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남호 호령하는 ‘서산 골든이글’…검독수리야, 40년 무사히 살렴
2016년부터 8년간 조우…올해도 부남호 찾아
고라니 등 사냥하며 40년 사는 최상위 포식자
몰지각한 촬영 욕심에 사람들과 멀어지기도
탐조는 언제나 기다림이다. 지난 2014년부터 올해로 11년째 같은 월동지를 찾아오는 검독수리가 한 마리 있다. 필자는 2016년 이 검독수리를 처음 만난 이후, 매해 이 새를 만나길 고대하며 탐조에 나선다.
이 검독수리가 우리나라에서 처음 목격된 것은 2014년 12월 충남 서산시 부석면 마룡리에 있는 저수지 ‘부남호’에서다. 필자도 2년간의 탐조 끝에 2016년 어린 시절의 이 검독수리를 만날 수 있었다. 맹금류는 어른이 되면 만나기 힘들어진다. 게다가 희귀 맹금류라면 특히 더 그렇다.
8년째 지켜봐 온 검독수리, 만나기 어려워진 이유
검독수리를 만날 수 있을까 싶어 부남호와 천수만 일대를 살펴보곤 하는데, 광활한 천수만 평야에서 새를 찾는 일은 사막에서 바늘 찾기처럼 어렵다. 월동 시기인 봄과 겨울철에 여러 차례 탐조했지만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러다 드디어 1월 중순 다시 검독수리를 만났다. 이날 마룡리는 왠지 휑한 느낌이었다. 황새와 기러기가 농경지에서 먹이를 먹고 있고,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독수리 30여 마리가 검독수리의 영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독수리 있는 곳에 흰꼬리수리도 있기 마련. 손쉽게 먹잇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검독수리로서는 불편한 동거다.
탐조 마지막 날 소나무에 앉은 검독수리를 멀리서 확인했다. 어른이 된 검독수리는 이제 경계심이 강해 좀처럼 곁을 주지 않았다. 어느 곳에서 나타날지 몰라 한 장소에서 온종일 기다려서 가까스로 만난 것이다.
검독수리를 만나기 어려워진 이유는 사람의 영향이 크다. 2020~2021년 낚싯줄에 토끼와 꿩을 묶어 어린 검독수리를 유인해 촬영하는 난장판이 벌어진 적이 있다. 심지어 검독수리의 잠자리와 사냥 전망대까지 접근해서 위협을 가하는 바람에 검독수리는 아예 자리를 포기하고 자취를 감췄다.
조류가 사람의 모습을 보고도 도망치거나 경계하지 않고 먹이를 먹거나 휴식을 계속하는 안정적인 거리를 ‘비간섭 거리’라고 한다. 조류는 방해를 받으면 하던 행동을 중단하고 사람의 행동을 살펴보거나 소리를 내는 등의 경계 행동을 한다. 그리고 거리를 유지하며 회피를 하거나 아예 자리에서 멀리 날아가는 도피 행동을 한다.
비간섭 거리를 유지하지 않고 맹금류의 먹이터나 지정석인 잠자리, 전망대, 휴식처를 침범하는 것은 독립적이고 엄격한 사생활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맹금류들에게 치명적인 방해 요인으로 작용한다. 특히 초원수리, 흰죽지수리, 참수리, 항라머리독수리, 흰꼬리수리 등은 더욱 민감하다.
맹금류는 평생 이용할 사적인 공간이 한 번 침범당하면 그곳을 포기하거나 다시는 나타나지 않기도 한다. 비간섭 거리를 유지하며 탐조와 촬영을 하는 것은 사진인의 기본적인 덕목이다. 조류는 한 번 위협을 가한 사람을 평생 기억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40여 년을 사는 검독수리가 자연이 돌아가는 이치를 어찌 모를까.
