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풀어도 역부족… 빨라지는 지방소멸시계 [S 스토리]
지자체, 지원금 풀어 인구유입 안간힘
일자리 찾아 청년 떠나고 노인만 남아
산부인과 사라진 자리 요양원 들어서
시군구 두 곳 중 한 곳에 소멸 ‘그림자’
난임 시술비 지원 등 일시적 효과 그쳐
월세 1만원·양육비 무이자 대출 추진
전문가 “거주 기반·여건 조성 등 중요”
인구 10만명이 넘는 정읍 지역에 남은 산부인과는 현재 단 1곳뿐이다. 반면 요양시설은 지난해만 3곳이 생겨나 23곳이 운영 중이다. 정읍시 관계자는 “신생아 수가 줄고 고령화가 가속화되다 보니 재가복지센터 등 노인복지시설만 늘어나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정읍시는 지난해 2월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지방소멸위험지수’ 위험단계에 진입했다. 전북 14개 시·군 중 전주시를 제외한 모든 지역이 이에 해당한다. 군 단위 지역 7곳은 소멸 고위험 지역으로 분류됐다.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은 비단 전북도나 정읍시뿐만이 아니다. 전국 228개 시·군·구 가운데 51곳이 소멸 고위험 지역으로 분류됐다. 또 전국 시·군·구 중 67곳은 지역소멸 진입을 앞두고 있다. 지역 절반이 사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소멸 위험 지역은 2016년 79곳에서 2021년 106곳으로 급증했고 지난해는 118곳으로 더 늘었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역대 최저 수준인 0.7명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낮다. 행정안전부가 이달 10일 발표한 2023년 말 기준 주민등록인구 통계에 따르면 수도권과 비수도권 인구 격차는 70만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저출생에 따른 고령화도 가속화하면서 70대 이상 인구가 사상 처음으로 20대 인구를 넘어섰다.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떠난 청년들 자리를 농촌지역 고령층이 메우고 있는 것이다.
지방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끊기면서 산부인과, 소아과병원과 함께 사라지고 있는 것은 유·초·중·고교들이다. 일례로 강원 춘천시에서 1997년 개원한 한 어린이집은 한때 원생이 110명에 달했다. 하지만 2015년 취원생이 2명에 그치더니 이듬해 졸업식을 끝으로 결국 문을 닫았다. 빈 공간은 현재 노인복지센터로 바뀌었다. 행안부 등에 따르면 2012년 이후 최근 10년간 전국에서 운영 중이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 경로당 등 장기요양기관으로 전환한 사례는 190건이 넘는다.
지자체들이 지역소멸이나 인구절벽을 늦추기 위해 꺼내 든 카드는 출산 장려금과 아동수당 등 ‘현금성 지원’이다. 경남 거창군은 올해 들어 출생아 1인당 1억1000만원을 지원하는 대책을 내놨다. 출산축하금 2000만원을 비롯해 양육지원금으로 60개월간 매월 30만원씩 지원하고 청소년 꿈키움바우처 제공, 대학생 등록금 지원, 결혼축하금 지급 등을 이어가는 방식이다. 전북 익산시도 올해 ‘청년다이룸 1억 패키지 더하기’ 정책을 통해 생애주기에 걸쳐 최대 1억7000만원 상당을 지원한다.
전남 강진군은 아이 1명당 7세까지 최대 5040만원을 지원하며, 충북 제천시는 둘째 아이를 낳으면 600만원, 셋째 이상에겐 3000만원을 준다. 주택자금을 대출받는 가정에는 자녀 수에 따라 최대 3800원까지 현금을 지급한다. 충북 영동군은 올해 ‘1억원 성장 프로젝트’를 꺼내 들었다. 결혼 후 지역에 정착하는 45세 이하 청년 부부에게 1000만원을 주고 관내에서 결혼해 아이를 낳아 키우는 부부에게 최대 1억2400만원을 지급하겠다는 내용이다. 경남 거창군도 이런 정책으로 출생아 1인당 1억1000만원을 지원한다.
