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몸비티아이’ 시대…유전자에 새겨진 내 건강 알고 싶어 [ESC]

한겨레 2024. 3. 2.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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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유전자 검사 유행
면역력·운동효과·피부모발 건강 등 파악…운동법·식습관·영양제 조언
키트에 침 담아 배송하면 앱으로 결과 전송…복지부 인증 기관 10곳
“질병 예방이 목적…MZ세대, 탈모·체중관리에 관심 가지며 수요 늘어”
유전자 검사 서비스 ‘젠톡’이 검사를 마치고 사용자에게 앱으로 전달한 결과지 모습. 조서형 제공

“유전적으로는 비교적 짧은 시간 잠을 자도 좋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는 쇼트 슬리퍼에 가까워요.”

나는 밤이 되면 시름시름 잠이 들지만, 아침이 되면 활력이 넘친다. 알고 보니 이러한 특성은 내 유전자에 새겨져 있었다. 또 나는 모기에게 물려도 별로 가렵지 않다. 물린 곳도 자국이 작거나 거의 남지 않는다. 이 또한 내 유전자에 새겨진 특성이었다. 지난달 마크로젠의 유전자 검사 서비스 ‘젠톡’을 통해 129가지의 유전자 정보를 얻었다. 작은 플라스틱병에 담은 내 타액을 택배로 마크로젠에 보낸 지 10일 만이었다.

젠톡의 유전자 검사 결과지 중 ‘수면습관/시간’ 항목. 조서형 제공

‘바프’ 찍기 전에 내 몸 검사

2월16일 방영된 문화방송(MBC) ‘나 혼자 산다’에서 방송인 전현무는 ‘바디 프로필’(탄탄한 몸매를 보여주는 프로필 사진) 촬영을 새해 계획으로 세웠다. 그리고 운동과 식단 관리를 시작하기 전 유전자 검사를 했다. “엠비티아이(MBTI)의 시대가 가고 ‘몸비티아이’의 시대가 온다. 몸을 분석해서 뭐가 부족한지 알고 거기에 맞게 운동을 해야 한다. 정확히 분석을 해서 4월 말에 찍을 ‘바프’(바디 프로필)에 엄청난 도움을 받을 것”이라며 자신에게 부족한 영양소와 체질을 먼저 파악해 효율적으로 몸을 다듬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의 결과지에는 “운빨 나쁜 다이어트”, “오늘도 부은 호빵이”, “투 머치 마블링 바디”, “모발 낙하 중” 등 현실적인 내용이 쓰여 있었다. 그는 말이 심하다고 툴툴거리면서도 “유전자는 거짓말 안 하는구나”라며 놀라워했다.

2월16일 방영된 문화방송(MBC) ‘나 혼자 산다’에서 방송인 전현무씨가 자신의 유전자 검사 결과를 확인하는 모습. 문화방송 화면 갈무리

최근 몇년 새 틱톡과 릴스에서는 ‘유전자 챌린지’(#MYGENESCHALLENGE)가 유행했다. 등장인물들이 노래에 맞춰 춤을 추며 자신의 유전적 특징을 공개한다. 부모의 국적과 키, 눈동자 색깔, 머리카락 종류 등의 신체적 특징을 노래에 맞춰 소개한다. 이국적인 외모의 유튜버 ‘유깻잎’은 유전자 검사를 통해 50% 한국인, 28.6% 일본인, 18.4% 중국인, 2.79% 몽골인으로 구성된 동아시아인이라는 혈통을 밝히기도 했다. 역대 한국인 농구선수 중 가장 키가 큰 하승진(221㎝) 역시 유럽인의 피가 섞여 있을 것을 예상하며 유전자 검사를 했지만 100% 동아시아인 유전자임을 알게 됐다. 나를 구성하는 것을 통해 나를 표현하는 엠제트(MZ) 세대의 적극성이 반영된 챌린지였다.

유전자란 유전 형질을 나타내는 원인이 되는 인자를 말한다. 부모의 특성이 자식에게 나타날 때 그 특성을 만들어내는 인자로, 유전 정보의 기본 단위다. 사람은 5만개에서 10만개 사이의 다른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키와 몸무게, 머리카락과 입맛 등 인체 세포의 모든 생명 현상과 기능은 유전 정보에 따라 결정된다.

