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바오는...” 강철원 할부지가 중국의 담당 사육사에 보낸 편지엔

구아모 기자 2024. 3. 3.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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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다 에세이 펴낸 강철원 사육사
다음에 푸바오를 만날 때, 푸바오가 할부지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새로운 곳에 잘 적응하고 좋아했으면 좋겠다. 잠깐 서운하겠지만 그래도 푸바오에 대한 마음을 조금은 내려 놓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행복한 푸바오 할부지입니다' 본문 중
‘푸바오’가 생후 4개월이던 2020년 10월. 경기 용인 에버랜드의 판다월드 내실에서 ‘푸바오 할부지’로 불리는 강철원 사육사가 푸바오를 안고 있는 모습./강철원 사육사 제공

중국 반환을 앞둔 경기 용인 에버랜드의 자이언트 판다 ‘푸바오’는 3일까지만 공개된다. 에버랜드엔 푸바오를 마지막으로 보려는 관람객이 몰리고 있다. 서울 강남역에서 에버랜드로 가는 5002번 버스는 새벽 첫차부터 만차다. 에버랜드 개장 시간은 오전 10시인데 오전 7시부터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선다. 한국에서 마지막 만남을 앞둔 푸바오의 판다월드 대기 시간만 6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특유의 귀여운 용모 덕에 판다에겐 인간의 관심을 끄는 매력이 있지만, 꼭 사육사와 사람과 같은 모습으로 교감하는 모습에 인기가 폭발했다. 뒤뚱뒤뚱 걸음마를 떼던 시절 생후 5개월 당시 푸바오가 사육사의 장화를 붙잡고 놀아 달라고 떼쓰는 영상이 화제가 됐다. 사육사에게 마치 사람인 양 팔짱을 끼며 애교를 부리기도 한다. 독립생활을 앞두고 걱정하는 강 사육사에게 ‘나 괜찮아’라는 듯 위로하듯 어깨를 두들긴다.

강철원 사육사와 푸바오의 '팔짱 데이트' 영상 속 모습. /에버랜드 유튜브

언어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종(種)을 뛰어넘는 유대를 보여주는 주인공은 강철원 사육사(55). 37년간 80여 종의 동물과 연을 맺은 베테랑 사육사다. 그 중 가장 깊은 연을 맺은 것은 자이언트 판다. 2016년 중국에서 온 러바오·아이바오를 만나 판다들의 ‘아빠’로 불렸는데, 2020년 국내 최초 자연 임신으로 푸바오가 태어나며 ‘할아버지’가 됐다. ‘할부지’란 애칭으로도 불린다. 판다들과 지내는 모습이 꼭 가족같아 바오가족의 일원이라는 의미의 ‘강바오’란 별명까지 붙었다.

사육사로 일하는 37년간 동물에 대한 기록을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고 한다. 이 기록 중 일부가 푸바오와의 추억을 담은 ‘나는 행복한 푸바오 할부지입니다’로 지난달 28일 출간됐다. 띠지에 “이별은 없어. 우리는 영원한 가족이니까”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2월 마지막 주 기준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종합 4위에 올랐다.

국내 최초 자이언트 판다 ‘밍밍’과 ‘리리’ 이야기부터 2016년 ‘아이바오’와 ‘러바오’를 만나 푸바오와 이별을 앞둔 최근까지 이야기가 담겼다. 직업인으로서 사육사에 대한 소회도 담겼다. 책장이 술술 넘어갔다.

에버랜드 강철원 사육사가 2024년 2월 29일 오전 서울 성동구 시공사에서 판다 인형을 꼭 안고 판다 푸바오 이야기를 쓴 자신의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오종찬 기자

지난달 29일 서울 성동구 시공사에서 강철원 사육사를 만났다. 초록색 셔츠와 갈색 바지, 고무 장화의 사육사 차림이 아닌 사복 차림인 모습인 그가 영 낯설었다. 인터뷰 장소 한 켠에 놓여있던 판다 인형을 보자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영락없는 ‘판다 할아버지’였다. 강 씨는 “옆에 푸바오가 있으니 참 든든하다”며 웃었다.

