까? 처음부터 부작용이나 중독성이 강해 약으로도 쓸 수 없는 마약이 있다. 필로폰, 헤로인, LSD 등이 있다. 그 외에 대부분의 마약류 약물은 잘 쓰면 약, 잘못 쓰면 독이 된다. 마약은 약의 세기나 중독성에 따라, 소프트한 마약(대마)에서 하드한 마약(코카인, 필로폰, 헤로인, 펜타닐)까지 나누기도 한다. 효과에 따라서는 사람을 흥분시키는 업 계열과 가라앉히는 다운 계열, 그리고 환각제 이렇게 3가지로 구분한다. 업 계열의 대표적인 약물은 코카인과 필로폰이고, 다운 계열은 아편, 모르핀, 헤로인, 그 외에 각종 신경 안정제와 마약성 진통제가 포함된다. 환각제는 LSD 등이 있다.

한국에서 가장 많이 적발되는 필로폰의 경우, 무조건 불법이며, 강력한 하드 계열이며, 사람을 흥분시키는 업 계열에 속한다. 마약성 진통제인 펜타닐의 경우, 강력한 하드 계열로, 사람을 가라앉히는 다운 계열이다. 사람을 흥분시키는 업 계열이나, 환각을 겪게 하는 환각 계열의 경우는 그렇다치고, 다운 계열이 중독을 일으키는 기전은 독특하다. 다운 계열은 일반적으로 육체적인 통증을 줄여줄 뿐 아니라, 정신적인 고통마저 줄여준다. 이에 육체적 및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나 기분이 좋아진다. 알코올 중독자가 급성 췌장염이나 요로 결석 등으로 병원에서 통증 감소를 위해 마약성 진통제를 맞다가 중독되는 일이 흔한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반면 임산부는 출산 시에 가장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인 펜타닐이 포함된 무통 주사를 맞지만, 펜타닐에 중독되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고혈압 약이나 당뇨 약 같은 경우, 사람들이 ‘어, 오늘 혈압(당뇨)이 조절이 잘 안 되네’라고 본인이 약을 두 알 먹거나, 세 알 먹지 않는다. 하지만 신경안정제나 진통제, 수면제는, 불안하거나 초조한 환자가 한 알을 먹은 후 약 효과가 나타나려면 짧게는 10분에서 길게는 한 시간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이를 참지 못하고 또 약을 복용하는 경우가 흔히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약은 적정량보다 더 많이 복용하더라도 효과가 늘지 않고, 오히려 부작용만 증가한다. 우리는 열이 과도하게 높다고 해서 해열제인 타이레놀을 두 배로 복용하지 않는다. 간독성만 증가할 뿐, 해열 효과가 2배로 증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픽=김하경

하지만 마약류 약물은 약물 용량이 증가함에 따라 효과 또한 어느 정도까지 증가한다. 이에 환자들이 복용량을 무시하고 임의로 약을 복용한다. 거기다 마약류 약물의 경우, 지속적으로 사용하면 내성이 생길 확률이 높아져 같은 효과를 내려면 점점 용량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수면제인 졸피뎀을 잠에 들기 위해 한 번에 열 알까지 복용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중독이 된 것이다. 중독이 되면, 이제 마약이 없으면 너무나 아프고 고통스러워 참을 수 없다. 내성이 생긴 것이다. 앞서 말한 다이어트 약인 펜타민은 의존성 등으로 3개월 이상 복용을 금한다. 하지만 본인 스스로가 더 많은 체중 감소를 위해 3개월은 물론이고, 한 번에 2알 또는 그 이상을 먹기도 한다. 펜타민은 기본적으로 중추신경 흥분제로 과량을 장기적으로 복용하면 불안과 초조, 심하면 환각을 겪기도 한다. 제주도에서 차를 몰다 경찰차를 포함해 6중 충돌 사고를 일으킨 20대 여성이 대표적인 예였다. 그녀는 사고 직후, 전쟁이 났다며 횡설수설하기까지 했는데, 그녀는 5개월 이상 다이어트 약을 먹고 있었다. 심지어 어머니 이름으로 다이어트 약을 처방받아 복용 중이었다. 살을 빼기 위해서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을 넘어버린 것이다. 펜타닐은 말기 암 환자에게는 필수적인 치료약이다. 하지만 이를 진통이 아니라, 쾌락의 목적으로 사용하면 치명적인 마약이 된다.

그래픽=김하경

의사로 살면서 특정 약을 처방받기 위해 병원을 돌아다니는 사람을 종종 본다. 한국의 높은 의료 접근성은 누구나 쉽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약물 중독에 쉽게 빠지기 쉽다는 단점이 있다. 2022년만 해도, 1946만 명의 환자, 그러니까 국민 5명 중 2명에게 무려 18억 개의 마약류 약물이 처방되었다. 약을 처방받은 이들은 암 등으로 육체적으로 고통받는 환자이거나, 불안이나 불면 등으로 정신적인 고통을 받는 사람이 대부분이겠지만, 분명히 약물에 중독된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의사와 환자 모두 약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약한 대마는 괜찮다고? 결국 더 강한 마약 찾게 돼… 합법화한 美·태국 실패

미국과 태국 등에서 대마 합법화를 하자, 국내에서도 대마를 합법화하자는 의견이 있다. 실제로 환자 중의 한 분이 “선생님, 대마초는 담배보다 중독성과 의존성이 없는데 피워도 되는 거 아닌가요?”라고 묻기도 했다. 50대 후반의 김대성(가명)씨는 과거 대마초와 필로폰까지 한 적이 있었으나, 모두 끊고 나에게 금연 치료를 받던 중이었다. 질문을 받은 나는 김대성씨에게 물었다.

“처음 시작하신 마약이 뭐예요?”

“떨, 그러니까 대마요.”

“그죠? 처음에는 다 대마로 시작해요. 죽을 때까지 대마만 할 수도 있죠. 그런데 그다음에는 뭐 하셨어요?”

“뽕(히로뽕, 필로폰)요.”

비교적 약한 것으로 시작해서 강한 것으로 가는 현상을 관문 이론, 일명 엘리트 코스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대마(과거 본드 등)로 시작해서 필로폰으로 끝나고, 미국에서는 대마로 시작해서 LSD, 엑스터시, 코카인을 거쳐 헤로인, 펜타닐로 간다. 의존성과 내성이라는 마약 특성상 더 강한 것을 찾기 때문이다.

태국과 미국 모두 얼마 안 가 대마 합법화의 심각한 부작용을 겪기 시작했다. 허가를 받은 가게에서, 고객의 신분증을 확인해 성인에게만 대면으로, 대마초만 판매해야 했지만 실제로는 무허가 가게가 속출했고, 미성년자에게 온라인으로, 대마초는 물론이고 판매가 금지된 마약을 팔기 시작했다. 미국 뉴욕주의 경우, 2021년 60곳에 마리화나 판매를 허가했지만, 2년 만에 불법 판매소가 1500여 곳으로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오래전부터 마약을 합법화한 네덜란드는 이미 유럽 마약 산업의 허브가 되었다. 2019년 잡힌 네덜란드 마약왕 리두안 타기(Ridouan Taghi)는 유럽 코카인의 3분의 1과 전 세계 엑스터시의 20%를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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