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한국계 드래그퀸 Kimchi “내 꿈은 르네상스 인간”[인터뷰]

이유진 기자 2024. 3. 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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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드래그퀸 Kimchi는 여러 분야에 ‘최초’ 수식어를 달며 활약 중이다. 소수자들의 소수자였던 그가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사진 @flattopphotography

한국계 미국인이자 드래그퀸으로 활동하고 있는 Kimchi(김치·한국명 신상영)는 ‘최초 수식어’ 다수 보유자다. 2016년 미국 TV쇼에 출연한 첫 한국계 드래그퀸이고, 2017년에는 드래그퀸으로서 첫 초청 강연자로 대학교 강단(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욜라 메리마운트대)에 섰다. 2020년에는 드래그퀸으로서 처음 슈퍼볼(미국 프로미식축구 NFC 챔피언결정전) 광고에 등장했고 드래그퀸 중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최대 팔로어(180만명)를 보유하며 온라인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소수자들의 소수자였던 그는 이제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나는 한국계이자 퀴어입니다”

여장을 의미하는 드래그(drag)와 남성 동성애자가 스스로를 칭할 때 쓰는 표현인 퀸(queen)의 합성어인 ‘드래그퀸’. 그들은 화려하고 전위적인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으로 자신을 치장하고 클럽이나 바 무대에 서는 퍼포머다. 2009년 시작한 드래그퀸 리얼리티 TV쇼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이하 <루폴>)가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끌면서(현재 16시즌 방송 중) 드래그퀸은 아티스트 범주로 인정받고 있다. 드래그퀸의 대모라 불리는 배우 겸 가수 루폴이 제작자와 호스트로 활약하는 이 프로그램은 에미상을 여러 차례 수상했다. 상금 10만달러를 두고 겨루는 참가자들의 개성과 재능도 볼거리지만, 리얼리티쇼답게 간간이 등장하는 소수자 당사자들의 진솔한 이야기도 인기 요인으로 꼽힌다.

김치는 우연한 기회에 드래그퀸이 됐다. 스물다섯 살 되던 해 친구의 제안으로 핼러윈 파티에서 처음 드래그퀸이 됐고, 그를 눈여겨본 클럽의 캐스팅 제안을 받았다.

“재미로 드래그를 한 첫날, 클럽의 제안으로 무대에 올랐고 즉흥적으로 공연을 했어요. 그리고 계속 공연 제안이 들어왔고 그렇게 정기적으로 무대에 서기 시작했죠.”

드래그퀸 Kimchi, 그는 초등학교 시절을 한국에서 보냈다. 자신의 정체성은 한국이라고 말한다.

시카고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던 김치는 2016년 <루폴> 8시즌에 출연하면서 드래그퀸 슈퍼스타로 미 전역에 얼굴을 알렸다. 미국 TV쇼에 출연하면서 그는 한 가지 사명에 휩싸였다. 광주와 대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최초의 한국계 드래그퀸으로서 우리 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싶었다. 그렇게 예명, ‘김치’가 탄생했다.

“처음 방송 오디션을 앞두고 ‘초현실적’인 기분이 들었어요. ‘내가 지금 사기를 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LA에 가면 납치되어 장기가 없어진 채 욕조에서 깨어나는 것처럼?’이라며 스릴러 영화의 한 장면까지 상상했어요.”

김치는 미국 TV쇼에 출연한 최초의 한국계 드래그퀸이 됐다. 그는 <루폴> 결승 무대에서는 직접 만든 한복을 입고 나와 자작곡 ‘Fat, Femme and Asian(뚱뚱하고 여성스러운, 아시안)’을 1절은 영어로, 2절은 한국어로 소개했다. 미국 사회의 아시안이자 게이인 자신을 향한 편견을 깨고 싶다는 메시지가 담긴 노래였다.

그는 <루폴> 결승 무대에서는 직접 만든 한복을 입고 나왔다. Logo TV 캡처

“<루폴>에 출연한 이유는 제가 자랑스러운 한국 문화를 알리는 대표가 되고 싶어서였어요. 최종 선발전에서 탈락해 집에 가더라도 TV쇼에서 우리 전통 의상이 무엇인지 보여줘야 했죠. 그것이 제 목표였고 어느 정도 이뤘다고 생각해요. 이제 미국 사람들이 ‘한복’이 어떤 옷인지 알게 됐거든요.”

그는 <루폴> 8시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매회 그는 자신이 디자인한 독창적인 드래그 스타일로 심사위원과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퀴어이자 동양계 미국인이면서 당당하고 유머러스한 모습도 매력을 상승시키는 데 한몫했다. 결승 무대에서 부른 ‘Fat, Femme and Asian’의 가사처럼 그는 미국 사회에서도, 하물며 퀴어 집단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종종 받았다. 대중 앞에 서기까지 큰 용기가 필요했다.

