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칼럼] 정부 못 믿는 의사들, 의사 못 믿는 국민들

김명지 기자 2024. 3. 4.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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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지 기자

지난 3일 오후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의사들의 집회가 열린 서울 여의도에 다녀왔다. 의사 집회가 궁금해서 점심 약속을 근처로 잡았다. 집회를 1시간 앞둔 오후 1시, 생각보다 사람이 없었다. 민주노총 같은 노동 단체에서 연 것이면, 집회 시작 1시간 전부터 주변은 시끌벅적하다. 집회 주변을 지나는 시민들은 “의사보다 경찰이 더 많겠다”라고 말했다. 여의대로에 주차된 경찰버스는 10여 대가 넘고, 형광색 조끼를 입은 제복 경찰은 수십여명이 줄을 서 있었다.

집회가 시작된 오후 2시, 순식간에 사람이 불어나 있었다. 연단을 세운 여의도환승센터부터 마포대교 남단 입구까지 사람들이 모였다. 집회를 주관한 의사협회가 예고한 2만 명은 족히 넘어 보였다. 여의도공원에서 마포대교 횡단보도까지 약 350m, 여의대로 3차선 도로 폭이 20m, 50㎝에 한 명씩 사람이 설 수 있다고 가정하면, 최소 2만 8000명은 참석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날 의협은 “4만 명 넘게 참석했다”고 밝혔다.

서울 도심에서 여는 집회를 볼 기회가 많은데, 의사 집회는 좀 달랐다.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도 있었고, 20대로 보이는 청년도 있었다. 의대생 어머니로 추정되는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도 있었다. 집회 자체는 좀 엉성했다. 구호를 외치는데 박자가 잘 안 맞았다. 함성도 작았다. 김태욱 의협 비대위원장이 구호를 외쳤는데, 소음 측정 경찰 차량의 스크린에 뜬 음량은 고작 63㏈(데시벨)이었다. 소음·진동관리법에서 주거지역 공사장의 소음 기준이 65㏈인데, 그보다도 낮다.

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에서 '의대정원 증원 및 필수의료 패키지 저지를 위한 전국 의사 총궐기 대회'가 열리고 있다. 김택우 의협 비대위원장이 연단에 올랐을 때 소음 측정 경찰 차량 스크린에는 63.1데시벨이 측정됐다. /김명지 기자

집회가 끝난 후 거리 행진도 없었다. 메시지는 중구난방이었다. 정부는 필수 의료를 살리려고 의대생을 늘린다는데, ‘의대를 늘리면 필수 의료가 망한다’는 말이 되풀이했다. 의대 정원을 늘리지 말라는 건지, 전공의 수련 환경을 개선하자는 건지, 수가를 올려 주라는 건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집회 도중 펼쳐진 뮤지컬 ‘레미제라블’ 공연에는 웃음이 나왔다. 이러니 ‘모범생 집회’라는 소리가 나온다.

이날 집회를 보면서 의료계가 정부에 대응해 단일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하나의 집단이 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은 4일 확고해졌다. 이날 전국 대학의 의대 증원 수요 조사에서 각 대학이 2000명이 넘는 인원을 적어냈다고 한다. 전국의 의대 학장들이 의대 증원에 공개 반대했지만, 결과적으로 학교 총장 설득에 실패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집회에서 가장 흥미로운 건 시민들 반응이었다. 현대백화점 앞 버스정류장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있는 사람이 더하다”라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냥 현실이 이렇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의사들의 소득 명세를 보고 의사가 더 늘어도 되겠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희망퇴직을 당해서 치킨집을 개업해 3년 안에 망하는 비율이 95%다. 의사가 개원해서 망하는 비율은 20%는 될까.

의사들은 전반적 여론 지형이 어떻게 형성돼 있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의사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그 숫자가 아니라 이게 정확한 숫자!’라는 식으로 반응한다. 예를 들어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과 김윤 교수가 생방송 텔레비전 토론에서 ‘30대 종합병원 봉직의 연봉이 3~4억 원 한다’고 말하자 ‘4억이 아니라 1억 9000만원’이라는 식이다. ‘변호사는 30억을 버는데, 의사는 돈 많이 벌면 안 되냐?’라고도 한다. 거기서부터 토론이 산으로 간다.

의사들은 정부가 필수 의료를 살리겠다고 내놓은 정책 패키지에 대해서도 ‘못 믿겠다’로 일관한다. 하지만 정부의 필수 의료 패키지를 보면 꽤 구체적이다. 대표적인 것이 분만 수가인데, 고위험 분만 수가는 79만 원에서 343만원으로 4배 넘게 올랐다.

정부도 잘못이 있다. 한국은 대학병원이 응급 중환자 진료 등 필수 의료를 전담하는데, 그 구조가 상당히 기형적이다. 대기업 수습사원 격인 전공의가 전체 의사의 40%를 차지한다. 이들은 주 80시간을 한 달 300만 원 남짓한 박봉을 받으며 필수 의료를 떠받쳐 왔다. 이런 현실을 정부가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고,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면 방임이다. 의대 증원 2000명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정부의 ‘불통’ 적 태도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인간의 욕망을 자로 잰 듯이 정확히 계산하고 예측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들이 미국에 가면 훨씬 번다. 하지만 미국에 가지 않는다. 의사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 의사를 하면 훨씬 더 벌겠지만 모두가 미국에 가지 않는다. 돈을 좀 덜 벌어도 한국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있고, 돈 좀 덜 벌어도 미용 성형이 아니라 필수 의료를 하고 싶은 의사들이 있다. 전공의 7000여명이 의료 현장을 빠져나갔지만, 그 공백을 묵묵히 채우는 전임의 교수들도 있다. 이들까지 한꺼번에 매도해서는 안된다.

정부는 이번 사태가 끼칠 사회적 악영향도 고민해야 한다. 이번 사태는 단순히 돈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의사는 사람을 살리는 직업인데, 이들이 의업(業)에 환멸을 느낄까 두렵다. 업에 환멸을 느끼는 사람에게 국민의 생명을 맡길 수 있겠나. 경영의 신이라고 불리는 이나모리 가즈오는 “국가를 위해서, 사회를 위해서라는 식의 거창하고 고상한 이념을 걸면 일하는 직원들은 ‘남의 일’로 느낀다”고 했다. 전공의들에게 히포크라테스 선서와 사명감을 내세워 돌아오라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지금도 늦었다. 정부가 좀 더 나은 해법을 고민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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