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영남알프스 완등과 등산의 목적

이진규 기자 2024. 3. 4.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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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축산·간월산 등 8개 봉, 완등 인증 땐 은메달 제공
등산로 훼손 등 부작용 커…왜 산에 가는지 고민 필요

“등반에서는 싸우는 상대도 없고, 심판도 있을 수 없다. 단지 나 자신과의 싸움이 있을 뿐이다.” 1988년 캘거리동계올림픽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가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의 등반 업적을 기려 명예 은메달을 수여하려 하자 그가 이를 거절하며 한 말이다. 그는 1986년에 히말라야 8000m 14개 봉을 인류 최초로 완등했다.

메스너는 메달을 거절하며 ‘등산은 스포츠가 아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스포츠와 달리 경쟁이나 심판 같은 요소가 없는 알피니즘의 본질을 내세우며 등산은 경쟁의 대상이 아닌 무상의 행위라는 걸 강조한 것이다. 등산이라는 행위의 순수성을 지키려는 의지다. 그런데 지금은 보편화한 국제적인 등반 경기가 마침 이즈음에 유럽에서 시작된 것은 아이러니다.

부산과 울산, 경남 지역 산꾼들의 사랑을 받는 영남알프스가 수년간 연초마다 북새통을 이루며 입길에 오른다. 등산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법한 ‘영남알프스 완등’ 이벤트 때문이다. 영남알프스는 영남 남동부 지역에 솟은 해발 1000m 안팎의 여러 산을 품은 산군이다. 2021년 울산 울주군이 시작해 지역의 대표적 관광상품으로 평가받는 ‘영남알프스 완등 인증 사업’은 지난해까지 영남알프스의 해발 1000m를 넘는 9개 봉우리를 모두 오르면 해마다 다른 완등 기념 은메달을 준다. 첫해 가지산을 시작으로 2022년 간월산, 2023년 신불산, 올해는 영축산을 주제로 만든다. 사업은 올해부터는 문복산을 제외한 8개 봉을 대상으로 한다.

가지산과 운문산 등 산림청 선정 한국 100대 명산을 여럿 품은 영남알프스의 인기를 반영하듯 이 사업은 부울경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 등산 동호인들의 엄청난 반응을 불러왔다. 첫해 밀려드는 완등자를 감당하지 못한 울주군이 추경을 통해 간신히 예산을 확보해 기념품을 제작할 정도였다. 이후 비용을 줄인 은메달로 바꾸고 인원을 제한하자 한정된 수의 기념 메달을 받기 위한 경쟁이 본격적으로 벌어지며 초창기 드러난 부작용이 더욱 두드러졌다. 과열 경쟁 탓에 연초 대상 산의 최단 등정 코스 기점마다 주차난으로 애꿎은 지역 주민이 곤욕을 치른다. 같은 코스에 인원이 몰리면서 등산로 훼손과 쓰레기 투기 문제까지 불거진다. 혹한기에 다른 이들보다 먼저 인증을 마치려는 욕심에 무리한 산행을 하다 보니 사고도 는다. 최근 5년간 영남알프스 일대를 포함한 울산 지역 산악 사고가 62% 정도 늘었다는 통계가 있다.

완등을 위해 전국에서 영남알프스를 찾고는 있으나 애초 지자체가 내세운 지역경제 활성화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는 현재 동호인들의 완등 방식을 보면 잘 나타난다. 모든 이가 그러는 건 아니지만 다른 지역 산악회에서 단체로 버스를 이용해 현재 하루 3개 봉 이내라는 제한에 맞춰 새벽부터 바쁘게 하루 3봉 등정을 마친 뒤 곧바로 해당 지역으로 돌아가는 방식이 흔하다. 지역 업체나 언양시장 상가의 매출이 늘었다는 분석도 있지만 올해만도 15억 원이 넘게 투입되는 예산을 뛰어넘는 경제적 효과를 거두는지는 면밀하게 검토해 봐야 할 일이다.

올해 주민 항의 등의 이유로 제외된 문복산의 경우 사실 울주군과는 3㎞ 이상 떨어져 경북 청도군과 경주시의 경계를 이룬다. 청도군과 경남 밀양시의 경계에 솟은 운문산과는 더 떨어졌다. 통상 영남알프스는 경남 양산시와 밀양시, 울산 울주군, 경북 청도군, 경주시의 3개 시·도, 5개 시·군에 걸친 산군을 일컫는다. 어느 한 기초자치단체에 속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두 지자체가 정상을 맞대는 일이 흔하다. 완등에 참여한 전국의 등산 동호인들은 그런 지역 구분을 생각 않고 가장 짧고 가장 빠르게 정상을 오르는 길을 찾는다. 그 때문에 이웃 지자체 간 갈등의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무엇보다 과열 경쟁을 불러일으키는 영남알프스 완등 인증 사업은 등산의 본질적인 요소인 자연과 사람을 뒷전으로 밀어낸다. 오로지 완등 메달을 목적으로 가장 짧고 가장 빠른 길로 정상만을 바라보고 오른다면 이는 지난해 작고한 김영도 전 한국등산연구소장이 말한 ‘노동으로서의 등산’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는 생전에 기회 닿을 때마다 젊은 산악인들에게 등반할 때 정상에 오르는 일에만 매몰되지 말라고 당부했다. “‘왜 산에 가는지’에 관한 고민이 빠진다면 이는 미완성의 등산”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많은 이가 산을 오른다. 건강을 위해서, 나 자신의 한계를 넘기 위해, 가족 친구 연인이 함께 정을 나누기 위해, 세상 사는 각오를 다지기 위해…. 그 목적은 산을 오르는 이의 수만큼 다양해 저마다 다른 목적과 목표를 지니며 산을 찾는다. 하지만 그 목표가 남보다 빨리 올라 메달을 손에 넣는 것이라면 스스로 산에 오르는 목적을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이진규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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