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작'에 매혹된 자들이여, 마지막 한 수가 엮어낼 완성을 보라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4. 3. 2. 13:5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세작’, 바둑으로 은유된 정치극과 멜로의 이중주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바둑을 소재로 가져와 정치극과 멜로를 섞어낸 작품이라는 사실만으로도 tvN 토일드라마 <세작, 매혹된 자들>은 확실히 독특한 작품이다. 한 수가 아니라 몇 수 앞을 보고 놓는 바둑의 수싸움은 <세작>에서는 왕좌에 오른 이인(조정석)과 권력을 두고 싸우려는 박종환(이규회) 같은 세력과의 정치극으로 풀려나가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망형지우의 의리를 배신당하고 복수의 일념으로 돌아온 강희수(신세경)와의 정치 대결과 멜로를 오가는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정치극과 멜로가 하나로 엮어진다는 게 어떻게 가능할까 싶지만, 그 단서는 모두 '마음을 움직인다'는 데 있다. 정치가 말 한 마디로 상대의 마음을 흔들기도 하고 미혹되게 만들기도 함으로서 정적을 무력화시키거나 내편으로 끌어들이기도 한다면, 사랑 또한 물론 진심이 바탕이 되어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상대의 마음을 얻는 일과 무에 다를 것인가. 조선시대 시조들 속에 그토록 많이 등장하는 '님'이 임금과 연인을 모두 뜻하기도 했던 것처럼.

하지만 그 마음이 복잡해지는 건 <세작>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이들이 상대를 무너뜨리기 위한 목적으로 상대의 마음을 얻으려 한다는 점이다. 강희수는 이인에게 복수하기 위해 돌아왔고 기대령이 되었다. 그래서 이인의 마음을 얻었지만 애초 복수하려던 마음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세작으로 접근했지만 연인의 마음이 되어버린 비운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그래서 때론 비정하고 추상같던 이인이 강희수 앞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나긋나긋해지고 다정해지는 모습으로 돌변하기도 하고, 김명하(이신영), 추달하(나현우) 같은 역성 세력들과 함께 복수를 꿈꾸는 자리에서는 차갑게 보이던 강희수는 막상 복수를 결행하려는 순간에 이를 고변하고 이인을 구해내는 절절한 마음을 드러낸다. 물론 이런 감정 변화가 복잡하긴 하지만, 드라마에 깊이 빠져 그 감정에 몰입하게 된 시청자들이라면 더할 나위 없는 애틋함이 생겨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청자들 입장이라면 정치고 뭐고 두 사람의 달달한 행복한 시간들이 이어지기를 기대하지만 정치극의 흐름이 또 하나로 펼쳐지면서 그것들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기 때문에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요소들은 결국 '갈등'이 드라마의 주요 동력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어찌 보면 당연한 과정이라고 보인다.

그렇다면 <세작>은 과연 어떤 결말을 향해 가게 될까. 다행스럽게도 후반부로 오면서 세작으로 접근했던 강희수가 이인을 가깝게 보게 되고 그 과거에 얽힌 진실을 하나하나 알게 되면서 오해가 풀려가고 있다는 점이다. 선왕에 의해 청나라로 가서 죽었다 여겼던 강희수의 아버지 강항순(손현주)이 사실은 살아서 청나라에 남아 이인의 세작으로 잘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어찌 보면 기대령 선발을 하려 한 것도 강희수를 백방으로 찾았지만 못찾은 끝에 생각해낸 이인의 묘수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특히 이인이 강희수에게 선왕이 죽으며 문성대군(최예찬)에게 왕위를 물려주라고 내린 유언을 지키지 않고 자신이 대신들을 속여 왕좌에 올랐다며 자신이 "용상을 찬탈한 죄인"이라고 울면서 털어놓는 장면은, 강희수가 이인의 진심을 비로소 알아차리게 되는 순간이 됐다. 즉 문성대군 대신 거짓으로 그가 왕위에 오른 건 사실 문성대군을 지키기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강희수는 울면서 이인을 다독인다. "전하께선 선왕 전하의 유교를 지키기 위해 용상에 오르신 겁니다. 대군과 공주를 지키기 위해 죄인이 되신 겁니다."

이 장면에서는 정치적 사안들과 두 사람의 멜로적 심정들이 섞여진다. '망형지우', 즉 신분이고 나이고 상관없이 '마음으로 사귀는 친구'로서 두 사람은 그 방향이 엇갈리곤 했던 정치적 사안들과 멜로적 심정들을 드디어 하나로 묶어낸다. 그런데 과연 이인이 '용상을 찬탈한 죄인'이라며 선왕의 유교를 지키지 못했던 그 사안은 영원히 되돌릴 수 없는 일일까. 그걸 되돌린다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이인과 강희수는 다시 예전의 망형지우이자 연인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보면 <세작>의 마지막 해피엔딩의 묘수가 엿보인다. 선왕이 죽으며 이인에게 남긴 유언은 두 가지다. 하나는 자신을 그렇게 만든 자들을 발본색원하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문성대군(최예찬)에게 왕위를 물려주라는 것이다. 순서가 뒤바뀐 것이지만, 이제 이인이 선왕을 살해한 역도들을 찾아내 처벌하고, 이미 세자로 들인 문성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길이니 말이다. 과연 시청자들이 기대하는 이런 결말을 보여줄지 <세작>에 매혹된 자들이라면 그 끝을 눈여겨 볼 일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Copyright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