“이제 더는 공공장소에 나가기 전 배안에 나비가 날아다니는 것처럼 긴장하진 않아요. 하지만 처음 드래그퀸으로 일을 시작할 때는 달랐어요. 스스로 ‘내가 겪을 최악의 일은 그저 공공장소에서 창피를 당하는 것뿐이야’라며 최면을 걸었죠. 어디서나 당당할 수 있는 제 인생 모토예요.”

그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초등학교 시절은 한국에서 보냈다. 여전히 한국어는 유창하며(하지만 타이핑은 느려 서면 인터뷰는 영어로 진행했다) 어린 시절 행복한 기억이 남아있고 그것은 그에게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잊지 않게 했다.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함께 떡볶이를 먹고 평범한 한국 아이들처럼 여러 가지를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수업을 끝내고 친구들과 함께한 교실 청소였어요. 미국은 학교를 청소하는 관리 직원이 따로 있거든요. 한국에서의 사소한 모든 것이 소중하고 값진 추억이에요.”

그는 부모의 이혼 후 남동생과 함께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어머니는 시카고 한인 식당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며 두 아들을 힘겹게 키웠다. 대학에서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아트디렉터가 됐다. 자신의 디자인으로 성별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스스로를 소수자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전한다는 목표를 세운 것도 그때다. 하지만 경제적 여건이 여의치 않았다. 드래그퀸은 헤어, 의상, 메이크업 등에 상당한 비용이 들지만 지역 기반으로 활동하는 퍼포머들은 큰돈을 벌지 못했다. <루폴>에 출연하게 된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방송 출연 당시 그는 자신의 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망설임 없이 부리토에 과카몰리를 추가할 수 있을 정도로 돈을 벌고 싶다.”

‘이제 과카몰리를 듬뿍 추가해서 먹을 수 있게 됐느냐’는 질문에 그는 “그 발언 이후 치폴레(멕시코 요리를 판매하는 미국의 프랜차이즈 체인점) 광고가 들어왔다”고 답했다. 미국 전역 매장에서 김치와 협업한 ‘치폴레 드래그 런치’가 팔렸고 김치는 치폴레로부터 부리토를 무료로 먹을 수 있는 카드를 받았다. “이 정도면 꿈이 이뤄졌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는 자신의 메이크업 회사 김치 시크 뷰티(Kimchi Chic Beauty)를 론칭해 미국 코스메틱 시장에서 입지를 넓히고 있다. @kimchi_chic

“인간의 가치 전하는 ‘르네상스 인간’이 꿈”

그는 드래그퀸으로서 명성을 얻은 후 월드투어로 전 세계를 여행했다.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 디즈니, 훌루와 프로젝트 협업 방송도 진행했다. 각종 화장품, 식품 광고 모델로도 활동했다. 그가 모델로 출연한 건강 관련 식품회사 사브라 허머스의 광고는 2020년 슈퍼볼에도 등장했다. 슈퍼볼 당일 1억명에 달하는 전 세계 시청자가 김치가 등장한 광고를 시청했다.

‘셀러브리티’ 김치의 여정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메이크업 회사 김치 시크 뷰티(Kimchi Chic Beauty)를 론칭해 미국 코스메틱 시장에서 입지를 넓히고 있다. 그의 화장품은 미국 코스메틱 편집숍 CVS, JC페니, 쇼퍼스 등에 입점했고 무대 퍼포머뿐만 아니라 일반 직장인, 주부들에게도 호응을 얻고 있다. ‘Kimchi’라는 강렬한 브랜드 네이밍은 자연스럽게 K뷰티를 떠올리게 한다.

“미국에서도 한국식 촉촉한 피부 표현이 유행이에요. K팝과 K드라마가 워낙 인기가 있고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한국 배우나 아이돌처럼 꾸미고 싶어 하죠. 그들이 지역과 인종 불문하고 절대적으로 예쁜 것이 사실이니까요.”

그의 화장품은 국내 ‘코덕(코스메틱 마니아)’들에게도 입소문이 나고 있다. 특히 고급스러운 푸른 광채를 띠는 ‘김치 시크 하이라이터’는 ‘해외 직구’를 통한 구입도 늘고 있다. 그는 더는 ‘드래그퀸’이라는 범주에 자신을 가두지 않는다. 자신의 음악을 보다 많은 이들과 공유하기 위해 DJ 활동을 시작했으며 음식 관련 콘텐츠도 만들고 있다. 내년에는 두 권의 책도 출간할 예정이다.

“이제 제 꿈은 성별이나 인종을 떠나 인간의 가치를 존중하고 포용력을 가진 ‘르네상스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마음껏 부리토를 먹을 수 있는’ 꿈을 이미 넘어선 김치의 유일한 라이벌은 인터넷 검색창에서 부단히 싸워야 할 ‘(먹는) 김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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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 기자 88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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