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가 만났습니다]강민구 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법조 전문 AI로 빠르고 공정한 판결 지원해야”

2024. 3. 4.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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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구 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10여개 질문을 담은 질의서를 전달한 지 정확히 20분 만에 답변서가 왔다. 한 달에도 여러 번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뵈러 가야 한다는 효심에 업무 처리 속도를 높인 것이 몸에 배 36년을 이렇게 살았다고 했다. 이런 업무 태도는 높은 평가로 이어져 그를 승승장구하게 한 원동력이 됐다.

강민구 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는 법관으로서 그리고 법무 정보화 선도자로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1988년 서울지방법원 의정부지원을 시작으로 36년간 1만200여 건 이상 판결문을 작성하며 주요 판결을 통해 사회 발전에 기여했다.

'4대강 사업 한강 수계분쟁' 항소심 사건, 녹십자 혈우병 치료제 에이즈 감염 손해배상 사건, 국가유공자 비해당 처분취소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강 전 판사는 바쁜 와중에도 디지털 관련 연구에 집중해 그 성과를 재판 업무와 접목시켰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그는 대한민국 사법부 정보화 발전에도 핵심 역할을 담당했다. 종합법률정보시스템 개발 주역이었으며, 전자소송 및 전자법정 도입에도 기여했다. 사법정보화발전위원회 위원장으로 차세대 정보화 시스템 기술 사양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IT 판사'로 불리며 법원 디지털화를 이끈 그는 이제 AI 전도사로 사회 각 분야에 AI 활용과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은퇴는 했지만 법률가 고유 업무를 하면서 강연과 모임 등을 통해 디지털·AI 분야 확산 활동을 이어가겠다는 게 그의 계획이다.

강 전 판사를 만나 36년간 법관 생활을 마무리 한 소감, 사법 정보화와 AI 확산 방안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대담=안호천 AI데이터부장

강민구 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가 안호천 전자신문 AI데이터부장과 이야기하고 있다. 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최근 36년간 법조계 생활을 마무리했다. 소회가 있다면.

▲공직 경력 통산 41년의 긴 여행을 마치니 감회가 새롭다. 36년간 법관 생활에서 1만 201건의 실체 판결을 데이터베이스에 남겼다. 여한 없이 재판 업무에 집중했다. 시간이 있을 때마다 IT와 디지털, 최신 AI 연구에 집중했고, 그 성과를 재판 업무에 접목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36년간 재판 업무에 몰입해서 고난도 사건과 오래 묵은 사건을 거의 다 처리했다. 특히 구로공단 농민토지 강제수용 손실보상금 사건은 속이 후련한 사건이다. 서울고등법원 민사 9부 재판장 시절 창원 법원장 보임 이틀 전에 특별기일을 잡아서 선고했는데, 최선을 다한 판결로 기억에 남는다.

사법정보화 초석을 다진 일, 전자책을 총 12권 9455쪽으로 낸 일, 말기암으로 투병했던 고 윤성근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위해 책을 낸 일, 아울러 코로나 당시 국민을 위해 1만1000쪽이 넘는 외신을 정리 번역한 일 등 많은 일들이 타임라인에 기록됐다.

-'IT 판사'로 불릴 정도로 우리나라 사법 정보화에 기여했다. 관심을 가지게 된 결정적 계기가 있다면.

▲사법연수원 수료 후 육군사관학교 교수로 일했다. 주당 12시간 통산 1600시간 강연하면서 당시 육사에 설치된 서버급 컴퓨터에서 작동되는 파스칼 같은 코딩 언어를 독학하고 배운 것이 결정적이었다.

그때는 개인용 컴퓨터가 없던 시절이다. 나는 마라톤 타자기 세대다. 타자기를 갖고 연수원 다니면서 사용했다. 당시 타자기를 들고 출근했는데, 서버급 컴퓨터를 처음 봤다. 처음 본 날 밤에 잠이 잘 안 왔다. 미래의 법조인이 살 길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저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육사에는 학사장교로 서울대 전산과 출신이 좀 있었다. 그 친구들과 가깝게 지내며 컴퓨터를 배웠다. 법관 임관된 후 직접 컴퓨터 조립도 했다.

판결 업무를 하느라 학원을 따로 갈 시간이 없었다. 하우PC, PC사랑과 같은 컴퓨터 잡지 세 종류를 정기구독했다. 6개월마다 동네 복사집에 가서 그 잡지 전부를 분철해 요약분을 합쳤다.