◇“말 못하는 동물, 관찰이 서사가 돼”

-37년 간 매일 기록을 한 게 대단합니다.

“반려동물과 달리 야생동물은 가까이서 볼 수 없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이 관찰입니다. 관찰을 얼마나 잘하고, 그 사실을 잘 기록하느냐가 동물을 이해하는데 가장 밑거름이 됩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도 유용한 자료가 됩니다. 다음에 다른 사람이 그 동물을 맡게 됐을 때 그 동물을 이해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됩니다. 개별 동물에 대한 기록이 쌓이면 스토리와 서사도 쌓입니다.”

-37년의 기록 중 일부가 책으로 출간됐습니다.

“책은 오래전부터 나름대로 내고 싶은 욕심이 있었습니다. 동물원에서 사육사로 근무하다 보니, 야생동물에 대해 공부하고 싶을 때, 알 수 있는 방법들이 마땅히 없더군요. 야생동물을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쉽게, 친숙하게 접할 수 있는 책을 쓰고 싶었어요.

또 동물과 오랜 세월을 지내다 보니 동물들한테 배우는 게 참 많았습니다. 인간사나 동물사나 자연의 원리 속에서 크게 다르지 않은 부분들이 많다고도 느낍니다. 동물에게서 배운 것들 역시 책에 담고 싶었습니다.”

나는 행복한 푸바오 할부지입니다

-세계적 동물학자인 제인 구달을 만난 경험도 언급됐습니다.

“2000년 초반 유인원을 담당할 때 한국에 방문한 제인 구달을 에버랜드 동물원에서 만났습니다. 제인 구달이 작성한 ‘동물 관리표’를 보며 이런 식으로 동물에 대한 기록을 남겨야하는구나 배웠습니다. 제인 구달이 ‘침팬지 본연의 사투리를 사용해서 동물을 불러 보겠습니다’고 하는 것도참 신기하더군요(웃음).”

-‘나는 행복한 푸바오 할부지입니다’로 책 제목을 고른 이유가 있을지요?

“같이 근무하는 친구들에게 한번 물어봤어요. 이게 내가 행복하단 이야기야, 푸바오가 행복하다는 이야기야? 대부분의 친구들이 이렇게 답하더군요. ‘푸바오가 행복한데, 사육사님도 같이 행복하다는 의미로 읽혀요.’ 푸바오가 태어나서 저를 행복하게 했고, 또 저도 푸바오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 노력 많이 한 거 같아서, 서로 행복한 이름이면 좋을거 같아서 책 제목으로 최종 선정됐습니다.”

에버랜드 강철원 사육사가 2024년 2월 29일 오전 서울 성동구 시공사에서 판다 인형을 꼭 안고 판다 푸바오 이야기를 쓴 자신의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오종찬 기자

◇46가지 직업을 가진 사람, 사육사

사육사들 사이에선 사육사를 46가지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동물을 위한 요리, 방사장 수리·보수, 대나무 재배, 조경 등 각종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강씨는 “귀여운 동물들과 교감하고 함께하는 순간에 매료돼 사육사를 꿈꾸는 사람들도 있는데, 동물을 위해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끈기 있게, 좀 더 오래 희생하고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직업”이라고 했다.

-사육사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꿈이 꼭 이뤄지길 바랍니다. 그리고 얼른 내 후배로 들어오너라, 기다리고 있겠다(웃음). 방송에서 사육사 체험 프로그램 등을 보고 동물이 귀엽고, 예쁘니 사육사를 꿈꾸게 되는 분들이 많습니다. 다만, 46가지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 사육사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만큼 정말 다양한 일을 해야 합니다.

