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초교 34곳 입학식 못열어… 유치원 돌며 초등생 유치전 [심층기획-저출생 직격탄 맞은 초등학교]

김선덕 2024. 3. 4.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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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초교 157곳 신입생 0명
지방 학교 소멸 가속화 우려
인구감소·생활여건 등 이유 유출 가속
경북 27곳·강원 25곳·전남 20곳 뒤이어
전남은 초교 절반이 전교생 60명 이하
‘이주 열풍’ 제주도 초등생도 3만명대로
2023년 3월 기준 17개 시·도 폐교 3922곳
전체 9% 358곳 활용안 못찾고 방치중
전남, 가이드북 만들고 주변 여건 소개
“지역 연계한 맞춤형 활용처 발굴해야”

“전남 무안군 초등학교 19곳 가운데 우리 학교만 유일하게 신입생이 없네요.”

지난달 27일 무안 해제남초등학교에서 만난 김영균 교장의 얼굴은 매우 어두웠다. 김 교장은 2024학년도 해제남초 신입생이 한 명도 없을 것 같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지난달 교사들과 함께 관내 병설유치원을 돌며 ‘즐겁게 배우면서 희망찬 미래를 만들어가는 해제남초등학교로 초대합니다’라는 내용의 홍보전단을 뿌렸다.
지난달 27일 홀로 출근한 김영균 해제남초등학교 교장이 3·4학년 통한 학급 교실에서 담임 선생님의 책상을 어루만지고 있다.
하지만 차량을 이용하더라도 등교하는 데만 20, 30분 걸리는 해제남초에 눈길을 돌리는 예비 초등학생 학부모는 한 명도 없었다.

이 때문에 해제남초는 4일 개학을 앞두고 1학년 교실을 안내하는 팻말도 걸지 못했다. 지난 달 해제남초는 제79회 졸업식을 열었는데 졸업생이 3명이었다. 총 4220명의 졸업생을 배출하며 오랜 전통과 역사를 자랑했던 이 초등학교는 한때 학년당 2개 학급을 운영하고도 교실이 모자라 인근 마을에 분교까지 둘 정도로 학생들이 붐볐더랬다. 하지만 올해 전교생은 전년보다 4명 더 준 16명에 불과하다. 졸업생 3명에다 농산어촌유학으로 전학 온 학생마저 다시 서울로 가게 됐기 때문이다.

급격한 학령인구 감소와 함께 그나마 남아 있던 학생들마저 생활여건 등을 이유로 도시권으로 빠져 나가면서 학교 교원들이 인근 유치원·어린이집을 돌며 ‘아이를 우리 학교에 보내 달라’고 읍소해야 할 처지가 됐다. 김 교장은 “6년 전 휴원했던 인근 병설유치원이 원생이 들어오지 않아 지난 1일자로 폐원을 결정했다”며 “면 소재지에 적어도 학교 1곳은 존재해야 하는데 (지금 같은 추세가 이어진다면)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하소연했다.

◆올해 입학생 0명인 초등학교 전국에 157곳

4일 전국 초·중·고교가 일제히 개학식을 갖지만 농촌지역은 물론 비수도권 도심지역 초교까지 도미노 폐교가 이어지고 있다. 저출생에 따른 학령인구 감소와 일자리·자녀 교육 등을 위해 젊은층이 수도권으로 몰리면서 새학기 입학식조차 열지 않는 초등학교가 수두룩하다.

3일 각 시·도교육청과 교육부에 따르면 올해 초등학교 1학년 입학생이 ‘0명’인 학교는 전체 초등학교(6175개교)의 2.5%인 157곳에 달한다. 시·도별로 살펴보면 전북이 34개교로 가장 많았다. 이어 경북 27곳, 강원 25곳, 전남 20곳, 충남 14곳, 경남 12곳, 충북 8곳 등의 순이다. 반면 특별·광역시인 서울과 광주, 대전, 울산, 세종에서 신입생이 한 명도 없는 초교는 한 곳도 없었다.

학령인구 역시 지역별 편차가 심하다. 신도시 등 도심지역에선 학생들이 넘치는 반면 지방 소도시에는 책가방을 멘 학생들 보기가 ‘하늘의 별 찾기’다. 급격한 저출생 흐름을 감안하면 앞으로 이 같은 현상은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전남지역은 전체 초교 471개교(본교 428개교, 분교 43개교) 중 전교생이 60명 이하인 작은(과소)학교가 이미 절반 이상인 255곳(54.1%)이다. 중학교도 전체 255곳 중 127곳(49.8%)이 작은학교다.