사람들의 지나친 욕심이 앞서지 않았다면 마룡리의 검독수리를 볼 기회는 지금보다 활짝 열려 있었을 것이다. 어른이 된 검독수리는 먹이로 유인하는 얕은수를 써 관찰하기 어렵다. 어릴 때야 경계심이 덜하고, 먹어도 먹어도 배고플 정도로 먹이 욕심이 많으니 가능했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잠자리와 전망대를 침범하는 것은 안 될 일이다. 이제 마룡리의 검독수리는 산전수전 다 겪으며 부남호를 호령하는 어른 검독수리다.
늑대·고라니까지 사냥하는 용맹한 새
검독수리의 먹이로는 너구리, 토끼, 청설모 등이 있으며 먹이가 부족할 때는 사체를 먹기도 한다. 사슴, 산양 등 대형 포유류나 살쾡이, 여우 등 육식성 포유류를 사냥하기도 한다. 유라시아에 분포하는 대형 검독수리들은 늑대를 사냥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검독수리는 자신보다 몇 배나 큰 동물을 먹이로 사냥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다 자란 불곰조차도 검독수리 두 마리의 공격을 받고 달아나는 장면이 촬영된 적이 있다. 이때 검독수리의 공격은 먹이를 삼기 위해서라기보다 자신의 영역을 침입한 상대를 쫓아내기 위해 감행된 공격으로 추정된다. 2017년 충남 천수만에서도 고라니를 향해 공격성을 드러내는 검독수리의 모습을 목격한 적이 있다.
검독수리는 조류 가운데서도 최상위 포식자다. 다 자란 검독수리는 다른 맹금류처럼 다른 포식자의 먹이가 되지 않는다. 검독수리는 다른 맹금류로부터 먹이를 빼앗는 방식을 선호한다. 검독수리의 시력은 매우 뛰어나 2㎞ 밖의 먼 거리에서도 먹이를 찾아낼 수 있다. 결단력 또한 사람보다 몇 배나 뛰어나다. 그러나 주행성 맹금류로 낮에만 먹이 활동을 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용맹한 검독수리의 둥지가 몸집이 작은 동물에게는 피난처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검독수리가 먹이로 하기에 너무 작은 동물들은 검독수리의 둥지로 숨어든다. 이 동물들을 먹이로 하는 포식자들은 반대로 검독수리에게는 먹잇감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검독수리 영역 내로는 접근하지 않는다. 그러니 조그마한 동물들이 둥지 근처에 거주할 경우 자연스레 안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40년 세월, 일부일처제로 산다
다 자란 검독수리의 크기는 지역에 따라 매우 다양한데, 그중 작은 종은 현재 한국과 일본에 서식하며 가장 큰 종은 카자흐스탄 남부와 중국 남서부 지역, 만주, 인도 북부 등지에 서식한다. 다른 맹금류처럼 암컷이 수컷보다 훨씬 큰데, 검독수리의 경우 암컷의 몸무게가 수컷의 1.25~1.3배까지 더 나간다.
검독수리는 약 155㎢ 정도의 영역을 차지하고 생활하며 일부일처제를 유지한다. 짝짓기 후 수년간 서로 간의 신뢰를 굳건히 하는 행동을 하는데, 이때 암수는 다른 맹금류로부터 서로를 헌신적으로 보호한다.
마룡리의 검독수리는 부남호와 간월호가 있는 주변 평야를 사냥터로 삼고 있다. 두 평야의 직선거리는 약 11㎞ 정도다. 부남호에서 서쪽을 제외한 북·동·남쪽 약 11㎞ 이내를 사냥터로 활용한다. 멀게는 서산시 경계를 넘어 홍성군 결성면 와룡천 상류까지 활동하기도 한다. 약 20㎞ 거리다.
대형 맹금류는 태어나 4~5년이면 성조가 되어 생리적으로 번식이 가능하지만, 검독수리는 반복적인 털갈이를 통해 완벽한 어른 깃털을 갖기까지 10여 년이 걸린다는 것을 이 마룡리 검독수리를 관찰하면서 알게 됐다.
