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간 법조일원화 되레 '인재 유출'…이러다 불혹에 신임 판사

정윤미 기자 이세현 기자 서한샘 기자 2024. 3. 4.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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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지연 해법 찾기]② 법조일원화 부작용에 시름 깊은 법원

[편집자주]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지는데도 법원이 이를 지키지 못해 국민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취임 일성으로 '신속한 재판'을 약속하며 한 말이다. 취임 직후 주요 법원장들을 직접 재판에 투입했고 재판장과 배석 판사의 임기를 1년씩 늘렸다. 법원 행정처의 상근 법관도 10명에서 17명으로 확대했다. 하지만 재판 지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 뉴스1은 사법부의 최대 숙제가 된 재판 지연의 근본 원인과 해결 방안이 무엇인지 짚어봤다.

ⓒ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서울=뉴스1) 정윤미 이세현 서한샘 기자 = "사회생활 7년이면 어느 정도 자리를 잡게 마련인데 연봉까지 깎여가며 판사하려는 변호사는 사실 잘 없죠"

"지금 서른 중반 넘어서 초임 판사 시작하는데 지금 추세라면 몇년 후에는 초임 판사 나이가 마흔쯤 될 거 같네요"

재판 지연의 주된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법조일원화 제도'에 대한 평가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먼저 우수한 인재들이 로펌으로 빠져나가는 상황에서 법조일원화 제도가 인재 영입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또 판사 시작이 늦어지면서 업무에 능숙해진 이후부터 퇴직 때까지 기간도 짧아진다. 법원 내부에 '베테랑 판사' 숫자가 줄어들게 돼 복잡한 사건일수록 처리 기간이 길어진다는 말이다.

법조일원화는 법관을 일정 경력을 갖춘 변호사 중에서 선발하는 제도를 말한다. 충분한 사회적 경험과 연륜을 갖춘 법관이 재판을 하면 판결의 공정성이 높아질 것이란 기대에서 출발했다.

◇ 연봉 '반토막'…"굳이 법관이 될 이유가 없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2013년 이후 판사가 되려면 우선 변호사 등 재야(在野)에서 일정 기간 법조 경험을 쌓아야 한다. 요구되는 법조인 경력은 △2013년부터 3년 이상 △2018년부터 5년 이상 △2025년부터 7년 이상 △2029년부터 10년 이상이다.

문제는 법조 시장에서 자리를 잡은 7~10년 차급 변호사들이 굳이 보수가 적은 법원에 들어와 신임 법관이 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로펌에서 판사로 이직할 경우 연봉이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다는 후문이다. 과거 사법연수원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인재들이 앞다퉈 판검사가 되고자 했던 상황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7년 차 로펌 변호사가 법관이 되면 당장 수입부터 대폭 줄어들고 처우도 안 좋아지는데, 이를 뛰어넘을만한 유인책이 현재 법원에는 없다"고 말했다.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그렇다 보니 법조일원화 이후 인재 발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원행정처로부터 제출받은 '법관 지원·임용 현황'에 따르면, 2021~2023년 최근 3년간 신규 법관 임용자 가운데 5년 이상 7년 미만 법조인 경력을 갖춘 이들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같은 기간 10년 이상 경력자들은 지원자 수 자체가 현저히 적었다. 그렇다 보니 임용률 자체도 한 자릿수에 그쳤다. 2021년 전체 합격자 156명 가운데 3명(8%)만이 10년 이상 경력자들이었다. 2022년 6명(9%), 2023년 4명(7%)이었다.