최근 수년간 거센 귀촌 열풍으로 초등학생 인구만 4만명대를 유지하던 제주지역은 다시 3만명대로 무너졌다. 제주도교육청이 집계한 올해 초교 신입생은 지난달 기준으로 5440명에 불과하다. 신입생이 10명 미만인 초교는 제주시 15개교, 서귀포시 18개교로 33곳에 달한다. 제주지역 초등생은 앞으로 매년 약 1000∼2000여명 감소할 전망이다. 초등학생 수가 지난해 4만531명에서 5년 뒤인 2028년에는 3만311명으로 약 25%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도심 속 학교도 폐교에서 마냥 자유로울 수만은 없다. 지난해 서울 광진구 화양초가 문을 닫았고 올해 서울 도봉고와 성수공업고, 덕수고가 폐교 수순을 밟았다. 광역시인 부산과 대구에서도 학령인구 감소 현상은 심각하다. 부산진구 가산초는 올해 신입생이 1명도 없고, 강서구 대사초는 신입생이 한 명뿐이다. 입학생이 10명 미만인 부산지역 초교는 21곳이나 된다. 대구 북구 서변초 조야분교와 군위군 우보초, 의흥초 석산분교 3곳도 올해 신입생이 한 명도 없다. 서변초 조야분교는 올해 전교생이 20명 아래로 줄면서 내년부터 본교에 통합된다.

전남 무안 해제남초등학교가 읍내 한 병설유치원을 찾아가 원생들을 대상으로 뿌린 홍보 전단지. 무안=김선덕 기자
◆“도심도 예외 아냐”… 폐교 부지 활용 골머리

폐교되는 학교가 부쩍 늘면서 폐교 부지 활용 문제가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민간에 매각되거나 임대되는 폐교가 있는가 하면 마땅한 인수자가 나타나지 않아 폐허처럼 방치된 곳도 적지 않다. 지방재정교육알리미에 따르면 지난해 3월 기준 17개 시·도에서 폐교는 모두 3922곳이다. 이 중 2587곳(65%)은 매각됐고, 남은 1335곳 중 977곳(24%)은 다른 용도로 사용되거나 임대된 상황이다. 하지만 이들 폐교 중 358곳(9%)은 여전히 활용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

8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던 경북 김천시 봉계초 태화분교도 지난 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학생들이 해마다 줄던 태화분교는 남아 있던 학생 5명을 인근 학교로 편입함으로써 폐교 처분됐다. 태화분교의 폐교 조치에 주민들은 매우 낙담한 분위기다. 인근 주민 70대 김모씨는 “텅 빈 운동장을 바라보고 있으면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면서 “20~30년 전만 해도 길을 지날 때면 운동장에서 학생들이 뛰어노는 소리로 시끄러울 정도였는데 학교가 온기를 잃으면서 마을까지 침체되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경북교육청 관계자는 “폐교당 연간 관리비가 300만~500만원 정도 드는 데다 흉물스럽다는 민원도 때때로 들어온다”면서 “폐교는 부지가 넓기 때문에 활용이 높은 반면 대부분 인구가 적고 접근성이 떨어져 활용처를 찾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물론 폐교를 더는 방치할 수는 없다는 판단에 따라 자구책 마련에 나선 교육청도 있다. 전남교육청이 최근 발간한 448쪽 분량의 ‘폐교활용 가이드북’에는 문 닫은 학교 현황은 물론 주변 여건, 활용 방안 등이 나와 있다.

과거 지역공동체의 핵심 역할을 담당했던 학교의 기능을 되찾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폐교의 재사용·활용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허창덕 영남대 교수(사회학)는 “폐교가 우범지대로 변하고 있어서 주민들로부터 많은 불만이 잇따른다”면서 “학령인구가 줄어들면서 문 닫는 학교가 우후죽순 늘어나는 상황은 ‘폐교 활용’이라는 또 다른 과제를 던지고 있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귀농귀촌희망센터와 키즈글램핑장, 미술관, 시니어카페 등 폐교를 활용한 우수 사례가 있다”며 “폐교들이 다시 생명을 얻어 새로운 지역사회 중심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마을을 누구보다 잘 아는 주민의 의견을 참작해 맞춤형 활용처를 찾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무안·안동=김선덕·배소영 기자, 전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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