디티시(DTC·Direct to Consumer) 유전자 검사는 소비자가 직접 검사 업체에 의뢰하는 방식이다. 머리카락이나 피를 뽑지 않아도 되고 병원을 찾을 일도 없다. 나도 편리한 유전자 검사 대열에 동참했다. 체중 관리, 운동 능력, 피부 관리 등 각각의 유전자 검사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이를 모두 합쳐 129가지 항목의 결과를 받아볼 수 있는 패키지를 선택했다. 가격은 5만8천원. 방법은 간단했다. 앱을 통해 회원 가입을 하고 패키지를 신청한다. 3일 안에 설명서가 담긴 키트가 집 앞에 배달된다. 식사와 양치 뒤 30분이 지난 다음 턱의 침샘을 마사지한다. 타액이 모이면 통에 담고 보존액과 섞은 다음 집 앞에 내놓는다. 앱에서 반송하기 버튼을 눌러 수거 신청을 하면 끝. 결과는 앱을 통해 10일 안에 확인할 수 있다.

젠톡의 누적 이용자 수는 50만명이 넘는다. 2016년부터 디티시 개인 유전자 검사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매 분기 250%씩 가입자 수가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마크로젠 홍보 담당자 신재은씨는 “탈모와 체중 관리 등 일찍부터 건강에 관심을 가지는 엠제트 세대의 이용이 많아지면서 수요가 점점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용자들은 특정 영양소 농도 유지 능력이 낮게 나올 경우 관련 영양제를 추가로 섭취한다거나, 높은 알코올 의존성 결과를 보고 혼술을 줄인다. 요산 농도가 높아지기 쉽다는 결과에 통풍 예방을 위해 수분 섭취를 늘리고 음주를 줄이는 등 건강 관리를 위해 유전자 검사 결과를 활용하고 있다고 신씨는 전했다. 어려서부터 ‘100세 시대’의 경고를 듣고 자란 엠제트 세대는 자기 건강을 미리 챙기는 데 익숙하다.

무료 검사 이벤트에 관심 폭발

유전자 검사를 할 수 있는 업체는 젠톡뿐이 아니다. 직장인 신정인(33)씨는 외국 업체인 ‘서클 디엔에이’(Circle DNA)에서 유전자 검사를 했다. “특정 생리통약을 먹고 나면 배가 아팠는데 검사를 통해 제가 ‘나프록센’ 계열 약물에 취약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그 뒤 신씨는 나프록센과 비슷한 효능을 지닌 이부프로펜 등으로 바꿨다. 이처럼 유전자 검사를 통해 타고난 체질 외에도 약물 반응과 녹내장, 암, 치매, 뇌, 혈압 관련 발병 확률도 알 수 있다. 할리우드 스타 앤절리나 졸리 역시 유전자 검사 결과 유방암 발병 확률이 87%로 나와 예방적으로 유방을 절제했고, 난소암 예방을 위해 난소·나팔관 제거 수술도 받았다. 신씨는 “질병에 대비하고 내게 부족한 영양소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아” 엄마에게도 유전자 검사 서비스를 선물했다. 신씨는 “내 결과지에 ‘이타심이 낮다’는 결과가 있었는데 오히려 그걸 보고 주변 사람을 배려하고 잘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또 엄마에게 비타민 디(D)와 아연이 부족하다는 결과를 받아보고 영양제도 선물했다. 그는 “타고난 이타심은 없어도 성인이 되었으니 이타심을 기르기 위해 노력은 할 수 있는 거 아니겠냐”며 웃었다.

마이데이터 서비스 업체 뱅크샐러드가 제공하는 유전자 검사 결과 카드. ‘소심한 심장’(유산소 운동 적합성), ‘단맛상궁’(단맛에 대한 민감도) 등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뱅크샐러드 제공

신씨의 엄마인 약사 김민정(63)씨가 받은 선물은 뱅크샐러드의 무료 유전자 검사였다. 뱅크샐러드는 마이데이터(산재된 개인의 데이터를 한곳에 모아 개인이 직접 열람하고 통합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 서비스 업체이지만, 유전자 분석 기관과 제휴해 회원들에게 유전자 검사 서비스를 제공한다. 김씨는 “연인이나 친구, 가족의 정보를 넣으면 프로그램에서 비교해주는데 딸과 유전자 대다수가 일치해 ‘케미 대폭발’이라는 결과지가 나왔다”고 전했다. 또 김씨는 포만감 유전자와 비만 유전자가 낮은 것으로 나왔다. 다만 체지방률은 주의 단계로 표시됐다. “저는 많이 먹어도 살이 잘 찌지 않는 체질이고, 포만감도 잘 못 느끼는데 유전자 검사 결과가 그대로 나왔어요. 또 운동을 하고 나면 피곤하고 몸살이 나기도 하는데, 운동 뒤 회복 능력이 매우 낮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김씨는 체지방이 생기는 속도를 늦출 수 있도록 단백질과 식이섬유 위주 식습관을 유지하고 있다. 가장 빠르게 지방을 합성하는 액체 과당류는 거의 마시지 않는다.