동물들과 교감하는 순간이 참 많습니다. 다만 그 순간까지 해야 하는 일들이 참 많고 기다려야 하는 시간도 참 깁니다. 동물과 관련된 모든 뒤처리 일들을 다 해야 하는 거니까요. 그러기 위해선 생각보다 끈기 있게 좀 더 오래 동물을 위해 희생해야 합니다. 진득하게 동물 옆에 있을 수 있는 끈기, 동물에게 해주고 싶은 것들을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책에서 관찰의 중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는데요

“야생 동물은 반려동물과 달리 가까이서 접하기 쉽지 않고 직접 접촉이 어렵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친구들의 상황을 볼 수 없는 상황이 많습니다. 특히 야생동물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아프다는 것을 감춥니다. 그런 상황이 야생에선 천적의 공격으로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에, 병세나 증상이 심각해지고 나서야 뒤늦게 인지하는 수가 있습니다. 사육사들이 미세한 변화를 빨리 감지하는 게 중요합니다.”

푸바오./에버랜드

◇하얀색과 검은색이 그려낸 예술

하얀색과 검은색, 두 가지 색으로만 그림을 그리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검은 팔과 검은 어깨, 검은 다리,
하얀 등과 하얀배, 검은 코와 새까만 눈,
꼬리는 무슨 색이더라?

'나는 행복한 푸바오 할부지입니다' 본문 중

-80여가지 동물들을 돌봤는데 그 중 판다만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알면 알수록 신기합니다. 색깔부터 흑백인데, 흑백만 가지고 귀여울 수도 있는 동물이죠. 판다는 식육목(食肉目) 곰과의 맹수입니다. 맹수의 신체구조를 가지면서도 대나무만 먹는 것도 신기한데, 임신과 가임신을 구분하기 어려운 특징도 있습니다. 100kg가 넘는 거구인데도 나무를 손 쉽게 타는 것도 신기한 부분이죠.

판다는 흔히 돌출된 곳은 다 검은색이라 꼬리도 검은색일꺼라고 생각하는데, 꼬리는 흰색입니다. 판다에 대한 설명을 할 때 판다의 꼬리는 무슨색일까요 그런 질문을 많이 해요. 꼬리가 검은색인 판다는 짝퉁이라고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하곤 했죠(웃음).”

-동물에게서도 배울 점이 있다고 했는데요.

“속담에 ‘짐승만도 못한 사람’이라는 말이 있는데, 오랜 기간 동물을 지켜보니 동물사나 인간사나 자연의 원리 속에서 함께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동물로부터 인간사를 배웁니다.”

-어미 ‘아이바오’에대한 애정이 각별한데요, 아이바오로부터 배우는 것이 있나요?

“푸바오가 걸음마를 뗀다던가, 나무 타기 하는 것을 얼핏 혼자 다하는 것 처럼 보입니다. 혼자 기를 쓰고 앞발을 세우고 노력을 하다가, 뒤뚱뒤뚱하다가 뒷발을 조금씩 세우기 시작하고, 벽을 의지하고 이런 노력을 혼자 다 해요. 얼핏 보면 판다가 모성애가 없어서 그럴까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어요. 하지만 자세히 보면 아이바오는 푸바오가 나무에 오를 때도 무수히 오르다 떨어질 때, 무심하게 밥을 먹으면서도 ‘걱정돼, 조심해라 너’라는 듯 계속 지켜봅니다. ‘네가 혼자서 겪어내야 한다’는 듯 응시하면서도 새끼가 스스로 해내도록 하도기다리죠. 아이바오는 걱정되는 상황을 보면서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믿음을 줘요. 스스로 할 수 있게 기회를 주고 기다립니다. 조바심이 날 법도 한데 새끼들에게 믿음을 주고 기다리는 데서 저 역시 배웁니다”

에버랜드 쌍둥이 아기 판다.첫째 루이바오(왼쪽), 둘째 후이바오./에버랜드

-쌍둥이 판다 자매를 기르면서 푸바오 때와 차이점이 있나요?