광고와 아는 기사는 버리고 하드웨어(HW), 소프트웨어(SW)를 분류해서 넘버링을 하면 600페이지짜리 한 권이 나온다. 그걸 나머지 6개월 간 5회 이상 읽었다. 그 일을 15년 이상 했다. HW, SW 모두 독학했다. 당시 법원에 전산 관리하는 직원이 1명 있었는데, 발품이 모자라니까 고등법원에 필요한 수리는 내가 다해주기도 했다.

-과거와 비교해 우리나라 사법 정보화 수준은 어떠한가.

▲우리나라 사법 정보화가 최근 6년간 정체된 것도 사실이다. 정보화보다는 다른 쪽에 관심도가 더 높기 때문인 거 같다.

종합법률정보 시스템 1차 버전 개통이 1998년 9월이다. 당시 세계 최고 수준 시스템이었고, 이후에도 세계은행의 계약 이행 강제력 평가 부분에서 180여개국 중 1~2위를 오랫동안 차지하기도 했다.

사법정보화 수준은 2000년대 이후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전자소송이 2010년부터 개통됐고, 세계 3위 내에 접어들었다.

2016년에 중국 항저우와 상하이에서 열린 세계인터넷대회에서 한국 대표로 가서 발표를 하기도 했다. 그때 중국에서 자기 사법 정보화 시스템을 보여주는데 내가 맡아 총괄한 종합법률정보 시스템과 똑같았다. 언어만 중국어 간자체였다. 10년간 한국 시스템을 보며 벤치마킹한 것이다.

그런데 중국은 그 시스템을 가지고 동남아, 아프리카, 남미를 휩쓸었고 우리나라는 베트남 1곳밖에 진출을 못 했다. 완전 추월당한 것이다. 그 출장을 다녀와 사흘 밤을 세워 300쪽의 중국 사법 정보화 현황 보고서를 썼다. 그걸 당시 대법원장이 보고 큰일 났다며, 법원도서관장을 맡기고 '역추격하라'고 했다.

대법원 사법정보화전략위원회에서 차세대 사법정보화 시방서를 만들었다. 그걸 바탕으로 올해 10월부터 차세대 사법정보화시스템이 개통되고, 내년에 AI 시스템이 가동되면 다시 세계 일류 사법정보화의 지위를 회복할 것으로 생각한다.

강민구 전 서울고등법원 판사 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대법원이 AI 도입을 예고하는 등 법조계에 AI 도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판사 3000명이 AI에 의존하면 천편일률적이고 프로토타입 수준의 판결문이 반복, 재생산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 반론은 사건 당사자가 원하는 것은 창조적 판결이 아니라는 것이다. 재판 지연 없이 법무를 빨리 처리하고 이길 사람은 이기고 질 사람이 지는, 즉 공정하게 해주는 것을 바란다. 국민은 관성에 젖은 똑같은 판결이 나오는 것을 비판하는 게 아니다. 결론이 틀리거나 재판이 지연되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다.

AI 도우미가 생기면 3000명의 판사 각 1인에게 재판 연구원을 2~3명 붙여주는 것과 같은 효과가 나온다. 지금 판사가 5000~6000명 필요하다는데, AI가 더해지면 4000명까지 늘려도 충분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우리나라 판사들 일을 많이 한다. 일본은 합의부에 한 달에 배석당 1건의 판결문을 쓴다. 우리는 일주일에 3건, 최대 8건도 쓴다. 재판 지연이라는 불만도 있지만, 세계 선진국과 비교해도 우리가 200~300% 빨리 처리하는 것이다. 미국 판사가 이런 상황을 보고 '크레이지 시스템'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

판결문 작성 도우미 AI 도입이 시급하다. 법원 내부용 판결문 작성 도우미 AI는 프라이빗 거대언어모델(LLM)이 적합하다. 내부용 AI를 도입하고 설치하는 데는 하드웨어적 서버 증설이 필요하다. 또 수천만 건의 판례를 LLM에 학습해야 해서, 어느 정도 예산 지원이 필수적이다.

언제까지 법원이 직접 할 수 없다. 장기적으로는 법원의 모든 판결문 데이터, 실무제요, 실무편람, 논문 등 법원 내부의 독점적 자료가 민간에 개방돼 민간 경쟁을 활성화해야 한다. 민간 경쟁에 의해 새로운 AI 시스템이 발전해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개인정보보호법 개정 등 관련 법규가 개정돼 법원에서 생성된 판결문 전문이 실시간 공개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정말로 민감한 정보를 제외하고는 민간에 다 개방해야 한다.

-법조 AI의 부작용을 막고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법조 전문 AI가 제대로 작동되려면 그 AI에 학습되는 원시 데이터가 양질이어야 한다. 데이터는 마치 자동차의 휘발유와 같아서 LLM 엔진이 있어도 학습 데이터가 허약하면 의미가 없다.

