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욱의 한국술 탐방 | 소주로 독도 알리는 케이알컴퍼니 임진욱 대표] “독도 우편번호가 적힌 술, 깔끔한 독도소주 맛보셨나요?”

박순욱 조선비즈 선임기자 2024. 3. 4.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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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욱 케이알컴퍼니 대표가 독도소주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알코올 도수 기준으로 17도, 27도, 37도 제품이 있다. 사진 박순욱 기자

“숫자 ‘40240’의 의미를 아십니까? ‘독도소주’ 라벨에 적혀있는 40240이라는 특별한 숫자는 독도의 우편번호입니다. 우리 영토인데도 독도가 고유의 우편번호를 처음 가진 것은 2003년입니다. 당시 우편번호는 ‘799-805’였습니다. 그러다가 2014년 행정안전부의 도로명 주소 시행에 맞춰 지금의 40240으로 개편됐습니다. 독도의 우편번호 40240을 통해 독도가 한국 고유의 영토임을 세계에 알리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가장 많이 마시는 술인 소주를 통해 한국의 아름다운 섬 독도와 독도의 우편번호를 전 세계에 알리고 싶고, 한국인 역시 독도를 더욱 사랑하기를 바랍니다.”

한국인의 주식인 쌀로, 한국인이 가장 즐겨 마시는 소주를 만들어 독도 사랑을 실천하는 양조장 대표가 있다. 강원도 평창에 있는 케이알컴퍼니(독도소주 생산 법인) 임진욱 대표가 그다. 임 대표는 독도소주 라벨에 독도 우편번호 40240을 명시했다. 정식 술이름이 ‘40240 DOKDO’다. 술 이름에 숫자가 들어가는 경우도 드문데, 우편번호가 들어간 경우는 독도소주가 처음이 아닌가 한다.

임 대표가 독도소주를 만들게 된 계기는 미국에서 출시한 ‘799-805(독도 첫 우편번호) 독도와인(DOKDO WINE)’을 알게 된 것이었다. 독도와인은 10여 년 전 한국인 치과의사(고(故) 안재현)가 미국에서 만든 와인이었다. 임 대표는 “독도와인이 보여준 독도 사랑을 독도소주를 통해 다시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스토리텔링이 훌륭하더라도, 술은 술 그 자체로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술맛이 별로라면 독도 사랑 마케팅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래서 강원도 평창군 평창읍에 있는 독도소주 생산 공장을 찾았다. 이전에 과실주를 만들던 공장을 인수해, 쌀 증류주 전문 양조장으로 개조했다. 전국의 양조장을 100군데도 더 가봤지만, 자동화 설비가 가장 잘된 곳이 이곳 독도소주 공장이었다.

임진욱 케이알컴퍼니 대표가 감압증류 설비 작동법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박순욱 기자

자동화 공정 갖춘 독도소주 양조장

쌀 세척에서부터 분쇄(이곳에선 고두밥을 찌지 않고 생쌀 발효한다), 발효, 증류에 이르기까지 전 공정이 자동화돼 있다. 공정 하나하나마다 파이프로 다음 공정으로 보내기 때문에 외부 공기에 노출될 일이 전혀 없다. 자동화가 잘돼 있는 만큼 최소한의 인력으로 양조장 가동이 가능하다. 임 대표는 “박스 포장을 제외한 전체 공정 대부분이 자동화돼 있다”고 말했다. 5000㎡(약 1500평) 부지의 생산 공장에서 생산 담당 직원은 임 대표를 포함해 3~4명에 불과하다. 온도 조절 장치인 ‘컨트롤 패널’을 통해 전 공정이 자동으로 운영된다. 온수, 냉수 투입 시기는 물론 발효탱크와 증류 탱크 내부의 자동 교반기(휘저어 섞음) 작동 시기까지 척척 알아서 한다.

이곳 독도소주 생산 공장에서는 발효 과정에서 전통 누룩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술은 발효 과정을 꼭 거쳐야 하는데, 쌀을 원료로 할 경우, 쌀 속의 전분을 당분으로 만드는 당화 과정 그리고 당분을 알코올로 만드는 알코올 발효 과정이 그것이다. 전통 밀누룩에는 당화에 필요한 효소와 알코올 발효에 필요한 효모가 모두 들어있어, 이들 효소와 효모가 결국 술을 발효시키게 된다. 그러나 독도소주의 경우, 전통누룩은 일부만 넣고, 별도로 효소(조효소제)와 효모(정제 효모)를 넣어서 발효를 진행한다. 임 대표는 “내가 추구하는 스타일의 술을 만들기에는 전통 누룩보다 정제 효소가 적합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발효 과정에서 고두밥을 찌지 않고 생쌀 발효를 선택한 것은 공정 단순화와 인력 절감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술의 균일성 때문이다.

울릉도 해저 심층수로 감압증류 제조

발효 다음 공정이 증류다. 독도소주는 감압증류 방식으로 내린다. 감압증류는 낮은 압력에서 물질의 끓는 점이 내려가는 현상을 이용하는 증류 방식이다. 내부 압력을 강제로 빼내면(감압), 47~50도 정도의 낮은 온도(원래 알코올은 78도에서 끓기 시작한다)에서도 알코올이 끓어, 술에서 탄내가 나지 않고, 맛이 깔끔한 것이 장점이다.