검독수리는 보통 집단을 이뤄 함께 살아간다. 이들은 영역 내 여러 개의 둥지를 틀고, 몇 년씩 번갈아 사용한다. 둥지는 절벽, 나무 등의 높은 곳에 짓는데 오래된 둥지는 지름 2m, 높이가 1m에 달한다. 필요할 때마다 둥지를 보강하기 때문에 그 크기가 늘어나는 것이다.
암컷은 한 번에 네 개의 알을 낳으며 40일 전후의 부화 기간을 갖는다. 깨어난 새끼는 50일이 되기까지 어미로부터 먹이를 받아먹는다. 새끼가 둥지를 떠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3개월이다. 이 기간에 1~2마리 정도만 살아남는다.
검독수리는 종종 약간 위를 향한 브이(V)자 형을 유지하며 비행한다. 검독수리의 예리하고 커다란 발톱은 사냥감을 죽이거나 운반하는 데 주로 사용되며 앞으로 휘어진 윗부리는 먹이를 찢고 삼키는 데 사용된다. 암수가 역할 분담을 통해 사냥하며, 주로 한 쪽이 사냥을 나가서 짝이 기다리는 곳으로 먹이를 모으는 방식을 사용한다.
윤순영의 탐조 사전 : 검독수리는?
검독수리는 북반구에서 가장 잘 알려진 맹금류 중 하나다. 한때 북반구 전역에 널리 퍼져 있었으나 일부 지역에서는 멸종되거나 희귀해졌다. 유라시아, 북아메리카, 그리고 일부 아프리카 지역에서 서식한다. 세계에서 검독수리가 가장 흔하게 서식하는 곳은 캘리포니아 앨러미다의 남부 지역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매우 희귀한 새다.
과거엔 우리나라 텃새였지만 지금은 겨울철새가 되어 한강 하구, 임진강, 철원, 연천, 천수만, 낙동강, 만경강 지역에 드물게 찾아와 그 명맥을 잇고 있다. 국내에서는 1948년 4월1일 경기 남양주시 예봉산 절벽 15m 지점 바위굴에서 번식한 기록이 있다. 같은 해 4월16일 경기 남양주시 천마산의 33m 바위 절벽에서도 번식한 사례가 있다. 1974년에는 전북 내장산 도집봉 산정 부근 암벽에서 번식했다고 하며, 현재도 강원 양구군 두타연 부근(비무장지대 인접 지역)에서도 번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검독수리는 전체적으로 어두운 갈색을 띠고 있으며, 머리와 목에는 연한 색의 깃털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서식하는 종의 몸길이는 수컷 평균 81cm, 암컷 89cm이다. 한쪽 날개 길이 57~63cm, 꽁지 길이 31~35cm, 몸무게는 약 4.4kg 정도다.
날개를 펼쳤을 때 양 날개 길이가 167~213㎝에 달한다. 커다란 발, 큰 발톱이 특징이다. 토시를 낀 듯 다리의 깃털이 발목을 끝까지 감싸고 있다. 이런 특징은 항라머리검수리, 초원수리, 흰죽지수리에서도 볼 수 있다.
깃털의 색은 검은 갈색에서 짙은 갈색까지 다양하다. 개체에 따라 깃털 변이가 있다. 정수리와 목 뒤쪽의 깃털은 두드러진 노란 갈색을 띠며 햇빛을 받으면 황금빛으로 보인다. 그래서 영어로 골든이글(Golden Eagle)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날개의 위쪽도 비교적 밝은색을 띤다.
새끼는 어미와 대체로 비슷하나 약간 칙칙한 반점이 여기저기 나 있다. 꼬리에는 하얀 줄무늬가 있으며 날개 관절 부위에도 하얀 깃털이 있는데, 이 깃은 5살까지 서서히 사라지게 된다. 깃털은 햇볕의 명도에 따라 검은색이나 밝은 갈색으로 보이기도 한다. 지역에 따라 깃털 색이 밝거나 어두울 수 있는데 특히 동아시아의 검독수리는 검은색을 많이 띤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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