성폭력 사건, 가사 사건 빼고는 익명화 예외를 하고 모두 실명으로 해야 한다. 중국, 미국 다 실명이다. 익명으로 다 처리하면 암호문이 된다. 읽을 수가 없다.

미국의 '렉시스렉시스 AI'나 '웨스트로 AI'는 기존 구축된 수많은 영미법 자료들이 전부 다 학습이 돼 환각 현상이 거의 없다.

얼마 전 국내 리걸테크 기업의 시연을 봤다. 290만건 판결문을 기반으로 한 법조 전문 AI도 역시 환각 현상이 거의 없다. 데이터 품질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

-미래 법조 업무는 어떻게 달라질 것으로 예상하나.

▲법조 전문 AI가 도입되면 저년차 법조인의 일 상당 부분이 AI에 의해 대체된다. 당장 AI가 사실관계 구성과 정리, 결론 도출 등에는 적용되기 힘들지만, 페이퍼 작업의 보조도구로는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인간 법조인이 기존 검색엔진을 가동해서 다수의 결괏값을 검토, 선정하는 지루한 작업이 자동화되면, 법조인 업무 패턴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거대 로펌이나 군소 로펌, 개인 변호사 간 무기가 어느 정도 대등해지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이러한 경쟁이 치열해지면 결국 국민이 양질의 법무 서비스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인건비보다 AI 도입이 저렴하기 때문에 수임료도 낮아질 것이다.

-해외 기업 대비 우리 AI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국내 AI 서비스가 미국 메이저 범용 AI에 대항하기에는 여러 이유로 부족하다. 다만, 예산이나 인력 면에서 미국과 비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이 정도로 개발된 것은 칭찬할 만한 일이다.

지금으로선 범용 AI에서 미국 메이저 AI 회사와 바로 경쟁하는 것은 승산이 부족하다. 전문 분야(버티컬)별로 깊게 파고 들어가 전문 AI의 틈새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강민구 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AI 윤리 기준 등 바람직한 규제 정책이 있다면.

▲AI 규제에 대해 유럽연합(EU) 방식과 미국 방식이 크게 양분되고 있다. EU는 인터넷과 AI 패권을 미국에 빼앗긴 입장이기 때문에 되도록 규제 위주로 가는 법령을 입법하고 있다.

미국은 산업진흥 측면에서 연구한다. 우리는 EU식을 따라 해서는 안 되고 미국의 산업진흥 쪽의 방편으로 AI 관련 법령을 제정해야 한다. 그것도 빨리 만들 것이 아니라 미국이 어느 정도 입법을 완성하는 걸 본 다음에 천천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때까지는 기존 관련 법령이나 개별 사건 판결로 그것을 규율해 나가면 그 갭을 메울 수가 있다.

AI 규제나 윤리 기준에서도 AI는 인간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 인격권, 프라이버시권 같은 개인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유념하는 것이 중요하다.

-평소 좌우명이나 인생철학이 있다면.

▲좌우명은 '적선지가 필유여경'이다. 어렸을 적에 어머니와 할머니의 선행을 보면서 그것이 습성으로 몸에 배게 됐다.

장점은 어떤 일이나 업무든지 열중하고 집중하는 것이다. 성격이 약간 급한 면이 있지만, 이 때문에 사건을 미루지 않고 적시 처리할 수 있었다. 초치기나 미루기 없이 난제 사건이나 장기미제 사건, 쟁점이 복잡한 사건을 시한 내에 처리할 수 있었다.

-앞으로 계획이나 목표가 있다면.

▲나는 기본적으로 법률가이다. 법률가 고유의 업무, 즉, 변호사 업무는 기본적으로 하겠지만, '디지털·AI 상록수 협회' 같은 단체를 만들어 사회 헌신과 봉사활동도 같이 해나갈 계획이다. 이미 지난 2월26일 온라인 팀단톡방을 발족시켜 활동을 개시했다.

◇강민구 판사는···

용산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88년 서울지방법원 의정부지원 판사로 임관 이후 창원지법원장, 부산지법원장, 법원도서관장 등을 지냈다. 대법원 종합법률정보포털과 데이터베이스(DB) 구축, 전자소송제 도입 등 법률 정보화 영역에 앞장서며, 디지털 선구자로 불린다. 〈송백일기〉 〈호기심으로 묻고 열정으로 답하다〉 〈AI 시대의 생존자세〉 등 12권의 전자책을 발간했다. 지난 달 정년퇴임 후 디지털격차 해소 등 사회활동에 나섰다.

정리=김명희기자 noprint@etnews.com, 사진=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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