“푸바오는 혼자 자랐고, 쌍둥이는 같이 자라니 서로 정말 잘놉니다. 서로 장난을 치니 경쟁 아닌 경쟁 같기도 하고, 강렬하게 참 거칠게 놉니다. 푸바오 같은 경우 할부지랑 많이 놀았는데, 폭 안기거나 다정다감하게 안아주거나 했는데, 둘이 티격태격 잘 지냅니다.”

-사육사님의 대학생 딸 둘이 푸바오를 예뻐하는 걸 보면서 서운해 하진 않나요?

“카카오톡 프로필에 딸들이 어린 시절 사진을 자기 것으로 올리려고 경쟁을 하더군요(웃음). 결국 티격태격하다가 같이 나온 사진으로 공평하게 올라갔는데, 아빠를 두고 그런 경쟁(?)을 한다는 게 즐겁죠. 딸들이 ‘푸바오가 먼저야, 우리가 먼저야’라고 질투섞인 목소리로 묻기도 합니다. ‘너희가 먼저야’라고 답했는데, 잠깐 머뭇거렸다고 질책을 듣기도 했습니다(웃음).”

‘판다 할아버지’ 강철원 사육사가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 판다월드에서 푸바오를 향해 인사하고 있다.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은 자이언트 판다 푸바오는 4월 초 중국 송환을 앞두고 3월3일까지만 일반 관객에게 공개된다. /뉴스1

◇푸바오와 ‘헤어질 결심’

강씨는 최근 푸바오를 중국에 보낼 준비로 바쁘다. 중국에 간 푸바오가 낯선 언어에 당황하지 않도록 중국어를 섞어가며 푸바오와 소통한다고 한다. 강씨는 “사실 저보다는 공동 육아를 하다시피 판다를 오랜 시간 좋아한 팬분들이 더 걱정”이라며 “제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이면 더 슬퍼하실까 봐 밝게 지내고 있다”고 했다.

-‘사육사는 정을 감추는 하는 이별을 한다’고 책에 적었습니다.

“동물들은 사람에 비해 수명이 짧고, 주거지를 옮기거나 다른 동물원으로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별을 할 일이 많더군요. 이별이라는 건 어쩔 수 없고, 누구든지 만나면 이별의 순간이 있지만 기간과 시기의 차이인데, 이것 해줄걸, 있을 때 잘할걸... 보내고 나서 후회를 하기도 했어요.

이별의 시간이 점점 다가오니 마음 관리가 되진 않는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별 준비를 잘하고, 응원해 주고, 준비를 잘하고 지내는 동안 최선을 다해야 후회가 없는듯 합니다.”

-곧 푸바오가 ‘유학’을 가는데요

“제가 유학비를 보내야 하는데(웃음)… 제가 원래 푸바오의 별명 중에 ‘푸공주’라는 별명을 제일 좋아했어요. 요즘 좋아하는 별명은 ‘용인 푸씨’에요. 어디에 있던 너의 고향은 에버랜드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그래도 고향 에버랜드가 생각 안 날 만큼 행복하게 지내길 바랍니다. 어릴 적 함께 지냈던 할부지는 아주 조금만 생각해 줬으면 좋겠어요.”

푸바오와 강철원 사육사. /에버랜드

그는 “이별에 대한 생각을 지금 이 시점에선 최대한 안 하려 하지만, 중국에서 푸바오를 맡게 될 사육사에게 푸바오에 대한 정보를 전달해 주는 편지를 쓸 땐 솔직히 나도 모르게 감정이 북받쳐 오르기도 했다”고 했다.

강씨는 편지에 “우리 푸바오는 가을에 쌓인 낙엽을 좋아하고, 겨울에는 쌓인 눈에서 뒹굴고 노는 걸 좋아한다”며 “유채꽃들 향기를 맡는 것도 참 좋아한다”고 적었다고 한다. 그는 “푸바오, 그곳에서 할부지 생각도 안 날 정도로 행복하게 지내길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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