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광훈의 산인만필(散人漫筆) <35> 봄 소식 먼저 전하는 매화] “멀리서도 눈 아님을 아나니, 그윽한 향이 다가오기 때문이네”

홍광훈 2024. 3. 4.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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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평 용문의 우거에 필자가 심은 매화나무. 가는 겨울을 아쉬워하는 듯이 내린 봄맞이 눈속에서 곧 꽃봉오리를 터뜨릴 듯하다. 사진 홍광훈

겨울이 채 다 가기도 전에 봄소식을 가장 일찍 알려주는 꽃으로는 예로부터 매화가 첫손 꼽힌다. 그래서 ‘한매(寒梅)’나 ‘조매(早梅)’라는 호칭도 생겼다. 남북조시대 양(梁)의 하손(何遜·472~519)은 추위 속에서 일찍 피는 이 꽃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홍광훈문화평론가, 국립대만대학 중문학 박사, 전 서울신문 기자, 전 서울여대 교수

“토원의 절기가 바뀜에, 가장 먼저 놀란 것은 매화로다. 길가에서 서리 머금은 봉오리 드러내어, 눈 비추고 추위 버티며 피었구나. 가지는 각월관을 가로지르고, 꽃은 능풍대를 감돈다. 아침에는 장문의 여인에게 눈물 뿌리게 하고, 저녁에는 임공의 잔을 멈추게 한다. 일찍 나부끼며 떨어짐을 알았기에, 이른 봄을 쫓아서 왔구나(兔園標物序, 驚時最是梅. 銜霜當路發, 映雪擬寒開. 枝橫却月觀, 花繞凌風臺. 朝灑長門泣, 夕駐臨邛杯. 應知早飄落, 故逐上春來).”

‘영조매(詠早梅)’ 또는 ‘양주법조매화성개(揚州法曹梅花盛開)’라는 제목으로 전해지는 작품이다. 시인이 양주의 토원에서 추위를 물리치고 일찍 핀 매화를 본 감상을 적었다. ‘장문’은 한무제(漢武帝)의 진황후(陳皇后)가 총애를 잃고 쫓겨나 거처하던 장문궁(長門宮)을 가리킨다. ‘임공’은 사천(四川)의 지명으로 사마상여(司馬相如)와 탁문군(卓文君)이 처음 만나 사랑을 속삭이던 곳이다.

특별히 대수로울 것도 없어 보이는 이 시가 유명해진 까닭은 후대의 많은 시인이 추켜세웠기 때문이다. 두보(杜甫)의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동각의 관청 매화가 시흥을 움직이니, 이 또한 하손이 양주에 있는 듯하구나(東閣官梅動詩興, 還如何遜在揚州).” 촉주자사(蜀州刺史)로 있던 배적(裴迪)이 동정(東亭)에서 일찍 핀 매화를 보고 써 보낸 시에 화답한 작품의 첫머리다. 소식(蘇軾)도 “하손이 양주에 있을 때가 또 몇 년이 되었는지, 관청 매화의 시흥은 그래서 여전하도다(何遜揚州又幾年, 官梅詩興故依然)”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남송 중기의 강기(姜夔)는 매화를 주제로 지은 사(詞) ‘암향(暗香)’과 ‘소영(疏影)’ 중의 전자에서 스스로를 하손에 비유, “하손은 이제 점점 늙어가니(何遜而今漸老)”라고 했다.

하손의 사후에 활동한 음갱(陰鏗·511~563)은 눈 속에서 핀 매화를 보고 다음의 ‘설리매화시(雪裏梅花詩)’를 지었다.

“봄이 가까워져 추위가 비록 바뀌었으나, 매화 피니 눈이 아직 흩날린다. 바람 따라 다시 함께 떨어지겠지만, 비치는 해에 같이 사라지지는 않으리. 잎 피어남에 그림자 풍성해지고, 꽃 많아져 무거운 가지 북돋는다. 오늘이 오니 점점 어제와 달라지고, 해 질 녘이 되자 아침보다 뚜렷이 좋구나(春近寒雖轉, 梅舒雪尙飄. 從風還共落, 照日不俱銷. 葉開隨足影, 花多助重條. 今來漸異昨, 向晚判勝朝).”

