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문장 쓰는데 30분, 산소통 없인 살지 못한다”…그래도 당당히 대학 입학, 희망 보여준 19세 청년 [우리사회 작은 영웅들]

전종헌 매경닷컴 기자(cap@mk.co.kr) 2024. 3. 3.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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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지마비 김선호씨…장애 딛고 예원예대 합격
“어려운 일 있어도 포기하지 마세요”
아버지 김연중씨 “사회적 시선 달라졌으면”
장애를 이겨내고 예원예대 만화게임영상학과에 입학한 김선호(19) 씨.[사진 제공 = 생명보험재단]
사지마비와 호흡장애에도 이를 딛고 대학에 입학한 한국의 호킹들이 화제다. 이들 중에는 김선호(19) 씨도 있다.

24시간 인공호흡기가 없으면 호흡이 불가능 하고 문장 하나를 쓰려면 안구 마우스를 쓰고 30분씩 걸리지만 이 모든 것을 이겨내고 예원예대 만화게임영상학과에 당당히 입학한 선호씨.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척수성 근위축증과 싸움을 벌이고 있다.

척수성 근위축증은 영아기 발병 시 2살 이전 사망 확률이 90%가 넘을 정도로 절망적인 질환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절망에서 희망을 본 선호씨는 더 넓은 세상을 꿈꾸며 제2의 인생을 설계하고 있다.

웹툰 작가나 애니메이터가 꿈이라는 선호씨는 “컴퓨터를 통해서라도 갇혀 있는 몸속에서 벗어나 좋아하는 것들을 마음껏 하고 싶다”고 말했다.

선호씨는 “포기하지만 않으면 끝날 때쯤 다른 것들을 보게 된다”며 크고 작은 일들로 희망을 버리고 힘겨워하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았다.

선호씨가 이 자리에 서기까지는 아버지 김연중(54) 씨의 헌신이 있었다. 장애를 가진 자녀의 부모로서 세상의 시선과 늘 싸워야 했고 근본적인 치료법이 없는 막막한 현실도 묵묵히 인내해야 했다.

이런 사연 때문에 지난달 14일 서울 강남구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열린 중증장애 학생들의 대학 입학·졸업 기념행사는 선호씨 뿐만 아니라 아버지 연중씨에게도 특별했다.

올해로 10회째인 강남 세브란스병원 호흡재활센터가 주관란 이날 행사는 근육병, 루게릭병 등 희귀난치성 신경근육질환을 앓으면서도 치료를 꾸준히 받으며 학업에 매진해 대학에 입학하거나 졸업하는 13명의 학생들을 축하하기 위해 마련됐다.

영국의 저명한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교수처럼 꿈을 이루고 싶다는 학생들 앞에는 ‘한국의 호킹들, 축하합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지난 2월 14일 서울 강남구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열린 중증장애 학생들의 대학 입학·졸업 기념행사. 학생들 앞에 ‘한국의 호킹들, 축하합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사진 제공 = 생명보험재단]
다음은 선호씨와 아버지 연중씨 일문일답.

-선호씨가 문장 하나를 쓰려면 안구 마우스 써야 하고 30분씩 걸린다고 들었습니다. 선호씨를 뒷바라지한 아버지의 인내와 고생, 노력이 엿보이는데요. 포기하고 싶었을 때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아이에게 무슨 교육을 하려 하느냐’, ‘살아만 있으면 다행이니 더 이상 바라지 말라’는 말들을 주변에서 너무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상황이든 ‘자식의 교육을 스스로 포기하는 부모가 과연 부모의 자격이 있는가’라는 생각은 늘 저를 괴롭히기도 지탱하기도 했습니다. 다중장애아가 대학을 갈 수 있다는 꿈같은 이야기로 희망을 주신 학교 선생님, 가르친 적이 없는 한글을 선호가 책 읽기 교육만으로 스스로 깨우쳤음을 알려주신 책 읽기 선생님 등 교육의 힘이 위대하다는 것을 선호를 가르치신 선생님들께 배워 희망으로 버티기도 했습니다.”