2018년부터 법관 지원 자격 조건은 경력 5년 이상인데, 경력이 많은 법조인일수록 법관 지원에 기피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당장 내년부터 7년, 2029년 10년 이상 경력자들을 요구하는데 이와 같은 추세가 지속되면 법원은 법관 충원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조희대 대법원장도 지난 15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경력 법관제도를 실행해 보니 실질적으로 우수한 법관을 뽑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 1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출입기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대법원 제공) 2024.2.16/뉴스1

업무 숙달까지 3~5년 걸리는데 마흔에 초임 판사

법조일원화 시행 이후 신임 법관의 평균 연령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대법원이 <뉴스1>에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2021~2023년) 신임 법관 평균 연령은 ▷34세 ▷35.4세 ▷35.8세를 기록했다. 법조일원화가 본격화된 2013년 30.4세와 비교하면 평균 나이는 5살가량 많아졌다.

10년 이상 경력자들을 선발해야 하는 2029년에는 가장 어린 초임 판사 연령이 약 37세로 전망된다. 군대를 다녀오는 남성의 경우 초임 판사 평균 나이는 40세 전후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신임 법관 평균 연령이 20대 중후반이었던 사법시험 시절과 비교하면 법관 유입 시기가 15년가량 늦는 셈이다.

문제는 아무리 법조 경력이 있다더라도 법원에 들어와 숙련된 법관이 되기까지는 또다시 시간이 필요하다. 법관으로 임용돼 단독 재판부를 맡기까지 통상 3~5년 정도 걸린다.

부장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숙련된 법관이 신속하게 사건을 심리하고, 모든 문서 업무를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는 나이는 냉정하게 50대 중반까지로 본다"며 "40세에 임용돼 법원 업무를 익히기 시작한다면, 법관으로서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기간이 너무 짧다"고 의견을 밝혔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판사 임용 이후 제대로 일할 수 있는 기간은 10년 안팎에 불과하다.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 경력 기간 세분화한 벨기에식 법조일원화 '주목' 법조일원화 부작용을 막을 해법으로 '벨기에' 사례가 주목받고 있다. 법조일원화는 흔히 영미법계 국가에서 사용되고 있지만 벨기에는 대륙법계 국가 가운데 일찌감치 이를 받아들였다. 1991년과 1998년 두 차례 대대적인 사법개혁 끝에 효율성을 크게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벨기에서는 법대에서 학사 3년, 석사 2년 총 5년간 법학 교육을 받은 법학·석사 학위자만이 법조인이 될 수 있다.

1차 사법개혁에서 법관의 정치적 임명 관행을 해소하기 위해 시험을 통한 법관선발제도를 도입했다. 시험 유형에 따라 법조인 경력 기준도 다양화했다. 경력 법조인을 대상으로 한 '직업능력시험'은 중단없이 변호사 경력 10년 혹은 법률 전문 경력 12년 이상인 자가 응시할 수 있다.

1998년 2차 사법개혁 이후에는 '구술평가시험'과 일부 법원에 한해 '무시험' 전형도 생겨났다. 구술평가시험 응시자에게는 변호사 경력 15년과 5년 이상 법률 관련 직업 경력이 요구된다. 브뤼셀 항소법원 내 시장규제 재판을 담당하는 특별재판부(브뤼셀 시장법원)는 2017년 7월 6일부터 경제법·재정법 또는 시장법 분야에서 15년 이상 전문 경력을 보유한 자를 대상으로 시험 없이 선발하고 있다.

최근 우리 대법원에서도 이 같은 벨기에식 법조일원화 방식을 차용해 법관 선발 방식을 보다 다양화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조 대법원장은 "(벨기에식으로) 배석법관 필요 경력은 3년이 적당하다고 본다"며 "나머지는 국회가 말한 대로 7년, 10년, 15년 경력이 적절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합의부에서 재판장은 통상 법관 경력 16년 차 이상의 부장판사가 맡고 있다. 배석판사 경력을 낮추더라도 재판 진행에 큰 무리가 없다는 판단으로 해석된다.

한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배석판사 경력 단축이 재판 지연 문제 해소에 크게 도움 될 것으로 보인다"며 "통상 배석판사는 증거자료 정리, 판결문 초고 작성 등 재판 실무를 담당하게 되는데 저연차일수록 처리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younm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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