독도소주는 2t짜리 감압증류기 두 대를 갖추고 있다. 각각 높이가 6m에 이른다. 이 정도 설비는 쌀 증류주 업체 중 경기도 여주의 화요 말고는 찾기 어려울 정도로 큰 편이다. 증류 전 공정인 발효를 담당하는 발효탱크 역시 2t짜리가 16개에 이른다. 감압증류 탱크 디자인은 임 대표가 직접 했다. 임 대표는 “탑의 높이와 냉각기 길이, 각도에 따라 증류 원액 맛에 큰 차이가 있다”며 “증류 과정에서 기화하는 알코올이 높은 냉각탑에 올라가 섭씨 4도의 냉각수를 만나 증류 원액이 만들어져 최대한 술맛이 부드럽도록 했다”고 말했다. 핵심 시설인 증류 설비뿐 아니라 거의 1년여에 걸쳐 임 대표가 하나하나 그림을 그려가며 양조장 설비 설치를 마무리했다. 임 대표는 “설치 비용이 거의 발효, 증류 설비 구입 비용만큼 들었다”며 “전국 어느 양조장과 비교해도 자동화 공정이 앞서 있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현재 독도소주는 17도, 27도, 37도 세 종류(알코올 도수 기준)가 있다. 인공감미료를 일절 넣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가격은 착한 편이다.

증류를 끝낸 술은 알코올 도수가 평균 50도가 넘는다. 물을 일부 넣어서 원하는 도수로 내려야 한다. 이 과정을 ‘가수’라고 하는데, 독도소주의 가수용 물은 남다르다. 울릉도 해양 심층수 성분을 압축한 미네랄 농축수를 가수용 물로 쓰기 때문에 여느 소주보다도 마그네슘, 망간 같은 미네랄 성분이 풍부한 것이 특징이다. 임 대표는 “독도소주라는 정체성을 살리기 위해 울릉도 해저 1500m 심층수를 추출해 농축시킨 액상 미네랄을 정밀 정수한 물과 섞어 가수용 물로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감압증류한 원액은 별도의 숙성을 거치지 않고 2~3주 후 곧바로 병입한다. 상압증류한 원액은 장기간 숙성이 필요한 것과 대조적으로 감압증류 원액은 증류 직후에 바로 마셔도 될 만큼 부드럽기 때문이다. 최근 감압증류 소주가 쏟아지는 이유 역시 별도의 숙성(숙성을 전혀 안 하는 것은 아니고 하더라도 대개 6개월을 넘기지 않는다) 없이 곧바로 병입해, 상품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숙성은 곧 시간이고, 시간은 결국 돈이다. 숙성에 필요한 공간도 필요 없고, 곧바로 현금화가 가능한 것이 감압증류의 매력이다.

수출 증대로 독도 홍보

케이알컴퍼니는 최근 미국에 독도소주 3만2104병을 수출했다. 미국 현지 사정(알코올 도수에 따른 과세)에 맞추어, 기존 27도 제품 대신 24도로 알코올 도수를 조금 내린 제품으로 포장했다. 첫 수출 3만 병은 많다고도 볼 수 있고, 적다고도 볼 수 있는 물량이다.

그러나 수출에 거는 임 대표의 목표치는 크다. 생산 물량의 30~50%를 수출로 돌린다는 계획이다. 임 대표는 “내 나름의 방식으로 독도를 해외에 알리려면, 독도 우편번호를 표기한 독도소주를 한 병이라도 더 수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국내 현실과도 직접 연관돼 있다. 독도소주는 주세의 50%를 감면받을 수 있는 지역특산주인데, 판매량이 일정량 넘어가면 50% 감면 혜택이 없어진다. 때문에 무작정 국내에 많이 팔기보다는 해외 물량을 늘리는 것이 유리하다. 다만, 글로벌 술 시장에 먹힐 정도의 품질을 인정받는 것이 관건이다. 임 대표는 조만간 오크통을 들여와 오크 숙성 독도소주도 준비하고 있다. 위스키처럼 오크 숙성 증류주에 익숙한 외국인의 입맛을 겨냥한 전략이다.

다만, 장기 숙성이 필요하지 않은 감압증류로 내린 부드러운 원액을 오크통에 수년간 숙성시켰을 때 과연, 국내는 물론 해외 애주가의 찬사를 받을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물론 오크 숙성 기간을 얼마로 할 것인가를 정하는 것도 임 대표에게 주어진 새로운 과제다. 오크 숙성 증류주가 아직 흔치 않은 국내는 몰라도, 10년, 20년 이상 숙성시킨 프리미엄 위스키가 드물지 않은 글로벌 주류 시장에서 2~3년 정도 숙성한 제품으로는 존재감을 과시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독도소주가 하루빨리 외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아, 독도 알리기에 전령사 역할을 톡톡히 해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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