아이 낳기 힘든 난임부부를 위한 지원도 저출생 극복 정책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전북 전주시와 경남 진주시는 올해부터 ‘난임 시 시술비 지원’과 함께 ‘난임부부 격려금 지원’ 사업을 시행한다. 난임 시술 후 임신이 되지 않을 경우 매회 20만원씩 격려금을 주는 제도다. 강원 강릉시는 지역에서 6개월 이상 계속 거주 중인 산모에게 산후조리비 50만원을 지급한다. 정부는 올해부터 0세 부모 급여를 월 100만원으로 늘렸다. 첫 만남 이용권을 통해 첫째 아이 낳으면 200만원 지급한다. 월 10만원씩 주는 아동수당까지 합치면 아이 첫 생일인 돌까지 1520만원을 받게 된다.
최근 지자체들이 새로 꺼내 든 카드가 ‘주거지원’이다. 전남 화순군은 ‘월세 1만원 임대 아파트’ 공급에 박차를 가한다. 지난해 4월 전국 최초로 신혼부부와 청년을 대상으로 이를 도입해 100가구의 전입 효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인근 나주시는 올해 아예 임대료가 없는 ‘0원 청년 임대 아파트’를 70가구 규모로 공급하기로 했다. 전남도는 청년·신혼부부가 1만원에 생활할 수 있는 임대 아파트를 모든 16개 군에 최소 50가구 이상씩 총 1000가구를 신축해 제공할 방침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들어서도 출생아 증가 전국 1위를 기록 중인 충북도는 올해 ‘청년 신혼부부 반값 아파트’ 공급과 ‘출산·양육비 무이자 신용 대출’을 시행할 계획이다. 올해 들어 ‘저출생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킨 경북도는 신혼부부에게 주택을 임대하고 아이를 출산하면 임차료를 환급해 주는 ‘아이돌봄타운’ 등을 도입했다.
전북도는 이민정책을 꺼내 들었다. ‘지역 특화형 비자’를 확대해 장기적으로 인구 10%까지 외국 우수 인재를 유치하고 취업과 정착, 나아가 지역경제 활력을 불어넣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전남도는 인구청년이민국을 신설했고 경기·충남·경북도에서는 법무부 출입국·이민관리청 유치전에 뛰어들고 있다.
충북 단양군은 빼어난 자연경관을 기반으로 관광객을 유입시켜 체류 인구를 늘리는 전략을 선택했다. 지난해 6월 기준 주민등록 인구 2만8000명에 불과한 이 지역의 월 체류 인구는 24만1000명으로 8.6배나 많았다. 대전 서구청은 자녀 2명 이상을 낳은 공무직 직원들을 정년 후에도 재고용할 수 있게 하는 새로운 출산 장려 정책을 내놨다. 주민등록 전입을 통해 인구를 늘리려는 지자체들도 있다. 충북 보은군은 전입을 유도하면 최대 50만원을 포상금으로 지급한다. 전북 고창군도 전입 가구원과 군인, 전입 유공기관·단체·기업체에 50만~200만원을 지원키로 했다.
◆전문가 “민·관 협력해 시너지 효과를”
전문가들은 지방소멸을 막기 위해서는 정부·지자체와 함께 지역 사회 구성원의 관심과 협력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부영그룹이 최근 저출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출생 직원 자녀에게 현금 1억원을 일시에 지급하는 파격적인 출산 장려책을 내놓은 게 대표적이다.
김태연 단국대 교수(환경자원경제학)는 “지방소멸 위기는 지역 쇠퇴의 결과이지 인구 감소가 근본적인 원인이 아니다”며 “지방소멸 대응 정책의 목적을 인구 증가보다 경제 활성화에 두고 지역에서 인구가 늘어날 수 있는 기반과 여건을 먼저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2022년부터 매년 1조원씩 10년간 지원하는 지방소멸대응기금을 더 늘리고 조기에 지급하는 대책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북도 관계자는 “일자리 창출과 청년인구 유입, 생활 인구 확대 등에 쓸 기금을 9월에 배분하다 보니 이듬해로 이월되기 십상”이라며 “지난해 전북에 배정된 기금 2058억원의 14개 시·군 집행률은 32%에 그쳤다”고 토로했다.
전주=김동욱 기자, 전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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