뱅크샐러드의 유전자 제휴 검사 서비스는 2021년 말에 시작됐는데 지난해 말 누적 검사 인원은 27만명을 기록했다. 매일 오전 10시에 선착순으로 무료 유전자 검사 이벤트가 열린다. 이윤경 뱅크샐러드 대외협력홍보팀장은 “30 대 1 경쟁률로 0.03초 만에 마감될 정도로 인기가 여전히 높다”고 말했다. 유전자 검사가 인기를 끌고 있지만 이 팀장은 “디티시 유전자 검사는 질병 예방을 위한 검사이기 때문에 진단이나 치료 목적으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 의학적 소견은 꼭 의료기관과 상담해서 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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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항목·평가기준 꼼꼼히 따져봐야

젠톡 앱으로 유전자 검사를 신청하자 집으로 배송된 젠톡의 유전자 키트. 침을 담을 플라스틱통과 보존액, 설명서, 반송용 봉투로 구성돼 있다. 조서형 제공

직장인 김헬시(가명·35)씨는 두곳 이상의 유전자 검사를 통해 자신의 유전적 특성을 파악했다. 김씨는 검사 결과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을까. 그는 섭취하는 영양소와 생활 습관을 바꿨다. 그는 “면역·건강 관련 영양소 항목이 전체적으로 낮게 나왔다. 평소 영양제 복용에 관심이 없었는데 멀티 비타민과 면역 관련 영양제를 구매해서 먹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피부 노화나 색소 침착 위험성이 있다는 결과는 의문이었다. 평소 피부 상태가 양호한 편이었기 때문이다.

“검사 내용을 깊이 살펴보니 검사 기관과 항목마다 기준으로 삼는 데이터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서양 백인 국가에서 진행한 연구 데이터를 기준으로 했을 때, 멜라닌 색소를 기본적으로 많이 보유하고 태어난 아시아인인 저는 색소 침착 관련해 주의가 필요한 수준으로 판별되는 식인 거죠.”

나를 알기 위해서는 결과지를 자세히 들여다보며, 그 평가 기준까지도 꼼꼼히 뜯어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는 보건복지부에서 인증한 10곳의 디티시 유전자 검사 기관이 있다. 어디에서 검사를 받아야 좋을까. 이 팀장은 “인증된 기관이라면 모두 신뢰해도 무방하다. 다만 유전자 항목이 다양하니 자기가 알고 싶은 항목이 검사에 들어가 있는지, 가격대가 적절한지 등을 판단해 선택하면 좋을 것”이라고 했다. 김헬시씨는 이렇게 조언했다.

“서비스 설명과 다른 사람이 올린 결과지를 보며 유의미한 솔루션을 제공하는지 확인하세요. 카테고리의 다양화와 별개로 검사 업체마다 정보의 깊이가 달라요. ‘살이 잘 찌는 체형이니까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세요’ 수준의 솔루션을 원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내가 받아든 젠톡의 유전자 검사 결과지는 206쪽에 이른다. 앱을 통해 정리된 요약본을 훑어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능력치는 보통에 머물렀고 피부와 모발 건강에는 신경을 더 기울여야 했다. 평균보다 낮은 운동 회복 능력을 가졌으나 매일 운동을 하는 내게 이런 주문이 있었다. “운동 전과 후에 스트레칭, 마사지, 폼롤러, 냉·온찜질을 10분씩 하세요.”

유전자 검사 결과, 내게 대단한 순발력이나 지구력은 없었다. 대신 조용하게 깊은 잠에 들 수 있는 것과 소소하고 확실히 행복할 수 있는 능력치를 가졌음은 알 수 있었다. 니코틴과 알코올 대사가 좋지 않아 몸에 오래 남으니 술과 담배를 멀리해야 한다는 사실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계절의 시작인 봄이다. 나는 건강 관리가 필요하다는 30대에 들어섰다. 예상 수명 100살을 바라보며 이번 유전자 검사가 효과적인 라이프스타일 관리의 발판이 될 것 같다.

조서형 지큐코리아 웹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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