-선호씨가 앓고 있는 질병은 정확히 어떤 증세가 있나요.

“선호는 척수성 근위축증을 앓고 있습니다. 영아기 발병한 퇴행성 전신마비 질환으로 24시간 인공호흡기를 반드시 장착해야 합니다. 감기나 폐렴이 있을 경우 호흡기와 산소통이 같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평상시에는 인공호흡기를 늘 장착하고 다니며, 산소통을 계속 달고 다니지는 않습니다. 고 스티븐 호킹 박사의 질환인 루게릭병(ALS)과 증상은 같고 진행은 느립니다. 영아기 발병 시 2살 전 사망할 확률이 90% 이상이라고 합니다.”

-치료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요.

“근·신경 퇴행성 질환은 근본적인 치료법이 없다고 합니다. 퇴행속도를 늦추는 물리치료 정도가 전부입니다. 그리고 장기간의 물리치료는 환자나 보호자에게 고행의 길입니다. 재활병원은 찾기도 힘들고 치료 시작 대기 기간이 짧게는 1~2개월, 길게는 2~3년 넘게 대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환자는 온갖 기계를 다 장착하고 직접 내원해야만 합니다. 그것도 단 20~30분 물리치료를 위해 왕복 2~3시간 이상을 이동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2년 이상은 같은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을 수 없어 다른 병원을 찾아다니고, 또 몇 년을 대기해야 합니다. 이쯤 되면 치료받는 시간보다 대기하고 이동하는데 드는 시간이 답이 없을 만큼 길어집니다. 환자의 몸 상태가 악화되는 주된 이유입니다. 이 때문에 물리치료 자체를 포기하는 보호자들도 많습니다.”

-주변의 시선은 어땠나요.

“장애를 가진 분들의 보호자는 처음에는 세상을 원망하며 몸부림 치지만, 결국 자조적이나 냉소적이 됩니다. 사회의 주류가 아니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함을 알게 되는 것이죠. 재활병원에서 쫓겨나 다른 병원을 전전하는 것을 ‘병원 쇼핑’이라고 방송에서 보도하는 것을 보고 기가 막혔습니다. ‘병원 난민’ 생활을 ‘쇼핑’이라고 부르는 것이 사회가 장애인들을 어떤 시각으로 보는지 잘 알게 해줍니다. 이런 보도를 접하는 일반인들은 당연히 ‘귀를 막고 자신들의 얘기만을 하는, 건드리기 힘든 이기적 집단’으로 보게 됩니다. 가만히 서서 아이를 빤히 쳐다보며 혀를 차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노인, 장애인 전용 원무과 창구에서 ‘당신은 사지 멀쩡한데 왜 줄 안 서고 여기 왔냐’고 소리 지르는 사람들, 수십년 전에 받던 차별이나 학대, 주변의 차가운 시선은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선호씨 만화게임영상학과 지원 동기가 궁금해요. 미래에 어떤 모습을 그리고 있나요.

“컴퓨터를 통해서라도 갇혀 있는 몸에서 벗어나 좋아하는 것들을 맘껏 하고 싶어서 지원했습니다. 컴퓨터 사용에 좀 더 전문성을 가지고 공부하게 된다면 웹툰 작가나 애니메이터 같은 직업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여러 어려움으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삶이 녹록지 않고 힘들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어떤 얘기를 전하고 싶나요.

“인생에 고갯길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올라가는 길이 쉬운 경우도 없습니다. 지금 악몽이라고 생각하며 지나는 길이 돌이켜 보면 가장 행복한 시절일 수도 있습니다. 끝까지 가 보면 다 알 수 있습니다. 포기하지만 않으면 끝날 때쯤 다른 것들을 보게 됩니다.”

한편, 희귀질환은 명확한 치료법이 없고 완치가 어렵다는 특성 때문에 사회·경제적 문제에 노출돼 있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은 희귀질환자와 그 가족을 돕기 위해 희귀질환 전문병원과 협약해 희귀질환센터 운영을 지원하고 통합 의료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선호씨도 재단의 지원을 받았다. 이렇게 재단의 지원은 받은 환자는 1만5477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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