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에게 핫팩을 챙겨주던 노숙인…그녀들은 왜 밤만 되면 사라질까? [창+]

하누리 2024. 3. 2.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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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기획 창 '길에서 여자가 살았다' 중에서]

광장에서 비둘기에게 둘러싸인 이 여성, 영진 씨다.

<인터뷰> 현영진
“제가 이제 노숙하면서 관찰 했어요. 어떻게 보면 사람 못된 거보다 낫다는, 모성애가 아주 지극한 애들이에요.“

영진 씨는 숨진 희재 씨를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사람이다.

<인터뷰> 현영진
“머리는 항상 짧은 머리에다가 이렇게 항상 똑같은 작은 얼굴에 작은 체구니까 나이가 안 들어보이는 거 있죠.
분통은 터지고 가슴은 아프지만 삼십육계 해야 돼요. 삼십육계. 눈도 마주치지 말고 피해버려야 돼“

그래서 영진 씨도 서울역에서 살지만, 서울역에서는 잘 수 없다고 했다.

<인터뷰> 현영진
”이 아래(서울역 지하)는 좀 위험해요. 희재(삐 처리) 맞아죽은 데도. 그래서 거기서 내가 많이 위험을 느끼고 저기 올라가는 거죠. 너무 잘 알아요. ‘어디, 어디는 사각지대다. 거기는 아무리 사람 때려죽여도 나중에 폐쇄회로에 잡히지 않는다.’
"저기서 잤어요. 저기요, 역사 2층. 밑에서 자다가 하도 괴롭힘 당해서 저기로 올라갔어요. 그래서 작년 영하 20도 때 눈보라 치고 막 바람 쌩쌩 불 때 냉동실에 들어가는 거죠, 영하 20도. 내가 진짜 콧 속이 뚝뚝뚝 얼어 붙을 정도.”

언젠가는 추운 거리를 벗어날 수 있을 줄 알았다고 한다.

<인터뷰> 현영진
“고물 줍다 보면 어떻게 길이 뚫리겠지. 열나게, 열나게 하다 보면, 열심히 하다 보면 축적이 돼서 결국 자립이 되겠지. 천만에 만만에 콩떡이지. 이 세상이 그렇게 녹록하지 않아요. 중노동이에요, 굶어가면서. 그런데 돈은 맨날 똑같아요. 하루 24시간 해서 진짜 밥 한 번 먹을까. 그때 그래서 발이 지금까지 아파요, 무릎이.”

꿈은 가수였다고 한다.

< 인터뷰> 현영진
[(기자)한 소절만 불러주세요.]
“어떤 거, 어떤 거”
[백만송이 장미]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있다네~”

조금 가까워졌을까.

잠자는 곳에 함께 가자고 하자, 그것만은 공개할 수 없단다.

<인터뷰> 현영진
[(기자)오늘은 어디서 주무세요?]
“안양쪽으로 갈 때도 있고, 그거는 사생활이고 호호,
상상도 못 하는 곳에서 잘 때도 있어요. 그런 거 알려주면 또 어떻게 되겠어요.”
[(기자)알려주시면 위험해지니까? 아니면...]
”아니죠, 이제 나중에 보금자리가 없어지죠. 알면 그 사람들이 가만 놔두겠어요? 거기서 자게 놔두겠어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타난 한 남성 노숙인,

”그냥 가. 촬영하지 말고 가요!“
”가시라고!“

<인터뷰> 현영진
”되게 사이코인데 사람 괴롭히는 사이코, 엄청 괴롭혀요. 저런 애는 앞으로 내가 이렇게 끊어요, 다. 저런 애들 끊어요.”

영진 씨는 서둘러 서울역을 떠났다.

서울역 지하,
그 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내려가봤다.

<녹취> 노숙인
”별의별 사람이 다 있어. 저 뭐, 정신병자처럼 고의로 행동하고 다니는 사람도 있고 진짜 정신병자로 그런 사람도 있고 별별 사람이 다 있어.“

만취한 남성이 이미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녹취> 경찰
”소리 지르고. 그러면 돼요, 안 돼요?
돼요, 안 돼요? 왜 지나가는 사람 때려요!“

밤이 늦어지자 술판에, 노름판까지 남성들의 판이 깔렸다.