그의 시풍과 성취가 하손에 견줄 만하여 후대에 흔히 ‘음하(陰何)’로 일컬어진다. 특히 두보가 그를 높이 평가하여 ‘해민(解悶)’이란 12수의 작품 중에서 “음갱과 하손의 각고면려를 많이 배웠다(頗學陰何苦用心)”라고 밝힌 바 있다. 또한 “이백에게 좋은 구절이 있으면 간간이 음갱과 비슷하다(李侯有佳句, 往往似陰鏗)”라고 했다.

역대의 수많은 시인 묵객이 매화를 다투어 읊은 까닭은 추위를 견디며 핀 자태가 각별히 아름답고 고결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하손보다 앞서 송(宋)의 포조(鮑照)는 악부시 ‘매화락(梅花落)’에서 그 모습을 이렇게 칭송했다. “가운데뜰에 여러 나무 많은데, 그중에서 매화만을 위해 찬탄하노라. 어찌 홀로 그러한지 그대에게 묻노니, 이 나무는 서리 속에서 꽃 피우고 이슬 속에서 열매 맺을 수 있기 때문이라오(中庭多雜樹, 偏爲梅咨嗟. 問君何獨然, 念其霜中能作花, 露中能作實).”

음갱과 동시대의 유신(庾信)은 예년에 비해 늦게 피는 매화를 두고 아쉬운 마음에 이런 ‘매화(梅花)’ 시를 지었다.

“지난해까지도 섣달의 반만 되면, 이미 매화가 시들해짐을 느꼈다. 올봄 또한 늦지 않으리라 믿고, 모두 와 눈 속에서 보았다. 나무 움직이니 달린 얼음 떨어지고, 가지 높아 내민 손이 차갑다. 찾아도 보지 못할 것을 일찍 알았더라면, 옷이라도 얇게 입지 않을 걸 정말 후회한다네(常年臘月半, 已覺梅花闌. 不信今春晚, 俱來雪裏看. 樹動懸冰落, 枝高出手寒. 早知覔不見, 眞悔着衣單).”

이처럼 겨울이 완전히 물러가기 전에 꽃이 필 때가 많은 까닭에 이상의 예와 같이 매화를 눈과 함께 언급하는 경우가 많다. 당 중기의 장위(張謂)도 이런 식으로 ‘일찍 핀 매화(早梅)’를 노래했다. “한 그루 찬 매화의 백옥 가지, 멀리 마을 길 가까이 개울 다리 곁에 있네. 물 가까워 꽃이 먼저 핀 줄 모르고, 봄이 돼도 녹지 않은 눈인 줄로만 알았네(一樹寒梅白玉條, 逈臨村路傍溪橋. 不知近水花先發, 疑是經春雪未銷).” 청(淸)의 전기에 발간된 ‘전당시(全唐詩)’에는 이 시가 융욱(戎昱)의 작품으로도 수록돼 있다. 거기에는 ‘부지(不知)’가 ‘응연(應緣)’으로 바뀌어 있다. ‘당연히 ~때문에’라는 뜻이다. 당 말기와 오대(五代)에 걸쳐 활동했던 시승(詩僧) 제기(齊己)도 “앞마을 깊은 눈 속에서 어젯밤 한 가지가 피었네(前村深雪裡, 昨夜一枝開)”라고 ‘조매(早梅)’를 읊었다.

이런 면에서는 일본 고대의 시가집 ‘만요슈(萬葉集)’에 수록된 다음의 단카(短歌)가 흥미롭다. “매화의 꽃, 내려서 덮는 눈을 감싸 잡는데, 그대에게 보이려 해도, 따니까 녹고 있네(梅の花, 降り覆う雪を, 包み持ち, 君に見せむと, 取れば消につつ).