이 사이 홀로 앉아있는 여성.
74살 경순 씨다.

<녹취> 유경순
[(기자)선생님 저 여기 앉아도 돼요? 감사합니다. ]
”자요. 깔고 앉아요.“
[감사합니다.]

각자 ‘자리’가 정해진 이곳은 침범 금지 구역.
‘서울역 신입’인 기자를 본 한 노숙인은 화를 내고

<녹취> 노숙인
”왜 여기와서 여러 사람 사기를 치냐고!
내가 여기 지하철 주인이고 회장이야! “

덩달아 또다른 노숙인도 소리를 지른다.

이 소란 속, 경순 씨가 자리를 지키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녹취> 자원 봉사자
”식사 드릴까요? “
[(기자)아니요, 아니요. 저 아니에요.]

<녹취> 유경순
”하나 받으시지 그랬어요. “
[아녜요. 저 먹고 왔어요.]

그런데 가만 보니 걷는 게 불편해 보인다. 동상에 걸렸단다.

<인터뷰> 유경순
”10개가 다 그래요. 얼마나 쑤시고 아픈지 몰라요.
[(기자) 어떡해. 이거 밴드 말고 연고 같은 거 바르셨어요? ]
”네.“
[병원은 가셨어요? ]
”안 갔어요, 아직.“

왜 추운 거리에 있을까.

경순 씨도, 길에 나오게 된 건 도박꾼 남편 때문이었다고 했다.

<인터뷰> 유경순
”(남편이) 애들 셋하고 나하고 내동댕이 치고선 도망간 거예요. 그 재산을 다 가지고.
저는 안 해본 거 없어요. 간병인 했지. 파출부 뛰었지. 시간만 있으면 파출부도 뛰었지, 안 해 본 거 없어요, 진짜.
그래가지고 우리 애들 대학까지 가르쳤어요.”

[(기자) 그러면 손주가 있으시겠네요.]
“있어요. 근데 얼굴 보지도 않았어요.
그래서 내가 지금 애들한테 꼼짝 못 하는 게, 지들 먹을 것도 못 해주고 그냥 오직 그 학비만 대주는 식으로 해 갖고 공부를 했기 때문에 걔들한테 10원 하나 안 받아요. 니들만 잘 살아라...
(시댁에서) 친정 어쩌고 막 이러면 우리 딸은 꼼짝 못 하는 거야.“

밤 10시가 넘자...경순 씨는 봉사자들이 준 밥을 챙겨 서둘러 떠날 차비를 한다.

그러면서 기자에게 떡과 핫팩을 나눠준다.

<인터뷰> 유경순
[(기자) 저 있어요. 선생님 저 있어요. 이제 가시려고요? ]
”응 가야 돼.“
[(기자) 잠깐만, 저랑 같이 가요. ]

[(기자)] 선생님은 오늘 어디서 주무세요?]
”서울역 떠나야 해. “
[왜 떠나셔야 돼요?]
”내가 자는 데를 알면 안 돼요.”
[왜요?]
“변두리로 나가서“
[왜 안 돼요?]
”그런 게 있어“

오늘밤 경순 씨의 행선지는 인천 주안역이다.

<인터뷰> 유경순
[(기자)저희 어디서 주무시는지 따라가면 안 되는 거죠?]
“안 돼. (웃음)“
[왜요?]
웃음
”(떡) 따뜻해요. 아직 안 식었더라고.“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떡 준) 그 아저씨도 어디서 받은 것일 거야. 그러면 이렇게 나눠 먹어요. (웃음) 받는 사람끼리.“

그렇게 경순 씨는 먼 길을 가고...
기자가 내린 곳은 영등포,
이곳의 여성 노숙인은 어디에 있을까.

<내일(3일) 후속편이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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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방송 : 2024년 2월 27일 (화) KBS 1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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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누리 기자 (ha@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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