이와 연관되어 ‘눈을 밟으며 매화를 찾다’는 ‘답설심매(踏雪尋梅)’라는 말도 생겨났다. 당의 맹호연(孟浩然)이 매화를 찾아서 눈 속을 헤매고 다녔다는 전설에서 나왔다. 이를 소재로 한 후대의 그림과 시도 많이 전해진다. 그러나 맹호연의 작품 중에는 그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후대의 호사가가 만들어낸 이야기 속의 아름다운 정경일 뿐이다.

일찍 피어서도 좋지만 매화는 역시 향기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이 점에서는 북송 초의 임포(林逋)가 지은 다음 시구가 오랫동안 널리 애송돼 왔다. “성긴 그림자 맑고 얕은 물 위를 비스듬히 가로지르고, 그윽한 향기 어슴푸레한 달빛 아래에서 떠다닌다(疏影橫斜水淸淺, 暗香浮動月黃昏).” 칠언율시 ‘산원소매(山園小梅)’ 2수 중 일부분이다. 여기서 비롯된 ‘암향소영(暗香疏影)’은 이후 매화를 상징하는 말이 됐다.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던 강기는 이를 따와서 ‘암향’과 ‘소영’ 두 곡조를 만들고 작사까지 했다.

이처럼 추위 속에 홀로 피어 그윽한 향기까지 내뿜는 매화는 자고이래로 고결하고 지조 있는 선비의 상징과 같은 꽃이 됐다. 따라서 많은 시인이 이 점을 특별히 내세웠다. 북송 중기의 왕안석(王安石)은 오언절구 ‘매화(梅花)’에서 이렇게 그 기품을 높이 샀다. “담 모퉁이 몇 가지 매화, 추위 물리치고 홀로 피었다. 멀리서도 눈 아님을 아나니, 그윽한 향이 다가오기 때문이네(牆角數枝梅, 凌寒獨自開. 遙知不是雪, 爲有暗香來).” 남송의 육유(陸遊)도 ‘영매(詠梅)’라는 부제가 붙은 ‘복산자(卜算子)’의 마지막에서 “시들고 떨어져 흙으로 변해 짓이겨져 먼지가 되어도, 오직 향기만은 그대로일세(零落成泥碾作塵, 只有香如故)”라고 그 변치 않는 절개를 칭송했다.

매화는 아득한 옛날부터 대표적인 봄의 전령사로 인식돼 왔을 터이지만, 특히 남북조시대 송의 육개(陸凱)가 지은 짧은 시 한 수로 그 상징성이 확실하게 정립됐다. “꽃을 꺾어 역참 전령사 만나, 변방에 있는 사람에게 부친다오. 강남에는 별것이 없으니, 아쉬우나마 한 가지의 봄을 보내오(折花逢驛使, 寄與隴頭人. 江南無所有, 聊贈一枝春).” 제목은 ‘범엽에게 보내는 시(贈范曄詩)’다. 시 속에는 매화가 언급돼 있지 않으나, 북송 초에 나온 ‘태평어람(太平御覽)’에서 ‘형주기(荊州記)’를 인용해 그 꽃이 매화임을 밝히고 있다. 북송 후기의 진관(秦觀)도 ‘답사행(踏莎行)’이란 사에서 “역참에서 매화를 부치다(驛寄梅花)”라고 읊은 바 있다.

매화를 언급할 때 당의 선승(禪僧) 황벽(黃蘗)이 지은 ‘상당개시송(上堂開示頌)’ 중의 다음 두 구절도 빼놓을 수 없다. “한 차례 추위가 뼛속까지 사무치지 않았다면, 코를 덮쳐오는 매화 향을 어찌 얻으리(不是一番寒徹骨, 爭得梅花撲鼻香)?” 구도자의 정진하는 모습을 매화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이맘때에는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린다. 마당의 매화가 곧 꽃봉오리를 터뜨릴 태세다. 기다림에 마음이 설렌다. 매화 향이 사방에 퍼져나가듯이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향기롭게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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